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4화 > 1574. 성유니콘
류청설이 손가연과 진지한 대화를 하는 사이에, 뒷자리에 앉은 나는 손을 뻗어 옆자리에 앉은 류자영을 희롱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아랫배를 만진다. 얇은 옷이라 따뜻하고 말랑한 감촉이 느껴졌다.
류자영은 입술을 깨물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또 지렸어?”
작은 목소리로 류자영에게 물었다. 류자영은 조용히 숨을 토한 뒤에 날 째릿 노려봤다.
“다 너 때문이다. 네가 내 몸을 이렇게 만들었지….”
"뭔소리야.”
“내 아랫배를 쓰다듬는 척하며 수작 부리는 걸 모를 줄 아나?”
“안 그랬어."
"널 다시 만나기 전까지 실금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근데 너를 만나고 이렇게 실금했다.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뻔하지."
나는 진짜 억울했다. 그녀의 보지를 직접 적으로 만진 적은 없다. 성감 고조나 점혈도 쓰지 않았다. 진짜 순수한 의도로 그녀의 아랫배를 만졌을 뿐이다.
“웃기지 마.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오줌을 지리는 건 네 방광이 허접이라 그래. 이 허접 방광."
“누, 누구보고 허접… 흐으으으읏…!”
류자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딱 붙은 허벅지에 힘이 들어간다.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성감 고조를 사용했더니 이 모양이다.
부르르, 부르르.
몸을 떠는 모양새를 보니 실례를 저지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가볍게 가버린 것 같은데… 너 설마 지금 지리고 있는 거야? 차 안에서?"
“후웁…! 내, 내가 이럴 줄 알고 준비했지.”
“준비했다고?”
궁금증이 생긴 나는 류자영의 치마를 살짝 내렸다. 지리고도 남았어야 했는데 지린내가 전혀 나지 않았기에 의심이 든 것이다.
하얀 기저귀가 있었다. 묵직한 성인용 귀저귀가 그녀의 음부를 확실하게 보호 중이다.
"……."
어이가 없었다. 성인용 기저귀가 갑자기 뿅하고 나타날 리 없었다. 공항에서 바로 나왔으니 사러 갈 시간도 없었을 테고.
'이 여자. 기저귀를 준비해온 건가? 날 만나는 자리에서?'
처음부터 내 탓을 하며 오줌을 지릴 생각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공항에서는 팬티였잖아. 그건 페이크였나?'
류자영은 못 본 사이에 어마어마한 변태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절정을 느껴서 오줌을 느끼는 게 아니라, 오줌을 지려서 절정을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군.’
기저귀를 찬 류자영은 당당하게 말했다.
“상황이 네 의도대로만 흐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아, 그래.”
뭐,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계속해서 그녀의 몸을 희롱했다. 옷 속에 불쑥 손을 집어 넣었다. 가슴을 조이는 붕대가 느껴졌다. 손가락에 마나를 집중해 작은 검기를 일으켰다. 붕대를 베어 가른다.
압축되어 있던 젖가슴이 출렁하고 존재감을 발산한다. 나는 그녀의 가슴을 계속 주물렀다. 젖꼭지는 아까부터 딱딱하게 서 있었다.
“이따가 섹스나 하자고. 알았지?”
"……."
류자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끼이익.
승합차가 멈췄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봤다. 황폐한 곳이었다. 승합차들이 여럿 있었는데, 거기서 사람이 쏟아져 나왔다. 패왕도문 소속으로 보이는 자들이었다. 그들 모두 무복을 입었고 허리춤에는 칼을 장비했다.
류청설은 손가락을 들어 정면을 가리켰다.
“눈에 마나를 집중해 봐요.”
마나로 눈을 강화한다. 시력이 높아지고 멀찍이 떨어져 있는 마을이 보인다.
“마을?”
“황하문이에요. 참고로 여긴 몬스터가 나온다는 이유로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제한 구역이죠."
“여기까지 오면서 몬스터는 한 마리도 보지 못했는데… 수작을 부린 건가. 근데 왜 저 마을이지?”
“황하문은 플래시 가루 말고도 다른 마약을 직접 제조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마약을 제조하기 위해선 노동력이 필요하죠."
“빌딩 하나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이군.”
“대충 파악하기로는 저 마을에만 7,000명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중 절반 5,000명 이상이 황하문에 납치당한 노동자로 추정하고 있어요."
과연 대륙. 납치 스케일이 어마어마했다.
‘한 달에 얼마나 많은 마약을 생상하는 거야?"
스케일이 큰 만큼 벌어들이는 돈도 상당할 것이다. 그러니 당간부가 뒤를 봐주지.
“마을의 포위와 일반인 구출은 저희 패왕도문이 맡겠습니다. 자영이와 여러분은 황하문주를 처리하시지요.”
그녀가 직접 나서서 황하문의 보스를 처리하지 않는 건, 내가 직접 황하문의 보스를 죽이고 싶다는 내 부탁 때문이었다.
“고맙습니다, 류청설 소저.”
“감사 인사는 됐어요. 공짜로 하는 일도 아니니까요.”
패왕도문은 무료 봉사로 날 도와주는 게 아니다. 패왕도문은 황하문의 재산을 갖기로 했다. 실제로는 그게 진짜 목적일 것이다. 저 정도 스케일의 마약 판매 조직은 쌓아둔 재산도 엄청날 테니.
“천중패왕은 안 도와줘?”
“아버님은 바쁘십니다. 겨우 이런 일에 나설 정도로 한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없더라도 이 정도 일은 저희끼리 처리할 수 있어요."
류청설이 차분하면서도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자신감을 느꼈다.
“그 외의 다른 질문은 없나요?”
황하문의 보스에 관한 정보는 이미 들었다.
"없어. 시작하자.”
“예․ 황하문 멸문 작전을 시작합니다. 저희는 계획대로 포위망을 펼쳐 마을 전체를 포위하죠.”
"우린 황하문의 뒤를 노린다."
성공적으로 잠입했다.
류청설을 비롯한 패왕도문의 사람들이 대놓고 움직여준 덕분이다. 황하문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리며 경계가 느슨해졌다.
잠입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물론 보스가 머무는 건물이 텅 빈 것은 아니었다. 복도를 조용히 걷다 보면 무기를 든 적과 마주친다. 그때마다 나는 조용히 움직였다.
뇌천류(雷天流) 기은보(欺隱步).
영천류에서 파생된 기은보를 밟는다. 은밀행동에 최적화된 보법이다. 나뭇잎을 밟아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기척을 숨기고 적에게 몰래 다가간 나는 놈의 입을 손으로 막는 동시에 칼로 뒷머리를 찌르고 그대로 내리그어 심장을 베었다. 시체는 그대로 버려뒀다. 시체가 들켜도 딱히 상관없었다. 그때쯤이면 황하문주도 이미 뒤져 있을 테니까.
“…너 암살을 왜 이렇게 잘해? 암살자 출신이야? 아무리 영천류라고 해도 근 100년 동안 암살은 하지 않았을 텐데.”
손가연이 의심 섞인 눈초리로 쳐다봤다. 딱히 할 말은 없었기에 어깨만 으쓱여줬다.
계속 움직인 끝에 황하문의 보스를 찾았다. 찾은 곳은 건물 최상층이 아니라 최하층의 지하 금고였다. 놈은 패왕도문과 버리고 최측근 2명과 함께 재산을 챙기고 있었다.
"빌어먹을! 패왕도문이 왜 우리를 노리는 거냐! 덜미가 잡힐 일은 없었을 텐데!”
“형님! 놈들이 왔습니다!”
“뭐, 벌써?!”
순도 높은 마석을 가방에 챙기던 황하문의 보스가 획하고 우리를 돌아봤다.
짧은 머리. 단정하지 않은 검은색 정장, 얼굴에 그어진 긴 흉터. 전형적인 마피아 조직의 보스 같은 외형이다.
“황하문의 고숙. 맞나?”
“그러는 넌 패왕도문이겠군. 그 옆의 여자는 안다. 패왕도문의 셋째 류자영! 근데 왜 네가 중심에 나서는 거냐? 류자영보다 네가 더 높다고?”
"난 성유진이다.”
고숙이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성유진? 그게 누군데? 너희들은 들어본 적 있냐?”
“모르겠습니다. 형님.”
“패왕도문의 간부들 중에 성유진이란 이름은 없습니다.”
멍청해서 그런지 내 이름을 듣고도 모른다. 나는 좀 더 자세히 자기 자신을 소개했다.
“한국에서 온 성유진이다."
“한국? 씨발! 그래, 기억났다! 성유진! 한국 사업장을 방해한 놈의 이름이 성유진이란 이름이었지! 이 자라 같은 새끼가! 패왕도문을 움직인 것도 너냐?!"
“그래. 패왕도문의 힘을 빌렸지. 널 죽이기 위해. 날 건드리고도 멀쩡히 발 뻗고 잘 수 있다고 생각했냐?”
“이 미친 새끼가! 도망가기 전에 이놈들부터 죽여야겠다! 빨리빨리 움직여!"
고숙이 소리쳤다. 그와 그의 최측근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온다. 나는 고숙을 맡기로 했고, 손가연과 류자영이 고숙의 부하들을 맡기로 눈짓으로 정했다.
고숙이 허리띠를 뽑았다. 허리띠가 뻣뻣해지는 동시에 날카로워지며 검으로 변했다. 연검(軟劍)이었다. 놈이 연검을 쓴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놀랍지도 않았다.
화련비도가 붉은 궤적을 그리며 고숙의 목을 노린다. 고숙이 연검으로 화련비도를 막았다. 검과 칼이 맞닿으며 힘 싸움이 시작됐다. 나는 자신 있었다. 꾸준히 능력치를 올려왔으니까. 힘이든, 체력이든, 마나든 밀리지 않는다.
"크으으으윽!"
고숙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의 연검이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누가 더 우세한지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이대로 힘으로 밀어서 죽이는 것도 좋겠군.’
근력과 마나. 그 둘 모두가 내가 더 뛰어났다. 고숙은 굴욕적인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비틀었다.
“이 건방진 새끼가…!”
고숙의 연검이 움직인다.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화련비도를 휘감더니, 검끝이 내 얼굴을 노리고 뻗어온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피했다. 연검은 멈추지 않고 끝까지 내 얼굴을 노린다.
'뇌전.'
파지지지직!
붉은 뇌전이 나타났다. 뇌전은 연검을 통해 고숙을 감전시켰다. 고숙은 숨을 삼키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짜릿하구만. 나만 느끼기 아까울 정도다. 그러니 너도 느껴봐라.”
놈의 몸에서 역으로 붉은 뇌전이 치솟더니 내게 날아온다.
고숙의 능력이다. 평등의 천칭. 쉽게 말해 당한 만큼 갚아주는 능력.
나는 담담히 붉은 뇌전을 받아들였다. 몸이 저릿하다. 그뿐이다. 아프거나 고통스럽진 않다. 내 육체는 이미 뇌전에 대한 내성을 갖추고 있다.
나는 뇌전의 출력을 더 높였다. 고숙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는 덜덜 떨리는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며 눈을 찌푸렸다.
“내 능력을 알고 처음부터 번개만 쓴 거냐?”
“난 너랑 달리 번개에 안 당하거든.”
주위를 돌아봤다. 손가연과 류자영은 고숙의 최측근들을 침착하게 상대하고 있었다. 손가연은 압도하고 있었고, 류자영은 약간 밀리고 있으나 위엄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 새끼. 자기 여자 챙기느라 바쁘구만. 차차리 저 여자들이랑 꺼지는 게 어떠냐? 지금이라면 보내주마.”
"병신이냐? 우리가 이기는데 왜 도망칠 리가 있냐.”
“흐흐흐, 그 얼굴을 한 놈들을 많이 봤지. 자기가 이길 거라고 믿는 놈들. 그놈들이 어떻게 됐는지 아나?”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
“전부 내 손에 죽었다. 너도 죽을 거다.”
고숙이 주머니에서 붉은색 보석을 꺼냈다.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
일단 마석은 아니다. 색깔부터가 달랐다. 마석은 검은색이다.
고숙은 붉은색 보석을 입에 넣더니 단숨에 삼켰다.
'보석이 아니라 약이었나?'
고숙의 피부가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창백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말 그대로 하얗게. 페인트를 바른 것처럼 변한 것이다.
‘마치 파이론의 화신체 같군.’
“하하하. 잘 봐라. 진화한 내 능력을!”
고숙이 웃으며 연검을 들었다. 그리고 자기 오른쪽 옆구리에 칼을 쑤셔 넣었다.
푸욱!
내 오른쪽 옆구리에서 피가 튀어나왔다. 고숙이 자해한 부위와 정확히 일치한다. 다만, 상처의 깊이가 달랐다. 내 쪽이 더 심각해 보인다. 흐르는 피의 양만 봐도 내 쪽이 20%는 더 많았다.
나는 혹시나 싶어 화련비도의 칼날을 손으로 꽉 쥐었다. 왼손바닥이 베이며 피가 흐른다. 당연히 놈의 왼손바닥에서도 피가 흘렀다. 그러나 놈의 상처는 내 상처보다 얕았다. 게다가 눈에 보일 정도로 회복력이 엄청났다.
“봤냐? 봤냐고?! 이게 내 능력이다! 내가 이 검으로 내 심장을 쑤시면 어떻게 될까? 넌 심장이 찔려 죽는 거다! 난 죽지 않아! 왜냐! 심장이 회복되거든! 크하하!”
“이 새끼가. 지금 한번 해보자는 거냐?"
“크크. 좀 버티는군? 팔이 잘리고, 눈알이 터져도 버틸 수 있나 볼까? 뇌가 물리적으로 휘저어지는 기분을 느끼고 싶나?”
"할 수 있으면 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