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9화 > 1589.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요정이 되었다.
왜 요정이 됐는가?
짐작가는 원인이 있었다.
'마왕이 쏘아낸 기운. 그걸 맞고 이렇게 됐지. 십중팔구 마왕의 권능 중 하나겠지.'
의문이 생겼다. 마왕이 어떤 이유로 요정으로 만들었느냐다.
‘날 굳이 요정으로 만들 이유가 없어. 그 권능이 요정으로 만드는 권능이 아니라면?'
불현듯 동화 속에 나오는 마녀가 떠오른다. 그 마녀는 사람을 개구리나 벌레, 쥐새끼, 난쟁이 등으로 만들 수 있었다.
‘날 벌레로 만들려고 했다가 실패한 걸지도 모르겠군.’
권능은 엄청난 힘이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마왕은 지금 정상인 상태가 아니야.'
악마는 인간계에서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 그건 마왕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까 유리아와 마왕의 전투에서 유리아가 마왕을 압도했어. 대충 봐도 유리아가 더 강했지. 마계에서라면 모를까. 인간계에서의 정면 싸움은 유리아가 압도할 수 있어.’
빙의를 비롯한 귀찮은 권능들만 해결한다면 손쉽게 마왕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유리아가 마왕을 죽였을지도 모르지.’
요정이 된 작은 몸을 바라봤다. 딱히 불안하지는 않다. 내겐 상태 이상을 해제할 수 있는 천심과 완전 회복이 있으니까.
'요정이 될 일은 흔하지 않지. 기왕 이렇게 된 거 즐겨볼까.’
가장 먼저 할 일은 유리아를 비롯한 메이드들을 찾는 일이다. 몸은 엄청나게 작아졌으나, 날개가 있으니 기동성 면에서는 도리어 더 좋아진 걸지도 모른다.
‘화련비도는 역소환하고… 스톰브레이커는 형태와 크기를 바꿔야겠군.'
스톰브레이커는 검의 형태로 변해 크기가 줄어들었다. 검자루를 쥐었다. 요정의 몸이라 그런지 어색함을 느꼈다.
'요정이 됐으니 옷을 입을 필요는 없겠지.'
검을 휘둘러본다.
힘이 약해졌다. 그건 확실했다. 반대로 마나의 양은 더 많아진 것 같았다.
다음은 비행이었다.
요정 날개가 파닥거리며 내 몸이 떠오른다. 내 안의 마나가 조금씩 소모되는 걸 느꼈다. 티끌 수준이라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날개의 힘만으로 비행하는 게 아니군.'
날개가 아닌 마나로 허공을 부유한다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불만은 없다. 덕분에 손쉽게 날 수 있었으니까.
나는 공중으로 치솟았다. 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가 숲을 내려다봤다.
‘미궁에서 숲을 환경을 지닌 층이 5개 정도 있었지. 그중에 2개는 하층이고, 나머지는 심층이었어.'
하층 26층과 27층. 심층 61층~63층.
'심층이군.'
26층과 27층의 숲을 지나왔다. 그때의 숲과 지금의 숲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나오는 몬스터로 확실하게 알 수 있지.'
네 개의 팔을 가진 붉은색 고릴라가 숲속을 돌아다니는 게 보인다.
'61층이군.'
날개를 퍼덕이며 숲의 위를 날아다녔다. 메이드들이 이곳에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없네.'
1시간을 돌아다녔으나 얻은 소득은 없었다. 나는 공중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마나를 소모해 날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음. 섹스하고 싶다.'
자지가 발기했다. 내 팔뚝만큼 굵고 긴 자지였다. 요정의 몸인지라 5cm도 안 되지만.
그렇게 멍때리던 나는 숲속에서 움직이는 물체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레드 고릴라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검은색의 망토였다.
'클로디아의 망토다!'
클로디아를 향해 하강했다. 신중하게 숲속을 걷던 클로디아는 나를 알아차렸는지 멈칫했다. 그녀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프, 프루커스 백작 각하?”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럴 만도 했다. 요정이 된 내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그래. 나다. 마왕의 힘에 당해 요정이 됐다.”
“그러시군요. 그런데… 그 옷이 필요하신지요? 제 망토를 찢어드리겠습니다.”
“됐다. 지금의 난 요정이다. 옷이 없어도 상관없다.”
“알겠습니다.”
클로디아는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발기한 자지 때문인 듯했다. 그녀의 시선은 내 상체에 고정되어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알고 싶군. 아는 게 있나? 마왕과 유리아의 전투는 어떻게 끝났고, 메이드들은 어디에 있지?"
“모두 대답해 드릴 테니 지금은 진정하십시오, 백작 각하.”
“…내가 좀 흥분했군. 알고 있는 정보가 적어서 말이야. 게다가 몸까지 이렇게 됐지.”
“이해합니다. 우선… 마왕과 유리아님의 전투 결과는 저도 모릅니다. 50층이 붕괴되고 있던 순간이었던지라, 전투를 지켜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AM부대라고 했던가요. 백작 각하의 메이드들은 모두 저처럼 떨어졌습니다.”
"떨어 졌다라."
“미궁 50층이 붕괴되었습니다. 공간이 무너졌다고 할까요. 폭풍 속에 갇혀 이리저리 날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다시 겪고 싶진 않군요.”
클로디아는 그 감각을 떠올린 듯 한숨을 쉬며 미간을 찌푸렸다.
“미궁 붕괴. 이런 일이 가끔씩 일어나나?"
"아뇨.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말도 들어본 적 없습니다. 아마 마왕이 무언가를 한 것 같습니다.”
“마왕은 지배의 권능으로 미궁을 지배한 거다. 그걸로 미궁에 영향을 끼친 거겠지. 그나마 다행인 건 미궁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한 것 같다.”
“마왕이란 존재도 믿기지 않는데, 가진 힘은 더 믿기지 않는군요.”
“그래도 예상보다 약해서 다행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마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았다. 애초에 마왕이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런 미궁 속에 처박혀있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메이드들을 찾고 싶다. 방법이 없나?”
“직접 미궁을 돌아다니며 찾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다만… 50층이 붕괴한 영향인지 미궁의 구조가 변한 것 같습니다.”
“구조가 변해? 무슨 뜻이지?"
“여긴 61층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몇 번 와본 적 있기에 길을 전부 알고 있습니다. 허나 제 기억 속의 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미궁 내부의 구조가 바뀐 것으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미궁의 지도가 무용지물이 됐다는 건가.”
“네. 길만 바뀌었으면 괜찮습니다만….”
다른 것도 바뀔 가능성이 있었다. 가장 성가신 건 미궁의 함정이겠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함께 움직이자."
“네. 백작 각하를 따르겠습니다.”
차분하게 대답한 클로디아는 허리춤에 양손에 가져갔다. 채앵! 두 개의 검을 뽑아 든 그녀가 몸을 살짝 낮췄다.
갑작스러운 전투 태세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녀가 노리는 건 내가 아니라, 내 뒤쪽에서 접근하는 레드 고릴라다.
“고릴라가 3마리군.”
"사냥하겠습니다."
“거들어주마."
검을 쥔 나는 레드 고릴라들을 향해 날아갔다. 가장 왼쪽에 있는 놈부터 죽일 생각이었다.
파지직.
뇌전을 흩뿌리며 날아간다.
‘몸은 작아졌어도 내 능력이 사라진 건 아니거든.'
검에 오러 블레이드가 서린다.
레드 고릴라와 눈이 마주쳤다. 레드 고릴라는 나를 보고서도 어떤 반응도 하지 않는다. 놈이 가진 살의는 오로지 클로디아에게만 향해 있다.
‘뭐지? 내가 요정이라고 무시하는 건가?'
그 대가는 싸지 않을 것이다.
뇌천류(流天流) 뇌강인(雷罡刃).
레드 고릴라의 목을 베었다. 놈의 머리가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카아아아악!!"
"카아악!"
주위에 있던 레드 고릴라가 갑자기 고개를 획 돌렸다. 놈들의 적의와 살의가 갑자기 내게 향한다.
검을 휘두를 필요는 없었다. 놈들이 내게 어그로가 끌린 틈에 클로디아가 다가와 쌍검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오러가 맺힌 검은 레드 고릴라의 몸을 가볍게 절단했다. 그녀는 검에 묻은 피를 한 차례 털어낸 뒤 납검 했다.
소리 없이 다가와 레드 고릴라를 베고 납검하는 것까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움직임이었다.
나는 소리 없이 침을 삼켰다. 망토 사이로 그녀의 몸매가 보였기 때문이다. 먹음직스러운 가슴과 박음직스러운 엉덩이.
자지에 느낌이 온다.
"제법이야."
"감사합니다."
“아까 봤나?”
“네. 레드 고릴라들은 공격당하기 전까지 백작 각하를 적으로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미궁의 몬스터는 바깥의 몬스터와 달리 자기들끼리 싸우지 않는다고 들었다. 놈들은 나를 미궁의 몬스터로 인식하는 것 같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만, 확정하기엔 이른 것 같습니다.”
“몇 번 더 실험해보면 알겠지.”
나는 레드 고릴라가 보이는 대로 돌진했다. 레드 고릴라는 공격당하기 전까지 나를 적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몸을 흔들며 요란스럽게 접근해도 적으로 보지 않는다. 놈들이 나를 적으로 인식하는 건 공격당했을 때뿐이다.
'절대적인 기습권이 생긴 느낌이군.’
어쩌다 이렇게 됐는가. 미궁에서 요정이 특별해서?
“짐작 가는 건 있다. 난 50층에서 미궁의 힘을 받아 마왕을 기습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만.”
“그 영향으로 미궁 내의 몬스터가 같은 동족으로 인식한다? 네. 가능성 있는 이야기군요. 설마, 미궁이 의지를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한때 미궁이 살아 있는 생물이라는 말이 떠돌았는데… 그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르겠군요.”
“이 능력이 있으면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겠군.”
“미궁에선 최고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길을 찾아 숲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시간이 꽤 소모됐다.
“윽…. 백작 각하. 잠시… 휴식을 취하지 않겠습니까?”
망토를 뒤집어쓴 클로디아를 바라봤다. 망토 아래의 클로디아의 얼굴은 붉었다. 자세히 보니 몸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마치 오한을 느끼는 것처럼.
“얼굴이 붉군. 어디 아픈가?”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래? 여기서 좀 쉬다 가지.”
클로디아는 내게서 떨어져 나무 그늘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살짝 떨어진 곳에서 차분히 클로디아를 주시했다.
'지금 클로디아의 안색은 익숙하군.'
수많은 여자를 품에 안은 나다. 얼굴만 봐도 그 심리를 대충이나마 유추할 수 있다.
지금 클로디아는 쾌락을 느끼는 여자의 얼굴이었다. 좀 더 덧붙이자면 로터 같은 작은 장난감에 당하는 듯한, 지속된 작은 쾌락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듯한 표정이다.
‘갑자기 왜 발정한 거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가 벗고 있어서? 아무리 그래도 이 작은 몸을 보고 발정하나? 정상이 아니군.'
클로디아에게 이런 이상 성욕이 있을 줄 몰랐다.
‘어디 한 번 떠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