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오아시스로 향한 것은 정답이었다.
오아시스 근처에 자리 잡은 부족을 발견했다. 오아시스는 작았지만, 부족의 크기는 작지 않았다. 못해도 300명은 되어 보인다.
‘여기선 적당한 규모일지도 모르겠군.’
내가 지배하는 전갈 사막 구역에서 300명은 대규모 부족이었다.
나는 부족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부족의 전사들은 나를 주시하다가 칼을 내밀며 막아섰다.
“멈춰라. 여긴 우리 모래발톱 부족의 영역이다. 이방인은 허락 없이 출입할 수 없다.”
“오아시스도 우리 부족의 것이다. 오아시스의 물을 원하면 돈을 내라. 1L에 1만 페니다.”
1만 페니.
한화로 따지면 10만 원이었다. 더럽게 비쌌다. 아무리 사막이라 해도 이 정도 가격은 아니다. 사막 여행자 프리미엄이 붙은 것이다. 이 새끼들은 작정하고 나를 벗겨 먹으려 하고 있다.
“여러 가지로 기분 나쁜 놈이군.”
사막 전사들이 경멸과 혐오가 섞인 시선으로 날 바라본다.
지금 나는 투탕카멘의 황금 가면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상의를 탈의한 채 바지만 입고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하자며 파라오 패션을 선택했다.
“무엄한 놈들이군.”
“무엄? 안 그래도 날씨가 더워서 짜증 나는데… 별 이상한 놈이 찾아왔군. 물을 사고 싶다면 가면을 벗어라. 그 괴상한 투구를 벗기 전까지 물을 팔지 않을 것이다.”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위협적으로 말했다. 말을 할 때마다 살기가 느껴진다. 사람 담가본 경험이 상당한 놈이다.
“대장님. 저거 통짜 황금 같은데요.”
“하. 헛소리하지 마라. 어느 병신이 황금으로 저런 걸 만들겠냐.”
“진짜 황금입니다. 제가 반년 전까지 황금 광산에서 일해서 잘 압니다. 저 때깔은 황금일 수밖에 없습니다.”
“흐음.”
사막 전사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황금에 대한 탐욕이 느껴진다.
대장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가 혼자인 걸 확인한 것이다. 대장이 씩 웃으며 손을 들자, 그 부하들이 내 주위를 감싼다.
“투구를 우리에게 넘겨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지. 물론 네놈에게 줄 오아시스의 물은 없으니 투구를 벗고 썩 꺼져라.”
“무슨 짓을 하나 지켜봤더니… 수준 차이도 알아채지 못하는 머저리들이었군.”
“하하. 우리가 베푸는 자비를 이렇게 걷어찬다고? 그 기세를 높이 사, 네놈의 육신은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마!”
대장이 칼을 뽑으며 내게 휘두른다. 일련의 동작은 흠잡을 곳 없이 매끄러웠다. 그가 얼마나 많은 경험을 가진 전사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까앙!
대장의 칼은 투명한 배리어에 막혔다. 내가 사용한 배리어였다.
“어떻게 죽일지 정했다. 네놈들은 서로 죽여라.”
“뭐?”
“죽음의 꼭두각시.”
흑마법이 발현된다.
시커먼 기운으로 이루어진 실이 전사들의 몸으로 스며들어 갔다.
삐그덕삐그덕.
전사들의 팔다리가 고장 난 기계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자신들의 무기를 들고 동료들을 향해 휘두른다.
“으아아아아아악!”
“파, 팔이 멋대로!”
“대장님!! 도와주십시오!”
“빌어먹을! 이건 주술이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벗어날 수… 크어억!”
사방에 피가 튀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꼭두각시들의 공연을 관람했다.
처음으로 사용하는 흑마법이었다. 사실 흑마법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나도 모른다. 머릿속에 떠오른 흑마법의 술식을 그대로 발현해서 사용했다. 실질적으로 내가 한 것이라곤 흑마법을 사용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뿐이다.
‘이 정도 되는 전사가 흑마법에 저항하지도 못하다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군.’
죽은 전사들이 바닥에 쓰러져 널브러졌다.
내 눈에 전사들의 영혼이 보였다. 영혼들은 죽은 육체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내 기운이 영혼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붙잡았다.
“네놈들에게 안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어나라.”
“그어어어어어….”
죽은 전사들이 언데드가 일어났다. 그 영혼은 죽은 육체 밖으로 떠나지 못하고 갇혔다. 영혼이 시체에 갇혀 있으니 평범한 언데드 보다 훨씬 강할 것이다.
나는 손가락으로 부족을 척 가리켰다.
“가서 너희 부족민들을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
언데드들이 칼을 손에 쥐고 부족민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살아 있을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크아아아아아악!”
“이게 무슨 짓이냐?!”
“사막 대장이 미친 건가?!”
“주술사다! 주술사가 사악한 주술을 사용했다. 주술사를 찾아 죽여라!”
눈치 빠른 놈들은 나를 발견하고 달려들었다. 소용없는 짓이다. 무작정 달려드는 놈에게 당해줄 정도로 나는 멍청하지도, 약하지도 않다.
“데스 그랩!”
바닥에서 죽음의 손아귀가 튀어나왔다. 길쭉한 검은색 손톱을 가진 커다란 손이 내게 달려드는 놈을 붙잡아 터트린다. 피와 내장이 모래에 떨어진다.
“네놈들도 편히 죽진 못한다. 일어나라.”
터져 죽은 놈은 구울이 되어 일어났다. 구울은 네발로 땅을 기다가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내장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구울을 뒤로하고 오아시스로 향한다.
“오아시스…. 갈증이 느껴지지 않으니 오아시스를 봐도 아무렇지 않군.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엔 내가 성격이 안 좋아서 말이야.”
작은 오아시스의 맑은 물에 손을 집어넣는다.
물의 온도는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나는 죽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부패의 저주.”
오아시스의 물이 급속도로 썩어간다.
“포이즌.”
독까지 추가했다.
썩은 오아시스의 물이 보라색으로 변했다. 마침, 내 옆을 지나가는 작은 도마뱀이 보였다. 도마뱀을 낚아채듯 잡아 오아시스로 던졌다.
치이이이익!
도마뱀의 살과 내장이 모두 녹아 뼈만 남았다. 뼈만 남은 도마뱀은 언데드가 되어 짧은 팔로 오아시스 내부를 헤엄쳐 다녔다.
“자, 그럼….”
부족민들이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미녀는 살 것이고, 나머지는 죽을 것이다!”
• • •
5개의 부족을 털었다.
나는 1,000 마리에 달하는 언데드 군세를 이끌며 사막을 걸었다. 언데드는 지치지 않았다. 땡볕에 몇 시간을 계속 걸어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다. 다만, 썩어가는 시체 냄새가 상당히 거슬렸다.
‘1,000 마리는 부족하다. 적어도 2만 마리는 모아야 한다. 5,000 마리 정도 모은 뒤에 도시로 쳐들어가야겠군.’
나는 직접 걷지 않고 가마에 탔다. 거대한 나무판을 만들어 언데드에게 들도록 시킨 것이다. 나무판은 무려 30평에 달하는 넓이였다.
가마 의자에 편히 앉은 나는 나무판 위에서 춤추는 미녀들을 지켜봤다. 20명에 달하는 미녀들이 살기 위해 몸을 흔들며 아양을 떨었다. 흡족한 광경이었다.
“응?”
저 멀리 천막이 보였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사막 부족인가.’
100명 정도로 보인다.
‘낙타가 많다. 짐도 많고. 부족이 아니라 사막을 횡단하는 상단이었나? 상단치고는 엄청난 규모로군.’
저쪽도 나를 발견했다. 저들의 고함이 어렴풋하게 들린다. 허둥지둥 움직이는 것을 보니 싸울 생각은 없어 보이고 도망치려고 한다.
‘1,000 마리가 넘는 언데드 군세이니… 도망치는 게 당연한가.’
나는 언데드들에게 말했다.
“속도를 올려라.”
언데드들은 내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랐다. 언데드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가마가 출렁출렁 흔들린다.
“꺄아아아악!”
가마에 타고 있는 미녀들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가마에 납작 엎드려 손잡이를 꽉 쥐었다.
상단이 죽기 살기로 도망치려고 한다. 상단은 내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이대로는 상단을 놓칠지도 모른다.
“내 허락없인 못 도망친다! 데스 필드!”
나를 중심으로 어두운 마나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황금빛의 사막 모래가 새까맣게 물든다. 바닥에서 검은 모래가 일어나 상단의 도망 경로를 막아섰다.
“도망칠 수 없다! 전투 준비!”
상단을 호위하는 전사들이 칼을 뽑았다.
“멈춰라.”
상단에 달려들려던 언데드가 우뚝 멈춘다.
‘이 멍청한 언데드들은 미녀를 구분하지 못한다. 함부로 돌격을 명령했다가 미녀까지 죽여버릴 수 있다.’
일단 미녀를 먼저 확보한 뒤에 언데드에게 돌격을 명령하면 된다.
가마는 계속해서 앞으로 움직였다. 언데드 군세의 가장 앞으로 오자 가마에서 내렸다.
“그대가 이 언데드 군세의 주인입니까?”
회색 머리카락의 인상 좋아 보이는 남자가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나는 잠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남자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화려한 옷을 입은 상인이었다.
“너는 누구지?”
“리코스 상단의 주인인 하르모입니다. 리코스 상단을 아십니까?”
“아틀란티스 서쪽 최고의 상단인 리코스 상단을 모를 리가 있나.”
리코스 상단은 서쪽 사막지대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이 큰 상단이기도 했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거래하시죠. 그대가 원하는 물건을 드릴 테니 저희를 놓아주십시오.”
“협상을 하겠다? 뭐, 나쁘지 않군. 선 제시다. 반짝이.”
하르모의 두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반짝이.
그 이름은 하르모가 헬텐에서 사용하는 코드네임이었다.
“이 목소리… 어딘가 익숙하다고 했는데, 설마 천마였습니까?”
“하하. 이렇게 보니 반갑군요. 천마. 여기서 뭐 하고 계십니까?”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보는 눈이 많았다.
“따로 이야기하지.”
“알겠습니다. 천막을 치도록 하죠. 아,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믿을 수 있는 자들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정체가 드러나도 곤란하지 않다.”
“당신은 대놓고 활동하니까요. 그 점은 부럽습니다.”
천막은 뚝딱 완성되었다. 나와 하르모는 천막 내에서 마주 보며 앉았다.
“천마. 이렇게 보니 반갑군요. 설마 투탕카멘의 정체가 당신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네가 투탕카멘을 어떻게 아는 거지?”
“모르셨습니까? 투탕카멘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황금 사막 전체에 쫙 퍼졌습니다. 황금 사막의 지배자인 하텝이 투탕카멘을 죽이고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하겠다고 시민들에게 맹세했습니다.”
“하텝. 내가 죽여야 할 놈이지. 그놈이 쓸데없이 입을 놀렸군.”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고 싶은 것이죠. 천마.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나는 대충 설명했다. 오아시스의 주인에서부터 투탕카멘의 황금 가면과 특수 이벤트까지.
이야기를 모두 들은 하르모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재밌는 상황이군요. 천마. 저와 거래하시죠. 언데드를 무장시킬 장비와 네크로맨서가 사용하는 장비를 당신에게 지원하겠습니다.”
“대가는?”
“황금 사막의 무역 독점권을 원합니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