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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583화 (1,363/2,000)

< 1583화 > 1583.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뒤지기 싫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타타리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눈동자를 내려 자기 목에 겨눠진 단검을 확인했다.

그 심정을 이해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유리아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끝나 있었다. 유리아가 적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제, 제가 죽더라도 모험가 길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프루커스 백작 각하. 잘 생각하십시오. 대륙의 모든 모험가를 적으로 돌리실 겁니까?"

타타리가 입을 털었다. 목에 단검이 겨눠져 있는데도 건방지게 지껄인다. 미궁 도시 라비트의 모험가 길드 마스터라는 직함을 그냥 딴 게 아닌 모양이다. 배짱이 있다. 문제는 그 배짱을 나한테 부린다는 뜻이었다.

검지를 들었다. 검지는 타타리의 왼팔을 가리키며 위에서 아래로 스윽 내려갔다.

서걱!

"크으읍?!”

놀랍게도 타타리의 왼팔이 깔끔하게 베였다. 사방으로 튀는 피도 없이 아주 깔끔하게 잘렸다. 집중하고 있었던 덕분에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타타리의 팔 아래의 그림자가 칼날처럼 나타나 왼팔을 베어버린 것이다.

꼴을 보아하니 타타리는 뭐가 자신의 왼팔을 벤 것인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지만.

“사람들은 모험가를 대단하게 여기지. 고대 유적을 조사하고, 세계의 비밀을 파헤치고, 미궁의 몬스터와 맞선다. 듣기로는 매우 좋지. 근데 실제로는 모험가가 되기 위해 모험가가 된 모험가가 얼마나 있을 거라고 보나? 내가 볼 땐 용병이 되기싫어 모험가가 된 놈들이 대다수라고 본다만. 타타리.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우리 모험가들은 기본적으로 자유를 추구합니다. 적어도 저는 자유를 위해 모험가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백작 각하라고 하시더라도 우리 모험가들의 자유를 침해할 권리는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백작 각하, 원하는 게 있다면 우리에게 의뢰하십시오!"

“건방진 년. 자유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너희가 모험가라고 해서, 그 출신이 사라지나? 이 미궁 도시가 왕국과는 별개의 다른 세계라 생각하나? 너희는 평민으로 태어났고, 결국은 왕국민에 불과하다. 귀족으로 태어난 내가 까라면 까야 하는 평민."

이 세계에 있는 모든 모험가가 모험가 길드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다면 아무리 나라고 귀찮아진다. 그러나 그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모험가는 그렇게 협의 넘치는 족속들이 아니다. 대부분은 자기 일이 아니라면 도망칠 것이다.

“타타리. 마지막 기회를 주마.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나는 이딴 땀내 나는 도시를 지배하기 위해 온 게 아니다.”

“…도시를 지배하러 온 게 아니라면, 어떤 목적으로 오신 겁니까?”

이를 악문 타타리가 질문했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꼴을 보아하니 타타리는 제대로 된 이유를 듣기 전까지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을 것 같다.

‘그냥 죽일까. …아니지. 새로운 길드 마스터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 줄 알고. 이 세계는 기본적으로 행정이 너무 느려. 귀찮은 년. 나중에 돌아갈 때 죽여버려야겠군.'

나는 다리를 꼬며 입을 열었다.

“이 도시에 마왕이 숨어 있다는 첩보를 들었다.”

“…예? 마, 마왕 말입니까? 그, 악마들의 왕?”

타타리의 얼굴이 구겨졌다.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마왕이 있다고 하니 어처구니없겠지.

“마왕을 찾아내 죽여야 하니 내게 협력해라.”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협력을 약속했을 것입니다.”

“내가 왜 너 같은 평민 새끼한테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거지?”

타타리는 눈살을 확 찌푸렸다.

“…백작 각하. 그 정보를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저희 도시에는 마왕이 없습니다. 마왕이 있었다면 도시는 이토록 평화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왕이 숨어 있으니 겉으로 볼 때는 당연히 평화롭겠지. 대가리가 안 돌아가나?”

"……마왕의 정보를 알려주십시오. 백작 각하께서 한시라도 빨리 귀가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겠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모두 극비다. 이 내용이 발설되는 순간, 너는 물론이고 네 가족까지 찾아내 모조리 죽이겠다.”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솔직히 말해서 신뢰가 가지 않았다.

‘팔 한 짝 잘렸음에도 대놓고 개기는 년이니 어쩔 수 없지….’

마왕을 떠올렸다.

이 세계에서 마왕의 정보를 얻는 건 어렵다는 수준을 넘어 불가능했다.

고대 문서에 적혀 있는 마왕의 정보는 의미가 없다. 왜냐, 거기에 적혀 있는 건 전대 마왕의 정보니까. 악마들을 통해 마왕의 정보를 얻는다? 그것도 힘들었다. 악마들은 현 마왕을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으니까.

내가 마왕의 정보를 아는 건 단순히 원작 내용을 알기 때문이다.

“마왕의 이름은 아스테릭스, 빙의의 권능을 가지고 있다.”

타타리를 믿을 수 없었기에 일부만 말했다.

아스테릭스.

마왕의 이름은 맞다. 허나 놈이 가진 권능은 빙의 따위가 아니었다.

‘악마의 권능을 복사하는 권능.’

이론적으로 마왕은 모든 악마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 빙의의 권능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악마의 권능은 3개.'

내가 가장 경계하는 건 빙의의 권능이었다.

만약, 마왕이 빙의의 권능으로 유리아의 육체를 빼앗는다면?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절대정신은 육체를 지켜주지 않아. 정신이 멀쩡하더라도 육체의 권한을 빼앗길 수 있어.'

거기에 원작에서 나오지 않은 악마의 권능들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죽은 악마의 권능은 사용하지 못한다는 거지.'

원작의 카일이 1대1로 마왕을 상대하지 못하는 이유가 빙의의 권능 때문이었다. 1대1로 싸우다가 빙의라도 당하면 그대로 끝이니까.

“백작 각하께서 시민들의 정보를 원하는 이유는 알겠습니다. 미궁의 정보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온 김에 미궁이나 공략해보려고.”

"……."

“알아들었으면 정보나 내놔라. 특히, 요 몇 년 동안 생활이 크게 바뀐 시민들의 정보를 중심으로. 당연히 모험가 길드에 속한 모험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당장 준비하기 힘듭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열흘 주지. 준비해놔라.”

할 말을 모두 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리아는 타타리의 목을 겨누고 있던 단검을 내렸다.

“……."

타타리는 입을 꾹 다물고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왼팔을 바라봤다. 그녀가 팔을 주우려는 순간이었다. 잘린 왼팔이 그림자늪으로 빠져들어 갔다.

“무례의 대가입니다. 앞으로는 부디 예의를 가지시길."

유리아의 차가운 말을 끝으로 우린 집무실을 나섰다.

“미치겠군."

타타리는 홀로 남은 집무실에서 중얼거렸다. 그녀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오른팔로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자신의 왼팔을 바라봤다. 지금도 계속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다.

‘프루커스 백작. 악마를 상대하고 죽였다는 소문은 계속 들렸어. 마왕을 찾으러 왔다는 말은 사실이겠지.'

마왕이 이 도시 어딘가에 숨어 있다. 등골이 절로 섬뜩해지는 정보였다. 차라리 모르고 있는 편이 훨씬 나았다.

‘알게 된 이상 조처를 해야지.'

문제는 마왕뿐만이 아니다.

유진 프루커스 백작.

노예 출신인 타타리는 그의 눈빛을 보며 과거를 떠올렸다. 자신의 부모를 죽인 귀족. 프루커스 백작은 그 귀족과 똑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프루커스 백작은 자신을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물건으로 볼 뿐이다. 프루커스 백작은 일이 끝나면 자신을 처분할 것이다.

'프루커스 백작의 성정이 어떤지는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다. 만약, 일이 잘 안 풀릴 경우엔… 미궁 도시를 쓸어버리고도 남아.'

프루커스 백작은 그럴 무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현 라펠리 왕국에서… 아니, 현 대륙에서 프루커스 백작을 대놓고 대적할 할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을 정도니까.

'하지만 여긴 미궁 도시다.'

잘린 왼팔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무시하고 뒤로 돌았다. 커다란 창문 바깥에 이 도시의 핵심이자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미궁이 있었다. 미궁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모험가 길드 마스터로서 이 도시를 지켜야 한다. 그들을 불러야겠군.’

그녀는 허전한 왼팔에 다시 시선을 주었다. 이걸 보여주면 그들도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이야기는 잘 끝났나?”

모험가 길드 마스터의 집무실에서 내려왔다. 1층 의자에 앉아있던 AM부대의 리더인 멜리사가 차가운 음료를 홀짝이며 물어왔다. 대충 둘러보니 1층은 술을 비롯한 음료를 먹을 수 있는 주점에 가까웠다.

“잘 됐다면 잘 된 거지. 근데 넌 왜 여기서 농땡이 부리고 있는 거야?”

“농땡이가 아니라 주인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멜리사가 뻔뻔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에 따라붙었다. 모험가 길드 밖으로 나간다. 경비를 서고 있던 전투 메이드들이 기다렸다는듯이 내 곁으로 다가와 호위를 섰다.

모험가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향한다. 우리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했다.

“이제 어쩔 거지? 바로 미궁으로 쳐들어가나?”

멜리사가 물었다.

“아니, 일단 숙소부터 잡아야지. 미궁에 관한 정보를 받지 못했거든. 미궁은 내일 오전에 들어가자."

멜리사가 웃는다. 그녀의 두 눈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거렸다.

“말로만 듣던 미궁에 들어가게 되는군. 미궁에서 운이 좋으면 뛰어난 아티팩트를 얻을 수 있다지?”

“정말 운이 좋으면 그렇겠지.”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미궁은 현실의 던전과 비슷했다. 다만, 던전에 비해 더 크고 깊을 뿐이다.

우리는 도시에서 가장 좋은 호텔을 통째로 임대했다. 우리보다 먼저 머물고 있던 손님이 있었으나, 내가 명령하니 조용히 호텔을 떠났다.

최고급 호텔이라고 해도 저택에 비하면 저택의 질이 떨어졌다.

“주인님. 아무래도 모험가 길드 마스터는 다른 마음을 가진 것 같습니다.”

침대의 감촉을 확인하고 있을 때 유리아가 말했다.

“그 여자가?”

“네. 혹시 몰라 그림자를 붙여두었습니다만, 저희가 모험가 길드를 떠나자마자 모험가들을 소집했습니다. 이 도시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모험단들의 단장들인 것 같습니다.”

“짜증 나네. 지금 당장 죽여버릴까?”

“정보를 받은 뒤에 처리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에 드시지 않는다면… 지금 처리하겠습니다.”

“아니, 됐어. 정보를 받은 뒤에 없애자고. 지금은… 이 호텔의 침대가 얼마나 좋은지 테스트해 봐야겠어. 유리아. 좀 도와줄래?”

“물론입니다.”

유리아가 웃으며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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