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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608화 (1,388/2,000)

< 1908화 > 1908.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우리들을 처리하고 돌아가겠다?”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오만하군. 프루커스 백작.”

오러 마스터 두 명이 내 앞에 내려섰다.

두 사람 모두 중년인이었다. 한 사람은 한쪽 팔이 없었고, 다른 한 사람은 얼굴 절반에 화상 흉터가 있었다.

“팔 병신과 얼굴 병신이군."

내 도발에도 그들은 평정심을 유지했다.

“…허어. 말투가 더럽다고 들었긴 하나, 직접 마주하니 화나기보다는 어처구니가 없군.”

“프루커스 백작. 우리가 나선 이상 그대에게 승기는 없다.”

“냉정한 척하지 마라, 늙은이들. 너희들은 나를 부러워하겠지. 너희는 아등바등 살면서 겨우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지만, 난 너희들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젊은 나이에 오러 마스터의 위치에 올랐으니까.”

“...오만하군.”

“재능은 뛰어나도 인성은 최악이로군. 캘리버드 님의 말이 옳소. 프루커스 백작, 그대는 여기서 쓰러져야 한다.”

“너희 둘만으로 날 쓰러뜨릴 수 있겠나? 너희 쪽 오러 마스터는 셋이라고 들었다. 다른 한 명은 어디에 있지?"

사실 다른 한 놈이 어디에 있는지는 짐작 간다. 아마 아일린 공주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아일린 공주는 이 전쟁의 명분으로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니까.

“더 말을 섞는 건 의미 없는 일.”

"이곳에서 죽어라, 백작!"

오러 마스터 둘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유리아에게 육체 조정을 받기 전의 나라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방심하지 않는다.

놀 여유도 없다.

전력을 다한다.

'가속, 찰나. 천심.'

[가속을 사용합니다. 10분 동안 유지됩니다. 남은 스택: 6]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천심(天心)을 발동합니다. 1분 동안 지속됩니다.]

'최속의 일격을.'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빛의 궤적이 두 명의 오러 마스터의 급소를 노린다. 오러 마스터들은 두 눈을 부릅뜨며 뒤로 물러났다. 오러 마스터라는 경지는 폼으로 딴 건 아닌지 내 공격에 반응했다. 허나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그들의 몸에서 붉은 피가 흐른다.

'피의 양이 적어. 경상이다.'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팔 병신이 뒤로 물러나고, 얼굴 병신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육체서 붉은 오러가 불꽃처럼 치솟았다.

‘겉모양만 불꽃 같은 게 아니군. 실제로 열기를 품고 있다.'

아마도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특수한 비전 검술 비스름한 것일 터다.

'상관없다.'

내 몸을 감싸는 갑옷, 스톰브레이커를 믿는다.

“이 불꽃이 만만해 보였나? 이 불꽃은 그대의 갑옷까지 태울 것이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찰나를 써서 검을 휘두른다.

까앙!

공격이 막혔다. 내 검격을 예측하고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 병신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미소를 짓는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그럴 만도 했다. 놈의 오러 불꽃이 내 몸에 달라붙으러 움직이고 있으니.

그러나 내 몸을 태우지 못했다.

'천심이 일하는군.'

천심이 발동되는 1분 동안 나는 상태 이상 면역이다. 아무래도 천심은 화상도 상태 이상으로 치는 모양이다.

푸욱!

칼이 얼굴 병신의 명치를 찔렀다. 심장을 확실히 꿰뚫었다. 놈은 피를 토했다.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두 눈을 부릅뜨고 외친다.

“말도 안 된다! 왜 카로스의 불꽃이…?!”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라. 물론 난 운도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크크.”

놈의 몸을 발로 찼다. 놈은 바닥에 철퍼덕 떨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내 시선은 남은 한 명의 오러 마스터, 팔 병신에게 향했다. 놈은 자세를 낮추고, 허리춤의 검집에 검을 집어넣은 발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판타지에서 뭔 발도술이야. 존나 안 어울리는군.”

후으읍.

팔병신이 숨을 삼키며 근육에 힘을 준다. 놈의 근육이 꿈틀거린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근육의 움직임이다.

‘얼굴 병신과 마찬가지로 비전 기술일 테지.'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너무 오만하군. 너는 지금 내 간격에 들어와 있다.”

“그딴 말을 내뱉을 시간에 검부터 휘두르시지?”

“이미 휘둘렀다.”

"알아."

느껴진다.

이 간격, 이 공간에 보이지 않는 검기들이 가득 차 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찰나를 써서 움직인다. 그러나 별 의미가 없었다. 찰나를 쓰더라도 검기들을 완전히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검기가 날아와 스톰브레이커의 갑옷을 두들긴다. 스톰브레이커의 갑옷을 베어 가르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허나 그 충격은 사라지지 않고 갑옷의 보호를 받는 육체까지 전해졌다. 욱신거리는 고통을 무시하고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미쳤군. 지금 너는 사지로 들어온 거다.”

“그 팔, 이제 보니 진짜 팔이 아니군. 유물인가?"

“나를 오러 마스터로 만들어준 팔이지."

놈이 웃는다. 입과 눈에서 피가 흐른다. 유물의 힘을 쓰는 대가인 모양이다. 동시에 나를 향해 날아오는 참격의 힘이 강해졌다.

나는 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검기의 힘과 양이 더 거세졌다.

다섯 걸음도 남지 않은 거리에서 놈은 감탄했다.

“여기까지 가까이 다가온 자는 네가 처음이다. 너는 죽음이 두렵지 않나?”

“죽음? 아, 내가 많이 겪어 봐서 아는데… 지금은 딱히 죽을 것 같지 않더라고.”

"건방진 놈."

놈이 팔이 움직인다.

동시에 내 팔도 움직였다. 공격은 내가 살짝 늦었다.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허나 화련비도가 더 빨리 놈의 팔을 자른다. 놈의 참격은 방향을 잃고 옆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공간을 가득 채웠던 검기가 사라진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 쾌검술. 인정할만하다.”

“뽀록이었다.”

“…이제와서 겸손인가? 어이가 없군.”

“진짜 뽀록이었다고."

놈의 참격을 막아내면 본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뇌광은 휘둘러지는 도중에 가속했다. 그 원인은 모르겠다. 원인을 분석하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짐작하기로는 뇌기가 원인인 것 같긴 한데.

촤아아악!

팔 병신의 몸을 잘랐다. 두 번째 오러 마스터도 죽였다.

주위를 둘러본다. 기사와 병사들이 경악한 눈초리로 날 지켜보고 있다.

“기껏 포위했으면서… 안 덤비나?”

고참 기사로 보이는 자가 이를 악물며 검을 치켜들었다.

“프루커스 백작을 죽여라! 그를 죽이면 이 전쟁은 끝난다! 프루커스 백작을 죽이는 자에게 작위와 영지, 포상금을 지급할 것이다!!"

"와아아아아아!"

병사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억지로 사기를 끌어 올린다.

“저, 적군이다!!!”

어느 한 병사가 초를 쳤다.

기사와 병사들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간다. 오른쪽 언덕 위, 그곳에 테브라를 도우러 온 원군들의 모습이 보였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 근데 저 깃발은.”

태양 속에 검을 품은 문양이 그려진 깃발.

기억에 있는 깃발이다.

엘바 솔테스.

솔테스 가문의 여성 자작.

전대 자작인 아버지가 병으로 급사하면서 작위를 물려받은 여자다. 가세가 기우는 가문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 나선 여장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500억 네르를 빌리기 위해 몸을 팔았던 여자다. 물론 그 500억 네르는 아직 갚지 못한 빚이다.

“설마 여기에 올 줄이야."

빚을 갚기 위해 왔다? 그럴 리가. 전비로 쓸 500억 네르를 빌리기 위해 내게 순결을 바친 여자다. 그렇게 순진하고 의리깊은 여자가 아니다.

엘바 솔테스는 이 전쟁에서 내가 이길 거라고 판단하고 줄을 탄 것이다.

‘눈치 빠르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여자군. 이번 전쟁에서도 적지 않은 이득을 취했다지?'

그리고 감이 좋은 여자이기도 했다.

나는 엘바 솔테스의 이름을 되뇌었다. 가장 먼저 원군으로 참전했으니 나중에 상을 내려줘야겠지.

'원군의 수가 제법 많아. 특히 기병은 300명이 넘는군. 이러면… 물러설 필요는 없겠어.'

촤르르르르르륵!

쇠사슬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획 옆으로 돌렸다. 아일린 공주가 붙잡혀 있는 곳에서 그림자 사슬이 치솟고 있었다. 그림자 사슬 끝에는 웬 중년남자가 꿰뚫려 죽어 있었다. 나머지 1명의 오러 마스터가 틀림없었다.

‘유리아가 보내는 신호다.'

유리아는 누구보다 조용히 움직일 수 있다. 오러 마스터가 지키고 있는 곳? 유리아가 마음만 먹으면 조용히 암살하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런 그녀가 이토록 화려하게 오러 마스터를 죽이는 이유는 뻔하다.

'아크 메이지들의 시선을 끄는 거지. 유리아는 아일린 공주를 확보한 거야.'

유리아도 끝장을 보기를 원하고 있었다.

나는 씨익 웃었다.

미궁의 힙을 흡수해서 그런지 내 육체는 아직도 생생했다. 쉽게 지치지 않았다.

'아크 메이지 셋이 헐레벌떡 유리아를 향해 날아가는군. 멍청한 놈들 고작 3명이서 유리아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나.’

플로이를 비롯한 기사단이 전장의 내부를 휘젓고, 지원군이 외부에서 압박해온다.

‘승기가 이쪽으로 기울이고 있다. 승리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마도 병기를 처리해야 한다.'

서늘한 냉기가 느껴졌다.

나는 급히 옆으로 뛰었다.

저저저저정!

내가 있던 곳이 한순간 얼어붙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에 떠 있는 마법사를 바라본다.

아크 메이지 세가느.

그녀는 하얀 백발을 깔끔하게 정리한 노인이었다. 안경을 썼고, 얼굴에 있는 주름은 깊었으나 추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마법만큼이나 차가웠다.

세가느가 지팡이를 휘두른다. 거대한 얼음창이 내게 떨어진다.

뇌천류(流) 허도(道).

허공을 밟으며 하늘로 뛰어오른다. 무수히 많은 고드름이 날아와 앞길을 막으려 한다. 화련비도를 휘둘러 고드름을 박살냈다. 부서진 얼음 조각들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허공에 머물렀다.

“서리 감옥.”

얼음 조각은 나를 감싸는 구체가 되어 나를 감싼다. 냉기가 육체로 스며든다. 피와 뼈가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파지직.

뇌기가 흐른다. 육체로 침범하려는 냉기를 모조리 태워버린다. 육체에 활력이 돋은 나는 서리 감옥을 부수며 세가느에게 다가갔다. 하련비도의 칼끝이 그 목을 노린다.

“서리의 왕이시여."

허공에 얼음으로 이루어진 거인이 나타났다. 거인이 포효를 내지르며 내게 몸통 박치기를 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3]

찰나를 썼으나, 피할 수 없었다. 얼음 거인은 너무 컸다. 나는 얼음 거인과 함께 지상으로 추락해 땅에 박혔다.

얼음 거인은 추락한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내 몸을 뒤덮었다. 나는 신음을 흘리며 하늘에 유유히 떠 있는 세가느를 노려봤다.

인벤토리에서 소환한 팔찌가 손에 잡힌다.

"...유성검."

천공에서 생성된 거대한 검이 세가느를 향해 낙하했다. 세가느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세가느는 유성검과 함께 지상으로 떨어졌다.

몸을 뒤덮은 얼음덩어리를 치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류하는 피를 꾸역꾸역 참으며 유성검이 떨어진 곳을 바라본다.

세가느는 거대한 검에 꿰뚫려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아크 메이지 둘이 죽었으니… 남은 건 다섯인가.'

그중 셋은 유리아를 상대하러 갔다.

'거의 다 이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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