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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8화 > 1558. 성유니콘 (1,338/2,000)

< 1558화 > 1558. 성유니콘

해가 지기 시작했다.

나는 월척을 3마리나 잡았지만, 손가연은 월척을 한 마디도 잡지 못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낚시에 집중했다. 허나 월척은 낚이지 않았다. 낚시란 결국 물고기가 미끼를 무나, 안 무나였다. 운빨이란 뜻이다. 그녀의 오늘 운수는 별로였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우리는 라면을 끓여 먹었다. 손가연이 끓여줬다. 입맛 까다로운 내가 인정할 정도로 라면 끓이는 솜씨가 끝내줬다.

“누나, 라면 엄청 잘 끓이네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틈만 나면 낚시하거든. 그리고 낚시를 할 때면 거의 항상 라면을 먹어. 아마 라면 수천 개는 끓였을걸? 요리라곤 라면 끊이는 거랑 회 써는 것밖에 몰라.”

“아, 누나가 평생 라면 끓여줬으면 좋겠다.”

“뭐? 하하하. 유진이는 아부도 잘하네.”

[손가연 28살 처녀

섹스 경험 : 0

경험 인원 : 0

성욕도 : 74

속마음 : 얘, 지금 나한테 작업치는 거야? 웃기네.]

여기서 주목할 건 손가연의 속마음이 아니라 성욕도였다. 낮에 봤을 때보다 성욕도가 10 올랐다.

‘성욕도를 호감도라고 볼 수는 없어. 하지만 성욕도가 올랐다는 건 날 남자로 보고 있다는 게 확실하다는 거지.’

성욕도에 집착해선 안 된다. 성욕도가 높다고 해서 이성을 잃고 발정 나는 건 아니니까.

“누나. 북백 손가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응? 그런 건 아니야. 북백 손가가 지금 손님을 받을 수 없는 건… 가주가 가문에 없어서 그래.”

손가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누나가 가주대리라며?”

“가주랑 가주대리는 많이 달라. 가주는… 아니다. 이건 외부인인 네게 말할 내용은 아니야. 미안.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은 정했어?”

“그놈들은 하나, 하나 박살 내려고. 엮여 있는 놈들까지. 누나가 뒤처리를 해줬으면 해.”

“그래. 알았어. 이만 정리하고 헤어지자.”

나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녀의 앉은 자리를 빤히 쳐다봤다. 의자 시트가 그녀의 엉덩이 모양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두 개의 커다란 원과 그 사이에 있는 작은 원.

짜아악!

얼굴이 벌게진 손가연이 내 등짝을 때렸다.

“뭘 보고 있는 거야! 빨리 정리해!”

***

내 계획은 이랬다.

트라이앵글을 처리하기 전에 트라이앵글과 관련된 정치인과 고위공무원들을 처리하는 것이다. 우선 권력의 끝부터 자르는 것이다.

‘패왕도문에는 이미 연락했다. 패왕도문의 후계자인 류청설은 내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어.’

패왕도문이 황하문을 조사하고 견제해주기로 했다. 나는 한국 일을 정리한 뒤에 중국으로 가서 패왕도문과 함께 황하문을 쓸어버릴 것이다.

“어, 왔어?”

어두운 밤, 벤치 위에 손가연이 앉아 있었다.

“누나가 도와줄 필요 없이, 나 혼자서도 충분해.”

“뒤처리 때문이야. 이 일의 주축은 나여야 뒤처리가 더 편해. 오대 가문의 힘을 이용하려면 당사자인 내가 있어야 명분을 쌓기 쉽거든.”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상관없어.”

“방해는 무슨. 내가 도와주니까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인데… 경찰청장을 죽일 생각은 아니지?”

“그 새끼는 매국노야. 돈 때문에 중국 마약이 한국에 나도는 걸 돕고 있잖아. 당연히 그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지.”

“안 돼. 경찰청장급의 고위공무원이 죽으면 뒤처리가 힘들어져. 정치인이나 고위공무원들은 죽이지 마.”

“누나. 그렇게 안 봤는데….”

“오해하지 마. 나도 그놈들이 싫은 건 똑같아. 마음 같아선 죽여버리고 싶기도 해. 하지만 모든 일을 기분 내키는 대로 처리할 수는 없어. 정치인이나 고위공무원이 갑자기 죽어버리면 뒷감당이 안 돼.”

“…그럼 어쩌자고?”

“감옥에 넣어야지. 알아보니 이것저것 꽤 저질렀더라. 아마 평생을 감옥에서 살아야 할 거야. 그 전에 네가 팔다리 하나 정도는 부러뜨려도 좋고.”

쯧.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그에 손가연이 몸을 움찔 떨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일로 고위공무원을 죽일 수는 없어. 옛날이라면 모를까.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니까.”

“알았어. 누나가 그렇게 부탁하니 죽이지는 않을게. 대신 그놈들이 평생 감옥에 섞는 건 약속할 수 있지?”

“물론이야.”

“재산도 몰수하고. 그 새끼 가족들이 떵떵거리며 사는 건 말이 안 되지.”

“유진이는 가차 없구나. 부당하게 번 돈이니 전부 회수하는 것도 맞겠지.”

“대신 트라이앵글은 죽일 거야. 그놈들을 날 죽이려 했다고.”

“상관없어. 블랙 길드가 사라진다고 해서 사회에 혼란이 오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사라지는 편이 더 좋아.”

“가자.”

나와 손가연은 거리를 달렸다.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이게 더 편했다.

내 옆을 달리는 손가연을 힐끗 바라봤다. 그녀는 오늘도 땀을 잔뜩 흘리고 있었다. 달릴 때마다 땀방울이 떨어진다.

경찰청장의 집에 도착했다. 으리으리한 동네에 으리으리한 집이었다.

‘여기 맞지?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집에서 살고 있군.’

벽을 넘어 집안으로 잠입하려고 할 때였다.

띵똥.

손가연이 당당히 정문 초인종을 눌렸다.

“누나. 초인종은 왜 눌러?!”

“우린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야. 당당히 나가면 돼.”

“아니, 경찰청장을 잡을 궣난도 없잖아. 사지를 뭉갠 뒤에 검찰에 넘기는 게 목적 아니었어?”

“잡을 권한이 누가 없대? 내가 누군지 잊었어?”

“잊기는… 북백 손가의 가주대리잖아. 북백 손가의 가주대리는 경찰청장을 잡을 권한이 있는 거야?”

손가연이 씨익 웃으며 대답하려는 순간이었다. 인터폰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중년 여성의 목소리였다.

-누구시죠?

“박세문 경찰청장 만나러 왔습니다. 문 열어주시죠.”

-전 누가 온다는 말을 들은 적 없어요. 연락은 하시고 오신 건가요?

“안 했습니다. 북백 손가에서 왔으니 열어주시죠.”

-부, 북백 손가요? 자, 잠시만요!

도도하게 느껴졌던 목소리가 평정을 잃고 당황했다. 단지 북백 손가라는 이름만 듣고.

‘오대 가문이 이 정도였나. 생각 이상이야.’

띵.

대문이 열렸다. 마당 안쪽의 현관에서 아줌마와 경호원들이 헐레벌떡 마중 나온다. 나는 경호원들을 살폈다. 총 4명. 모두 정장을 입었고 실력은 C급에서 B급 정도로 추정된다.

‘A급 헌터가 경호원 같은 일은 안 하겠지. 던전에 들어가면 경호원 일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이 벌 수 있으니.’

손가연은 그들의 인사를 무시하고 당당히 현관으로 걸어갔다.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녀는 집안에 들어왔음에도 하얀 캡 모자를 벗지 않았다.

“어이쿠. 북백 손가의 가주대리님 이시군요. 이야, 오랜만입니다. 3년 전에 유신 호텔에서 만났지요? 못 본 사이에 더 아름다워지셨군요!”

중년 남자가 나왔다. 박세문 경찰청장이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손가연을 맞이했다. 그의 아내와 자식들이 몰려와 손가연에게 줄줄이 인사한다. 손가연은 그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박세문 경찰청장.”

“네. 손가연 가주대리 님. 제게 혹시 부탁하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긴말 안 해. 자수해.”

“…아니, 손가연 가주대리 님. 자수라니… 밑도 끝도 없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경찰청장입니다.”

“중국의 황하문, 파이브 새드 길드, 플래시가루.”

경찰청장의 안색이 싹 굳어졌다.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건….”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자수하고 조용히 끝내. 괜히 한국을 뒤집을 생각하지 말고.”

“제 말 좀 들어보십시오, 손가연 가주대리 님. 저는 아는 후배에게 이름만 빌려줬을 뿐입니다. 저도 그놈들이 그딴 짓을 하고 있는 걸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놈들을 뿌리 뽑으려고 했습니다!”

“거짓말하지 마.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여기 온 것 같아?”

손가연의 목소리는 뜨거운 몸과 달리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경찰청장이 눈동자를 굴린다. 가족들을 봤다가 경호원들을 본다. 경호원들은 전투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경찰청장이 명령하는 순간 우리에게 달려들 것이다.

경찰청장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쿵!

그가 무릎 꿇었다.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봐주십시오! 제가 잠깐 돈에 눈이 멀었습니다! 이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돈이 하늘에서 막 쏟아지는 게 아님을 아시지 않습니까!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제 잘못은 제가 바로 잡겠습니다.”

손가연의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그와 별개로 그녀의 기세는 날카로웠다.

“북백 손가를 비롯한 오대 가문은 이 땅을 오랫동안 지켜왔어. 어려웠지. 한때는 이 땅이 일본에게 지배당했던 적도 있었어. 왜 그랬는 줄 알아? 이 땅을 노리는 몬스터들 때문에? 아니야. 너 같은 놈들 때문이야. 탐욕에 눈이 멀어서 나라를 팔아먹는 놈들. 넌 내가 여기에 온 걸 다행인 줄 알아. 신가나 옥가가 왔으면 뼈도 못 추렸을 거야.”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기회를!”

“황하문과 관련된 일, 전부 말한 뒤에 자수해.”

“……말하겠습니다.”

경찰청장이 굴복했다. 나는 당황했다. 경찰청장이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않고 이렇게 쉽게 굴복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잠깐, 누나. 할 건 해야지.”

“꼭 해야겠어?”

“나라 팔아먹은 놈이잖아! 트라이앵글이 이 새끼 때문에 활개 치고 있다고! 난 암살 시도까지 당했어! 이 새끼가 트라이앵글의 뒤를 봐주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잡아들였다면 제가 암살당하는 일도 없었을 거야!”

“…오른팔 하나만 해.”

“내가 누나 봐서 그걸로 만족하는 거야.”

나는 경찰청장에게 다가갔다. 그가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날 바라본다.

“암살당했다고요? 제가 들은 게 사실입니까…?”

“내가 구라를 치고 있는 것 같냐?”

“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놈들이 멋대로 한 일입니다!”

“네가 그놈들을 일찌감치 잡았으면 내가 습격당하는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 내가 아니었다면 죽었을 거라고!”

경찰청장의 오른팔을 잡아 비틀어 꺾었다. 쉽게 회복하지 못하도록 뼈를 으스러뜨린다.

“……!!”

경찰청장을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놈의 점혈을 짚었다.

“분근착골.”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똥오줌을 지리며 비명을 내지른다.

“유, 유진아?! 지금 뭐 한 거야?!”

“분근착골이라는 특수한 점혈술인데… 효과가 이렇게 좋을 줄 몰랐네.”

“분근착골? 그런 게 실제 했던 거야? 자, 잠깐. 지금 폰으로 뭐 하는 거야?”

찰칵!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어. 똥오줌 지린 경찰청장! 이거 내일이면 대한민국이 난리 나겠는 걸! 크크크!”

손가연이 경악하며 뒤로 물러났다.

“사, 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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