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60화 > 1560. 성유니콘 (1,340/2,000)

< 1560화 > 1560. 성유니콘

쿵!

요리사가 쓰러졌다.

사방이 조용했다. 함초롬의 길드 마스터가 쓰러진 것이다. 그 부하들이 충격으로 입을 다무는 것은 당연했다.

얼음처럼 굳은 그들과 달리 손가연은 두 눈을 반짝였다.

“재밌으면서도 위험한 수야. 까딱 잘못했으면 네가 역으로 당했을 거야.”

“이런 놈들에게 잘 통하는 수죠. 다 계산하고 쓴 겁니다.”

구라였다.

계산은 개뿔.

그냥 통할 것 같아서 썼고, 실제로 통했다.

놈의 반격?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찰나를 써서 피할 수 있고, 당하더라도 완전 회복이 있으니까.

“자, 그럼….”

나머지도 처리해야겠지.

내 기세를 느낀 것일까. 굳어 있던 놈들이 서로 눈치를 보더니 일제히 무기를 꺼내 들었다. 놈들의 투지가 완전히 끊기지 않은 것에 안심했다. 놈들이 도망치면 내가 더 귀찮아지니까.

뇌천류(雷天流) 질풍신뢰(疾風迅雷).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느려진 세계에서 놈들을 어떻게 죽일지 계획을 짠다.

‘왼쪽부터 하자. 동선은 시계 방향으로 잡고….’

보이는 놈들은 모조리 참살한다.

다리가 지면을 박차는 순간 느려진 세계가 빨라졌다. 그러나 원래 세계에 비하면 그래도 느렸다. 찰나의 힘이 아닌 오로지 순수한 내 실력만으로 들어선 가속의 세계다.

첫 번째로 목표가 된 놈은 반항조차 못 하고 썰려 나갔다. 죽은 놈의 시체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나는 새로운 목표물을 향해 나아간다.

다음 놈은 반응했다. 나를 보고 두 눈을 크게 치뜬 것이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놈은 손에 쥔 칼을 휘두르지도 못하고 목이 잘렸다.

죽은 것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다음 놈을 향해 접근한다.

계속해서 칼을 휘두른다. 내 움직임에 반응하더라도 내 칼을 막는 자들은 없었다.

결국 식당을 한 바퀴 돌았다.

걸린 시간은 대략 10초 정도. 그 짧은 시간 동안 죽은 적은 15명에 달했다.

“크으으으….”

나는 입술을 깨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나 자신의 강함. [광명승천도]의 세계의 나보다는 약할지라도 그 강함의 일부가 현실의 내게 스며들었다는 것을 지금 확신했다.

다른 하나는 질풍신뢰의 부작용이었다. 단 10초만 사용했을 뿐인데 온몸이 욱신거리고 뻐근했다.

‘내상을 입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것으로 트라이앵글 중 하나인 함초롬은 끝났다.

‘다음은 노 카운트다. 함초롬과 노 카운트가 하룻밤 사이에 정리된 걸 알면 파이브 새드는 두려움에 벌벌 떨겠지. 그때 노지수에게 손을 내미는 거야.’

노지수를 따먹는다.

그림이 전부 그려졌다. 나는 내가 세운 계획에 만족하며 화련비도를 납도했다.

“화려하게 저질렀네.”

손가연은 시체투성이의 식당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뒤처리는 할 수 있는 거지?”

“의심하지 마. 이 정도 뒤처리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난 네 실력에 관심이 가는걸?”

“내 실력?”

“영천류에 관해 알고 있어. 네 무술은 영천류와 비슷하면서도 달라. 무엇보다 네 전투에는 경험이 서려 있어. 나 같은 경우는 가문의 어르신들에게서 실전과 같은 훈련을 받지만… 넌 아니잖아. 아까 요리사를 죽일 때도 그렇고… 대체 어떻게 경험을 쌓은 거야?”

“내가 좀 천재라서.”

“윽. 재수 없어….”

솔직하게 유희 세계에서 경험을 쌓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보다 나는 손가연이 신기했다. 보통 이런 시체 무더기를 보면 헌터라고 하더라도 기분이 불쾌해지길 마련이다. 허나 손가연에게 그런 기색은 일절 없었다.

‘사람의 시체가 익숙하다는 뜻이지. 손가연이 무슨 경험을 했는지 이쪽이 더 궁금하네.’

나는 바로 식당에서 나가려고 했다.

“잠깐 기다려. 뒤처리 꾼이 올 테니까. 누가 오는지 확인하고 가야겠어.”

“나중에 보고 받으면 되잖아. 중요한 일이야?”

“누가 오느냐에 따라 귀찮은 일이 추가될 수도 있거든.”

피비린내를 맡으며 10분 정도 기다리자 검은색 밴 여러 대와 함께 검은 정장을 입은 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리더로 보이는 남자는 손가연을 보자마자 고개 숙여 인사했다.

“북백 손가의 가주 대리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이야, 현지환. 네가 올 줄 몰랐네.”

“북백 손가를 돕는 일이지 않습니까. 제가 직접 나서기로 했습니다.”

“네가 나서줘서 고마워. 서흑 현가의 장로들 중 한 명이 나섰다면… 하아. 생각만으로도 귀찮아지겠네.”

“하하. 장로님들이 그만큼 가주 대리님을 마음에 들어 하십니다. 가주 대리님은 우리 소가주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마음에 안 든다기보다는… 연애 감정이 안 생긴다는 말이 맞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걔는 남자가 아닌 동생으로만 보여. 그리고 요즘 시대에 정략결혼이 뭐야. 너무 고지식하잖아.”

“소가주님께서 들으면 서운해하시겠군요.”

손가연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이어 내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신청했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손을 잡았다.

“서흑 현가의 방계인 현지환입니다.”

“성유진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희 서흑 현가를 비롯한 오대 가문은 성유진 씨를 흥미 깊게 주시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 흥미가 미미하더라도… 나중에는 성유진 씨를 더 주목하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저를 말입니까?”

“북백 손가의 가주 대리님께서도 성유진 씨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함께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지요.”

“현지환!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마!”

“하하. 뭐, 아무튼 여긴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저희가 전문이지요. 가주 대리님과 성유진 씨는 다른 일을 보시지요.”

“부탁할게.”

우리는 식당 밖으로 나왔다. 나는 손가연에게 조용히 물었다.

“누나 서흑 현가의 소가주랑 결혼해?”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할 줄 몰랐네. 오대 가문이 널 주시하고 있다는 것에 물을 줄 알았는데.”

“그거야 뭐, 내가 워낙 잘났으니까. 당연히 오대 가문도 주목하겠지. 누나는 결혼하는 거야?”

“어휴, 얄미워 죽겠네. 결혼은 이야기만 오갈 뿐이야. 나를 비롯한 가문은 결혼에 회의적이지만… 서흑 현가의 장로들은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질척거리거든.”

“서흑 현가의 소가주는?”

“걔는 장로들 등쌀에 떠밀렸을 뿐일걸?”

[손가연 28살 처녀

섹스 경험 : 0

경험 인원 : 0

성욕도 : 72

속마음 : 걔는 아직도 장로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나? 확실하게 의견을 표했으면 이런 말도 안 나왔을 텐데.]

속마음을 봐도 손가연은 서흑 현가의 소가주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어 보였다. 뭐, 설령 소가주에게 마음이 있더라도 상관없었다. 손가연은 내가 따먹기로 정했으니까.

‘성욕도 72라. 피를 보고 흥분한 건가.’

나는 손가연에게 다가갔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범벅인 손가연의 얼굴을 닦는다.

“어, 어? 가, 갑자기 뭐 하는 거야?!”

“아까부터 땀이 너무 많이 나는 것 같아서.”

“펴, 평소랑 같거든. 네가 안 그래도 돼!”

뒤로 물러난 손가연은 내 손수건을 뺏고는 붉어진 자기 얼굴을 슥슥 닦기 시작했다. 손수건이 순식간에 촉촉해졌다. 문제는 닦아도 닦아도 계속 땀이 난다는 것이다.

“이 망할 놈의 체질.”

[손가연 28살 처녀

섹스 경험 : 0

경험 인원 : 0

성욕도 : 74

속마음 : 갑자기 다가와서 깜짝 놀랐잖아. 일부러 그러는 거야?]

나는 피식 웃었다. 이 다부진 누나도 한창때의 여자였다. 남자에 관심 없는 건 아니었다. 고작 가까이 다가가서 땀 좀 닦아줬을 뿐인데 성욕도가 오른 게 그 증거였다.

“다음으로 가자. 노 카운트가 목표지?”

***

노 카운트가 있는 곳은 인천이었다.

인천항에 들어오는 중국 선박에서 마약을 받아 유통하는 것이다.

“어…. 그, 유진아. 미안. 감시하고 있던 우리 쪽 사람들이 놈들을 놓쳐버렸어.”

뜻밖의 실수가 일어났다.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누나. 그 사람들 전문가라면서?”

“노 카운트에 감지를 속일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각성자가 있었나 봐. 노 카운트는 한순간 감시가 풀린 틈을 타서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고 있고, 우리 쪽 사람들이 추적 중이야.”

“잡을 수 있어?”

“이미 몇 명은 잡았어. 노 카운트의 길드 마스터의 흔적도 발견했어. 추적 중이니 몇 시간 뒤에 잡을 수 있을 거야.”

“파이브 새드는? 걔들도 도망친 건 아니지?”

“파이브 새드는 네가 말한 대로 대놓고 감시 중이야. 도망치려고 했다면 이미 도망쳤겠지. 내가 볼 땐 도망을 포기한 것 같아. 감시를 더 철절히 하라고 했으니 걱정마. 그리고 파이브 새드를 먼저 처리하는 것도 방법이야. 어떻게 할래?”

“계획대로 할 거야. 파이브 새드는 괴롭혀 줘야지. 노 카운트가 도망친 이상 지금 당장 우리가 할 건 없다는 거지?”

“추적조에 합류해도 돼.”

“됐어. 놈들이 잡힐 때까지 좀 쉬다 가자.”

“…쉬다 가자고?”

“누나, 얼굴 빨개졌네. 이상한 생각 했지?”

“이, 이상한 생각은 무슨!”

뚝뚝.

그녀의 얼굴에 땀방울이 떨어졌다. 손가연은 감정이 동요하면 더 많은 땀을 흘렸다.

나는 손을 들어 찜질방을 가리켰다.

“저기서 쉬다 가자고. 누나 지금 땀을 엄청나게 흘리고 있어. 보는 내가 더 괴로울 정도야.”

“그 정도야? 평소와 같다고 생각했는데….”

“상의가 다 젖어서 브라까지 보여.”

“이건 스포츠 브라야! 보여도 상관없는 옷이라고!”

“알았으니 소리치지 마. 찜질방에서 시원하게 샤워하고 음료수 먹고 조금만 쉬다 가자. 응?”

손가연은 찜질방 간판을 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개운하게 씻고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는 자신을 상상한 거겠지.

“조금만…. 조금만 쉬다 가자.”

결국 그녀는 찜질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간단히 샤워하고 찜질방에서 손가연을 기다렸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곧 손가연이 개운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왔다. 황토색 찜질방 옷을 입고 머리에는 수건으로 양 머리를 했다. 땀을 많이 흘리니 양 머리를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겉으로 봤을 땐 본격적으로 즐기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건을 여러 장 들고 있었다. 땀을 흘리면 바로 닦을 생각인 모양이다.

“많이 기다렸지? 찜질방에 오는 건 진짜 오랜만이야. 딱히 변한 건 없는 것 같네.”

“찜질방이 다 거기서 거기지.”

“그렇긴 해.”

[손가연 28살 처녀

섹스 경험 : 0

경험 인원 : 0

성욕도 : 70

속마음 : 남자랑 둘이서 찜질방에 온 건 처음인데…. 모텔도 아니니 괜찮겠지?]

그녀의 보지에선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개운하게 몸을 씻어서 그런지 성욕도가 약간 내려갔다.

‘모텔도 아니니 괜찮을 거라고?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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