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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614화 (1,394/2,000)

< 1914화 > 1914.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마도 연합과의 전쟁이 끝나고 일주일.

나는 처음으로 집무실 책상에 앉았다. 책상 위는 서류와 편지로 양분되어 있었다. 먼저 서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서류의 촉감은 언제 만져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서류를 들어 대충 훑어본다.

이번 전쟁으로 인한 손해, 앞으로 얻을 수 있는 예상 이익 등등이 적혀 있었다. 서류 작성자를 확인한다. 유리아였다. 사업확장에 내 결재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유리아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결재 서류에 도장을 콱 찍는다. 그 외의 서류들도 대충 훑어본다. 멜리사와 네피아가 올린 서류가 많았다. 멜리사의 경우 전투 장비와 관련된 서류들이고, 네피아는 저택 관리에 필요한 것들에 대한 서류였다.

쾅쾅쾅!

대충 훑어보니 맞는 것 같아서 도장을 찍었다.

3분 만에 밀린 서류들을 해결했다.

'오랜만에 일하니 상쾌하군.'

일본인들은 도장 결재를 선호한다고 한다. 직접 도장을 찍어보니 알겠다. 이게 묘한 쾌감 같은 게 있었다.

‘서류는 처리했으니 이제 이 편지 더미들 차례군.’

100장은 족히 될 것 같은 편지들이 쌓여 있었다.

이것도 고르고 고른 편지들로 대부분 고위 귀족이나, 다른 국가의 왕족, 대륙에 영향을 끼치는 대상인, 마도 연합에 속해있는 마탑 등등 일정 이상의 영향력을 가진 자들의 편지다.

편지 중 하나를 까서 읽어 내려간다.

-대륙의 구원자이자, 위대하신 영웅인 프루커스 백작 각하께.

‘첫 문장은 마음에 드는군.’

근데 아부도 계속 들으면 지겨운 법이다. 미사여구가 너무 많았다.

‘대충 내용을 요약하면 마도 연합에 사촌이 있으니 살려달라는 뜻이군.’

책상 서랍을 열어 편지 종이와 만년필을 꺼냈다. 만년필을 휘갈기며 답신을 적는다.

“이 멍청한 새끼. 사촌 관리도 제대로 못 하나? 혹시 네놈이 마도 연합을 지원한 거냐? 사람을 보내 조사하겠다. 만약, 마도 연합을 지원했다는 증거가 나온다면… 네놈은 물론이고 사촌에서 팔촌까지 깡그리 다 죽여버리겠다.”

완벽한 답신이 완성됐다.

이걸로 이놈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일 것이다. 끝까지 개기던가. 아니면 금은보화를 가지고 달려오던가.

'진상품이 시원찮으면 쓸어버려야겠군.”

나머지 편지의 내용도 확인했다. 대부분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며 내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내용이다. 특히 내게 등을 돌리고 마도 연합에 붙은 놈들의 편지는 절박해서 웃겼다.

'이미 마도 연합에 붙은 새끼들이다. 봐주는 건 없어. 차근차근 죽여주마.’

그리고 유독 고급스러운 편지가 하나 있었다. 라펠리 왕가의 문장이 찍힌 편지.

'에이든 왕자의 편지군.'

에이든 왕자도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마도 연합은 아일린 공주를 명분으로 내세워 쳐들어왔다. 허나 마도 연합은 패배했다. 아일린 공주는 내 것이 되었고, 아일린 공주를 지지했던 자들은 내 자비가 내려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편지 내용은… 예상대로 날 찬양하는 말로 시작되는군.’

본론은 왕위 즉위식을 최대한 빨리 진행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아일린 공주에 대한 내용은 별거 없었다. 죽이든 살리든 알아서 하라는 내용이었다.

‘즉위식이라. 대충 알아서 하라고 해야겠군.'

'아니, 잠깐.'

즉위식에는 참석해야 한다. 그래야 에이든 왕자의 뒤에 내가 있음을. 그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다.

있었다. 라펠리 가의 즉위식에 내가 참석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귀족들이 본색을 드러내지 않을까? 에이든 왕자를 어떻게든 희유하러 할지도 모른다.

재밌을 것 같으니 해야지.

‘내 힘과 세력을 알고 있다면 그딴 미친 짓을 할 놈들은 없겠지만… 충성도 테스트는 재밌을 것 같군.’

그리고 그건 에이든 왕자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똑똑.

노크 소리가 울렸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유리아가 들어왔다.

“업무 중이셨습니까.”

“업무는 방금 끝났어. 어쩐 일이야?”

“캘리버드로부터 정보를 알아냈습니다.”

캘리버드. 마도 연합의 대표자.

“일주일이나 걸렸네? 그 늙은이가 그렇게 입이 무거울 줄이야.”

정말로 순수하게 감탄했다. 유리아의 심문을 일주일이나 버티는 놈들은 무척 드물었다. 길어도 사흘이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낸다. 자기 가족들까지 파는 놈들도 수두룩했다.

“심문보다는 치료에 신경 썼습니다. 마도 병기의 여파인지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더군요. 그리고… 캘리버드의 악마화가 진행되는 걸 확인했습니다."

“악마화라면… 그 늙은이가 악마로 변하고 있었다고?”

“마도 병기를 잠깐 연구해봤습니다. 확신할 수는 없으나, 그 성질은 마석문과 비슷했습니다."

"레오시오의 입김이 닿았을 테니 별로 놀랍지는 않아. 레오시오. 그놈은 악마와 손을 잡았잖아.”

악마회 판테움. 마석문. 마도연합. 레오시오.

그 모든 게 이어지고 있었다.

"레오시오가 마왕과 손을 잡은 건 확실하군.”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입 밖에 낸다. 솔직히 말해서 입 밖으로 내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했다.

‘원작에선 따로 당하더니… 쯧.’

레오시오의 궁극적인 목적은 불멸.

마왕은 레오시오를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놈이다.

원래부터 레오시오는 마왕을 소환해 거래할 계획이었다.

“레오시오와 캘리버드는 일방적인 관계입니다. 레오시오가 일방적으로 캘리버드에게 명령했습니다. 캘리버드는 레오시오의 명령을 따르는 대가로 마도 병기와 실전된 비전 마법을 얻었습니다.”

“캘리버드는 레오시오의 위치나 목적에 대한건 아예 모르는 거야?”

“네. 캘리버드는 일방적으로 이용당했을 뿐입니다. 본인도 그걸 알고 있더군요.”

“드래곤의 마법과 마도 병기가 어지간히도 탐이 났나 보군. 카일은?”

"레오시오의 용아병들이 카일을 데려갔다고 합니다. 어디로 데려갔는지는 캘리버드도 모르더군요.”

“놈들은 카일을 죽일 수 있었어. 근데 죽이지 않았지. 레오시오는 카일을 왜 데려갔을까?”

“카일의 육체가 목적이 아닐까요? 마왕은 미궁에서 육체를 만들고, 미궁의 힘을 손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건 아마도 현재 마왕은 육체가 아니거나, 육체가 정상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겠죠.”

“육체가 정상이 아니다라….”

“저희는 레오시오와 판테움의 계획을 방해했습니다. 판테움의 목적은 마왕을 이 세계로 불러오는 것이었고 실패했습니다. 허나, 마왕은 그들의 계획과는 별개로 이미 중간계에 존재했습니다. 마왕은 그 대가로 육신을 잃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

다.”

“마왕이 왜 그렇게 무리해서까지 중간계로 온 거지?"

“판테움을 뒤에서 이용한 건 마왕일 것입니다. 대악마들을 부추긴 것이죠. 마왕은 판테움이 실패할 것을 깨닫고 계획을 바꾼 것 같습니다. 마왕이 사용할 수 있는 수많은 권능. 그중에 한정적으로 미래를 알 수 있는 권능이 있더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예언의 권능이라던가. 예지의 권능이라던가… 하나쯤은 있을 것 같은 권능이군. 카일의 육체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건가? 그럴 필요가 있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 카일은 천재입니다.”

“…아.”

맞다.

원작에서도 유리아를 제외하고 그 재능을 따라갈 사람은 없다. 마왕이 충분히 탐낼만한 육체다. 워낙 병신같은 놈인지라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카일의 육체를 빼앗은 마왕을 상상해봤다.

'…질 것 같지는 않군.’

레오시오와 마왕. 놈들이 어디에 있을까.

후보지는 두 곳이다. 악원의 수해와 알카이론 산맥.

두 곳 모두 가기 싫은 곳이다.

“직접 움직이는 건 귀찮으니… 먼저 사람부터 보내볼까.”

“용병들을 모집하겠습니다. 막대한 보수를 약속하면 앞다투어 의뢰를 받을 것입니다.”

쿠우우우우우우웅!

커다란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의자에서 일어났다.

“또 습격인가? 마도 연합이 끝장났는데 이번엔 또 뭐야."

“충격은 저택 정원 쪽에서 일어났습니다. 결계가 파훼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코앞이니 확인하면 돼.”

집무실에선 정원이 보이지 않기에 문밖의 복도로 나갔다. 복도 쪽 창문으로 정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50m에 달하는 거대한 블루 드래곤이 정원에 쓰러져 있었다. 그 단단한 몸체에는 곳곳에 상처가 있었다. 상처 사이로 핏물이 줄줄 흘러 정원 바닥에 고인다. 드래곤의 등위에는 익숙한 붉은 양 갈래 머리의 여자가 있었다. 작은 체구와는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가슴을 달고 있다. 그 가슴은 폭유를 넘어선 무언가였다.

“프리실라랑 샤르넬이잖아. 프리실라는 어쩌다 이 꼴이 된 거야?"

"주인님. 일단 프리실라 님의 상처부터 치료해야겠습니다. 저대로 뒀다가는 정원이 피바다가 될 것입니다.”

정원을 관리하는 엘프 메이드 엘노아가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드래곤의 상처 때문이 아니라 정원이 망가진 것에 실의를 느낀 것 같다.

“프리실라가 죽으면 어쩌지?"

“드래곤은 저 정도로 죽지 않습니다. 심장은 멀쩡한 것 같으니 내버려 둬도 회복할 것입니다."

“뭐, 그럴 것 같긴 해.”

유리아가 포션을 가지러 사라졌다. 나는 창문을 열고 정원으로 뛰어내렸다.

"유진! 도와줘! 스승님이!"

샤르넬이 날 발견하고 발을 동동 구른다. 그녀는 여전히 프리실라의 등위에 있었다.

“일단 내려와라. 유리아가 포션을 가지러 갔으니 금방 회복할 수 있을 거다.”

최상급 포션을 들이부으면 드래곤이라도 회복할 것이다.

샤르넬은 마법을 사용해 내 옆으로 내려왔다. 프리실라는 호흡은 하고 있으나 눈을 감고 있었다. 의식은 없어 보인다.

"어떻게 된 거야?”

"레오시오가 마왕과 손을 잡았어! 스승님은 놈들의 협공에 당했어! 마왕이 갑자기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레오시오를 벌할 수 있었는데…!”

“어. 그래.”

“…뭐야. 반응이 왜 그래? 마왕이라고! 마왕이 나타나서 레오시오와 함께 스승님을 공격했다니까! 더 충격적인 게 뭔지알아? 마왕은….”

“카일의 육체를 가졌겠지.”

"어떻게 알았어?!"

샤르넬의 두 눈이 찢어질 듯이 커진다. 그녀가 호들갑을 떨든 말든 나는 생각에 잠겼다.

마왕과 레오시오. 유리아 혼자서 그 둘을 상대하긴 힘들 것이다. 적어도 레오시오는 내가 맡아줘야 한다.

‘프리실라가 맡는 게 이상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상처 입었으니 포션으로 회복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거야. 보니까 그냥 상처도 아닌 것 같고…. 회복까지 며칠 걸리지?'

거기에 레오시오와 마왕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을 리도 없다.

유리아가 메이드 무리와 함께 나왔다. 그녀들은 프리실라의 상처에 최상급 포션을 부었다. 기대만큼의 효과는 나오지 않았다.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군.’

엘릭서를 쓰기도 애매했다. 당장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치명적인 상처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일단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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