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8화 > 1588.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쩌적!
구슬에 금이 가더니 반으로 갈라졌다.
갈라진 구슬에서 나타난 건 한 존재였다. 인간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으나, 인간은 결코 아니었다.
2m에 달하는 키. 푸른색 에너지와 검보라색 보석으로 이루어진 육체, 눈은 있으나 입과 코는 없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마왕…!”
-마왕? 하하. 그 악마들과 본인을 착각한 것이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저건 원작에서 묘사된 마왕과 비슷한 육체를 하고 있으나, 잘 보면 뭔가 달랐다. 마왕이라면 좀 더 압도적인 존재감을 흩뿌려야 정상이 아닐까.
“넌 뭐지?”
-본인은 아우레인 프리쉘이오.
“프리쉘?”
고개를 옆으로 획 꺾었다. 시선 끝에 타타리의 옆에 있는 늙은 남자에게 향한다. 타타리는 분명 저 남자를 프리쉘 마탑주라고 불렀다.
마탑주는 경악한 눈으로 아우레인을 보고 있었다.
“스승님?!”
-오랜만이구나. 여전히 멍청이 같은 얼굴이다.
“어, 어떻게. 어떻게 살아계신 겁니까? 죽은 걸 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는데…!”
-네가 내 심장을 찔렀지. 심장이 꿰뚫리는 느낌…. 썩 유쾌한 감각은 아니더구나.
“말씀하십시오! 어떻게 살아있는 겁니까?! 언데드입니까? 아니, 그것도 불가능해! 당신의 시체는 분명 내가 태웠거늘!"
-죽기 직전에 마도병기에 내 정신을 옮겨뒀다. 아직 완성한 게 아니라 불안했지만… 네가 내 마도병기를 완성시켰구나. 수고했노라, 제자야. 이제 대가를 치르거라.
아우레인이 마탑주를 향해 손을 뻗는다. 보이지 않는 힘이 마탑주의 몸을 감싸고 들어 올린다. 마탑주가 이를 악물며 손을 움직였다. 마법진이 그려지다가 그대로 촛불처럼 꺼졌다.
“마법이?! 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마탑주가 경악하며 외친다.
-어리석은 제자야. 나는 인간을. 마법을 초월하였노라.
아우레인의 오만한 선언과 함께 마탑주의 몸이 터졌다. 피와 내장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것은 인간이었던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나는 틈을 노렸다. 놈이 마탑주를 죽이기 위해 집중한 틈. 그 틈을 비집고 거리를 좁힌다.
뇌천류(雷天流) 뇌강인(雷刃).
화련비도의 칼끝이 아우레인의 명치에 쇄도한다.
까앙!
배리어에 막혀 화련비도가 튕겨 나갔다. 나는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배리어가 내 공격을 막았다고? 드래곤의 비늘마저 베어버리는 뇌강인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다시금 칼을 휘두를 준비를 했다.
-예상이상으로 강력한 일격이었소.
아우레인이 손짓한다. 강력한 바람이 일어나 날 뒤로 날려 보냈다. 나는 공중제비를 돌며 바닥에 착지했다.
‘나를 날려 보냈다는 건… 위협을 느꼈다는 뜻이다. 저 몸을 감싸고 있는 배리어는 무적이 아니야. 한계에 달하면 깨질 거다.’
-프루커스 백작. 그대에게 제안할 것이 있소. 내 말을 들어보시오.
"...제안? 시간을 끌려는 수작인가?"
- 시간을 끌어서 뭐 하겠소.
나는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전투 상황은 일단락되어 있었다. AM부대와 모험가들이 이쪽을 지켜보고 있다. 타타리도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숨죽이며 보고 있다.
“말해 봐라. 들어는 주지."
-대륙의 모든 마탑이 그대를 죽이기 위해 연합했다는 걸 알고 있으시오?
“나를? 왜?”
-이권 때문이오. 지금의 마탑은 장사치들의 상회와 다를 바 없소. 마법을 이용해 만든 물건으로 돈을 벌어들이지. 그 돈으로 마법 재료를 구매해 마법을 연구하고 경지를 넘어선다. 그게 바로 현 마탑의 생리요. 허나 프루커스 백작, 그대의 코리아
상단이 나타나면서 마탑의 수입에 차질이 생겼소.
나는 코리아 상단을 통해 다른 세계의 물건을 판매하고 있다. 마탑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설탕.
설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마탑이 있다.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게 아니라 마법을 이용해 설탕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마탑이 생산하는 설탕보다 질 좋은 설탕들을 값싼 가격에 판매해 시장을 지배했다. 설탕은 다른 세계에서 넘쳐나고 있으니 싸게 팔아도 상관없었다.
“…마탑이 연합한 이유는 간다. 하지만 어떻게 연합한 거지? 이유가 있어도 구심점이 없는 이상 모이지 못할 텐데.”
-아일린 공주.
"아. 그렇군.”
납득했다. 그때 아일린 공주가 자존심을 버리지 못한 이유. 마탑이 아일린 공주의 마지막 수단이었던 거다.
-백작. 본인과 함께하시오. 본인이 마탑을 지배하겠소. 마탑은 순수하게 마법을 추구하던 옛날로 돌아갈 것이오. 그대는 마탑외의 세상을 정복하시오.
“…마탑을 지배한다고?"
-본인은 모든 마탑을 쓸어버리고 하나의 마탑으로 만들 것이오. 알고 있소? 마탑에는 각각 비기가 있소. 그 비기들을 모두 모은다면 마법의 신이 되는 건 일도 아닐 것이오.
“그 비기들을 네가 전부 습득할 수 있다고?”
-이 육체를 보시오. 본인은 초월했소. 허나 내부는 비어있소. 마탑의 비기들로 채울 수만 있다면… 본인은 진정한 마법의신이 되는 것이오.
“개소리 잘 들었다! 멜리사!”
"헬파이어!"
멜리사가 사용한 헬파이어가 아우레인을 노리고 날아간다. 나는 헬파이어를 앞세워 내달렸다.
아우레인이 손을 뻗었다. 헬파이어 공중에서 분해되어 마나로 변한다. 이어 그 마나는 아우레인에게 흡수되었다.
‘…마나 흡수라고?”
뇌천류(雷天流) 뇌강인(雷罡刃).
까앙!
이번에도 배리어에 막혔다. 후속타를 이어가려는 찰나, 아우레인의 주위에서 헬파이어의 불꽃이 일어났다.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마왕! 역시 마왕이었잖아!"
-아까도 말했지만, 본인은 마왕이 아니오.
“아니, 마왕이다. 그 육체가 증거다!”
마법을 분해하여 마나로 만들어 흡수하는 것을 보고 확신했다. 그건 원작에서도 나온 마왕의 육체가 가진 능력이다.
이쯤되면 마왕이 아우레인인 척 연기하고 있는 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가증스러운 마왕 새끼!"
-…어이가 없군. 이 육체는 프리쉘의 비기로 만든 육체요. 이 정도로 뛰어난 육체가 만들어질 것이라곤 예측하지 못하였으나… 기분 좋은 오산이라 할 수 있소.
“닥쳐라!”
더 수작을 부리기 전에 마왕을 죽여야 한다. 나는 전력으로 놈에게 달려들었다. 붉은 번개의 칼날이 번쩍이며 놈의 머리를 노린다.
놈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타타리의 앞에 나타났다. 공간 마법, 블링크다.
"이 자식…!"
-백작. 내 제안을 걷어찬 걸 후회하게 될 것이오.
타타리가 갑자기 나타난 아우레인에게 검을 휘두른다. 소용없었다. 오러 블레이드로도 꿰뚫지 못하는 배리어를 몸에 두르고 있는데, 타타리가 어떻게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우레인의 손이 타타리의 머리를 붙잡았다.
"놔, 놔라!”
-백작의 공격을 막았더니 마나가 부족해져서 말이오. 협조 좀 해주시오.
타타리의 마나를 흡수한다. 기력이 빠진 타타리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죽지는 않았으나, 당분간 일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아우레인에게 달려갔다. 도달했을 때는 아우레인이 사라졌다. 블링크로 또 거리를 벌린 것이다. 아우레인은 모험가를 사냥했다. 아니, 잡아먹었다. 모험가의 머리를 붙잡고 마나를 빨아들인다.
그리고 놈은 마침내 AM부대 쪽에도 나타났다. 멜리사를 비롯한 전투 메이드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아우레인은 폭풍 마법을 이용해 전투 메이드들을 날려 보냈다. 딱 한 명, 유리아를 제외하고.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이는 마나가 있었지. 여기 있는 다른 누구보다 월등히 뛰어난 마나가.
유리아가 아우레인에게 그림자 검을 휘두른다. 허나 그림자 검 또한 아우레인의 배리어를 뚫지 못했다. 아우레인의 손이 유리아의 머리를 잡았다.
-그림자 마법. 희귀한 마법이지. 본인이 잘 쓰겠소.
-드디어 잡았구나.
다른 목소리가 겹쳐졌다. 아우레인의 목소리와는 달랐다. 더 무겁고, 더 어두웠다. 아우레인은 우뚝 멈춰서서 자신을 관조했다. 그 목소리는 아우레인의 안쪽에서 들렸기 때문이다.
-인간종 최고의 육체라고 들었다. 그 육체, 내 그릇으로 삼겠다.
아우레인이 뭐라 하기도 전에, 아우레인의 몸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나타나 유리아에게 달라붙어 스며들기 시작했다.
‘걸려들었군.’
입꼬리가 올라간다. 저 시커먼 건 마왕일 것이다.
'역시 저 육체 속에 있었어.'
아우레인의 눈이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꼴을 보아하니 자신의 안에 마왕이 있다는 걸 몰랐던 모양이다.
마왕에게 빙의 당한 유리아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지? 이 육체는…
푸욱.
그림자 속에서 몸을 일으킨 유리아의 검이 아우레인의 몸과 마왕에게 빙의당한 그림자 분신 유리아의 가슴을 동시에 꿰뚫는다.
"그만 죽으시지요.”
유리아가 말했다. 그녀가 손에 쥔 검에서 그림자 가시가 치솟아 아우레인과 마왕을 갈기갈기 찢어발긴다.
-아아아아아아악!
아우레인이 울부짖는다. 그림자 분신 유리아의 몸은 붕괴되어 사라진다. 분신 유리아의 몸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다시 아우레인의 몸속에 스며들었다.
아우레인이 진짜 유리아에게 손을 뻗는다. 유리아는 망설임 없이 물러났다.
빙의의 조건. 육체가 닿아야 한다. 달리 말하면 육체가 닿지 않는다면 마왕은 빙의할 수 없다.
-너는 뭐냐! 당장 내 몸에서 꺼져라!
-웃기는구나. 이 육체는 내가 설계했고, 내가 제조했다. 네놈이 한 것이라곤 고작해야 재료를 모으는 것이 전부다. 그 보상으로 내 육체를 잠깐이나마 즐기게 해줬으니… 이제 그만 사라져라.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우레인의 끔찍한 비명이 울렸다. 그게 끝이었다. 아우레인의 정신은 소멸했다.
마왕은 유리아를 빤히 바라봤다.
“…기분 나쁘군요."
-지배의 권능이 통하지 않는군. 지배를 저항하는 게 아니라… 아예 차단되는 느낌이다. 아무리 정신력이라도 이토록 뛰어나진 않을 터인데…. 특별한 물건이라도 가지고 있나? 성물이라던가.
유리아는 대답 대신 검을 던졌다. 그림자를 휘감은 검은 이무기가 되어 마왕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무기는 마왕의 배리어를 꿰뚫지 못했다.
유리아가 그림자 속에서 단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그녀가 정신을 집중하며 단검을 허공에 휘두른다. 공간과 함께 마왕의 육체를 베는가 싶었으나, 마왕의 손짓에 유리아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으음.
마왕이 신음을 흘렸다. 그가 육체를 허공에 띄운다.
드드드득, 드드득!
미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땅이 갈라지고, 천장에서 돌덩어리가 떨어진다. 나는 유리아에게 뛰어가려고 했으나, 어떻게 된 게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미궁의 공간이 괴리되고 있다.
-위험하군. 지금 이 상태로 정면에서 싸우는 건 좋지 않아.
"도망가는 겁니까?"
-지금은 네가 더 강하다. 이곳에서 죽을 생각이 없으니 당연히 도망가야지. 이 육체를 수복할 시간도 필요하니… 이 미궁에서 너희를…쯧. 미궁도 내 지배를 저항하는 건가. 되는 일이 없군.
미궁이 요동친다.
나는 갑작스레 힘이 치솟는 걸 느꼈다. 힘이 근원을 따라가 본다. 미궁이다. 미궁이 내게 힘을 주고 있다.
‘마왕을 여기서 끝장내라는 거냐? 좋지.’
미궁의 힘을 최대한 끌어모은다. 파지직. 뇌전이 튀었다.
[10초 동안 천재의 시간을 발동합니다.]
뇌천류(雷天流) 이중공명(二重共鳴) 만뢰나선(卍雷螺旋).
붉은 만뢰와 푸른 만뢰가 겹쳐져 하나의 번개 줄기로 변해 마왕에게 쏘아진다.
유리아에게 집중하고 있던 마왕은 뒤늦게 내 공격을 눈치채고 몸을 비틀었다. 만뢰나선은 마왕의 어깨를 박살 냈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을 받았군. 보답이다.
마왕이 나를 향해 검붉은색 기운을 쏘아냈다.
나는 피하려고 몸을 움직였으나, 도리어 검붉은색 기운 앞으로 이동되어 있었다.
'젠장. 놈이 미궁을 지배한 탓에…!’
검붉은색 기운이 내 몸에 스며들었다. 시야가 울렁거린다. 뭔지 모르지만 마왕의 짓거리니 어떤 권능 중 하나가 틀림없었다.
콰콰콰콰!
미궁이 무너진다. 거대한 바위가 내 앞에 나타나 시야를 가린다. 그 직전, 천장으로 도망치는 마왕과 마왕을 향해 공격하는 유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쿵!
나는 비틀린 공간 속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추락한 나는 등을 때리는 고통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이상한 숲이었다.
‘…뭐지?'
내 옆에 갑옷이 있다. 화련비도도 있었고, 옷도 있었다. 내가 입었던 옷들이다.
'옷이 벗겨져 있는 건 둘째 치고…왜 이렇게 켜?’
갑옷에 가까이 다가갔다. 반짝반짝 빛나는 갑옷에 내 모습이 비친다.
"헉!"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내 몸은 작아져 있었다. 크기로 따지면 15cm 정도다. 등에 두 쌍의 반투명한 날개가 있었고, 귀끝은 뾰족해졌다. 다행히 자지는 있었다. 몸도 작아진 만큼 자지도 작아졌지만, 다행히 비율로 따지면 작아진 내 손보다 컸다.
“시발. 이거 그거잖아. 요정. 팅커벨.”
등에 정신을 집중한다. 요정 날개가 파닥파닥 움직이고 몸이 공중으로 뜬다. 날개로 하늘을 나는 기분은 묘했다.
“이러면 진짜 요정이잖아."
섹스 인간 성유진은 섹스 요정 성유진이 되었다.
"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