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마리가 넘는 모래 병사들이 우리를 향해 전진한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에 모인 전사들은 모래 병사보다 2배는 많다. 허나 칼라스를 비롯한 전사들은 모두 세트에게 압도당해있다.
간단히 말해 세트에게 쫄은 것이다.
“이 머저리들아! 정신 차려라! 눈앞에 있는 세트는 진짜 신이 아니다! 위신이다! 신의 분신 같은 거에 불과하다! 놈은 아직 완벽하지 않다! 우리의 힘으로 놈을 죽일 수 있다!”
허공에 주먹을 내질렀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주먹에서 발사된 기운이 전진하는 모래 병사들에게 쏘아졌다. 20마리가 넘는 모래 병사가 그대로 평범한 모래로 변해 사막 바닥에 쏟아졌다.
“봐라! 놈들은 별거 아니다!”
직접 나서서 힘을 보여주니 세트에게 압도당한 병사들의 사기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한다.
“아마드!”
“네! 천마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마풍단은 준비되었습니다!”
불타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과 붉은 눈을 가진 아마드가 대답했다. 그의 뒤로 마풍신공을 익힌 정예 마풍단이 흉흉한 기세를 내뿜는다.
“저 짐승 인간의 목은 내가 딴다! 너희는 모래 병사를 맡아라!”
나는 가장 앞에 섰다.
아틀란티스는 업적을 달성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지급한다. 신을 죽이는 건 누구나가 인정하는 위업이다.
‘저놈은 내가 죽인다!’
개인적인 원한. 그리고 보상. 전부 내가 차지할 것이다.
“사막의 전사들이여! 계속 천마의 뒤에 숨어 있을 것이냐?! 우리의 오아시스는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 신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오아시스를 빼앗을 권리는 없다! 돌격하라!”
칼라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직후, 사막 전사들이 마풍단의 뒤를 쫓아 모래 병사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모래 병사가 내 앞을 막아선다.
“모래 가지고 놀 나이는 지났지. 비켜라. 너희 따위에게 관심 없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파형(波形).
천마기를 담아 지면을 밟는다.
파동이 일어났다. 파동은 사방으로 퍼지며 모래 병사들에게 닿는다. 파동에 맞은 병사들이 충격받은 듯 몸을 비틀거렸다. 마풍단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모래 병사들에게 달려들어 공격한다.
모래 병사들은 물러나지 않고 공격한다. 인간이 아닌 모래 병사들은 팔이 잘리고, 머리에 칼이 박혀도 물러나지 않는다.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정면을 향해 주먹을 뻗는다.
모래 병사 따위가 내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정면에 길이 뚫렸다. 나는 열린 길을 내달렸다. 길의 끝에 세트가 있었다.
전투를 오래 끌 필요는 없다.
‘죽여주마, 세트!’
화르륵!
내 양손에 검은 불꽃이 일어났다. 위협적인 불꽃임에도 불구하고 세트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놈.”
세트의 정면에 모래가 솟구친다. 모래는 10m가 넘는 거대한 병사가 되었다. 병사가 내게 창을 휘두른다.
“어리석은 건 너다. 고작 이따위 모래 병사로 나를 막을 수 있다고 보는 건가.”
화르르륵.
검은 화염이 크기를 키우며 모래 병사를 삼킨다. 검은 화염은 모래까지 질척하게 녹였다.
‘이제 막을 순 없군. 용권은 놈도 봤으니 통하지 않겠지. 천마신장으로 기습한다.’
천마신장을 사용하기 위해 천마기를 준비하는 순간이었다.
천심의 효과가 끝났다.
「사막의 저주가 당신에게 내려집니다.」
「사막의 괴물들이 당신을 적대합니다.」
「당신은 오아시스의 물을 섭취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갈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사막에 있는 동안 모든 능력치가 20% 하락합니다.」
저주의 효과가 다시 내 몸을 덮쳤다. 몸이 급속도로 무거워진다.
‘천심으로 저주를 해제했을 텐데…?!’
세트가 다시 내게 저주를 걸었다? 아니다. 세트는 지금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느려졌군. 수작을 부리는 거냐?”
세트는 지금 내 상태를 모르고 있다. 이 저주는 세트가 아니라 시스템의 짓이다. 시스템은 천심의 효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시스템! 이건 아니지!! 난 내 능력으로 저주를 해제했다!”
「시스템은 당신의 능력을 인정합니다.」
“인정한다고? 그렇다면 당장 저주를 해제해라!”
「시스템이 개입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시스템이 개입할 수 없는 상황? 시스템이 볼 때 오류가 전혀 없는 상황이란 거다. 신좌가 개입하지 않았고, 인과적으로도 아무 문제 없다. 즉, 다른 원인이 있다는 거다.
‘저주의 근원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저주의 근원은 눈앞에 있었다. 부서진 신전과 ‘오아시스의 주인’ 세트.
세트가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더니 나를 향해 휘둘렀다. 어마어마한 힘의 참격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찰나를 이용해 옆으로 피했다. 찰나가 없었다면 몸이 반으로 갈라졌을 것이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천마신공(天魔神功) 흑염마룡(黑炎魔龍) 폭(爆).
세트를 향해 양손을 흔들었다. 검은 불꽃이 세트에게 날아가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앙! 쾅! 콰콰쾅!
폭발 속에서 세트는 멀쩡했다. 모래바람이 폭발로부터 세트를 지킨 것이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며 손에 검을 소환했다. 검에서 시커먼 검강이 치솟는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검(天魔劍) 회천(回天).
회전력이 담긴 검의 참격이 세트의 몸을 벤다. 세트의 몸에서 피 대신에 모래가 뿌려졌다.
나는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속았다! 이놈은 처음부터 진짜가 아니라 모래 분신이었어!’
-인간 주제에 강력한 힘을 가졌구나. 허나 신에 비할 바는 아니다.
모래가 발목을 때렸다.
바람이다. 바람이 불며 회오리를 형성하고 있다.
-감히 내게 반기를 든 자들이여! 들어라! 열흘을 주마! 내게 1만 명의 제물을 바쳐라! 그러지 않는다면 사막이 일어나 너희를 쓸어버리리라!
“이 개자식이! 열흘 내로 널 찾아내서 죽여버리겠다!”
-네놈! 천마라고 했느냐? 불경한 자여! 너는 10만의 제물을 바쳐야 할 것이다!
짜증이 솟구친다. 욕이라도 하기 위해 입을 여는데 바람에 섞인 모래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회오리바람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모래 폭풍은 나의 마지막 경고이니라!
회오리바람은 손쓰기도 전에 거대한 모래 폭풍으로 변했다. 무언가를 할 틈도 없이 내 몸은 모래 폭풍에 휘말려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최대한 버티려고 했으나, 신전을 구성하고 있던 바위에 머리가 부딪쳐 기절했다.
• • •
“커어어어어!”
정신을 차리니 모래에 파묻혀 있었다. 상체를 벌떡 일으킨 나는 입안에 들어가 있는 모래를 버텨내기 헛구역질을 해댔다. 그래도 안 돼서 생수를 소환해 입안을 헹궜다. 주위를 둘러본다. 사막뿐이다. 모래밖에 없다.
‘모래 폭풍에 휘말려서 어디까지 날아온 거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심각한 일은 아니다. 공간 이동 주문서가 있으니, 돌아가려면 지금 당장에라도 돌아갈 수 있다.
‘돌아갔다가 오아시스의 주인을 죽이기 위해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건 귀찮으니 일단 이 주변을 둘러보자.’
어쩌면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래 폭풍에 휘말린 녀석들은… 일부는 무사하겠지.’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마풍단장인 아마드는 모래 폭풍에 휘말려 죽을 정도로 약하지 않다.
칼라스도 마찬가지다. 한 구역의 지배자가 겨우 모래 폭풍에 휘말려 죽을 리 없다. 뭔가 힘을 숨기고 있는 것 같기도 했으니 살아 있을 것이다.
‘목마르다.’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낀 나는 생수를 소환해 벌컥벌컥 마셨다.
시원한 냉수가 입을 통해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섹스 정도는 아니어도 상당히 기분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이다. 물을 전무 마시고 난 뒤에 또다시 갈증이 찾아왔다. 나는 새로운 생수를 꺼내 마셨다.
꿀꺽꿀꺽.
2L짜리 생수를 단숨에 비웠다.
갈증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나는 사막을 걸으면서 생수를 마셨다.
꿀꺽꿀꺽꿀꺽.
생수 2L가 순식간에 바닥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갈증이 느껴졌다. 나는 빈 생수병을 버리고 새로운 생수를 소환했다.
꿀꺽꿀꺽꿀꺽.
마실 때는 좋다. 지독한 갈증이 해소되는 쾌락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하다. 문제는 물을 마시고 난 뒤에 다시 갈증이 온다는 것이다.
꿀꺽꿀꺽꿀꺽.
생수를 마시던 나는 구역질을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조금만 움직여도 배를 가득 채운 물이 출렁거리는 게 느껴진다.
“씨, 씨발….”
입에서 투명한 액체가 흐른다. 침이 아니라 물이었다. 물을 너무 마셔서 그런지 배가 빵빵했다. 움직이기 힘들 정도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바닥에 드러누워 쉬고 싶다.
‘갈증이 안 사라지잖아!’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토할 것 같았다. 근데 갈증이 사라질 낌새가 전혀 안 보인다.
‘이건 정상이 아니야. 왜 이렇게…. 젠장. 저주 때문이군.’
「사막의 저주가 당신에게 내려집니다.」
「사막의 괴물들이 당신을 적대합니다.」
「당신은 오아시스의 물을 섭취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갈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사막에 있는 동안 모든 능력치가 20% 하락합니다.」
갈증에 시달리게 된다.
별생각 없었던 저주는 상당히 괴로웠다.
‘물 마시고 싶다! 물 마시기 싫은데 물 마시고 싶다!’
지금 물을 마시면 100% 토한다.
‘…토하고 마시면 되잖아.’
끝내주는 생각에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나는 물을 마셨고, 물을 토했다. 그걸 반복하며 사막을 걷는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는 빈 생수통과 물에 젖은 모래로 가득했다.
‘시발. 이게 뭐 하는 짓이야.’
7번 정도 토했을 때 현타가 왔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갈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완전 회복.’
아껴뒀던 완전 회복을 사용했다.
갈증이 사라진다. 환희를 느끼는 찰나 지긋지긋한 알림창이 떠오른다.
「사막의 저주가 당신에게 내려집니다.」
「사막의 괴물들이 당신을 적대합니다.」
「당신은 오아시스의 물을 섭취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갈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사막에 있는 동안 모든 능력치가 20% 하락합니다.」
“…….”
욕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이 갈증을 없애려면 저주를 풀어야 한다. 근데 완전 회복을 썼는데도 다시 저주가 내려졌잖아. 저주의 근원을 없애야 한다는 건데…. 잠깐 저주?’
이 저주를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