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3화 > 1593.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크으?!”
정액 폭포수를 맞은 멜리사는 당황하며 양팔을 떨었다. 다리에 힘을 주어 쓰러지지 않게 균형을 잡았다. 한 차례 정액 폭포수를 버텨낸 멜리사의 몸은 정액투성이였다. 멜리사가 나를 노려봤다.
“주인님. 드디어 돌았는가?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지? 그 꼴은 또 뭐고.”
불평을 토해내면서도 수인을 맺어 마법을 사용한다. 허공에 깨끗한 물이 떨어지며 그녀의 몸에 묻은 정액들을 떨쳐냈다.
나는 뻔뻔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 너를 위해서야. 손목에 난 상처를 봐. 회복했잖아.”
아무 이유 없이 정애 폭포수를 멜리사에게 쏟은 건 아니었다. 정액 폭포는 일종의 치료제였다.
“…상처가 회복되긴 했군. 근데 굳이 폭포수를 쓸 필요가 있었나? 주인님이라면 인벤토리인가 뭔가 하는 것에서 포션을 꺼낼 수 있었을 텐데.”
“크흠. 아낄 건 아껴야지. 그나저나 아무렇지 않아?”
“뭐가… 읏.”
멜리사가 파르르 떨었다. 얼굴이 붉어지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눈동자에선 색욕이 빛난다.
평소였다면 옷을 벗어 던지고 나를 유혹했을 그녀였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침을 삼키며 욕구를 참는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상황부터 설명해라.”
주인님인 내게 상황을 요구한다. 누가 주인인지 모를 장면에 잠깐 혀를 찬 뒤에 말했다.
“간략히 말할 테니 잘 들어라. 50층에서 나는 마왕의 권능에 당해 섹스의 요정이 됐어."
"…섹스의 요정?"
“정액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섹의 요정이지."
"그건 또 뭐냐."
멜리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그 클로디아라는 여자 모험가와 함께 돌아다니고 있다는 거군. 그 모험가는 어디에 있지?"
“여기와는 다른 층에 있어. 정확히 몇 층인지는 몰라.”
“몇 층인지 모른다고? 주인님은 여기에 어떻게 온 거지?"
“공간 이동 함정을 이용했어.”
미궁에는 여러 가지 함정이 있다.
갑자기 땅이 꺼져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거나, 천장에서 돌덩어리가 떨어지는 함정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성가신 함정 중에는 갑자기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소환되거나, 다른 층으로 무작위로 이동되는 함정도 있다.
나는 공간 이동 함정을 일부러 이용해 멜리사가 있는 층에 나타난 것이다. 나는 공간 이동 마법으로 클로디아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이건 클로디아의 의견이었다.
멜리사와 나는 대화를 이어 나가며 정보를 교환했다.
“...주인님이 특별한 존재가 됐다는 건 알겠다. 그 모습은 좀 역겹지만, 능력만큼은 뛰어나서 믿음직하군.”
“이 모습이 역겹다고? 귀여운 게 아니라?”
“그런 흉물을 달고 있는 요정이 귀여울 리 없잖나.”
흉물이라니. 말이 좀 심한 것 같다. 이 물건에 박혀 앙앙거리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거늘.
나는 반박하려던 말을 억지로 삼키고 물었다.
“유리아를 비롯한 전투 메이드들은?”
“전투 메이드들은 그 당시에 함께 떨어졌다. 3~4명씩 붙어 있을 테니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 문제가 되는 건… 마님이군.”
“넌 유리아와 마왕의 전투를 끝까지 봤겠지? 어떻게 된 거야? 마왕은 죽었어?"
“마님은 마왕을 죽이지 못했다.”
좀 놀라긴 했으나, 쉽게 받아들였다. 마왕은 유리아와 정면에서 전투를 벌이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상황에서 마왕은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마왕은 성공적으로 도망쳤나."
“마님에게 공격을 허용하긴 했으나, 죽지 않았으니 성공적으로 도망쳤다고 봐야지. 문제는 마왕이 미궁 천장으로 도망친 이후다. 미궁이 갑자기 마님을 공격하더군. 미궁 자체가 의지를 가지고 마님을 적으로 인식한 것 같았다.”
“마왕이 가진 권능 중 하나인 지배의 권능이야. 지배의 권능으로 미궁을 지배하고 유리아를 공격한 거겠지. 그래도 유리아가 고작 미궁 따위에게 당할 리는 없을 텐데.”
“그 이후부터가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일어났다. 마님이 일부러 미궁에게 당해 아래로 떨어졌다. 일부러… 라는 건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다만.”
"……."
멜리사의 실력과 안목은 내가 인정하고 있다. 그녀가 착각했을 가능성은 낮다. 유리아는 일부러 당해 미궁 아래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간다.
‘유리아가 생명을 포기했을 리는 없을 테고…. 일부러 당해주는 쪽이 더 이득이라 판단한 건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을 도출해낼 수는 없었다.
"여긴 뭐야? 아까 보니 이상한 것과 싸우던데.”
“도플갱어다. 아카데미에 재학하던 시절에 배운 적이 있는 희귀 몬스터지. 아마도 놈은 이 층의 수문장일 거다."
“유리 속에 있는 존재가 도플갱어라고? 차라리 귀신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귀신? 뭐, 비슷하긴 하군. 도플갱어는 허상의 존재라고도 불리니 말이다.”
“허상의 존재? 도플갱어에게 실체가 없다고?”
“도플갱어는 원래 실체가 없다.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내가 알고 있는 도플갱어와 멜리사가 알고 있는 도플갱어는 이름만 같은 다른 몬스터인 것 같았다.
"도플갱어에 대해서 말해봐."
“도플갱어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 실체가 없기에 허상의 공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이 허상의 공간에도 조건이 있다. 모습이 비쳐야 한다는 거지. 예를 들면… 여기 있는 유리 벽이나, 바닥에 고인 물처럼 말이다.”
“도플갱어는 어떤 방식으로 공격하는 거지?"
“동화다. 내 모습을 동화해서 자해한다. 그럼 동화된 나는 도플갱어와 똑같은 상처를 입는다.”
내 얼굴이 심각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도플갱어가 자살하면 너도 죽는다는 거잖아.”
멜리사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도플갱어는 자살하지 않는다. 인간 수준의 지성을 가지고 있는데 적을 죽이기 위해 자신이 죽는 선택을 할 리 없다.”
“그럼 놈은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 거야?"
“놈이 실체화하는 순간이 있다. 내 존재를 빼앗기 위해 허상의 공간에서 기어 나오는 유일한 순간이지. 그때를 노리면 된다.”
쉽지 않다.
도플갱어는 인간 수준의 지성을 가진 놈이다. 확실한 순간이 아니면 절대로 실체화하지 않을 것이다.
"성가신 놈에게 걸렸네.”
“내 말이. 도플갱어의 정석적인 공략법은 상대하지 않는 거다. 도플갱어가 있는 곳을 떠나는 거지. 도플갱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한계가 있으니까.”
“하지만 미궁은 아니지. 여긴 도플갱어를 위한 공간이니까."
“그렇다. 아, 바닥도 조심해라. 철갑 돌고래가 나타나 공격하더군.”
그게 뭔지 몰라도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었기에 아래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애초에 미궁의 몬스터가 나를 먼저 공격할 리가 없고.'
맞다. 선공의 권한은 내게 있었다. 미궁의 수문장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걸 이용해 도플갱어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일단 공간 이동을 이용해 클로디아에게 돌아갔다. 클로디아는 지도를 바닥에 앉아 지도를 작성하고 있었다. 한 번 본 것을 잊지 않는다는 수준은 아니어도, 한번 지나친 길은 잊지 않는다는 게 클로디아였다.
“일행을 만나셨다니 다행입니다. 멜리사라면… 그 흑청발의 메이드분이시군요. 오러 마스터이자 아크 메이지라고 했던가요. 백작 각하께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우연히 만난 거라 너랑 합류하기 힘들다는 거지.”
나는 멜리사에 대한 상황과 도플갱어에 대한 것까지 말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도플갱어를 상대할 방법까지.
“놈이 실체화할 수 있도록 일부러 빈틈을 보이는 거야. 어차피 놈은 다른 몬스터처럼 날 적으로 인식하지 않을 테니, 놈이 실체화하는 순간을 노리는 거지.”
“좋은 생각이십니다만… 제가 백작 각하였다면 좀 더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았을 겁니다.”
“다른 방법이 있나?"
“지금 백작 각하는 요정이지 않습니까. 요정의 신비한 마법을 적극적으로 이용해보겠지요.”
“요정의 신비한 마법….”
유리벽 속에 도플갱어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단순히 유리에 비진 멜리사라고 봤다. 근데 자세히 보니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멜리사를 비웃고 있었다.
"기분 나쁘군.”
멜리사가 짜증스레 중얼거렸다. 그녀가 직접 나서기 전에 내가 먼저 움직였다.
멜리사와 똑같은 얼굴을 한 도플갱어의 눈동자가 움직여 나를 인식한다. 그뿐이었다. 다른 몬스터처럼 나를 향해 적의를 보이지 않는다. 아예 관심 자체가 없다는 듯 다시 멜리사에게 시선을 준다.
도플갱어는 손에 단검을 쥐었다. 또 자해하려는 것이다. 단검이 향하는 곳은 허벅지 쪽이다.
‘조금씩 조금씩 상처 입혀서 스트레스를 주는군. 일종의 가스라이팅이라 할 수 있나? 성질이 나쁘군.’
도플갱어는 인간 수준의 지성이 있기에 지금 이 상황이 자신에게 얼마나 유리한지 알고 있다.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신비한 존재인 요정은 신출귀몰하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허상의 공간에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텔레포트!’
팟!
몸이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나는 정면을 쳐다봤다. 공간 이동은 성공한 것 같은데 변한 게 없었다.
'아니, 있군.'
눈앞에 있는 멜리사는 나를 보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경악하고 있고, 유리 속의 멜리사는 당황한 듯 유리를 두들기고 있다.
‘두들기고 있는 쪽이 진짜 멜리사다.'
구분은 간단했다. 진짜 멜리사의 뒤에는 메이드들이 있었으니까. 반면에 도플갱어는 혼자였다.
“어,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 거냐?!”
도플갱어가 말했다. 멜리사와 똑같은 목소리였다.
“나는 섹스의 요정이다. 감히 내 여자를 괴롭힌 죄를… 네게 물으러 왔다!”
“미친놈!”
“멜리사의 목소리로 날 욕하다니… 신선해서 좋군.”
“네게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딱 한 번…. 딱 한 번만 기회를 주지. 내 공간에서 꺼져라.”
“네가 꺼지라 해서 내가 순순히 꺼질 것 같나? 아까도 말했듯이 내 여자를 괴롭힌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대가를 치르는 건 내가 아니라 너다!”
도플갱어를 중심으로 마나가 격렬히 움직인다. 이윽고 마나는 마법이 되어 허공에 불덩어리 3구를 만들었다.
파이어 볼.
멜리사가 자주 사용하는 마법이었다.
‘도플갱어답게 멜리사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기억이 복사된 것 같진 않은데.'
놈의 마법에 나 또한 마법으로 응수했다.
'파이어 볼!'
붉게 타오르는 불덩어리 대신 하얗게 타오르는 정액 파이어볼 3구가 허공에 생성되었다.
파이어 볼과 정액 파이어 볼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촤아아아악!
정액이 터지며 사방으로 튀었다. 도플갱어의 파이어 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