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작물 속으로-1635화 (1,415/2,000)

사막의 정세는 동맹 쪽에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동맹에 가입한 구역은 7, 중립을 표방한 구역은 4, 나머지 12 구역은 비동맹을 선언했다.

‘사막 동맹은 실패했군.’

못해도 10구역 이상의 동맹이 이루어져야 막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나도 괜히 동맹에 가입했나?’

동맹에 가입하지 않고 사막숲 구역을 공격하는 게 더 이득이었을지도 모른다. 무희를 약탈하는 것도 한 방법이니까.

‘애매하게 중립을 표방한 놈들이 가장 짜증 나는군.’

대놓고 박쥐 짓을 하겠다는 의도가 느껴졌다. 동맹이 유리해지면 숟가락을 얹으려고 할 테고, 동맹이 불리해지면 비동맹 쪽으로 돌아설 것이다.

‘나도 이렇게 짜증 나는데 사막 동맹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사막숲의 지배자는 더 빡치겠군.’

창문 밖을 쳐다봤다.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오아시스가 사라진 지 일주일. 다른 구역은 모르겠으나, 내가 지배하는 구역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다. 일주일에 한 번씩 비를 내려주니 시민들은 나를 찬양하고 있다.

“천마님.”

에나스가 다가왔다.

“뭐냐.”

“사막숲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오아시스의 주인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좀 늦었군. 어디지?”

“5,144 구역, 황금 사막입니다.”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일이 재밌게 되어가고 있다.

5,144 구역, 황금 사막은 비동맹 구역 중 하나다. 더 큰 문제는 황금 서쪽 사막지대에서 가장 큰 구역이며, 가장 부유한 구역이라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황금 사막은 그 이름대로 황금 광산이 있는 구역이다. 더불어 초대형 오아시스 1개와 대형 오아시스 5곳을 가진 곳이다.

‘이거 사막숲이 골치 아프겠군.’

오아시스의 주인을 토벌하기 위해서는 황금 사막으로 가야 한다. 비동맹인 황금 사막이 사막 숲에 협조할 가능성은 작았다.

“에나스. 사막숲이 어떻게 나올 것 같나?”

“만약, 제가 사막숲의 지배자라면… 소문을 퍼트릴 것입니다.”

“소문?”

“황금 사막이 오아시스의 주인과 손잡고 모든 사막의 오아시스를 손에 넣으려고 한다는 소문입니다. 소문을 이용해 황금 사막의 협조를 얻을 것입니다.”

에나스의 말대로 사막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황금 사막에 오아시스의 주인이 있다는 소문이었다. 사막의 시선이 황금 사막에 모여들었다.

나는 황금 사막이 발뺌하거나, 도리어 사막숲을 비난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을 깨고 황금 사막은 사막숲에 협조할 것이라 발표했다.

“동맹에 가입하지는 않았으나, 협조는 한다라…. 이럴 거면 처음부터 동맹에 가입하는 게 편하지 않나?”

“아무래도 황금 사막의 지배자는 시민들의 눈치를 본 듯합니다.”

인신 공양.

나 같은 지배자들에겐 아무것도 아니지만, 인신 공양을 당하는 입장에선 참으로 뭣 같겠지.

• • •

사막숲의 지배자 칼라스는 ‘오아시스의 주인’을 토벌하기 위해 동맹을 소집했다. 동맹이라고 해도 지배자가 직접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칼라스가 원한 것은 전투 인원이니까. 하지만 나는 직접 병력을 이끌고 황금 사막으로 향했다.

황금 사막의 지배자가 인원을 제한했기에 데리고 갈 수 있는 인원은 30명으로 한정됐다. 동맹까지 합치면 전력은 210명이었다.

나는 황금 사막 외곽지역에서 사막숲의 지배자 칼라스를 만날 수 있었다. 그도 나처럼 집적 병력을 이끌고 온 것이다.

칼라스는 구릿빛 피부의 사막 엘프였다. 남자다.

“처음 뵙겠소, 천마. 5,140 구역, 사막숲의 지배자 칼라스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외형과 달리 목소리는 중년인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천마신교의 주인인 천마다.”

“그대의 명성은 들어 알고 있소. 그대가 동맹에 가입해주어서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소.”

칼라스의 뒤에 검은색 천을 뒤집어쓴 자들이 있엇다. 절제된 기운이 느껴진다. 이들은 모두 정예병에 가깝다. 그 외의 다른 동맹에서 보낸 전사들은 기준 미만이었다.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칼라스. 오아시스의 주인에 관한 정보를 공유해줬으면 한다.”

“당연히 그럴 생각이오. 오아시스의 주인은 세트라는 신이오. 들어본 적 있소?”

“이집트의 신이란 건 안다.”

“세트는 땅의 신이요. 모래 폭풍을 일으키고 오아시스를 제어할 수 있는 신이오. 또한 전쟁의 신이기도 하오.”

“제법 격이 뛰어난 신이군. 그런 놈이 왜 이따위로 쪼잔하게 구는 거지?”

“이건 주술사들의 추측에 불과하오만… 인신 공양은 힘을 쌓기 위한 것이오. 즉, 지금 세트는 약해져 있다는 뜻이지. 세트 신을 죽이기에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요.”

“놈은 어디에 있지?”

“정확한 위치는 나도 모르오. 황금 사막의 지배자가 우리를 도울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황금 사막의 지배자가 끝까지 협조할 거라 보나?”

“듣자 하니 황금 사막의 지배자는 오아시스의 주인에게 500명의 여자를 바쳤다고 하오. 오아시스가 크고 많은 만큼 제물도 늘어난 거요. 황금 사막의 지배자 입장에서 저희가 오아시스의 주인을 토벌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을 것이오.”

“그러면서도 동맹에는 가입하지 않는다? 뒤통수가 간지럽군.”

“황금 사막의 지배자를 너무 믿어선 안 되오. 우린 그의 사냥개가 아니오. 삶겨지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전사들과 함께 황금 사막의 중심으로 향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금 사막의 특별함을 알아차렸다. 내가 지배하고 있는 전갈 사막보다 온도가 2~3도 정도 낮다. 선인장이나 야생 낙타 무리도 자주 보인다. 놀라운 건 2~3km마다 오아시스를 볼 수 있다는 거다.

“오아시스가 자주 보이는군.”

작은 오아시스지만, 사막을 횡단하는 자들에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사막의 이름이 괜히 황금 사막이겠소? 이 사막에는 작은 오아시스들이 널려 있다고 들었소.”

“그쪽에는 사막에 숲이 있고, 여긴 오아시스가 넘쳐나고…. 씨발. 내 구역만 척박하잖아.”

“요새 전갈 사막에 비가 자주 내린다고 들었소.”

“인공적인 비다. 오아시스가 없어서 비를 내리고 있지.”

“그게 더 대단한 거요. 사람의 힘으로 자연을 극복한 거 아니오? 전갈 사막의 사람들은 당신은 찬양할 것이오.”

“이미 날 찬양하더군. 덕분에 도시 관리가 수월해졌지.”

우리는 오아시스를 지나쳤다. 오아시스에서 시간을 보낼 정도로 한가롭지 않았다. 오아시스의 주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막 동맹은 오아시스가 마른 상황이다. 한시라도 빨리 오아시스의 주인을 토벌해 오아시스를 돌려받아야 한다.

“도착이오.”

칼라스가 말했다.

우리의 정면에는 반파된 신전이 있었다.

휘이이이잉.

신전 주위로 미약한 모래바람이 불었다.

“저 신전에 오아시스의 주인… 세트가 있을 것이오.”

“꼴을 보아하니 누군가가 봉인을 푼 것 같군. 황금 사막의 지배자가 원인이 아닌가?”

“본인의 말로는 아니라고 말했소만… 내 생각에는 그가 원인일 것이오. 그렇다고 책임을 물을 수는 없소.”

책임을 묻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서쪽 사막지대에서 가장 부유한 황금 사막은 상대하기 부담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비켜라.”

“…뭘 할 생각이시오?”

“저 신전을 봐라. 딱 봐도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지 않나? 저 신전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고생할 게 분명하다.”

“흠. 이런 쪽으로 경험이 많소? 베테랑 모험가처럼 말하는군.”

“지옥에도 떨어지고, 마왕도 죽여본 게 나다. 어지간한 모험가는 내 앞에서 명함도 못 내밀지.”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오?”

“이렇게 할 거다.”

나는 신전을 앞에 두고 호흡에 집중했다. 심장이 뛴다. 단전에서 생성된 천마기가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천마신공의 힘이 느껴진다.

오른 주먹을 들었다. 시커먼 강기가 주먹에 응축되기 시작한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신전을 향해 주먹을 내지른다. 허공을 때린 주먹에서 충격파가 일어나고, 응축된 천마기가 신전에 쇄도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신전이 무너진다.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부터 반파된 신전이 내 주먹을 버틸 리 없었다.

「오아시스의 주인의 신전이 부서집니다.」

「신성한 신전을 무너뜨렸습니다. 신의 저주가 당신에게 떨어집니다.」

하늘에서 시커먼 기운이 내게 떨어졌다. 옆에서 보고 있던 칼라스가 두 눈을 치뜨며 경악한다.

“저주! 신의 저주가 내렸소! 천마! 괜찮소?!”

“시끄럽다. 이따위 저주, 별거 아니다.”

담담하게 말했으나 저주는 제법 강력했다.

「사막의 저주가 당신에게 내려집니다.」

「사막의 괴물들이 당신을 적대합니다.」

「당신은 오아시스의 물을 섭취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갈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사막에 있는 동안 모든 능력치가 20% 하락합니다.」

저주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능력치의 20%가 하락하면서 몸이 갑자기 무거워진 것이다. 당장 바닥에 주저앉아 쉬고 싶었다.

’천심.‘

[천심(天心)을 발동합니다. 1분 동안 지속됩니다.]

저주가 사라진다. 몸이 다시 가벼워졌다.

“신전은 부쉈으나, 정작 토벌해야 할 오아시스의 주인은 멀쩡한 것 같군. 이제 어쩔 것이오?”

“신전은 더 박….”

말을 잇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칼라스도 마찬가지였다. 부서진 신전에서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부서진 신전이 들썩이고, 짐승의 머리와 갈라진 꼬리를 가진 한 인영이 신전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모래 위에 우뚝 선 그는 나와 칼라스를 쳐다봤다.

「오아시스의 주인(僞)이 당신을 노려봅니다.」

“크으으으윽!”

칼라스가 신음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난다.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왜 갑자기 물러난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비틀거리던 칼라스는 결국 내 뒤쪽으로 향했다. 세트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허억. 과, 과연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전쟁의 신…. 시선을 받았을 뿐인데 이런 압박감이라니…. 천마. 그대는 괜찮소?”

“견딜만하다.”

“과연 대단하오.”

사실 압박이고 뭐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세트가 뭔가 수작을 부린 모양인데, 나는 천심을 사용하고 있어서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아시스의 주인(僞)이 당신을 경멸합니다.」

“불신한 자들이여, 너희는 이 땅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다. 너희의 피로 모래를 적시리라.”

세트가 손에 쥔 지팡이로 바닥을 찍었다.

모래가 솟구치더니 창과 방패를 든 병사가 되었다.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