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7화 > 1617.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카아앙!
칼과 검이 교차한다.
힘 싸움에는 자신 있는 나지만, 언데드 엔티온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인간이었을 때보다 훨씬 강하다.
엔티온이 나를 떨쳐내듯 크게 검을 휘두른다. 힘의 차이로 인해 버틸 수 없었다.
‘스피드는 내가 조금 더 앞서지만… 힘과 체력이 딸리는군. 마나는 잘 모르겠다.’
힘은 직접 경험해봤으니 그 차이가 확실했다. 체력은 언데드이니 당연히 지치지 않을 것이다. 마나의 경우 엔티온은 오러 블레이드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부정한 마나의 느낌을 풀풀 풍기는 오러 블레이드는 어떤 흐트러짐도 없다.
절그럭절그럭.
사방에 흩어져 있던 용아병들이 나를 향해 달려든다.
‘이놈들도 마냥 무시할 수준은 아니란 게 문제지.'
오러가 맺힌 검을 들이밀며 자기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도 않고 덤벼든다. 스톰브레이커라도 있었다면 모를까. 지금 나는 맨몸이나 다를 바 없는 상태였다.
엔티온이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검을 휘두른다. 새까만 반월 형태의 오러 블레이드가 허공을 가르며 내게 날아온다. 처음부터 엔티온을 주시하고 있던 나는 옆으로 달리며 공격을 피했다.
엔티온의 오러 블레이드의 용아병이 휘말려 박살 났다. 엔티온은 아군이 죽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아들아. 꼭 쥐새끼 같구나. 언제까지 도망만 칠 것이냐? 프루커스 가문의 먹칠은 네가 다 하는군.”
“가문의 먹칠은 아버지가 하고 있잖습니까. 전대 가주가 언데드가 되어 드래곤의 앞잡이가 됐다? 이게 알려졌다간 내가 기껏 올려놓은 가문의 명예가 땅끝으로 추락하겠군.”
“너 또한 레오시오 님을 섬기게 될 것이다. 내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거절한다. 좆질도 못하는 언데드가 될 생각은 없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전면으로 대쉬한다. 날아오는 오러 블레이드는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낸다. 방어는 버렸다. 방어하면서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린다.
샤아아아아악!
귀를 스치고 오러 블레이드가 지나갔다. 공포 영화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스릴감에 식은땀이 흐른다.
‘하지만 성공했다. 거리를 좁혔어.’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붉은 전류의 광채가 번뜩인다.
노리는 것은 엔티온의 심장.
엔티온의 검이 반원을 그린다. 내가 휘두르는 검보다 느리게 움직인 그것은 급소를 노리는 칼날을 막아냈다.
‘…한발 느리게 움직였으나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검의 리치와 두께를 이용했군.'
아직 내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왼손을 앞으로 내민다. 전류가 회전하며 모이고, 그 앞의 전류는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다.
뇌천류(雷天流) 이중공명(二重共鳴) 만뢰나선(卍雷螺旋).
만뢰가 레이저처럼 쏘아져 엔티온의 복부를 꿰뚫었다. 구멍이 뻥 뚫린 엔티온은 고통에 신음하지 않고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으니 공격에 성공해도 경직되지 않는다. 언데드의 장점이다.
그리고 동시에 단점이기도 했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위기감이 무뎌진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3]
찰나로 엔티온의 공격을 피하고 역습을 가한다. 엔티온의 선택은 두 가지였다. 뒤로 물러나며 방어하던가, 함께 죽겠다는 마음 가지로 공격하던가.
나라면 후자를 선택한다. 그야 죽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실제로 완전 회복을 믿고 시전한 동귀어진의 수로 상당히 재미를 봤던 나다.
‘예측대로군.’
엔티온이 자신의 몸을 도외시하고 공격을 선택했다.
알고 있었으니 전혀 당혹스럽지 않았다. 나는 일보를 앞으로 내디디며 아슬아슬하게 엔티온의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칼로 엔티온의 목을 베었다.
엔티온의 몸은 굳어지고, 그 머리는 바닥에 떨어졌다.
“아비의 목을 베다니… 너 같은 패륜아는 이 하늘 아래에 둘도 없을 거다.”
“언데드라 머리를 잘라도 안 죽나?”
머리를 발로 밟고, 칼로 놈의 몸을 양단했다.
승리를 확신하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근처에 있던 용아병 1마리가 갑자기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섬찟한 살기가 목덜미를 타고 흐른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내 등을 노리는 검을 피했다.
"감이 좋구나."
작살냈던 엔티온이 서 있었다.
“…무슨 개수작을 부린 거냐?”
“모든 건 레오시오 님을 위해."
시커먼 오러 블레이드가 쇄도한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2]
간신히 엔티온의 공격을 피하고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보통 방법으로는 죽지 않는다면… 이건 어떠냐.'
뇌천류(雷天流) 극기(極技) 봉뢰(封雷)
칼날이 엔티온의 명치를 꿰뚫었다. 파지직. 칼날을 타고 봉뢰가 흘렀다. 봉뢰는 엔티온의 마나를 봉인했다. 효과는 있었다. 당장 엔티온의 오러 블레이드가 봉뢰의 영향을 받아 흩어졌다.
‘이 상태에서 죽는다면 네놈이라도 별수 없겠지.'
화련비도를 휘둘러 엔티온의 몸을 토막 낸다. 쓰러진 놈의 머리를 발로 밟아 터트렸다. 그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확실하게 죽였다. 이젠 못 일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근처에 있는 용아병이 먼지로 변하더니 엔티온의 토막 난 육체가 모여들어 원래의 형상을 취한다. 마치 시간이 되감기는 것 같았다.
엔티온이 완전해지기 전에 달려들었다. 그의 몸통에 칼날을 쑤셔 박는다.
"소용없다."
엔티온이 검을 휘두른다. 흠칫 놀라 빠르게 뒤로 물러났으나, 검이 왼쪽 팔뚝을 스쳤다.
눈살을 찌푸렸다. 고통을 버틸 만했다. 거슬리는 건 상처 부위에서 무언가가 내 안으로 침투하려 하는 점이다.
파지지직.
뇌기가 침투하는 무언가를 태웠다.
'저주인가?'
다행히 빠르게 대처한 덕분에 별다른 피해는 없다.
“네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말투는 엔티온의 그것처럼 무뚝뚝하다. 허나 그 태도와 눈빛은 전혀 달랐다. 쉬지 않고 몰아치는 검격은 기계와 같았고, 그 눈빛은 살의와 증오로 번들거린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1]
찰나를 사용해 반격했다. 이번에도 머리를 잘랐다. 덤으로 상반신과 하반신을 나눠주었다.
또 용아병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며 엔티온이 원래의 몸으로 돌아와 공격을 퍼붓는다.
이 반복을 보고도 뭐가 문제인지 모를 수 없었다.
“용아병에 무슨 짓을 해놨군.”
“모두 위대하신 레오시오 님의 안배다!”
용아병들은 내게 달려드는 것을 멈추고 빙 둘러서서 지켜보고 있다.
이렇게 상대했다간 끝이 없었다.
나는 엔티온과 거리를 벌리며 하늘을 향해 외쳤다.
“샤르넬! 마법을 사용해서 용아병을 단번에 쓸어버려라!”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머리 위로 모여드는 대규모의 마나가 느껴진다.
“흠. 네가 혼자가 아니란 걸 잠깐 잊고 있었군.”
엔티온이 하늘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검은색 오러 블레이드가 프리실라의 거체를 노린다. 프리실라는 날개를 움직여 고도를 높여 오러 블레이드를 피했다.
“네 상대는 나다!”
엔티온에게 달려들었다. 엔티온의 검이 내게 향한다. 그가 휘두르는 검을 보며 피했다. 단순히 내 눈이 좋아서 피하는 게 아니다. 엔티온의 검술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프루커스다. 프루커스의 검술은 당연히 알고 있다.’
단지 내게 맞지 않아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
‘프루커스의 검술은 방어에 집중한 검술이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건 공방 일체.’
허나 아무리 오러 마스터라도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하는 건 타이밍이 맞춰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우습게도 엔티온은 방어를 포기했다. 죽지 않는 언데드가 됐으니 당연히 방어가 필요 없지.'
라펠리 왕국의 수호검이라 불렸던 엔티온은 이제 수호할 대상이 없었다. 오로지 공격뿐이다.
'덕분에 반격 타이밍을 잡는 건 어렵지 않다. 문제가 되는 건… 죽여도 죽여도 끝이 나지 않는다는 거지.'
나는 히트 앤 런에 집중했다. 허나 아무리 집중하더라도 상대는 나와 같은 오러 마스터. 그것도 날 죽이기 위해 방어도 도외시한 오러 마스터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몸에는 상처가 점점 늘어났다.
‘샤르넬. 얘는 또 뭐하는 거야? 용아병들을 쓸어버리라니까.'
평생 마나만 모으고 있을 생각인가.
나는 왼팔을 타고 줄줄 흐르는 피를 바닥에 털어냈다. 입을 벌려 샤르넬을 재촉하려고 했으나, 엔티온이 가만히 있지 않
았다.
콰아아앙! 쾅! 콰카캉!
탄탄한 기본기를 이용해 힘으로 밀어 부쳐온다. 나는 엔티온의 검을 막아내며 점점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뇌전!'
칼날을 타고 흐른 붉은 뇌전이 엔티온의 몸으로 들어갔다. 무의미했다. 언데드인 놈은 감전되어도 멈추지 않는다.
‘시발. 그냥 프리실라랑 유리아에게 도와달라고 할까?'
위에서부터 열기가 느껴졌다.
엔티온 또한 이변을 느꼈는지 움직임을 멈췄다.
하늘에서 붉은 선이 떨어졌다. 레이저처럼 떨어진 그것은 지상에 닿자마자 불길을 일으켰다. 새빨간 불길이 용아병의 몸을 불태운다. 떨어지는 붉은 선은 하나가 아니었다. 용아병을 향해 다발로 떨어지고 있었다.
불길이 치솟는다. 그 열기에 나도 영향을 받았다. 이마를 타고 땀이 주르륵 흐른다.
힘들다. 힘들긴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있었다. 샤르넬의 마법에 의해 용아병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용아병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몸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지랄 발광한다. 땅바닥에 몸을 구르거나, 땅을 파고 그 안으로 파고들어 가려고 한다.
허나 샤르넬의 불꽃은 보통의 불꽃이 아니었다. 용아병이 땅속에 파고 들어가도 전혀 꺼지지 않는다.
“엔티온. 나는 혼자가 아니다.”
“그래. 좋은 동료들이로군. 그리고 그 구심점에 네가 있을 테지. 아들아, 레오시오 님을 위해 죽거라!”
불길 사이로 엔티온이 내게 달려든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0]
나는 엔티온의 틈을 찔렸다. 엔티온의 목을 찌르고 아래로 내리긋는다. 엔티온의 몸이 떨렸다. 억지로 검을 들어 나를 내리치려고 했으나, 곧 그의 두 눈에서 증오와 살의가 사그라들었다.
“넌 처음부터 용아병을 이용해 날 덮쳤어야 했다.”
“방해만 없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방해?"
“...아들아. 고맙다."
엔티온이 쓰러진다.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당황했다. 내가 다시 엔티온을 쳐다봤을 때, 엔티온의 몸은 이미 먼지로 변해 사라지고 있었다. 고통받던 엔티온의 영혼도 어딘가로 사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