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주인은 유독 눈에 띄는 황금 갑옷을 입은 전사였다. 그는 군대의 중심에 있었다. 전사들을 이끄는 대전사로 보인다.
“위대한 황금 사막의 지배자의 적이여! 네놈은 냄새나는 시체와 함께 이 사막의 모래에 파묻힐 것이다! 돌격하라!!”
다짜고짜 돌격 명령을 내린다.
낙타를 탄 전사들이 모래 먼지를 휘날리며 내게 돌진해 온다. 전사들의 얼굴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기도 하늘을 뚫을 정도로 높다.
당연했다. 적들은 3,000명이고 이쪽은 중급 언데드 700이다. 숫자로 따져도 4배 이상 차이 난다. 거기에 정예 엘리트 전사라면 혼자서 중급 언데드 정도는 2~3마리는 너끈히 상대할 수 있다.
양적으로 보나, 질적으로 보나 적들이 우세했다.
‘언데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병사들이었다면 사시가 곤두박질치다 못해 전장에서 탈주했을 거다.’
허나 내게 완전히 지배당한 언데드들은 적들에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저 내 의지에 따라 다가올 전투를 준비할 뿐.
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먹지도 싸지도 않고, 반역도 일으키지 않는다. 언데드는 최고의 군대였다.
‘놈들이 간과한 게 있다.’
평범한 세계의 전쟁이었다면 수적인 차이, 질적인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 전략도 통하지 않는 이런 사막에서는 더더욱.
‘여긴 아틀란티스다. 신화가 휘몰아치는 세계.’
오른팔을 위로 올린다.
‘아틀란티스의 전장은 1명의 존재로 결과가 뒤바뀔 수 있다. 그리고 이쪽엔 내가 있지.’
‘사자의 서’에는 언데드를 만드는 방법만 적혀 있는게 아니었다. 언데드 제작은 사자의 서에 적힌 것 중 기본에 불과했다.
나는 조용히 주문을 중얼거렸다. 막대한 마나가 빠져나간다.
뚜둑, 뚜두둑.
하늘에서 검은 비가 내린다. 신기한 일이었다. 새파란 하늘은 구름 하나 없이 맑았기 때문이다.
블랙 소나타.
검은 비를 맞은 언데드는 포효를 내질렀다. 끔찍한 비명이 전장에 울린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악!”
또한 검은 비에 맞은 언데드의 능력치가 일부 상승했다.
“가라, 스켈레톤 나이트들이여!”
검지로 정면을 가리켰다.
해골마를 탄 스켈레톤 나이트들이 사막 전사들에게 달려간다.
3,000 명의 적군에 비하면 100 마리에 불과한 스켈레톤 나이트는 초라하다 못해 불쌍할 지경이었다. 물론 스켈레톤 나이트는 그딴 거 모른다.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 무기를 들고 적들을 향해 돌진한다.
낙타 전사와 스켈레톤 나이트가 격돌힌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다. 스켈레톤 나이트가 박살 난다. 100 마리의 스켈레톤 나이트는 단 1초도 사막 전사들의 돌격을 막지 못했다.
“시체 폭발.”
콰아아아아아아앙!
박살 난 스켈레톤 나이트의 육체가 폭발을 일으킨다.
‘스켈레톤 나이트가 이길 거라곤 처음부터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스켈레톤 나이트의 육체가 적들과 최대한 가까이 있기를 원했을 뿐이다.
“시체 폭발!”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대규모 폭발이 일어난다. 사막 전사들은 낙타와 함께 폭발에 휘말려 모래 바닥에 떨어진다.
나는 계속해서 시체 폭발을 사용했다.
“시체 폭발! 시체 폭발! 시체 폭발!”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연신 일어나는 폭발은 수류탄보다 3~4배는 더 강력했다.
본래 시체 폭발은 마나를 잡아먹는 흑마법이다. 폭발력도 이렇게 강하지 않다. 작은 시체가 폭발해봤자 얼마나 폭발력이 있겠는가.
‘지금 내 마나 능력치는 210이다.’
시체 폭발 같은 마법을 써도 마나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거기에 마나 능력치의 영향을 받아 흑마법의 파괴력도 어마어마해졌다.
“돌격해라! 물러나지 말라! 투탕카멘만 죽이면 우리의 승리다! 놈을 죽이면 위대한 황금 사막의 지배자께서 우리에게 막대한 보상을 내려주실 거다! 술! 여자! 황금! 갖고 싶지 않은가?! 놈을 죽이는 자는 명예와 부! 모든 것을 손에 넣을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500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사막 전사들의 사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사막 전사들의 특징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사막 전사들은 더럽게 무식했다. 거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특유의 문화까지 있어서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아닌 이상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사막 전사들이 본대와 부딪혔다. 언데드 군대가 휘청이며 밀려난다. 블랙 소나타로 강화된 언데드들이 물러서지 않고 처절하게 싸우지만, 놈들을 완벽히 막아낼 수 없었다.
“투탕카멘! 내가 왔다! 나는 하텝 님의 대전사인 세투르트다!”
“크크. 목청 하나는 좋은 놈이군. 선물이다! 다크 라이트닝!”
흑마법으로 이루어진 검은 번개가 세투르트에게 쏘아진다. 세투르트는 폼으로 대전사의 지위를 얻은 게 아닌 듯 칼을 휘둘러 검은 번개를 튕겨냈다.
“놈을 막아라.”
내 친위대로 삼은 스켈레톤 나이트들이 세투르트에게 달려든다. 스켈레톤 나이트들은 하모르에게 받은 무기와 방어구를 장비했다. 세투르트를 이길 순 없어도 지금 내게 필요한 시간을 끌어줄 것이다.
‘대규모 전장에서 네크로맨서만큼 무서운 존재는 없다는 말이 있다. 그 이유를 보여주마.’
으스스한 주문을 읊조렸다.
죽은 사막 전사들이 언데드가 되어 일어난다. 이 상태로는 쓸만하지 않다. 하급 언데드에 불과하니까. 다시 주문을 읊어 중급 언데드로 만들어낸다.
‘시체가 넘쳐나는 전장에서 끊임없이 언데드를 보충할 수 있지 이게 네크로맨서의 무서운 점이다!’
영혼이 보인다.
죽은 시체에서 도망치려는 영혼들, 언데드의 몸에 갇혀 있던 영혼들이 혼란한 전장을 틈타 도망치려고 한다.
“어딜 감히! 네놈들은 모두 내 것이다!”
흑마법을 사용해 도망치는 영혼들을 붙잡았다. 사령 형태의 언데드를 만들 때 영혼들이 필요했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붙잡힌 영혼들이 비명을 지른다. 산 자에겐 끔찍한 비명이지만, 언데드에겐 달콤한 목소리로 들린다. 그리고 투탕카멘의 황금 가면을 쓴 나는 지금 언데드였다.
“크크큭.”
손을 휘젓는다. 내 손짓에 따라 언데드들이 적들에게 뛰어 다이빙했다.
“시체 폭발.”
100마리에 가까운 언데드를 한 번에 폭발시켰다. 폭발 범위는 좁아도, 그 폭발력은 어마어마했다. 한순간 모래 폭풍이 일어나 뒤덮을 정도였다. 하늘에서 내리는 검은 비가 모래 먼지를 빠르게 가라앉혀 주었다.
사막 전사들의 기세가 꺾였다. 방금 폭발에 1,000 명에 가까운 사막 전사들이 휘말려 죽었기 때문이다. 언데드 군대도 제법 휘말렸지만 적들의 사기를 꺾은 것에 만족한다.
“이 사악한 놈이!”
대전사 세투르트가 낙타에서 뛰어올랐다. 놈은 언데드의 머리를 밟으며 내게 접근했다. 가벼운 몸놀림이었다.
세투르트가 내게 칼을 휘두른다. 나는 흑마법을 사용하거나, 피하는 대신에 주먹을 휘둘렀다.
투탕카멘의 황금 가면을 썼다고 해서 천마신공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 결코 아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복부에 정통으로 용권을 맞은 세투르트의 몸이 휘어졌다. 놈의 몸이 뒤로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모랫바닥에 무릎을 짚고 일어선 그가 피를 토하며 외쳤다.
“스콜피온 킹이시여! 내게 힘을 주소서!!”
세투르트의 발아래에서 거대한 스콜피온이 나타났다. 세투르트는 거대 스콜피온 위에서 자세를 잡았다. 거대 스콜피온이 매서운 기세로 내게 달려온다.
“막아라.”
좀비들이 떼로 달려 나가 스콜피온의 앞을 막았다. 허나 스콜피온은 좀비들을 가볍게 떨쳐냈다.
“쯧. 도움이 안 되는군.”
세투르트를 향해 손바닥을 휘둘렀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신장(天魔神掌).
천마신장에 거대 스콜피온의 집게발이 터져나간다. 균형을 잃은 놈이 꼬리를 휘둘렀다. 세투르트는 휘둘러진 꼬리를 발판 삼아 나를 향해 날아왔다.
“아까와는 다를 것이다!”
“그래. 이번에는 확실하게 죽여주마.”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용수(天魔龍手).
세투르트의 칼을 손가락으로 움켜쥔다. 강기가 담긴 손가락이 칼에 파고들려고 했으나, 놈 또한 칼에 강기를 씌웠다.
“나를 얕보지 마라!”
세투르트의 힘이 갑자기 강해진다.
‘버프 계열 스킬을 사용한 건가?’
놈의 칼이 내 오른손에 파고들었다. 손바닥 절반이 베인다. 시커먼 피가 흐른다. 언데드 상태라 그런지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천마신공의 상태도 별로다. 심장이 뛰지 않아서? 폭발적인 생명력이 없어서? 어느 쪽이든 천마신공의 효율이 안좋군.’
세투르트의 칼날이 내 가슴을 가른다. 나는 담담히 왼손으로 세투르트의 어깨를 잡았다.
천마신공(天魔神功) 회천침정(回天浸精).
천마기가 놈의 몸 안으로 파고들어 회전했다. 근육은 물론이고 내장까지 한순간에 갈려 나갔다.
“……!!”
세투르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며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졌다. 나는 고개를 내려 내 몸 상태를 확인했다. 가슴팍이 갈라져 심장이 보였다. 피도 그렇고 심장도 시커멓다.
“이리 와라.”
근처에 있는 영혼을 대상으로 영혼 포식의 주문을 내뱉었다. 내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베인 손바닥이 다시 붙고, 갈라진 가슴팍이 감쪽같이 합쳐졌다.
죽은 세투르트의 시체를 바라본다.
강기를 사용할 정도의 강자의 시체와 그 영혼.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대전사 세투르트 님이 전사하셨다! 후퇴해라!!”
“후퇴해라!!”
용감하게 돌격하던 사막 전사들이 급히 낙타의 머리를 돌렸다. 내 언데드가 200마리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꽁지가 빠지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1,000명이나 있는데도 도망치다니. 현명한 놈들이군.’
놈들은 판단한 것이다.
1,000명이 동시에 내게 덤벼도 안 된다고. 현명한 판단이었다. 나는 주위에 있는 시체로 얼마든지 병력을 수급할 수 있었다.
‘도망치는 놈들을 쫓아가긴 힘들겠군.’
우선 주위에 있는 낙타와 사막 전사들의 시체부터 장악하기로 했다.
“일어나라!”
시체가 일어난다.
낙타의 경우 덩치가 커서 그런지 하급 언데드 2마리가 일어났다.
마나가 확 빠지면서 잠깐 현기증이 일어났으나, 마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차올랐다.
“낙타 시체에서 일어난 언데드까지 합쳐서 3,000 마리 정도인가…. 시체 폭발에 휘말려 사라진 시체들이 아쉽군.”
주문을 외웠다. 하급 언데드를 중급 언데드로 바꿨다. 1,000마리에 달하는 중급 언데드가 새로이 내 군대에 편성되었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다음번에는 나를 상대하기 위한 군대를 끌고 오겠지.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빨리 사자의 서 2와 3을 손에 넣어야 한다.’
나는 주변의 언데드에게 명령했다.
“꾸물거리지 말고 움직여라, 이 쓸모없는 시체들아!”
내 명령에도 불구하고 꾸물거리는 좀비와 구울의 움직임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럭저럭 몸빵 역할은 하는데 너무 굼뜨다.
‘가만. 흑마법 중에 시체를 합쳐 만드는 흑마법이 있던데. 키메라였나? 이 느려터진 언데드 새끼들을 발업 질럿으로 개조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