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2화 > 1562. 성유니콘
쾅! 콰콰콰쾅! 쾅쾅쾅!
폭음과 함께 마당이 초토화되었다. 귀찮은 폭탄은 이걸로 전부 처리했다.
나는 마당을 둘러보고 작은 감탄사를 흘렸다. 폭발의 여파가 상당히 대단했기 때문이다. 앞에 설치된 폭탄의 양이 적지 않았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갔더라면 아무리 호신강기가 있었더라도 위험했을 것이다.
“이런 젠장!”
폐가의 문이 열리며 한 남성이 욕설을 터트리며 튀어나왔다. 노 카운트의 길드 마스터인 소태진이다. 그는 턱수염을 벅벅 긁으며 나와 손가연을 노려봤다.
“우리한테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예?!”
“그걸 몰라서 묻냐? 너희가 먼저 날 죽이려 했잖냐. 그러니 나도 너희를 죽이려는 거다.”
“댁을 죽이려고 한 건 우리가 아니라 황하문입니다! 업자를 고용한 것도 황하문이고요!”
“너희가 황하문과 손잡은 걸 알고 있다. 억울한 척하지 마라. 가증스럽기만 할 뿐이다.”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태진이 무슨 말을 하든, 나는 소태진을 죽일 것이다. 그는 나를 죽이려 했다. 그때 내가 죽었으면 복수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잘 먹고 잘살았겠지.
‘상상만 해도 짜증 나네. 그 꼴은 절대 못 보지.’
화련비도를 들고 소태진을 겨눈다. 손가연은 한 발짝 물러나서 지켜보고 있다. 복수를 온전히 내게 맡긴다는 뜻이겠지.
“젠장! 내가 쉽게 당할 것 같아?!”
소태진이 품에서 리볼버를 꺼냈다. 나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나는 반사적으로 옆으로 이동했다. 보이지 않는 총알이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총알을 투명화 시켰나?’
소태진이 다시 방아쇠를 당긴다. 나는 화련비도를 휘둘렀다.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총알이 튕겨 나갔다.
“미친! 보이지 않는 총알을 쳐냈다고?!”
“보이지 않아도 집중하면 느낄 수 있다.”
“씨발. A급은 죄다 괴물밖에 없는 건가…!”
탕탕탕탕!
총알이 연속으로 쏘아진다. 소용없었다. 나는 총알을 모조리 쳐내며 다가갔다. 총알의 위치는 총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보이지 않아도 집중하면 느낄 수 있다는 말도 사실이었다.
“넌 쓸데없이 도망가서 날 귀찮게 했으니 발부터 천천히 썰어주마.”
“네가 이긴 것 같아? 그런데 이거 어쩌냐? 난 내가 이긴 것 같은데.”
그가 비아냥거렸다. 나는 미간을 좁혔다. 저 자신감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고? 어디 한번 느껴봐라! 길성아!”
푹.
허리가 찔렀다. 통증이 밀려온다. 고개를 내려 상황을 확인했다.
10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실실 웃으며 내 허리에 칼을 박은 것이다.
“형. 아프죠? 비명 질러도 돼요. 그게 창식이도 좋아하거든요.”
“…애새끼면 내가 못 죽일 줄 알았나?”
화련비도를 역수로 쥔다. 바로 죽일 생각은 없다. 내 옆구리를 찔렀으니 똑같이 옆구리를 찔러줄 생각이었다.
“유진아! 피해!!”
손가연이 고함쳤다. 본능이 그녀의 말을 따르라고 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찰나를 이용해 물러난다.
내가 있던 장소의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자세히는 몰라도 정통으로 머리를 맞았다면 폭탄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창식이가 아쉽다고 하네요.”
길성이라 불린 어린아이가 웃는다. 나는 미간을 좁혔다.
‘저게 뭐지? 저 애새끼의 능력인가?’
내 의문에 답한 것은 손가연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두억시니야. 저 애는 귀신을 다루는 힘이 있는 것 같아. 아마… 무당의 핏줄일 확률이 높지.”
“우와. 누나, 어떻게 알았어요? 누나 말대로 우리 엄마 무당이에요. 날 너무 괴롭혀서 창식이가 죽여버렸지만요.”
길성이 킥킥 웃는다. 뒤에 서 있던 소태진은 못마땅한 눈으로 길성을 보며 소리쳤다.
“뭐 해! 빨리 놈들을 죽여! 놈들을 죽여야 안전하게 도망갈 거 아니야!”
“아저씨. 창식이가 저 누나는 보통이 아니래요. 그냥 지금 바로 도망치는 게 좋다는 대요?”
“빌어먹을 귀신 새끼가…. 전부 죽일 수 있다고 말할 EO는 언제고… 젠장. 저 여자가 그렇게 강해?”
“음. 천적이래요. 북백 손가… 퇴마 일족? 그런 거래요.”
지켜보고 있던 손가연이 나섰다. 항마의 검을 뽑아 허공을 향해 휘두른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싸우고 있었다.
“이 정도로 강한 귀신을 싸우는 건 오랜만인데…. 유진아, 넌 소태진을 상대해. 그리고 애는 죽이지 말고.”
“저 애새끼가 내 옆구리를 찔렀어.”
“애잖아. 갱생의 여지가 있어. 보아하니 두억시니와 계약을 맺은 것 같은데… 두억시니 탓일 거야.”
“알았어.”
올라오는 불만을 꾹 누르며 말했다. 손가연의 말에 따를 생각은 없었다. 애새끼라고 해도 내 옆구리를 칼로 찔렀다.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고 목을 따버릴 것이다.
‘우선 소태진부터 처리한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소태진에게 달려들었다. 소태진은 경악한 얼굴로 옆으로 비켜선다. 화련비도의 붉은 칼날이 소태진의 등을 쫓았다.
칵!
칼이 막혔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막힌 것이다.
“흐, 흐흐. 이럴 줄 알고 블랙 엔트의 나뭇가지를 세워뒀지.”
투명화가 풀린다. 검고 낡은 나뭇가지가 화련비도의 칼날을 막고 있었다. 나뭇가지가 꿈틀거리며 칼날을 휘감는다. 검기를 일으켰다. 나뭇가지는 도리어 검기를 흡수하며 성장한다.
‘검기를 빨아들인다면….’
파지직.
붉은 뇌전이 치솟는다. 나뭇가지는 뇌전까지 흡수하려고 했으나 그 열기까지 온전히 흡수하지 못했다. 나뭇가지에 불이 붙어 화르륵 타오른다.
“내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줄 알았냐?! 죽어!!”
소태진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박쥐였다. 박쥐는 하얀 끈에 꽁꽁 묶여 있었다. 소태진이 박쥐를 집어 던지며 하얀 끈을 풀었다. 박쥐는 붉은 눈을 빛내며 내게 돌진했다.
‘E급 몬스터인 홍안박쥐군. 이놈은 헌터도 무시할 수 없는 극독을 품고 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검지를 쭉 뻗었다. 손가락을 중심으로 검기가 발현된다. 작은 칼이 된 손가락을 박쥐에게 휘둘렀다. 박쥐의 몸이 둘로 쪼개진다.
“?!”
박쥐의 등 뒤에 단단한 무언가가 걸려 있었다. 작은 배낭 같기도 한 그것은 폭탄이었다. 투명화시킨 작은 폭탄 배낭을 박쥐의 등에 달아놓은 것이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 호신강기로 온몸을 감쌌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작은 폭탄이었는데 호신강기를 흔들 정도로 폭발력이 강했다.
승리를 자신하던 소태진은 내가 멀쩡히 서 있는 걸 보자마자 안색을 싹 굳혔다.
“그걸 정면으로 맞고도 살아? 진짜 시발! 길성아! 이 새끼 좀 어떻게 해봐! 야, 길성!!”
“아, 아저씨! 창식이가! 창식이가!!”
재수 없는 애새끼가 울먹이고 있었다.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봤다.
2m에 달하는 뿔 달린 괴물이 손가연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괴물의 몸은 절반이 잘려져 있었고, 손가연은 차가운 눈으로 괴물의 머리에 항마의 검을 찔러 넣는다.
‘몇 초 만에 두억시니를 제압했다고? 퇴마 일족이라더니 실력은 진짜구나.’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 싸우는지 두 눈으로 보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폭발의 여파는 나뭇가지에도 닿았다. 화련비도가 아래로 떨어진다. 나는 떨어지는 화련비도를 받으며 소태진을 향해 휘둘렀다.
서걱!
놈의 오른팔이 떨어진다!
“내 팔!! 젠장! 길성! 뭐해! 그걸 써!!”
“하, 하지만 창식이가 없는데!”
“씨발! 그게 문제야?! 이러다 내가 죽는다고! 빨리 써!”
“아, 알았어. 아저씨!”
날 앞에 두고 고래고래 소리치다니. 소태진은 다른 의미로 대단한 놈이었다.
‘귀찮아졌다.’
원래는 좀 더 고통스럽게 죽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죽어라.’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3]
찰나를 이용한 순간 도약.
내 칼은 정확히 소태진의 가슴을 꿰뚫고 들어갔다. 놈의 심장을 꿰뚫은 감촉이 확실히 느껴졌다.
죽는 소태진의 얼굴을 감상하려고 했으나, 뒤에서 어마어마한 마나의 파동이 느껴졌다. 나는 소태진의 몸에서 칼을 빼고 뒤를 돌아봤다.
애새끼가 마석 같은 검은색 돌을 쥐고 있었다. 그 돌에서 마나의 파동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건….’
식은땀이 흐른다. 이 현상은 대학교에서 실습이라는 이유로 몇 번 경험해본 적 있었다.
‘던전 붕괴 현상…. 아니야, 달라. 이건 던전 생성 현상이다. 마나 파동이 한 지점으로 모여들고 있어.’
인위적으로 던전을 만드는 것인가?
뭐가 뭔지 알 수 없다. 허나 확실한 건 위험하다는 것이다.
“유진아! 저 돌! 저 애가 들고 있는 돌을 없애 버려!”
손가연이 소리쳤다. 위험하다고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닌것이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2]
이를 악물고 뛰었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마나의 파동이 벽이 되어 막아선다. 나는 마나의 파동을 향해 화련비도를 휘둘렀다. 마나를 베어 가르며 앞으로 전진한다.
늦었다.
마나의 파동은 애새끼에게 영향을 끼쳤다. 애새끼의 두 눈이 폭발하듯 터졌다. 이후에는 머리가 터지고, 이후에는 몸통이 터졌다. 그리고 마나 파동은 작은 돌로 급격히 수축했다. 마나 파동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와 손가연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갑자기 진공 상태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불안했다. 폭풍을 앞둔 고요함이었다.
“누나. 우선 여.”
우선 여기서 벗어나자. 그리 말하려고 했으나, 말을 완성하지 못했다. 압축됐던 마나의 파동이 풀어지며 나와 그녀를 함께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소용돌이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시야가 빙글빙글 돈다. 정신없는 와중에 이를 악물며 마나를 일으켰다. 마나로 내 몸을 보호한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와 그녀는 전혀 다른 곳에 와있었다.
‘…설마 던전에 들어온 건가?’
울렁거리는 속을 참으며 냉정하게 주위를 둘러본다.
숲이었다. 손가연은 나무 아래에 엎어져 기절해 있었다. 그녀의 입과 코에서 피가 흐른다. 나는 다급히 그녀에게 다가가 맥을 짚었다. 맥은 정상이다. 내상을 입은 듯했으나 심하지는 않다.
공주님 안듯이 손가연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주위를 살핀다. 최대한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검은 나무?’
숲 중심에 하늘까지 뻗은 커다란 검은색 나무가 보였다.
“…….”
직후, 거대한 검은색 나무에서 새하얀 무언가가 내 쪽으로 날아왔다.
형태는 인간과 흡사했다. 그러나 젖꼭지, 배꼽, 성기, 항문이 하나도 없다. 입, 코, 귀도 없다. 하얀 몸과 달리 두 눈은 새까만 흑수정이다.
난 이 비슷한 놈을 예전에 만난 적 있었다.
“…파이론.”
-인간이군. 어떻게 여기에 온건 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중국 정부와 협상하여 공식적으로 얻은 나의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