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1화 > 1561. 성유니콘
쪼오오오옥!
손가연은 얼음이 동동 띄워진 식혜의 빨대를 단숨에 빨았다. 한순간 그녀의 뺨이 홀쭉해지고 라지 사이즈 컵에 담긴 식혜가 바닥이 보일 정도로 줄어들었다.
“푸하앗!”
시원한 식혜를 단숨에 원샷한 그녀는 짜릿하면서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찜질방에선 식혜가 최고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나쁘진 않지.”
나는 내 앞에 놓인 음료를 마셨다. 식혜가 아니라 사이다였다. 사이다를 한 모금 마시고 식탁에 놓인 음식들을 확인한다. 라면, 미역국, 제육볶음 등등. 하지만 이 중에서 손이 가는 건 몇 없었다.
계란에 손을 뻗었다.
‘원래 계란은 남의 머리로 깨야 하는데.’
힐끗 손가연을 바라본다. 나와 그녀는 아직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만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이런 행동을 싫어할 수 있어. 안전하게 가자. 비호감을 살지 모르는 행동을 할 순 없지.’
계란이 내 머리로 향하려는 찰나였다. 손가연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뭘 그렇게 눈치 봐. 우린 친구 사이 잖아. 특별히 내 머리를 써도 돼. 원래 계란은 남의 머리로 깨는 거잖아?”
“누나는 마음이 넓구나.”
퍽!
계란을 던지듯이 휘둘렀다.
“악!”
설마하니 말이 끝나자마자 계란을 휘두를 줄 몰랐던 그녀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약간의 원한이 담긴 눈으로 날 매섭게 노려본다.
“잠깐. 너무 세게 때렸잖아!”
“에이. 누나는 A급 헌터잖아. 겨우 이 정도로 엄살은.”
“헌터라도 아픈 건 아픈 거야. 이대로 내가 당하고만 있을 것 같아?”
손가연이 계란을 쥐었다. 그녀의 손이 포물선을 그린다. 목적지는 내 머리다. 나는 서둘러 마나를 머리에 둘렀다.
퍽!
계란이 터지는 소리가 썩 경쾌했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실실 웃자 손가연은 못마땅한 듯 날 노려봤다.
“이건 반칙이야. 마나를 쓰는 게 어디 있어?”
“마나를 쓰지 말라는 규칙도 없었잖아.”
“아아, 진짜!”
불만스럽다는 듯 고개를 획획 돌린 그녀는 이내 전투적으로 숟가락을 움직여 식사를 시작했다. 폭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타입이었다. 나는 사이다와 구운 계라만 먹으며 그녀를 지켜봤다.
식사가 끝났다.
기분 좋은 포만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찜질방 구석에 드러누웠다.
“아, 기분 좋네. 이런 경험은 오랜만이야.”
“누나. 오랜만에 찜질방에 왔는데 계속 누워있을 거야? 찜질방에 왔으니 찜질 한 번은 해야지.”
“난 됐어.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데 굳이 뜨거운 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난 지금 이대로가 가장 편해.”
손가연은 드러누운 자세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는 눈을 감고 졸기 시작했다. 나는 무방비한 그녀의 몸을 대놓고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숨을 내쉴 때마다 커다란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역시 잘 때도 땀이 나네.’
황토색 옷에 얼룩이 지기 시작했다. 겨드랑이라던가, 가슴팍이라던가. 주로 땀이 많이 나는 부위였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녀도 많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 정도로 땀이 많이 나면 일상생활에서도 불편한 점이 많을 테니까.
‘전체적으로 땀이 많이 나지만 특히 머리 쪽이 땀이 많이 나는군.’
잠깐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그녀의 얼굴은 세수라도 한 것처럼 촉촉했다. 땀방울이 그렁그렁 맺혀 있는 것이다.
나는 옆에 있는 수건을 집었다. 조심히 그녀의 얼굴에 맺혀 있는 땀방울들을 닦아낸다.
그러다 그녀가 두 눈을 번쩍 떴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다. 순식간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누나가 자는 동안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닦아주는 거야. 불쾌했어?”
“아, 아니. 불쾌한 건 아니고. 우, 우리가 이럴 사이는 아니잖아.”
“친구끼리 땀 좀 닦아줄 수 있지 뭐.”
귀에 마나를 집중했다. 청각이 증폭되며 작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손가연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린다.
“친구끼리라도 이건 아니야!”
누워있던 손가연이 벌떡 일어났다. 너무 당황한 것일까. 그녀는 답지 않게 발이 미끄러졌다. 그녀가 내 쪽으로 쓰러진다. 나는 차분하게 양팔을 벌려 그녀를 품 안으로 받았다. 손가연의 몸은 풍만하면서도 뜨거웠다.
왜 그렇게 땀을 많이 흘리나 했더니, 안아보니 알겠다. 손가연은 기본적으로 체온이 높았다.
“이, 이거 좀 놔줄래?”
“미안, 누나가 갑자기 안겨 와서 당황했어.”
“안기다니! 이건 실수야! 발이 미끄러져서… 앗?”
당황한 그녀가 또 미끄러졌다. 나는 그녀의 허리와 엉덩이를 잡으며 끌어안았다. 서로의 얼굴이 확 가까워졌다.
“괜찮아, 누나? 아직 잠이 덜 깬 것 같네.”
“괜찮아. 잠은 다 깼어. …날 좀 놓아줘. 화장실에 잠깐 갔다 올게.”
원하는 대로 놓아줬다. 그녀는 도망치듯이 화장실로 갔다. 나는 그녀에게 보지의 맛을 사용했다.
[손가연 28살 처녀
섹스 경험 : 0
경험 인원 : 0
성욕도 : 80
속마음 : 왜 이러지, 이건 사고일 뿐인데… 몸이 너무 뜨거워.]
다행히도 싫어하거나 질색하지 않았다.
화장실을 갔다 온 그녀는 당황한 기색 없이 평소처럼 웃었다.
[손가연 28살 처녀
섹스 경험 : 0
경험 인원 : 0
성욕도 : 82
속마음 : 동생처럼 생각했는데… 얘도 남자야. 앞으로 조심해야겠어.]
‘날 그냥 동생으로 알고 있었다고?’
충격적이었다. 지금까지의 반응을 보면 당연히 날 남자로 의식하고 있는 줄 알았다.
‘지금에라도 날 남자로 보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는 바닥에 앉아 대화를 나누며 TV를 봤다. 손가연은 손에 수건을 쥐고 쉴 틈 없이 몸을 닦았다. 땀이 흐른다 싶으면 바로 수건으로 닦는 것이다.
“누나.”
“응?”
“아까부터 꽤 피곤해 보이는데. 내가 안마 좀 해줄까?”
“안마? 어깨 안마 같은 거?”
“어. 내가 안마를 엄청 잘 하거든. 누나도 후회하지 않을 거야.”
“어깨가 좀 결리는 것 같긴 해. 하지만….”
“그냥 어깨 안마야. 내가 잘해줄게.”
안마와 마사지. 그 뜻은 똑같다. 하지만 어감의 차이는 상당했다. 안마라고 하니 더 건전하게 느껴진다.
“…그럼 조금 부탁해볼까.”
“후회하지 않을 거야.”
그녀의 어깨를 잡고 안마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석적으로 안마를 시작했다.
“읏, 으아… 앗. 시원해. 진짜 전문가 수준이구나. 안마를 왜 이렇게 잘하는 거야?”
“많이 해봐서 그래.”
어느 순간부터 성감 고조를 사용한다. 마냥 시원하기만 했던 안마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손가연 28살 처녀
섹스 경험 : 0
경험 인원 : 0
성욕도 : 84
속마음 :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여기서 멈추게 해야 할까? 기분은 좋은데….]
나는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며 말했다.
“누나. 저기 좀 봐. 오른쪽 구석 말이야.”
“응? 헉…!”
손가연이 깜짝 놀라 굳어졌다. 오른쪽 구석에는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는 남녀가 있었다.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그들은 입을 맞추며 서로의 몸을 만지고 있었다. 특히 여자의 가슴을 만지는 남자의 손놀림이 노골적이었다.
“저,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여기서 이러면 안 되잖아!”
“커플끼리 스킨십 좀 하는 걸 가지고 뭘. 그렇게 꼴 보기 싫으면 누나가 가서 말리던가.”
“…….”
손가연은 커플들의 눈치만 살필 뿐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다른 관점으로 커플들을 봤다. 찜질방이라고 해서 CCTV가 없는 건 아니었다. 저 커플들이 위치한 곳은 CCTV가 찍히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저 연놈들 한두 번 한 게 아니군.’
이 세상에는 온갖 변태가 있다. 야외 플레이를 즐기는 커플은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나는 손가연의 반응을 주시했다. 그녀는 민망해하면서도 커플들에게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아주 흥미진진했다.
손가연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댔다. 장난기를 담아 입을 열었다.
“누나. 어때?”
“히익!”
깜짝 놀란 손가연의 등허리가 꼿꼿이 섰다.
“너, 너! 이런 장난 치지 마! 진짜 한 대 때릴 뻔했다고!”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네. 하여튼 안마는 어때?”
“…기분 좋았어. 여기까지만 해줘도 돼.”
손가연이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나는 그녀에게 몇 번이나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날 제대로 상대해주지 않았다.
***
새벽 5시.
우리는 찜질방을 나와 차를 탔다. 차는 어느 시골 마을로 움직였다.
노 카운트의 길드 마스터인 소태진은 시골 마을 폐가에 숨어 있었다.
폐가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던 나와 손가연은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기감으로 이질적인 무언가를 알아차린 것이다.
쾅!
코앞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나와 손가연은 마나로 몸을 감싸고 있었기에 피해는 전무했다.
손바닥을 펼쳐 흔든다. 바람이 일어나 검은 연기를 몰아낸다.
“노 카운트의 마스터인 소태진의 능력이야. 물건을 투명화시키는 능력으로 폭탄을 투명화 시킨거지.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손가연이 말했다. 마약을 유통하기 딱 좋은 능력이었다.
“그것 말고도 주의해야 할 점은 또 있지?”
“우리 쪽 감시원들을 속인 능력자가 소태진과 함께 있을 거야. 정확히 어떤 능력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어. 조심해.”
쐐애애액.
무언가가 날아온다. 돌멩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날카롭고 빠르다. 나는 허리춤에서 화련비도를 뽑아 날아오는 무언가를 쳐냈다. 그것은 빙글빙글 돌다가 땅에 툭 떨어졌다. 투명하던 것이 제 모습을 되찾는다.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비수였다.
“물건을 투명화할 수 있는 능력…. 어째 좀 미묘한데. 자기 자신을 투명화하진 못하는 거지?”
“듣기로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생물을 투명화할 수는 없다나 봐.”
“미묘하네.”
어느 정도 실력이 되면 보이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다. 아예 질량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서 존재감 같은 게 느껴지는 것이다. 당장 정면에서 날아온 이 비수만 해도 바람을 찢는 소리와 함께 날아왔다.
“유진아. 방심하지 마. 아까 같은 폭탄은 위험했어. 위력이 더 강했더라면 우리라도 당했을 거야.”
손가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근처에서 폭탄이 터졌다. 허나 폭발력은 우리의 호신강기를 뚫지 못했다.
‘폭탄은 설치되어 있어서 그런지 찾기 힘들군.’
나는 주위를 한차례 둘러봤다. 폐가 앞에 있는 마당은 상당히 넓었다. 근처에 우리 말고는 사람이 없다. 북백 손가의 감시자들은 뒤쪽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손가연이 따로 명령을 내지리 않는 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폭탄부터 처리해볼까.’
파지지직.
진각을 밟았다. 지면을 타고 시퍼런 전류가 흐른다. 전류에 닿은 폭탄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쾅! 콰콰콰쾅! 쾅쾅쾅!
폭음과 함께 마당이 초토화되었다. 귀찮은 폭탄은 이걸로 전부 처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