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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624화 (1,404/2,000)

< 1624화 > 1624.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새하얀 신전의 문이 열렸다.

전신이 떨릴 정도의 강력한 냉기가 문밖으로 빠져나왔다. 슬쩍 바닥을 내려보니 얼어붙어 있었다. 신전 안쪽은 빙하지대 그 자체였다. 숨을 내뱉으면 바로 얼어붙어 아래로 떨어진다.

반사적으로 엘레나를 확인했다. 그녀는 몸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녀는 엄청난 환술에 비해 신체 능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이 정도 수준의 냉기는 그녀에게 위험할 수 있었다.

나는 망토를 벗어 엘레나에게 씌워주었다. 엘레나가 입가에 미소를 그린다.

“고맙다. 매너가 아예 없진 않군.”

“부족하면 다른 옷도 줄 수 있다.”

“이 망토로 충분하다. 평범한 망토는 아닌 것 같은데?”

“다른 망토보다 튼튼하긴 하지.”

신전 내부는 생각했던 것보다 크지 않았다. 내부에는 알 수 없는 언어가 적힌 벽과 기둥이 가득했다. 내용은 몰라도 경건한 느낌은 들었다. 그리고 무릎 아래로 냉기가 계속해서 흐른다.

“이봐. 벽과 기둥에 적힌 글자는 무슨 뜻이지? 뭐라고 적혀 있는 거냐?”

가르가르는 고개만 돌려 기둥과 벽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인다.

“나도 잘 모르겠네. 악마들이 쓰는 문자가 있긴 하나, 이것과는 달라. 이 문자는 아무래도 마왕이 직접 창제한 문자인 것 같군. 아예 언어 자체를 창제한 것일지도 모르지.”

"언어를 만들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신이 되려고 하는 악마의 머릿속을 내가 어떻게 알겠나. 그러고 보니 마왕은 예술적인 것에 관심이 많더군. 아, 저기 보게. 마왕이 직접 그린 그림일세."

가르가르가 가리킨 건 신전 구석에 걸려 있는 그림이었다. 검은색 산과 잿빛 하늘이 그려진 풍경화였다. 예술에는 별 관심 없지만, 잘 그렸다는 건 알겠다.

“마왕은 특이했지. 보통 악마들은 예술 같은 건 안 즐기거든.”

“그럼 악마는 뭘 즐기는 거지?”

“악마마다 다르지. 그로마. 그 폭발의 악마는 폭발을 일으키는 것을 즐긴다네. 예전에 봤을 때 마수를 터트리며 놀더군.”

“너는 뭘 즐기는 거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즐긴다네. 음. 도착했네.”

멈춰 선 가르가르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공간이 갈라지고 새로운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중심에 얼음으로 이루어진 육신을 가진 존재가 있었다. 악마일 것이다. 악마의 외형은 특이한 쪽이 많으니까. 그 존재의 양옆에는 얼음 속에 갇힌 악마들이 존재했다. 얼음 악마까지 합쳐서 총 9마리의 악마다.

얼음의 악마가 입을 열었다.

“가르가르, 당신은 지금 동족을 배신하고 있습니다.”

“카이사. 언제부터 악마가 동족 의식이 뛰어났다고 배신 운운하는가.”

“그래서 인간의 편에 서겠다는 겁니까? 동족을 인간에게 바치며 자기 혼자만 살겠다는 겁니까? 가르가르. 저 인간은 당신을 살려둘 생각이 없습니다. 이미 당신을 죽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악의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미 들킨 것 같으니 대놓고 살의를 품었다. 손은 화련비도의 칼자루를 쥐고 발도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다.

“이 인간을 보게.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인간이지 않은가. 이 인간의 손에 죽는다면… 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네. 날 죽인 이 인간이 마왕까지 죽일 테니까.”

“복수심에 잡아 먹혀 머리가 이상해지셨군요.”

“수천 년 동안 갇혀 있었네. 아무것도 안 하는 걸 즐기는 악마라고 해도… 수천 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아 보게. 미쳐도 이상하지 않지."

“마지막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가르가르 님이 진심으로 사과하신다면 마왕님께서도 가르가르 님을 용서하실 겁니다.”

“카이사. 나는 이미 수천 년 전에 결정했네.”

“안타깝군요."

카이사를 중심으로 냉기가 몰아친다. 가르가르가 급히 움직였다. 단절의 권능을 이용해 냉기를 정면으로 막아냈다.

“자네! 냉기는 내가 막겠네! 빨리 카이사를 처리하게! 카이사는 지금 냉동된 악마들을 풀려고 하네! 저 악마들이 모두 일어나면 아무리 자네라도 이길 수 없네! 어서 움직이게!”

나는 칼을 뽑아 들어 가르가르의 등을 찔렀다.

“나한테 명령하지 마라.”

"커억! 머, 멍청한 짓을 하지 말게! 나는 지금 자네를 돕고 있네!”

“네게 도움을 요청한 적은 없다. 네 역할은 안내가 끝이다. 수고했다.”

놈이 권능을 사용해 반격하기 전에 칼을 위로 휘둘렀다. 화련비도가 가르가르의 머리를 쪼갰다. 뇌수가 바닥에 떨어지다가 냉기와 부딪쳐 꽁꽁 얼었다.

“가르가르…. 멍청한 최후였군요.”

“카이사라고 했나? 다음은 네 차례다.”

“당신들은 늦었습니다. 당신들 둘이서 저희 모두를 상대하지 못합니다.”

카이사가 양손을 펼쳤다. 쩌적! 악마를 가두고 있는 얼음들에 금이 간다.

"자, 일어나십시오! 마왕님의 적이 앞에 있습니다! 죽이십시오!"

얼음이 깨지고 악마들이 눈을 뜬다.

그리고 악마들은 다시 얼음 속에 갇혔다.

"무슨…?"

카이사가 당황한다. 나는 가장 가까운 악마를 향해 걸어가 화련비도를 휘둘렀다. 얼음과 함께 악마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일어나십시오! 마왕님의 적이 앞에 있습니다! 어서!"

쩌저저적!

다시 얼음이 깨져나간다.

악마들은 여전히 얼음 속에 갇혀 있다.

있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한 카이사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친다.

뇌천류(雷天流) 뇌강인(雷罡刃).

빛이 번쩍인다. 두 마리의 악마가 추가로 반으로 갈라졌다.

“뭐, 뭐가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일어나십시오! 어서!"

카이사가 소리쳤다. 냉기의 폭풍이 사방을 휩쓸었다.

얼음이 깨지고 악마들이 움직이는가 싶었으나, 악마들은 어느새 다시 얼음 속에 갇혀 있었다.

시간을 되돌린다. 라는 느낌이 아니었다. 시간을 잘라 과정을 빼고 결과만 집어넣은 듯한 괴리감.

나는 그 틈을 타서 3마리의 악마를 죽였다. 이제 남은 건 카이사와 좌우에 있는 악마 2마리.

"콜록."

엘레나가 기침했다. 그녀의 입에서 피가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피는 바닥에 닿기도 전에 얼었다.

“음. 슬슬 한계군.”

엘레나는 아무렇지 않게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며 말했다. 안색은 다 죽어가는 인간답게 창백했으나, 죽음에 대한 공포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신! 당신이었군요…!"

"알아차렸나? 생각보다 눈치가 없군.”

팔랑팔랑.

공간 곳곳에서 파란색 나비가 우아하게 날아다녔다. 나비는 냉기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어떤 재주를 부렸는지 몰라도 당신만 없다면!"

엘레나에게 냉기가 집중되었다. 냉기는 순식간에 엘레나의 다리를 얼리기 시작했다. 엘레나는 얼음 속에 갇히는 걸 보면서도 당황하지 않았다.

“산 채로 얼려지는 건 이런 기분인가. 너무 차가워서 머리가 띵하군.”

나는 화련비도를 휘둘렀다. 엘레나가 남겨준 기회를 아무렇게나 버릴 수 없다.

까아아앙!

얼음이 깨지고 악마가 죽는다. 남은 악마는 둘.

“됐습니다! 이제 당신 혼자만 남았습니다. 저 여자가 없는 이상 당신 따위는….”

얼음의 악마가 입을 다물었다. 경악 서린 얼굴로 내 뒤를 쳐다본다.

또각.

엘레나가 내 옆으로 걸어왔다. 완전 회복을 사용한 그녀에게서 병악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창백했던 얼굴에는 생기가 넘친다.

"유진. 저 얼음은 내가 처리하지."

“그래라.”

나는 카이사를 무시하고 얼음에 갇힌 악마에게 다가갔다. 오러 블레이드가 맺힌 검으로 얼음에 찔러 넣는다. 얼음이 제법 단단했기에 단번에 들어가지 않았다. 조금씩 얼음 속으로 파고들어 악마의 심장을 꿰뚫는다.

"아아아아아악!"

카이사의 비명이 신전 내부를 울린다. 카이사는 바닥에 주저앉아 양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발악하고 있었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던 냉기가 사라졌다. 얼음의 악마의 몸이 점점 녹기 시작했다. 바닥은 이미 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얼음의 악마가 발악한다. 애꿎은 허공을 향해 냉기를 뿜어댄다.

나는 엘레나의 옆으로 다가갔다.

“무슨 짓을 한 거지?"

"정신 저항이 떨어졌을 때 정신을 살짝 주물렀다. 단단한 얼음과 달리 정신은 유리처럼 연약하더군. 대충 보니 그 마왕이란 놈이 정신을 약하게 만든 것 같다. 가스라이팅이라고 하던가? 이용하기 쉽도록 정신을 건든 거지.”

발악하며 버둥거리던 얼음의 악마는 완전히 녹아내려 물웅덩이가 됐다.

“악마를 모두 죽였군. 이제 끝났나?”

엘레나가 기지개를 켜며 물었다. 나는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에도 알 수 없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콰콰콰콰쾅!

하늘에서 유성검이 떨어져 신전을 무너뜨린다.

“이제 마왕을 죽여야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마석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석문을 이용해 엘레나와 함께 엉망이 된 마계를 탈출했다.

마왕과 유리아들이 전투를 벌이는 공간에 들어왔다. 나오자마자 상황을 파악한 나는 미간을 좁혔다. 마왕을 이기지 못하더라도 유리아들이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대량의 권능을 잃은 마왕은 큰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보이는 전투 상황 자체가 달라져 있었다.

마왕의 육체인 카일은 오른팔을 잃은 상태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허공에는 검은색 드래곤이 미친 듯이 날뛰며 유리아들과 싸우고 있었다.

‘저 검은 드래곤… 설마 레오시오인가?'

레드 드래곤 레오시오가 없었다. 검은 드레곤은 레오시오와 비슷한 크기에 비슷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검은 드래곤은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 부정한 마나가 가득한 상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야!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도와줘!”

샤르넬이 내게 외쳤다.

마침 검은 드래곤이 숨을 들이마신다. 유리아가 그림자 사슬로 막으려고 하나, 검은 드래곤을 하늘을 날며 공격을 피했다.

플로이는 바닥에 쓰러져 기절해 있었다. 그녀의 갑옷은 절반 이상이 부서져 있었다.

“프리실라 님! 배리어를 부탁드립니다!”

“늦었다! 완벽하게 방어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쪽으로 오거라! 최대한 방어 면적을 줄여서 방어에 집중해야 한다!"

유리아가 정면에서 싸우고, 그 뒤를 프리실라가 보호하고 있다. 전투에 집중하는 그녀들은 내가 온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샤르넬을 본다. 이제 보니 귀와 코, 입에서 핏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엘레나. 유리아를 도와줘라.”

“도와주는 건 어렵지 않지."

검은 드래곤이 검은 브레스를 쏟아낸다. 엘레나가 힘을 사용했고, 아래로 떨어지던 브레스는 방향이 뒤바뀌어 위로 솟구쳤다. 브레스를 맞은 검은 드래곤은 아무렇지 않게 허공을 날았다.

-젠장. 왜 갑자기 브레스가 반대로 올라온 거냐?!

-레오시오! 놈이다! 놈이 마계에서 돌아왔다!

"유성검."

상공에 벼락을 품은 거대한 검 한 자루가 생성되었다. 염력으로 유성검을 조종한다. 검은 드래곤이 빠른 속도로 도망간다.

소용없다. 유성검은 끝까지 쫓아가 그 등에 검날을 박아넣었다.

-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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