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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4화 > 1554. 성유니콘 (1,334/2,000)

< 1554화 > 1554. 성유니콘

“쓸데없이 도망치지 마라. 이미 이 주위는 우리가 통제하고 있다. 네가 도망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

“통제하고 있다고? 주위에 아무것도 안 느껴진다만.”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네 수준이란 거다. 이 주변 공간은 우리 손바닥 위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우리를 알아차린 만큼 기감은 제법 되는 듯하다만, 딱 거기까지군. 마법을 알아보는 식견이 부족하다. 유망주니, 뭐니 언론에서 빨아주더니 실제로는 평범한 B급 수준이군.”

마법.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현실의 마법은 유희 속 세계의 마법은 달랐다. 이 세계의 마법도 마나라는 에너지로 발동하는 사실은 안다. 그러나 정확한 원리는 모른다. 대학교에서 교육받았던 기억은 있으나, 마법의 원리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현실의 마법은 지역마다 원리가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면 옆나라 일본의 음양술이 그렇다.

‘놈이 마법이라고 말했지만, 마법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적의 말을 의심 없이 믿는 것 자체가 멍청한 짓이지.’

자잘한 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눈앞의 상황에 집중했다. 내가 전투의지를 일으키자, 놈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포지션을 잡는다.

껄끄러운 놈들이다.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으면서도 방심은 전혀 하지 않는다.

“노지수. 그년이 보냈나?”

“그 여자는 우리의 주인이 아니야. 우린 실행부일 뿐이지. 위에서 결정했으니 그저 따를 뿐이다. 자, 준비는 끝났으니… 이만 죽어라.”

순간적으로 공간이 흔들렸다. 땅이 시커멓게 죽기 시작했고, 검은 연기가 내 주변을 감싼다.

나는 놈 중 가장 뒤쪽에 있는 놈을 쳐다봤다. 이 현상은 놈에게서 시작되었다. 마나의 흐름이 말해주고 있었다. 가장 뒤쪽에 있는 놈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나는 좀 더 시선을 집중했다. 놈은 황인이 아니라 흑인이었다.

“이건 또 어느 나라 마법이냐?”

“부두술이라고 아나? 아프리카 쪽의 마법이지.”

둥. 둥. 둥. 둥. 둥.

검은 연기 속에서 북소리가 들렸다.

“느린 리듬이 들릴 거다. 듣기 좋지? 편안하지? 그대로 리듬에 정신과 몸을 맡겨라. 최고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아, 그래…. 편안하군. 너무 편안해서….”

나는 들려오는 북소리에 몸을 비틀거렸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니 놈들의 긴장이 풀리는 걸 발견했다. 방심.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뇌천류(雷天流) 질풍신뢰(疾風迅雷).

번개를 휘감은 내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방심했던 놈들의 반응이 늦었다. 덕분에 나는 가장 뒤쪽에 있는 흑인의 앞으로 도달했다.

“북소리 잘 들었다. 깜둥이 새끼야.”

“이 씨발. 그거 인종차별… 크아아아악!”

내 칼이 놈의 복부를 찌른다. 나는 천천히 칼을 위로 올렸다. 이놈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너무 빠르게 죽여주면 재미없지.

북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주위를 감쌌던 검은 연기도 사라졌다. 다만 시커멓게 죽은 땅은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땅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지상으로 올라오기 전에 화련비도가 놈의 심장을 갈랐다.

“이만 죽어라, 니거 새끼야.”

흑인이 절명했다. 생각보다 오래 버티지 못했다. 심장이 파괴돼도 30초는 버티는 게 기본 아닌가.

“에디가 죽다니…!”

“빌어먹을! 놈을 죽여!”

“에디의 복수다!”

적들이 달려든다. 나는 여유롭게 칼을 뽑았다.

놈들은 질풍신뢰와 찰나의 콤보에서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무게를 잡던 것에 비해 어중이떠중이란 뜻이었다. 이런 놈들에게 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가장 가까이에 있던 적의 목을 베었다. 옆에 있던 놈이 흠칫 놀라 능력을 사용한다. 허공에서 원판 3개가 생성되었다. 날카로운 원판이 빙글빙글 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아무리 봐도 방패처럼 생겼군. 방패를 조종하고 소환하는 능력인가?’

원형 방패를 회전시킨건 송격과 방어를 동시에 하기 위한 노림수로 보인다.

‘나 같으면 커다란 방패 하나로 방어에 집중했다.’

빙글빙글 도는 3개의 원판 사이의 미세한 틈으로 화련비도를 찔러 넣는다.

카카카카칵!

방패가 회전하며 화련비도의 칼신과 맞닿았다. 어마어마한 불꽃이 튀었다. 절단기처럼 고속으로 회전하나, 화련비도를 절단하지 못했다.

‘화련비도가 좆밥처럼 보이나? 금이 갔다고 해도 웬만한 공격은 전부 막아낼 수 있어.’

화련비도의 칼끝이 놈의 머리를 꿰뚫었다. 놈이 쓰러지며 회전하는 방패도 사라진다.

“대장! 내가 놈을 붙잡겠습니다! 그 사이에….”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3]

한 놈이 순식간에 내 뒤에 나타나 양손으로 내 몸을 구속하려고 했다. 그 시도는 성공했다. 실제로 나는 찰나까지 썼음에도 놈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공간 이동 능력은 아니고… 기척을 숨기는 쪽의 능력인가?’

피하는 건 포기했다. 대신 화련비도를 역수로 쥐고 할복하듯 내 복근을 찔렀다. 물론 내장이 상하지 않게 조작했다. 많이 죽이고 많이 죽다 보니 이런 요령이 생기게 됐다.

“커어어억?! 자, 자기 몸을 찔러? 이, 이런 미친 새끼가…!”

“난 복근에 구멍이 났을 뿐이지만, 넌 심장이 찔렸잖나. 딜교 씹이득. 인정? 어 인정~”

놈이 죽는 것을 확인하고 칼을 빼낸다. 담담하게 말했으나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전투에 돌입하고 분비된 엔도르핀 덕분에 고통이 적게 느껴진다는 것.

‘뭐, 실제로 분비되는지는 모르지만.’

남은 건 두 명.

대장과 키가 작은 놈.

대장이 이를 악물며 달려든다. 그가 손에 끼우고 있던 너클이 순식간에 커져 사람을 단숨에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흉기로 변한다. 그 커다란 너클에 가시까지 돋아 있었다.

나는 대장에게 달려드는 척하다가 방향을 틀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2]

뇌천류(雷天流) 비호(飛虎).

도약을 이용한 순간 돌격기. 호랑이와 같은 기세로 키 작은놈에게 달려들었다. 놈은 허리춤 배낭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했으나, 내 칼이 놈의 목을 베었다. 호랑이의 발톱이 할퀸 것처럼 거칠었다.

툭.

죽어가던 놈이 내 어깨를 두들겼다. 녹색의 자국이 어깨 위로 퍼져나가며 문양이 된다.

‘마법 같은 건가? 죽기 전에 뭔가 했군.’

이쪽으로 다가오는 대장의 기척이 느껴진다. 분노로 일그러진 놈의 눈은 증오로 가득했다.

“빌어먹을! 내 부하들을 죽여?! 네놈을 죽여서 부하들의 넋을 기리마!”

“느려 터졌군. 그딴 속도로는… 어?”

나는 질풍신뢰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몸이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달려드는 놈에게서 피할 수 없었다. 너무 당황해서 잠깐 찰나를 쓰는 것도 잊었다. 놈의 주먹이 내 뺨에 닿았다.

육체가 뒤로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

데미지는 적었다. 맞기 직전에 마나를 이용해 얼굴을 집중적으로 방어했으니까. 기껏해야 코피가 나는 게 전부다.

“아, 씨발.”

다만 맞는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질풍신뢰가 사라졌다. 나는 상체를 일으킨다. 그 속도가 둔중하다. 원인이 무엇인지 짐작 갔다.

‘그 땅딸보 새끼가 내 어깨에 붙인 거… 이게 원인이군.’

쿵!

대장이 달려와 내 상체에 올라탔다. 마운트 자세를 잡은 것이다. 놈은 가장 먼저 내 손에 들린 화련비도를 낚아채 집어 던졌다.

“넌 끝났어. 제발 빨리 죽지 마라.”

“…남자 새끼가 내 위에 올라타다니. 존나 기분 나쁘네.”

“언제까지 그 여유를 가질 수 있을지 보겠다!”

놈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 주먹이 내 얼굴에 꽂히기 직전, 나는 마나를 사용했다.

뇌전.

파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내 몸에서 뇌전이 터졌다. 뇌전은 놈을 감전시키고 하늘로 치솟는다.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벼락이었다.

“끄으으으으으! 이깟 전류…! 내가 버티지 못하리라 생각하나?!”

“평범한 전류였다면 견뎠겠지.”

지금의 뇌전은 뇌천류의 뇌전이었다. 뇌천결의 무리와 내 의지가 담긴 뇌전. 곧 놈의 눈동자가 뒤로 넘어갔다. 기절한 것이다.

나는 그를 옆으로 밀쳐내고 몸을 일으켰다.

“쿨럭!”

피를 토했다.

내상의 여파였다.

놈들에게 당해서? 아니었다. 질풍신뢰를 무리하게 사용한 탓이다. [광명승천도] 세계에선 몇 번을 써도 문제없었지만, 현실의 내겐 아니었다.

‘기혈이 손상입었어. 육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기술의 문제야. 뇌천류 특성 레벨을 더 올리면 괜찮아지겠지. 아니면 질풍신뢰만 집중적으로 수련하거나.’

수련은 포기했다. [광명승천도]의 나와 현실의 나는 재능이 달랐다.

내가 아무리 수련에 힘을 쓰더라도 질풍신뢰를 완벽하게 다룰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효율의 문제지. 포인트를 벌어서 뇌천류 레벨을 올리는 게 더 빨라.’

문제는 없다. 완전 회복을 사용하면 되니까.

‘완전 회복을 쓰기 전에 다른 기술이나 한번 써볼까.’

화련비도를 다시 손에 쥐고 나무를 노려본다.

‘뇌천류(雷天流) 심즉검(心卽劍)…을 어떻게 쓰더라?’

뇌천류의 심즉검은 초식 같은 게 없었다.

의지를 칼에 담아 빠르게 휘두른다.

한 문장으로 설명 가능한 이 기술은 육체와 내력보다는 감각과 영성이 중요했다.

‘쓰고 난 뒤에는 죽을지도 모른다고 예상하며 각오까지 끝마쳤는데… 설마 휘두르는 것조차 불가능할 줄이야.’

다 귀찮아졌다. 관두고 완전 회복을 사용했다.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기분이 상쾌해졌다.”

뚫린 배도 아물었다.

나는 옆에 기절한 남자를 바라봤다. 이놈은 일부러 죽이지 않았다.

‘알아내야 할 게 많으니까. 우선 팔다리 힘줄부터 끊어 놓을까. 그 뒤에는 점혈로 내력을 봉인하고….’

고문은 문제없다.

분근착골이 있으니까. [광명승천도] 세계에서처럼 잘할 자신은 없지만… 일단 시도는 해봐야지.

***

“끄아아아아아아악!”

정글에 건장한 남자의 비명이 울러 퍼졌다.

분근착골의 효과는 뛰어났다. 비장하게 입을 다물었던 놈은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입을 열었으니까. 이것도 분근착골의 효과가 약해진 것이다. [광명승천도] 세계의 나였다면 3분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우선 정석부터 시작할까. 이름이 뭐지?”

“기, 김항석이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거의 없다. 나는 그들의 사냥개일 뿐이다. 아까운 시간 버리지 말고 나를 죽여라.”

“내 시간을 걱정해주는 거냐? 거참 친절하시군. 보답으로 난 널 더 살려줄게. 받아라! 분근착골!”

“씨, 씨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원활한 심문을 위해 1시간 정도 공을 들여 고문했다.

주머니에서 워치를 꺼내 손목에 착용했다. 최신형 거짓말 탐지기다.

[거짓말 탐지기

거짓말을 탐지합니다. 착용시 10분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격: 300 포인트

※주의

의도 있는 거짓말만 탐지됩니다.]

“죽고 싶지? 이제 내 질문에 잘 대답하면 깔끔하게 죽여줄게. 대신 거짓말하면 분근착골 10시간이다.”

“…그래. 차라리 빨리 죽는 편이 낫겠군. 질문해라….”

“이게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했네? 감히 반말을 해? 분근착골!”

“끄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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