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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573화 (1,353/2,000)

< 1573화 > 1573. 성유니콘

파이론을 죽였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이 파이론의 이름이 크라브라고 했던가? 놈은 방심했다. 인간은 물로 봤다. 덕분에 우리는 S급도 쉽게 볼 수 없는 놈을 죽일 수 있었다.

우리는 여러 가지로 운이 좋았다. 나나, 그녀나 놈을 죽일 수 있을 확률은 높지 않다고 판단했었다. 여차하면 도망갈 생각으로 파이론과 싸웠다.

“누나. 그 하얀 불꽃은 뭐야? 놈이 아예 정신을 못 차리던데.”

“백화(白火)말이야? 우리 가문에서 가장 유명한 능력 중 하나야. 백화만으로 인간이 아닌 괴물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거든. 북백 손가가 퇴마 일족이라 불리는 것도 백화 때문이야.”

“파이론에게 통해서 다행이야.”

“내 말이. 백화가 통하지 않았다면 곤란했을 거야. 그리고 네가 파이론의 화신체를 막아줬으니까. 덕분에 얻은 게 많아. 파이론을 상대한 경험이라던가.”

파이론은 개체를 칭하는 말이 아니었다. 오크나 고블린을 칭하는 종족이다. 이 드넓은 중국 땅에 얼마나 많은 파이론이 있을지는 짐작도 되지 않는다.

“근데 넌 어떻게 안 거야?"

"뭘?"

“파이론이 죽지 않은 걸 말이야. 분신을 찾아내 죽였잖아. 네 말이 아니었다면 난 영원히 몰랐을 수도 있어.”

“감이야. 그리고 만화나 소설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몇 번 읽었고.”

“만화나 소설을 자주 보나 봐? 의외네. 넌 왠지 책도 잘 안 볼 것 같은 이미지거든."

“가끔 여유 시간이 있을 때마다 문화 활동을 하는 편이야."

옛날에는 시간때우기 용이었다면, 지금은 유희 생활 어플 때문에 창작물을 많이 보려고 한다.

짧게 대화를 나눈 우리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이곳에 오고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두었기에 배터리는 충분했다.

‘배터리가 방전되었더라도 뇌전을 이용하면 충전할 수 있어. 미세한 힘 조절이 필요하긴 하지만.'

아무튼 우리는 전파를 방해하던 파이론이 뒤졌으므로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켜자마자 움찔했다. 한하린을 비롯한 여자들의 문자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발신 기록도 대단했다. 특히 한하린의 연락이 가장 많다. 1시간에 2~3번씩 연락을 해왔다.

'후, 이 몸의 인기란.'

옆을 슬쩍 본다. 손가연은 심각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입을 열었다.

“미안, 유진아. 잠깐 연락좀 하고 올게. 가문에 내가 없는 동안 문제가 생겼었나 봐.”

“편하게 해.”

손가연이 잠깐 자리를 떴다. 나도 내게 가장 많이 연락한 한하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하린은 신호음이 한 번 울리자마자 받았다.

-어디야?

“중국.”

-뭐?

"일이 있었어. 어마어마한 일이 말이야."

나는 오늘까지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말했다. 스마트폰에서 화가 꾹꾹 담긴 듯한 한숨 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언제 한국으로 돌아올 거야?

“며칠 걸릴 것 같아.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위험한 일이야? 도움이 필요해?

“아니, 위험하지는 않아. 약속할 수 있어.”

황하문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패왕도문의 힘을 빌리기로 했으니 위험할 건 없다. 파이론을 상대하는 일에 비하면 10배는 더 쉬운 일이리라.

-그럼 됐어.

뚝.

한하린이 전화를 끊었다. 목소리로 보나, 태도로 보나 화난 게 분명했다.

‘화를 풀어주려면 선물이라도 사가야 하나.'

패왕도문과도 연락을 취한다. 내가 갑자기 사라졌으니 원래 계획은 꼬였을 거다.

'파이론에 관한 정보를 패왕도문에게 공유한다. 패왕도문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손해를 봐야해. 사고이긴 하나 계획을 파토 낸 건 이쪽이니까.'

패왕도문의 후계자인 류청설과 대화를 했다. 그녀는 파이론과 중국 정부가 엮여 있다는 내 말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목적은 달성했다. 패왕도문은 날 도와주기로 했다.

내 여자들에게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고 손가연은 기다렸다. 손가연의 통화를 제법 길었다.

'업무적인 통화가 대부분이겠지. 손가연은 북백 손가의 가주 대리니까.'

손가연은 바쁘다. 내 짐작에 불과하지만, 현 북백 손가의 가주에게는 무슨 일이 있다.

'애초에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가주 대리라는 직책도 없었겠지.'

조금 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통화를 끝마치고 나왔다.

“한국에 큰일이 있는 건 아니지?"

“그건 아니야. 한국은 괜찮아. 다만, 가문은 내가 사라져서 좀 당황한 모양이야. 그리고….”

그녀는 내 눈치를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파이브 새드 길드를 놓쳤어. 감시자를 붙여 뒀는데… 내가 갑자기 사라져서 감시자들까지 날 찾는데 동원했나봐. 그 틈을 타서 파이브 새드의 몇 명을 놓쳤어.”

“…놓친 인물 중에 노지수도 있는 거야?”

손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조용히 입맛을 다셨다. 노지수. 성격은 어떤지 몰라도 외모는 꽤 반반했다. 협박을 통해 따먹으려고 했으나, 노지수는 종적을 감추었다. 작정하고 잠수를 탄 것이다.

‘국외로 도망쳤을 가능성이 높지.’

노지수에게 현상금 10억이란 금액을 걸었다. 손가연의 실종이 관련되어서 그런지

북백 손가는 한국 헌터 협회를 좀 빡친 모양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우리는 계속 이 숲속에 있을 수 없었기에 움직였다. 가까운 도시에서 차나 비행기를 타고 패왕도문과 합류할 계획이다.

다행히도 도시와의 거리가 아주 멀지만은 않았다.

“누나. 파이론이 중국 정부와 협력한다는 말은 사실이겠지? 놈이 먹고 있던 사람들. 중국 정부가 제공한 민간인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개인적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지금의 중국은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니까.”

저번 던전 브레이크 사태로 인해 영원할 것만 같은 중국 체제가 흔들리고 있었다. 멀쩡할 때도 뒤가 구린게 많은 중국이다. 체제가 흔들린다고 자정작용이 일어나 깨끗해질 리 없다. 오히려 더 더러워질 테지. 놈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악마와 손을 잡을 것이다.

도시에서 비행기를 타고 패왕도문과 약속한 장소로 갔다.

패왕도문의 후계자이자, 중국의 S급 헌터 천중패왕(天中覇王)의 딸인 류청설과 류청설의 막냇동생인 류자영을 만났다.

류청설은 컸다. 제 아비를 닮아서 그런지 키가 1.9m에 달했다. 덩달아 가슴도 크고, 엉덩이도 컸다. 조용히 웃으며 나를 반기는 그녀는 성숙했다.

류청설의 여동생인 류자영도 만났다. 여자치고 키도 크고 풍만한 몸매를 가지고 있으나 언니인 류청설 만큼 크지는 않았다. 그녀는 긴 생머리의 류청설과 달리 머리를 한데 묶고 있었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언니와 달리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옛 추억이 떠오른다. 류청설은 그나마 가끔 날 만나러 한국에 주기적으로 왔던 반면, 류자영은 한 번도 한국에 오지 않았다. 류자영과 만나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오랜만이에요. 고생했다면서요? 정말 고생한 것 맞아요?”

류청설이 웃으며 나를 반겼다. 그녀는 이어 손가연과 인사했다. 북백 손가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손가연 또한 웃으며 류청설과 인사했다. 의외였다. 중국인이면 무조건 싫어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성유진. 오랜만이다. 못 본 사이에 더 강해졌군.”

류자영이 딱딱한 어조로 내게 인사했다. 류자영도 못 본 사이에 강해졌다. 그러나 나 정도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B급이라고 할까. 이것만으로 류자영의 또래에선 충분히 대단하다.

‘내가 비정상적으로 강해진 거지.'

재능이 아니라 유희 생활 어플의 힘이었다.

나는 류자영의 아랫배를 지긋이 바라봤다. 류자영이 움찔 몸을 떨었다. 마치 소변이 마렵다는 듯이 허벅지를 딱 붙인다.

그러고 보니 류자영은 예전에 점혈 때문에 요실금에 걸린 적이 있었다. 내가 고쳐줘서 멀쩡해진 걸로 기억한다.

내가 과거를 떠올리며 씨익 웃자, 류자영의 얼굴이 싹 굳어졌다.

"왜 웃는 거지?”

"몸은 괜찮은 건지 해서 말이야.”

나는 주위를 살폈다. 손가연과 류청설은 서로 대화하느라 바쁘다. 류자영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류자영이 긴장한다. 나는 그녀의 아랫배로 손을 뻗었다. 아랫배가 살짝 튀어나왔다. 뱃살이 아니라 자궁 때문이다. 나는 아랫배를 쓰다듬는다.

"읏, 이 미친놈이! 지금 뭐 하는 거냐?!"

틱틱대는 것치고는 나를 밀쳐내지 않는다.

“평범한 스킨십이야. 스킨십. 그동안 잘 지냈어? 아무 문제 없었지?”

“…문제?”

“요실금 말이야. 그 이후로 실금한 적 없어?”

"없으니 신경 쓰지 마라. 당장 내 몸에서 손… 읏!”

류자영이 몸을 덜덜 떨었다. 그녀는 경악한 눈으로 날 노려보다가 심호흡을 했다.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아래에서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시선을 내렸다. 그녀는 꽤 긴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바닥에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애액이라고 하기엔 조금 묽다.

“설마, 요실금?”

“너, 너 때문이다! 네가 무슨 수작을 부리니까…! 흐읏!"

류자영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녀는 내 손을 뿌리치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나는 어이없는 눈으로 떠나는 그녀의 등을 지켜보다가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그녀가 흘린 액체의 흔적이 바닥에 가득하다.

‘뭐지? 점혈을 한 것도 아니고, 성감 고조를 사용한 것도 아닌데….’

말 그대로 아랫배는 약간 쓰다듬었을 뿐이다.

‘진짜 요실금이라도 생긴 건가.'

안타까움을 느낀 나는 류자영에게 작은 애도를 표했다. 그리고 조금이지만 꼴렸다.

우리는 승합차에 타서 움직이고 있었다. 목적지는 황하문이다. 운전대를 잡은 류청설이 입을 열었다.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였다.

류청설은 날 만나러 한국에 자주 놀러 오더니 어느새인가 수준급의 한국어를 구사했다.

“황하문에 대해 조사했어요. 블랙 길드. 그것도 대놓고 활동하는 블랙 길드더군요.”

조수석에 앉은 손가연이 류청설의 말을 받았다.

“중국 헌터 협회는 황하문을 토벌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이유가 뭐죠? 설마, 황하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어처구니없는 변명은 아닐 테고."

류청설은 쓴웃음을 지었다.

“고위 당간부 몇 명이 엮여 있었어요. 황하문에 대한 정보를 어찌나 잘 숨겼는지… 저희도 유진의 정보가 아니었다면 황하문이 그런 곳인 줄 몰랐을 거예요."

“괜찮나요? 당간부가 엮여 있다면….”

“괜찮아요. 엮인 당간부가 누군지 확인했으니까요. 패왕도문을 건들 정도로 대단한 자들은 아니에요. 뒷감당을 걱정하지 마세요."

류청설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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