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상황이군요. 천마. 저와 거래하시죠. 언데드를 무장시킬 장비와 네크로맨서가 사용하는 장비를 당신에게 지원하겠습니다.”
“대가는?”
“황금 사막의 무역 독점권을 원합니다.”
“좋다.”
1초 만에 끝난 협상에 하르모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시원시원하시군요. 이렇게 빨리 협상이 끝난 건 처음입니다. 천마. 제가 왜 이런 제안을 당신에게 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이득이 되니까 했겠지.”
하르모.
서쪽의 거상이라 불리는 남자다.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하르모가 단순히 거래만 할 줄 아는 상인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 헬텐의 간부가 될 정도로 가진 무력도 뛰어나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도 그를 상대로 쉽게 장담할 수 없다. 적으로 돌리면 귀찮으니 협조하는 편이 낫다.
“맞습니다. 저는 천마가 새로운 황금 사막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래. 난 질 생각이 없다. 그러니 미리 말해두지. 독점이라고 해서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한다면 거래를 끊겠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와 천마가 평범한 관계도 아니고 등쳐먹겠습니까? 사실 독점 무역권은 말뿐이고 실제로 원하는 건 황금 광산에서 나오는 황금입니다. 황금 사막의 황금은 질이 좋고 특수한 성질이 있어 제작계 특성이 많이 찾는 재료입니다. 황금만 저희 상단에 독점적으로 판매해주십시오.”
나는 하르모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에게서 적개심이 느껴졌다. 나를 향한 적개심은 아니다.
“하텝과 무슨 일이 있었나?”
“오늘 낮에 하텝과 만났습니다. 상단의 행렬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리코스 상단은 하텝과 대량의 물건을 거래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직접 나설 정도로 많은 양이지요. 허나 오늘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3년 넘게 쌓아온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진 것입니다.”
“거래를 거부했다고? 네가 가지고 온 것들은 무슨 물건이지?”
“사막에서 필요한 생필품들과 무기와 방어구입니다. 하텝은 도리어 황금을 팔라고 제게 말하더군요. 황금을 사러 왔는데 팔 황금이 있겠습니까. 그대로 하텝에게 쫓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텝은 어제부터 황금에 집착하기 시작했습니다.”
“황금에 집착한다라. 황금으로 뭘 할 수 있는 거지? 새로운 물건이라도 만드는 건가?”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지금 황금 사막에서 일어나고 있는 특수 이벤트와 관련 있을 겁니다. 시기적으로 알맞으니까요.”
“특수 이벤트를 알고 있는 걸 보면… 그놈에게도 나처럼 스킬이 생겼을지도 모르겠군.”
“하텝이 군사를 파견한 건 알고 계십니까?”
“어젯밤에 놈이 보낸 정찰병과 맞닥뜨렸다. 미라로 만들어 잘 써먹고 있지.”
“하텝은 황금 광산을 이용해 부를 쌓아왔습니다. 하텝은 성격이 다소 다혈질적이지만, 멍청하지는 않습니다. 쌓은 부는 군대에 투자했습니다. 그의 군대는 강병입니다. 조심하십시오.”
“보통의 군대가 아니란 것쯤은 안다. 그래서 이렇게 외곽 지역을 돌아다니고 있는 거다. 당장 정면 싸움을 벌이면 이길 수 없을 테니.”
“천마. 지금 당신의 군대로는 아무리 수가 많아도 하텝의 군대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무기와 방어구로 언데드를 무장시킬 생각이다.”
“부족합니다. 무기와 방어구보다 언데드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아까 보니 하급 언데드 밖에 없더군요.”
“고위 언데드를 만들려고 시도해봤으나, 잘 안되더군.”
“하하.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네크로맨서를 장비를 지원한다고 말했던 거지요. 자, 여기 계약서입니다.”
나는 그가 내민 계약서를 확인했다.
이름난 상인은 그에 걸맞은 특수 계약서를 사용한다. 계약을 어기면 저주를 받는 종류의 계약서 말이다. 하지만 하르모가 내민 것은 평범한 계약서였다.
“서쪽의 거상이란 명성에 걸맞지 않은 평범한 계약서군.”
“저는 상황과 상대에 따라 계약서를 선택합니다. 비싸고 특수한 계약서라고 해서 완벽한 건 아닙니다. 계약서의 허점을 노릴 수 있고, 계약서의 저주를 벗어날 방법도 존재합니다. 신뢰할 수 있는 대상에겐 평범한 계약서만으로 충분합니다.”
나는 계약서에 이름을 적었다.
하르모는 조심스럽게 계약서를 들어 아공간에 보관했다. 그는 이어 아공간에서 물건을 꺼내 내게 건넸다.
“계약을 이행하겠습니다. 이 책이 지금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낡은 책을 받았다.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낡은 건 둘째 치고 군데군데 종이가 비어있었다. 내용이 없다는 뜻이었다.
‘날 엿 먹이려는 게 아니라면 평범한 책이 아니겠지.’
「사자의 서 (1/3)
언데드에 대한 지배력이 강화된다.
중급 이하의 언데드 제작법을 알 수 있다.
부리는 언데드의 능력치가 5% 상승한다.
마나가 10 상승한다.
랭크: A」
좋은 물건이었다.
네크로맨서에겐 A 랭크 물건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다.
“1/3? 완성된 물건이 아닌가?”
“내용이 비어있지 않습니까. 나머지 부분은 이 사막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겁니다. 어쩌면 누군가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넌 이걸 어디서 얻었지?”
“추방자에게서 구입했습니다. 보시다시피 효과가 네크로맨서 전용인지라 비교적 쉽게 구매할 수 있었지요. 원래는 바로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네크로맨서가 워낙 희귀해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사자의 서를 펼치고 그 내용을 탐독했다.
“신성문자… 히에로글리프군요. 전 봐도 모르겠습니다. 천마는 읽으실 수 있습니까?”
“아니. 나도 읽을 줄 모른다. 하지만 이해는 되는군.”
하르모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 읽을 순 없으나, 이해는 된다. 터무니없이 모순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나는 이 책의 내용이 이해됐다.
‘아마도 흑마법 적성(SSS) 스킬 때문이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급 언데드를 만들 방법을 알았다. 의외로 쉽군. 시험해 봐야겠다.”
“어떻게 할지 궁금하군요. 제가 곁에서 지켜봐도 되겠습니까?”
“상관없다.”
천막 밖으로 나온 나는 언데드 군세에 다가갔다. 죽은 것들은 내 명령에 따라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고개를 들며 나를 쳐다본다.
나는 언데드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사자의 서에 적혀 있는 주문을 읊는 것이다. 말하고 있는 나도 내가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주문을 읊을 때마다 마나가 조금씩 빠져나간다.
주문이 끝난 순간, 내 앞에 있던 3마리의 구울이 산산이 부서지며 하나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뭉쳐진 고깃덩어리는 꿈틀거리더니 반으로 쩍 갈라지며 새로운 언데드가 나타났다.
“끼에에에에에엑!!”
강화 구울이었다. 보통의 구울 보다 덩치가 1.5배 더 컸고, 그 발톰과 이빨은 훨씬 날카로워졌다. 무엇보다 강화 구울의 몸에선 독기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강화 구울에게 공격당하면 독에 중독당할 것이다.
“오오! 구울 셋으로 강화 구울을 만들었군요! 어떤 방식인지 알겠습니다. 하급 언데드 셋으로 한 단계 위의 같은 종류 언데드를 만들어내는 방식이군요!”
“아니다. 하급 언데드 셋을 재료로 사용하는 건 맞지만, 만들어지는 언데드는 랜덤이다.”
나는 다시 주문을 읊조렸다. 주문은 아까보다 짧아져 있었다. 이 주문에 익숙해진 것이다.
구울 3마리가 분해되어 뭉쳐진다. 고기로 이루어진 계란은 몇 번 두근거리더니 쩍 갈라졌다. 새로운 언데드가 나타났다.
“딱딱딱딱!”
지팡이를 든 해골이 턱을 덜컥거리며 나타났다. 스켈레톤 메이지다.
나는 계속 주문을 외웠다. 이번에는 여러 마리를 동시에 만들기로 했다. 하급 언데드 30마리가 10개의 고치로 변한다. 고치가 갈라지고 중급 언데드가 태어났다. 종류는 제각각 달랐다.
“원래 이렇게 중급 언데드를 만드는 겁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쉬워 보이는군요.”
“그만큼 이 사자의 서가 특별한 거다.”
하르모에게 대충 대답해준 나는 계속해서 주문을 외웠다. 주문을 외울수록 익숙해졌다. 4~5번 반복해보니 한 번에 수십 마리의 중급 언데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천 마리가 넘던 언데드 군세는 3분의 1로 확 줄었다. 겉보기에는 군세가 약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언데드의 질이 늘었다. 결과적으로 군세는 강해진 것이다.
“이런 방식이면 상급 언데드도 쉽게 만들어내겠군요.”
“상급 언데드를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지 않아서 모르겠군.”
사자의 서 (1/3)
아마도 추가로 사자의 서를 찾아내야만 상급 언데드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겐 사자의 서를 찾을 방법이 있었다. 사자의 서를 생각하자 사막 지도에 표시가 된 것이다.
사저의 서 2와 3의 위치를 확인한 내 입꼬리가 올라간다.
‘계획 변경이다. 사자의 서를 먼저 얻고 난 뒤에 황금 사막의 지배자를 죽인다.’
하르모에게서 무기와 방어구를 받았다. 나는 스켈레톤 나이트에게 무기와 방어구를 입혔다.
“무기와 방어구는 약속했던 대로 지원하겠습니다만, 일이 끝난 뒤에는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수천 개를 지원하기에는 너무 손해라서요.”
“그러지.”
나도 언데드 군대를 계속 유지할 생각도 없었다.
하르모에게 붙잡은 미녀들을 맡겼다. 미녀들을 데리고 다니기엔 너무 위험했다.
“전갈 사막에 잘 데려다 놓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추가로 에나스에게 전해라. 내가 명령하면 언제든지 출전할 수 있도록 군대를 준비하라고.”
• • •
나는 사막을 돌아다니며 부족을 덮쳤다. 언데드의 수를 늘리기 위해서였다. 하급 언데드가 모이는 대로 중급 언데드로 만들었다. 하급 언데드 100마리보다 중급 언데드 10마리가 훨씬 낫기 때문이다.
중급 언데드가 700마리쯤 되었을 때, 황금 사막의 군대와 맞닥뜨렸다. 낙타를 탄 3,000 명의 사막 전사들이 내 앞길을 막아선 것이다.
‘입고 있는 장비의 때깔부터가 다르군. 돈을 처바른 티가 나.’
사막에서 낙타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비싼 낙타가 3,000마리가 있다.
“투탕카멘은 들어라!”
사막 전사 한 명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목소리에 마나가 실려 있다. 나는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시선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