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5화 > 1625.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끄아아아아악!
검은 드래곤의 비명이 공간을 울린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세히 들어보면 두 명의 비명이 겹쳐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충 어떻게 된 건지 감이 잡히는군.’
검은 드래곤이 마법을 사용했다. 거대한 손이 만들어져 유성검을 잡아 빼내 나를 향해 집어 던졌다.
나를 향해 정확히 날아오던 유성검을 염력으로 멈춘다. 유성검과 나의 거리는 불과 50cm. 조금만 늦었어도 유성검에 머리가 꿰뚫릴 뻔했다. 나는 검지로 유성검을 툭 하고 쳤다. 유성검이 부서져 사라진다.
“샤르넬. 어떻게 된 거냐?”
바닥에 주저앉은 샤르넬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녀는 손수건으로 입과 코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검은 드래곤을 노려봤다. 검은 드래곤은 최대한 위로 날아가 상처 회복에 집중하고 있다.
“다 이겼었어. 네가 애써준 덕분에 마왕은 점점 권능을 사용하지 못했었거든. 우리는 마왕을 몰아붙였고, 마왕은 방어하기에 급급했어. 그런데 5분 전에 레오시오가 깨어났어. 마왕이 억지로 깨운 거야."
“저 검은 드래곤이 레오시오인가 보군. 설마 레오시오의 진화는 끝났나?”
표정을 굳혔다.
레오시오의 진화를 막기 위해 마왕과 싸우고 마계로 가서 지랄한 거 아닌가.
진화한 레오시오가 얼마나 강한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건 아니야. 레오시오는 억지로 깨어난 느낌이었어. 마왕은 카일의 몸을 버리고 레오시오에게 빙의했어.”
“권능이 사라지고 질 것 같으니 레오시오의 몸에 빙의한 건가."
레오시오가 갑자기 깨어난 것도 권능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레오시오를 진화시키기 위해 권능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레오시오는 진화에 실패했고, 마왕은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레오시오에게 빙의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앞뒤가 맞군.'
검은 드래곤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울린다.
-레오시오! 당장 저놈을 죽여야 한다! 브레스를 뿜어라!
-닥쳐라, 아스테릭스! 상처부터 먼저다! 상처를 먼저 회복해야 한다! 회복의 권능을 사용해라!
-권능은 사용할 수 없다. 저놈이 마계의 악마를 학살했다! 지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은 거의 없다!
-그럼 부정한 마나를 이용해서 날 보좌하기라도 해라! 이 쓸모없는 놈!
-레오시오. 선을 넘지 마라. 지금까지 내 도움을 받아 놓고 그따위로 말하는가?
-네놈이 제대로 했다면 난 이미 불멸을 손에 넣었겠지! 권능을 전부 잃은 네놈에게 더 뭐가 남았지?! 기생충처럼 내 몸에서 살아가는 것? 하,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닥쳐라, 레오시오. 대다수의 권능을 잃었으나, 아직 약간의 권능은 남아 있다. 그리고 악마는 다시 태어날 것이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
-그것도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 젠장. 어쩌다 이렇게 일이 꼬인 거지?!
-피해라!
유리아가 마룡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거대한 그림자 참격이 마룡의 몸통을 노린다.
웃긴 상황이 연출됐다. 마룡의 날개는 오른쪽으로 날아가려고 하는데, 정작 몸통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제대로 날지 못하고 그림자 참격에 맞는다. 마룡의 몸에서 대량의 피가 쏟아졌다.
-이 멍청한 놈! 내 육체에 간섭하지 마라!
-네놈이 늦게 피하려고 하니 내가 움직이려고 한 것이다!
-이 육체는 내 것이다! 내 몸에 멋대로 기생하려는 네놈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잘 움직일 수 있다! 네놈은 부정한 마나로 흑마법이라도 써서 놈들을 견제해라!
-나는 마법을 모른다.
-그럼 권능이라도 써라! 쓸모없는 자식!
-…이 일이 끝나고 우리 계약을 다시 검토해봐야겠군.
마룡이 권능을 사용했다. 물대포가 일직선으로 쏟아진다. 노리는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물대포라니. 어이가 없군.'
내 방심을 유도하려는 속셈이거나,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이 이런 것밖에 없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쏘아지는 속도도 느리니 피하면 그만이지만….'
내 곁에는 샤르넬이 있었다. 지금의 샤르넬을 마법도 제대로 발동하지 못하는 상태다.
‘데리고 피하기 귀찮군.’
염력을 사용했다. 방패처럼 정면을 막아선다. 물대포는 염력의 방패를 꿰뚫지 못했다. 근처 바닥에 물웅덩이가 고였다.
-일어나라!
물웅덩이가 위로 솟구치며 병사의 형상을 취한다. 물의 갑옷과 물의 창을 쥔 병사. 5명의 병사가 나를 향해 달려든다.
"꺼져라."
지면을 밟았다. 충격파가 사방으로 터지며 물의 병사들을 날려버린다. 내 주위에는 물기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마왕, 레오시오. 네놈들이 어떤 상태인지 관심 없다. 확실한 건 네놈들이 죽어야 내가 편해진다는 거지."
거대한 유성검 5개를 허공에 소환한다. 유성검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마룡에게 날아갔다.
-이 쓸모없는 자식! 네놈이 내 육체를 조종해라!
육체의 조종권을 마왕에게 넘긴 레오시오는 마법을 사용했다. 아직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부정한 마나와 순수한 마나를 동시에 사용해 마법진을 그린다. 마법진에서 검은 불길과 하얀 냉기가 동시에 쏟아져 나와 주변을 채운다.
유성검은 불길과 냉기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그 원리를 전혀 모르겠다. 물론 그 원리에 관심 없었다.
‘마법의 조종이라 불리는 드래곤다운 마법 실력이다.'
그렇다고 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지금 이곳엔 유리아만 있는 게 아니다. 엘레나까지 함께 있다.
마룡의 공격이 시작됐다. 하얀 냉기와 검은 불길, 그리고 드래곤 브레스가 내게 쏟아진다.
엘레나의 푸른 나비가 허공을 팔랑팔랑 날았다.
마룡의 공격이 비켜나간다. 언뜻 보면 마룡이 실수해서 아슬아슬하게 비켜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엘레나의 환술이다.
-뭔가 이상하다.
마왕은 엘레나의 환술을 바로 알아차렸다. 감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엘레나의 환술은 은밀해서 바로 알아차리는 게 쉽지 않다. 대부분 호되게 당하고 나서야 알아차린다. 당하고 나서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환술이다! 저 여자가 환술을 거는 것이다! 마법의 일종인 듯한데…. 처음 보는 마법이다. 설마 이 내가 모르는 마법이 존재하다니…! 아스테릭스! 저 여자부터 죽여야 한다! 저 여자가 우리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있다!
-죽일 수 있다면 죽이는 게 좋다. 하지만… 크아아악!
-아아아아악!
마룡이 비명을 지른다. 유리아가 마룡의 등에 올라타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 은밀한 공격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대가는 컸다. 마룡의 왼쪽 날개가 베여 뚝 떨어진 것이다.
마룡이 몸을 회전하며 유리아에게 앞발을 뻗는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유리아는 이미 마룡에게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림자가 솟구쳐 유리아의 몸을 감싼다.
-크아아아아악! 이것들이 감히!!
분노한 레오시오가 폭주하듯 마법진을 그렸다. 수백 개의 마법진이 공간 곳곳에 동시에 그려졌다. 그에 공간에 있는 모든 부정한 마나와 순수한 마나가 요동친다.
-진정해라, 레오시오! 이 공간의 중요성을 잊은 거냐? 이 공간이 파괴되면 네 목적을 이룰 수 없게 된다. 그래도 좋은 거냐?
-크으으윽! 그래서 이대로 놈들에게 당하자는 말이냐?!
-우선 마법으로 떨어지는 육체를 잡아라. 그다음은 화력을 집중해서 하나, 하나씩 줄여나간다. 가장 성가신 환술사부터….
나는 염력을 사용해 허공을 날아 놈들에게 달려갔다. 놈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줄 이유는 없었다. 마룡은 내가 직접 코앞으로 날아올지 몰랐는지 움찔 놀라며 입을 벌린다. 브레스가 쏟아진다. 각 잡고 쓴 브레스에 비해 화력은 약하지만, 그래도 브레스다. 무시할 수 없었다. 마룡의 브레스는 염력으로 어찌하기도 부담스럽다.
내 옆에 푸른 나비가 살랑인다. 나는 엘레나를 믿기로 했다.
내게 쏟아지던 브레스는 분홍색 벚꽃잎으로 변했다. 벚꽃잎이 흩날리며 장관을 연출했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 마룡의 대가리가 흩날리는 벚꽃잎들로 향한다.
-아름답군…!
-이 미친놈이! 피해라! 눈앞에 적을 두고서 어디다 눈을… 아아아아아아악!
화련비도의 칼날이 마룡의 오른쪽 눈을 쑤셨다. 마룡이 몸부림친다. 허공에 수많은 마법진이 그려진다. 그 마법진들이 모두 발현하니, 주위의 마나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이 공간은 마나로 가득 찬 공간이다. 마법의 영향을 즉각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끝장을 내야 한다!"
프리실라가 외쳤다.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마룡의 마법진을 역산하고 있다. 허나 별 효과는 없었다. 마구잡이로 마법진을 쏟아내는 것과 달리 마법을 하나씩 풀어가는 짓이다. 속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 끝내야 한다.’
곧 헌신의 효과가 끝날 것이다.
그 전에 승기를 잡은 지금 끝내야 한다.
'유성검.'
허공에서 생성된 다섯 개의 검이 벼락처럼 마룡에게 떨어진다. 마법진으로 막아내려고 하나, 소용없다. 염력으로 움직이는 다섯 개의 유성검은 마법진의 반발력을 밀어내며 떨어졌다.
-이대로 죽을 것 같으냐!! 아스테릭스!! 권능을 써라!
-정방향의 권능이다! 네 마법을 정방향으로 이끌었다. 이걸로 출력이 한 단계 높아졌을 터!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마왕은 또 다시 물대포의 권능을 사용했다. 물대포가 떨어지는 유성검을 막아내려고 한다.
‘틈을 만들려고 하는군. 유성검을 피할 수 있는 한순간의 틈을.’
나는 집중력을 더욱 끌어올려 유성검에 힘을 실었다. 마룡의 마법진이 달라붙어 유성검을 부식시킨다. 유성검이 하나씩 사라져갔다.
그리고 유리아가 움직였다.
촤르르르르륵.
유성검을 막아내느라 정신이 팔린 마룡을 향해 그림자 사슬 수십 개가 치솟아 몸을 휘감는다. 순식간에 구속당한 마룡이 당황한다.
-마나의 흐름이 끊겼다! 아스테릭스! 어떻게 좀 해봐라!
-이 상황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권능이 없군. 우린 여기서 끝이다.
마왕이 포기했다.
너무도 깔끔해서 보고 있는 내가 더 놀랄 지경이다.
-이 무능한 자식이! 어떻게든 방도를 찾으란 말이다!!
-우리는 실패했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뿐이다. 모든 것을 다 걸었고 실패했다. 그렇다면 인정해야지. 레오시오. 너는 너무 구질구질하다.
-이 개자식이이이이이이이!
유리아의 단검이 마룡의 등에 꽂힌다. 작은 단검에서 거대한 그림자 칼날이 튀어나와 마룡의 몸을 꿰뚫었다.
나는 부식된 유성검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유성검 하나를 소환했다.
파지지직.
번개를 머금은 유성검이 유성처럼 떨어져 마룡의 몸을 꿰뚫었다. 그림자 사슬이 끊어지고, 마룡의 육중한 몸은 그림자 사슬을 버티지 못하고 지상으로 처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