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0화 > 1620.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마수와 악마를 불러오면 우리를 쉽게 처리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마수와 악마를 부리지 않는 거지? 마석문을 넘으려는 악마는 왜 죽인 거고?'
환경적인 문제라면 이미 해결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여기에 가득 고여 있는 게 바로 악마들이 환장하는 부정한 마나니까.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고집하려는 이유가 있나?'
만약 쉬워 보이는 길이 쉬운 길이 아니라면?
나는 권능 폭풍의 여파를 견디면서 기억을 되짚었다.
원작 마지막. 그랜드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카일은 마왕과 싸운다. 마왕은 여유로웠다. 그리고 감성적이었다. 마지막 결전에서 마왕이 매화검법에 매료되는 듯한 서술이 있었다.
'원작의 마지막 결전이 중요한 게 아니야. 마지막 결전을 위해 카일은… 마석문을 통해 마왕성으로 바로 이동했다. 거기서 카일은 악마나 마수와 마주치지 않았어. 마왕성에서 마왕을 제외한 악마와 싸우지 않았어.'
마왕의 권능은 악마의 권능을 최대 동시 3개까지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이다.
'마왕의 권능에 내가 모르는 조건이 있을지도 모른다. 가령… 마계에 있는 악마의 권능만 사용할 수 있다거나. 혹은 이름을 알고 있는 악마의 권능만 사용할 수 있거나.'
마왕을 죽이는 방법을 떠올렸다.
마왕이 강력한 이유는 권능에 있다. 악마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권능. 그 빌어먹게 사기적인 권능만 어떻게 할 수 있다면.… 마왕을 상대하기 쉬워질 것이다.
나는 결심했다.
뇌천류(流) 허도(道).
허공을 밟으며 마석문을 향해 뛰어간다.
“잘 들어라! 내가 마계로 쳐들어가서 악마를 모조리 죽여버리겠다! 악마가 죽으면 마왕 또한 권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겠지!"
"무모한 짓이다!”
프리실라가 소리쳤다.
“마계의 악마들을 무시하지 마라! 악마들은 마계에서 제힘을 발휘할 수 있다! 대악마들의 경우엔 어지간한 악마들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멈춰라, 유진 프루커스!”
방금 권능의 폭풍을 보고 확신했다. 마왕을 죽이려면 그 권능을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시간이 부족한 만큼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프리실라 님! 최대한 버티십시오!"
나는 마석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몸이 찌그러뜨리는 압박감을 느꼈다.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네 의도는 알겠다. 우습구나. 인간 주제에 마계를 악마를 너무 얕보고 있군. 구태여 널 방해하지 않겠다.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할 수 있다면 말이다.
나를 비웃는 마왕의 목소리가 울렸다.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당연히 할 수 있다. 마왕을 상대하기 위한 비장의 수단. 나는 그걸 마계에서 사용할 생각이다.
몸이 끌어당겨진다.
파앗.
마계에 도착한 나는 발을 구르며 최대한 균형을 잡았다.
'여기가 마계인가. 부정한 마나가 넘쳐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군. 부정한 마나는커녕 마나 자체가 희박하다.'
마석문이 부정한 마나를 쏟아내는 건 다른 종류의 방식인 것 같았다.
‘하긴 부정한 마나가 마계에서 흔했다면 악마들이 그렇게 부정한 마나에 환장할 리 없지.'
마계는 삭막했다. 땅은 생기를 잃어 쩍쩍 갈라져 있으며, 창백한 회색 하늘에는 달이 4개 떠 있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식물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주위는 조용하다.
‘악마들이 왜 중간계를 탐내는지 알 것 같군. 여긴 아무것도 없어서 심심하다.'
감상은 여기까지다. 나는 마계를 구경하려 여기에 온 게 아니다. 마계에 있는 악마들을 죽이기 위해 온 것이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유희 생활 어플을 켰다.
[현신]. 내가 마왕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비장의 한 수다.
[현신
원하는 엔딩 세계의 자신을 불러와 재현합니다.
현신의 지속 시간과 능력 재현은 능력치 총합에 따라 달라집니다.
가격: 10,000 포인트
※주의
적용된 페널티까지 모두 재현합니다.]
'10,000 포인트. 마왕을 상대하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맞출 수 있었지.'
이번에 백환 세계에서 얻은 포인트 대부분을 사용했다.
[현신을 사용합니다.]
[불러올 엔딩 세계의 자신을 선택하십시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팔라딘] 세계의 나였다. 상대가 마왕, 악마이니 팔라딘의 힘이 가장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팔라딘을 선택하면 집행검도 쓸 수 있다. 하지만… 팔라딘하면 갑옷인데 스톰브레이커가 수복 중인 상태잖아.'
갑옷 없이 검만 들고 싸우는 팔라딘. 멋이 안 난다.
‘…상성을 생각하지 않고 순수한 힘만 따진다면… 게이킹 세계도 나쁘지 않지.'
우주가 된 섹스킹 성유진.
섹스킹 성유진은 스케일이 너무 커서 선택하기 꺼려진다. 우주가 되어 섹스를 한다니. 아무리 그래도 좀 정신 나간 엔딩이 아닌가.
'헌신을 해서 엔딩 세계의 나를 재현한다고 하더라도 제한은 있다. 내가 가진 능력치 총합에 따라 재현되는 능력이 달라지니까.'
팔라딘 이상으로 힘을 내는 엔딩이 있었다. [그대를 위한 폭군] 세계의 나다. 그 세계의 나는 그냥 강했다. 가진 재능도 압도적이었다. 물론 유리아에 비하면 제법 모자란 재능이지만.
잠깐 고민하던 나는 답을 내렸다.
‘음. 팔라딘은 저번에 썼잖아. 이번엔 폭군으로 가자.'
[그대를 위한 폭군 세계의 자신을 불러옵니다.]
[현신은 90분 동안 유지됩니다.]
[폭군 퀄리티가 적용됩니다.]
[폭권 퀄리티는 특성, 절대 정신의 영향에서 제외됩니다.]
[폭군 퀄리티의 영향으로 성격이 다소 난폭해집니다.]
[폭군 퀄리티의 영향으로 신체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폭군 퀄리티의 영향으로 재능 보정을 받습니다.]
나는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을 훑어본다. 입고 있는 옷이 못마땅했다. 싸구려처럼 느껴졌다. 인벤토리에서 제복을 꺼내 갈아입었다. 어깨에는 붉은 망토를 걸쳤다. [그대를 위한 폭군] 세계의 폭군이 된 영향일까. 원래라면 불편했을 옷이 아주 편하게 느껴졌다.
하늘을 쳐다봤다. 내 의지에 따라 몸이 허공에 떠오른다. 하늘에 선 나는 발아래를 내려다보며 마계의 크기를 가늠했다.
북쪽에 성이 있다. 그 크기와 웅장함을 보니 마왕성이 확실했다. 남쪽에는 검은색 물이 흐른다. 서쪽에는 평지가 이어져있다. 동쪽에는 검은색 산이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마계가 좁군. 이 정도면 대한민국보다 작다고 봐야겠지. 그 절반 정도 되는가?’
마계는 작긴 했으나, 1시간 내로 쓸어버릴 수 있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자세히 보면 악마들도 흩어져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나는 폭군 세계의 나에 비하면 약해졌다. 혼자서 이 마계를 쓸어버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때였다.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위로 올렸다. 창백한 회색 하늘 위. 달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은 거대한 눈이었다.
- 이계의 존재가 찾아왔구나. 악마보다 사악하고, 마왕보다 독선적인 자여. 그대는 무엇이냐?
“건방진 놈. 감히 짐을 내려다보느냐. 그 죄는 죽어 마땅하니, 죽어라.”
인벤토리에서 유성검천을 소환해 오른 손목에 착용했다. 오른손을 까딱인다. 거대한 유성검이 생성되었다. 염력을 이용해 유성검을 조종한다. 번개를 품은 유성검이 거대한 눈동자를 향해 솟구친다.
유성검을 거대한 눈동자를 꿰뚫을 기세로 날아가다가 도중에 멈췄다.
염력이다. 거대한 눈동자가 염력을 사용해 유성검을 붙잡은 것이다.
"쯧.”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거대한 눈동자도, 생각보다 더 약한 내 힘도.
파지지지직.
손아귀에 뇌전을 일으킨다. 뇌전은 길쭉해지며 창의 형태로 바뀌었다. 나는 뇌전을 압축한 번개를 내던지기 전에 놈에게 물었다.
“입을 털 수 있을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구나. 네놈의 권능은 무엇이냐?”
-흐음. 알겠다. 너는 마왕의 대적자로구나. 나는 색적의 권능을 가지고 있노라. 숨어 있는 적을 찾아낼 수 있는 힘이다.
“마왕이 그림자 속에 숨은 유리아를 찾아냈을 때 사용한 그 권능인가. 운이 좋군. 그 권능이 없어지면 마왕은 유리아를 찾아내지 못하겠지. 전투에서 우리 쪽이 유리해진다. 네놈이 죽을 이유가 더 늘었군.”
번개의 창을 던진다.
번개의 창 또한 놈의 염력에 붙잡혔다. 나 또한 염력을 사용했다. 놈의 염력에 저항하고 번개의 창을 터트린다. 시퍼런 전류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거대한 눈동자를 노린다. 놈은 염력으로 방어막을 만들었다. 전류가 놈의 방어막을 타고 흘렸다.
방어막의 형태가 보였다.
“사이즈가 보이는군. 5개면 되겠어."
손을 까딱이자 유성검 4개가 추가로 생성되어 거대한 눈동자를 노렸다. 4개의 검이 허공에 멈췄다. 기존에 있던 유성검까지 합해 도합 5개의 검이 놈의 염력에 멈춘 것이다.
-무의미하다.
거대한 눈동자의 중심에 마력이 모인다. 레이저 같은 걸 쏘아내 공격하려는 모양이다.
"아직 안 끝났다."
뇌천류(雷天流) 뇌명(雷鳴).
두 개 이상의 뇌전을 서로 공명시키는 기술.
나는 5개의 유성검에 포함된 뇌전을 공명시켰다. 5개의 유성검 사이로 전류가 흐른다.
덜덜덜.
염력에 붙잡힌 유성검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거대한 눈동자를 향해 나아간다.
깜짝 놀란 거대한 눈동자가 에너지 공격을 포기하고 유성검 5개를 막아내기 위해 염력을 사용했다.
“말했을 텐데. 사이즈는 파악됐다고. 넌 5개 이상을 막지 못한다.”
5개의 유성검이 공명하며 거대한 눈동자를 향해 전진했다. 검끝이 눈동자에 닿았다.
-우오오오오오오오! 이럴 수는 없다…!!
거대한 눈동자가 발악하며 염력을 사용한다. 마력을 때려 부어도 의미 없다. 정신력의 영향을 받는 염력은 그 한계가 명확하니까.
푹!
5개의 검이 거대한 눈동자를 동시에 꿰뚫었다. 검붉은 피가 대량으로 쏟아진다. 나는 염력으로 몸을 보호했다. 피가 내 몸에 닿는 일은 없었다.
“이걸로 마왕은 유리아를 쉽게 찾아낼 수 없게 됐다. 다음은… 음?”
무언가가 내 몸을 지상으로 끌어당긴다. 처음에는 염력인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그것보다 훨씬 더 자연에 가까웠다.
‘중력이군.'
아래쪽을 쳐다본다.
땅속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벌레가 입을 쩌억 벌리며 떨어지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
'버러지 따위가….'
꿀꺽.
벌레가 나를 삼켰다. 나는 어두운 공간에서 눈을 찌푸렸다. 염력으로 몸을 감싸고 있으나, 삼켜졌다는 사실 자체가 불쾌했다.
허리에서 화련비도를 꺼내 휘두르며 뇌전도 사용했다.
뇌천류(雷天流) 만뢰(卍雷).
나를 중심으로 번개가 회전하며 벌레의 내부를 지진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벌레는 비명을 내질렀다. 내부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벌레가 발광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뇌천류(雷天流) 뇌강인(刀).
벌레의 몸통을 가르고 밖으로 나왔다. 불쾌감이 조금 사라졌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벌레의 머리를 잘라 끝장을 냈다.
'마왕은 이젠 중력의 권능도 못 쓰겠군.’
그리 생각하니 불쾌했던 기분도 조금 나아졌다.
나는 벌레의 시체에서 멀어지며 생각했다.
‘음. 다시 생각해봐도 혼자서 1시간 내로 마계 전체를 초토화 시키는 건 힘들 것 같다. 그러니… 내 여자의 도움을 받아야겠군’
[캐릭터를 소환합니다. 대상: 엘레나 발데르트]
[유리아 그레이스의 남은 소환 유지 시간: 30일]
[‘신의 아틀란티스' 유희 세계가 비활성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