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4화 > 1584.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AM 부대와 함께 미궁으로 들어왔다.
바로 미궁의 최하층으로 가서 공략할 생각은 없었다. 일단 50층까지 내려가며 미궁에 적응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내겐 유리아와 멜리사가 있지만, 이 미궁에 마왕이 숨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조심해서 나쁜 것은 없었다.
‘타타리로부터 72층까지의 정보는 받았어. 정보에 장난질해놓지 않았다면 문제없겠지.'
라비트의 미궁은 1~50층을 하층이라고 하고, 51층 이상을 심층이라고 한다.
50층은 베테랑 모험가와 일반 모험가를 나누는 분기점이기도 했다.
“어둡고 축축해서 기분 나쁘다.”
미궁이 기대된다고 말했던 멜리사는 정작 미궁에 들어오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미궁이 다 그렇지, 뭐.”
대충 대답한 나는 품에서 지도를 꺼냈다. 미궁 1층 지도다. 1층이라 그런지 비교적 길이 간단했다.
'미궁 내부에서는 동서남북의 방향을 잡을 수 없다고 했지.'
그래서 장소를 기준으로 지도가 그려져 있다. 나는 이편이 지도를 보기 더 편했다.
'여기가 입구이니…. 20분 정도만 걸으면 2층으로 내려갈 수 있겠군.’
지도를 확인한 나는 고개를 들었다.
"유리아.”
"네. 주인님."
멜리사가 쏟아내는 불평불만을 들어주고 있던 유리아가 즉각 반응하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워프 게이트. 설치할 수 있겠어?”
유리아는 차분히 주위를 둘러봤다.
“불가능합니다. 미궁 내부는 바깥과는 아예 다른 공간인 것 같습니다. 뒤틀려 있는 느낌도 드는군요. 변수가 계속 생기니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워프 게이트나, 텔레포트는 불가능합니다.”
“블링크 같은 짧은 공간 이동 마법은?"
“가능합니다. 블링크는 시야 내에 있는 공간이면 딱히 좌표를 계산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워프 게이트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워프 게이트만 사용할 수 있다면 던전 공략도 엄청 편해졌을 것이다.
다음 실험이다.
품에서 공간 이동 주문서를 꺼냈다. 공간 이동 주문서의 좌표는 도시의 호텔로 지정해두었다.
찌이이익.
공간 이동 주문서를 찢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공간 이동 주문서도 효과가 없군.”
미궁 밖으로 나가는 방법은 출입구를 통하는 것밖에 없다는 뜻이다.
'조심해야겠다.'
경각심을 일깨운 나는 내 지시를 기다리는 메이드들에게 말했다.
“공간 이동 주문서도, 텔레포트도 사용할 수 없어. 조심히 내려가자.”
“네. 주인님."
미녀 메이드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나는 흐뭇함을 느꼈다.
전투 메이드들이 전진한다. 따로 내가 지시할 건 없었다. AM부대의 대장인 멜리사가 그녀들을 완벽하게 이끌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전투 메이드들은 미궁에 압도될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정면에서 이마에 작은 뿔이 돋아난 왕도마뱀이 나타났다. 리자드혼이라 불리는 몬스터였다.
탕탕탕탕!
전투 메이드들은 몬스터가 보이자마자 M16의 방아쇠를 당겼다. 어썰트 라이플의 총구에서 쏟아진 탄환이 왕도마뱀의 몸통을 꿰뚫는다.
애애애애액!
왕도마뱀의 포효가 들렸다. 1~2마리가 아니다. 최소 10마리 이상이 우리를 향해 뛰어온다. 멜리사는 혀를 찼다.
“총성을 듣고 달려드는 거군. 소음기를 장착하는 편이 낫겠군. 총성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아예 없는 것보단 낫겠지."
“음. 그래서 대장. 발포하면 되지?”
“쏴라.”
전투 메이드들의 소총이 불을 뿜는다. 쏘는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대부분이 연사했지만,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쏘는 메이드들도 제법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유리아에게 물었다.
“총기가 언제까지 통할까?”
“30층까지는 통할 거라고 판단됩니다. 그 이후에는 특수탄을 사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계속 전진했다.
3시간 만에 미궁 10층에 도착했다. 여전히 동굴 환경이었다. 천장이 높아지고, 길이 넓어지며 복잡해진 것을 제외하면 1층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쩌어억, 쩍!
나는 미궁의 벽을 조용히 감상했다.
아무것도 없는 벽이 쩍 갈라지더니 그곳으로부터 몬스터가 기어 나온다. 몬스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레드 오크인가.'
막 태어난 레드 오크는 인간을 향해 끝없는 살의와 증오를 내비쳤다. 레드 오크는 맨손으로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전투 메이드들은 쿵쿵 뛰는 레드 오크를 비웃으며 검지를 당긴다.
투타타타타타타!
탄환이 빗발쳤다. 방금 막 태어난 레드 오크는 10초도 살지 못하고 온몸이 관통되어 죽었다.
“너희들… 아까부터 계속 생각했다만, 총알을 너무 낭비하는 거 아니냐?”
“이렇게 총알을 갈길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잖아요. 갈길 수 있을 때 갈겨야죠. 괜찮죠, 주인님?"
전투 메이드들이 애교 섞인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 의도가 뻔했으나, 나는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시원하게 갈기겠어? 갈기고 싶은 대로 갈겨. 총알이야 뭐, 또 구해오면 돼.”
구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게 총알이었다.
우리는 몬스터의 시체를 버려두고 앞으로 전진했다. 모험가들은 몬스터를 죽이고 마석이나 부산물을 채취하며 돈을 번다. 우리는 모험가가 아니었다. 몬스터의 부산물을 채취하는 시간에 움직였다.
"주인님."
멜리사가 내 옆으로 바싹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왜?"
“알고 있겠지만, 미행이 붙었다.”
“미행이 붙었어? 몰랐는데.”
지금 내 신경은 모두 메이드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전투 메이드들의 치마는 짧은 편이었고, 그녀들이 움직일 때마다 치마가 들썩이며 아슬아슬하게 팬티가 보일락말락 했기 때문이다. 대놓고 팬티를 보여주는 것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아까 지나친 모험가들이 있지 않았나? 그들 중 몇 명이 떨어지더니 우리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에는… 모험가 길드 마스터의 사주인 것 같군. 마님은 어떻게 생각하지?”
멜리사의 눈이 유리아에게 향했다. 유리아는 장난기 섞인 마님이란 호칭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멜리사와 같은 생각입니다. 길드 마스터는 자기 분수도 모르고 기어이 일을 저지르는군요.”
"주인님. 어떻게 할까?”
“데려와.”
명령을 내리자마자 멜리사가 손을 들었다. 수신호를 보내며 전투 메이드들에게 명령을 내린 것이다. 전투 메이드 5명이 뒤로 몸을 돌리더니 미행자들을 향해 내달렸다. 미행자들이 당황하며 도망친다.
허나 소용없었다. 총성이 몇 번 울린 뒤에, 전투 메이드들이 미행자들을 잡아 왔다. 미행자는 총 3명이었다.
적을 붙잡았으니 정보를 캐낼 시간이었다. 직접 나서서 분근착골을 사용했다. 놈들은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바이어 모험단의 로기입니다! 단장의 명령에 따라 미행했을 뿐입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그저 단장의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사, 살려주십시오!"
"바이어 모험단?”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대답은 유리아에게서 나왔다.
“미궁 도시 라비트에서 유명한 모험단입니다. 듣기로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모험단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나는 벌벌 떨고 있는 놈에게 물었다.
“우릴 미행해서 얻은 정보는 어떻게 전달하지? 접선 장소가 따로 있나?”
“쪽지를 이용합니다. 정해진 장소에 정보를 적은 쪽지를 남깁니다. 모험단에 속한 다른 파티가 쪽지를 가져가서 확인하는 방식입니다."
“번거로운 방식이군."
이 미궁에서는 최선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질문을 몇 개 더 던졌다.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말단 중의 말단이었던 것이다.
쓸모가 없어진 놈은 화련비도로 직접 목숨을 거뒀다. 시체는 미궁 내부에 아무렇게나 버렸다.
"주인님. 내 감이 말하고 있다. 놈들이 함정을 파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멜리사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거참 기막힌 우연이네. 내 감도 그렇게 말하고 있어. 그래서 걱정돼?”
“아니. 귀찮으니 빨리 나타나 줬으면 할 뿐이다. AM부대는 약하지 않다. 웬만한 기사단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 거기에 우리 쪽엔 마님이 있지. 솔직히 말해서 이따위 미궁 공략, 마님이 직접 나서면 하루 만에 끝나지 않나?”
"마왕이 이 미궁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게 문제지."
“그 마왕도 마님에게 걸리면 작살날 것 같다만….”
멜리사가 유리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그랜드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유리아는 그만큼 어마어마했으니까.
“계속 불평불만만 하지 말고 네 일이나 잘해.”
멜리사의 치마를 들쳐 검은색 T팬티를 입은 엉덩이에 손바닥을 휘둘렀다.
짜악! 찰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앗응! 아, 알겠다.”
엉덩이에 내 손바닥 자국을 새긴 멜리사가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유리아는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박쥐라도 붙어 있나 싶어 고개를 위로 올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유리아?"
“죄송합니다, 주인님. 잠깐 한눈을 팔았습니다.”
"뭐라도 있었어?"
“천장에서 시선을 느꼈습니다만, 고개를 드니 아무것도 없더군요. 기분 탓이라고 해야 할까요.”
유리아의 눈을 조금 찌푸렸다. 긴가민가한 모양이다.
반면에 유리아 본인보다 더 유리아를 믿고 있는 난 유리아의 감각을 확신한다. 유리아가 시선을 느꼈다면, 정말로 누군가가 유리아를 본 것이다.
'마왕인가? 아니면 모험가 길드 마스터가 수작을 부린 건가?'
어느 쪽이든 지금 당장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32층.
환경이 바뀌어 초원이었다.
이곳에선 강철 트롤이란 몬스터가 나왔다. 그 이름대로 피부가 강철처럼 단단한 트롤이었다. 그 뛰어난 방어력을 제외하면 일반 트롤이나 다를 바 없지만.
투타타타타타!
팅팅팅팅팅팅!
문제는 강철 피부가 총알을 튕겨낼 정도로 단단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전투 메이드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특수탄 준비.”
멜리사의 말에 전투 메이드들이 일제히 탄창을 갈았다.
특수탄.
드워프가 만들고, 마법사들이 마법을 새긴 탄환.
“한 발, 한 발 아껴서 쏴라.”
멜리사의 말이 무색하게 전투 메이드들은 방아쇠를 꾸욱 당기며 탄환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특수 탄은 강철 트롤들을 걸레짝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와, 진짜. 스트레스가 확 풀리네요.”
"역시 총이 최고야."
“매일매일 이렇게 싸웠으면 좋겠다.”
전투 메이드들이 하하호호 웃었다. 허나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자, 잠깐! 대장! 주인님! 전방에 엄청난 몬스터 무리가…!”
최소 200마리가 넘는 몬스터 대군이 저 멀리서 우리를 향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기 때문이다.
몬스터 웨이브라 불리는 현상이었다.
‘…몬스터 웨이브는 심층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적혀 있었는데?'
다른 원인으로 발생한 몬스터 웨이브일 가능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