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이 지나온 나는 부족 무리를 발견했다. 작은 규모도 아니었다. 대충 봐도 3,000명 이상의 대규모 부족으로 보인다. 작은 도시를 형성했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런 대규모 부족이 왜 외곽 지역에 있는 거지?’
이런 사막에서 대규모 부족은 두 가지 경우에 따른다. 하나는 대형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하여 도시를 형성하거나, 부족민이 흩어져 다른 도시로 떠나거나.
대부분 후자다. 오아시스가 있다고 해도 여긴 사막인지라 모든 게 열악하다. 사막인지라 밭농사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여기에 자리를 잡았다는 건… 식량 문제를 해결했다는 거군. 사냥감이 많은 건가.’
규모에 비해 인프라가 열악해 보인다. 외부와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 것 같다.
‘교류를 거부하는 부족이라… 들어는 봤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군.’
나는 언데드 군대에게 전진을 명령했다.
3,000명? 고작 그것으로 내 군대를 막을 순 없다. 설령 상대가 1만 명이라고 해도 질 자신이 없었다.
상대 부족 쪽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그들은 모두 무장을 했으나,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의 최선단에는 전사가 아닌 늙은이가 있었다. 허리가 굽고 지팡이로 몸을 지탱하는 노인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나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노인의 뒤에 있는 전사들도 마찬가지다.
‘항복인가.’
무덤덤했다.
상대가 항복한다고 해서 내가 그 항복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었다.
지금 내겐 시체가 필요했고, 지도에서는 이곳에 사막의 서(3)가 있다는 표시가 있다. 이놈들을 모조리 죽이고 사자의 서(3)는 느긋하게 찾으면 된다.
“투탕카멘이여.”
공격 명령을 내리기 전에 노인이 말했다. 작게 말한 것 같은데 목소리가 공간 전체에 울린다.
‘주술인가. 보통 노인이 아니었군.’
부족 전사들의 앞에 섰으며, 주술을 사용한다? 이 노인이 부족장인 게 분명했다.
“저희 열바람 부족은 당신의 움직이는 죽음의 군대와 싸울 의지가 없습니다.”
“그런 것치곤 전사들이 완전 무장한 상태인 것 같다만.”
“저항 의지가 없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투탕카멘이여, 우리는 대화로 이 상황을 풀어갈 수 있습니다.”
“귀찮군. 굳이 대화할 필요가 있나? 너희가 저항하든 말든 관심 없다. 어차피 결과는 똑같기 때문이다. 거주지에 틀어박혀도 상관없다. 끄집어내서 끝장을 내줄 테니.”
전투 의지를 갖추자, 언데드 군대가 반응했다. 언데드들이 무기를 치켜들며 당장 달려들 준비를 한다. 적들이 주춤거리며 무기를 든다. 그들의 뒤쪽, 마을에서는 활을 든 아녀자들이 보인다.
“투탕카멘이여! 기다려주십시오! 우리는 모두 죽인다면 당신은 사자의 서를 얻을 수 없습니다!”
넘겨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사자의 서(3)를 얻어 완성시키는 것이다.
“…내가 사자의 서를 노리고 이곳에 온 걸 알고 있군.”
“그 험난한 절벽을 지나 여기에 올 이유는 그것 말고 더 있겠습니까?”
“사자의 서를 내놓아라. 순순히 내놓는다면 너희를 살려주겠다.”
거짓말이었다. 지금 내겐 언데드 군대가 필요했다. 사자의 서를 손에 넣자마자 이 사막 부족을 공격할 것이다.
“사자의 서에 봉인이 걸려있습니다. 사자의 서를 풀기 위해선 저, 열바람 부족의 족장인 크리세마의 인장이 필요합니다. 총 세 가지의 인장이 필요하지요.”
나는 크리세마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게서 살아남기 위해 개소리를 지껄이는 게 아닌지 의심이 됐다.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 봉인된 사자의 서와 인장인가 뭔가를 모두 내놓아라. 지금 당장 내놓지 않으면 네놈을 찢어 죽이겠다. 그리고 언데드로 만들어 평생을 부려 먹어주마.”
“저를 죽이면 사자의 서의 봉인을 풀 방법이 없습니다. 제 후계자는 인장을 다루는 방법을 모릅니다.”
“하하. 돌겠군. 나를 너무 무시하는군. 너를 죽이고, 네 영혼에 인장의 정보를 얻겠다.”
“저는 의미 없는 죽음과 계약했습니다. 저의 사후는 의미 없는 죽음에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제 죽음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거짓말을 지껄인다고 하기에는 혀가 너무 매끄럽다.
‘의미 없는 죽음. 신좌가 분명하다. 일단 신좌가 언급되었으니 거짓일 확률은 줄어든다.’
마음 같아선 죽여버리고 싶다. 3,000명을 모조리 언데드로 만들어 내 앞에서 개긴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허나 지금은 냉정하게 생각할 때다. 눈앞에 있는 3,000명보다 사자의 서(3)의 가치가 더 높다.
‘사자의 서를 완성시키고 이놈들을 죽이면 된다.’
그 전에 크리세마의 말이 진실인지 확인해야 했다.
“봉인된 사자의 서를 가져와라. 내 두 눈으로 확인하겠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사자의 서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마을이 좁으니 당신의 군대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함정처럼 보이는군.”
“함정이 아닙니다. 투탕카멘이여. 당신은 군대가 없더라도 우리 부족을 몰살할 수 있습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맞긴 하지. 사자의 서를 내 앞에 가져올 수는 없는 거냐?”
“아까도 말했듯이 사자의 서는 봉인되어 있습니다. 그 봉인은 이 땅과 연동되어 있기에 그 누구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사자의 서를 움직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혀를 찬 나는 가마에서 내렸다.
“사자의 서로 안내해라. 내겐 너희 따위는 단숨에 쓸어버릴 힘이 있음을 잊지 마라.”
“물론 알고 있습니다.”
• • •
크리세마의 말은 사실이었다.
사자의 서(3)는 봉인되어 있었다. 제단 위에 놓인 사자의 서(3)를 보자마자 봉인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마 흑마법 적성(SSS) 때문이리라.
하지만 나는 바로 포기하지 않고 제단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지금의 내 힘이라면 봉인을 없앨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자의 서(3)에 손을 뻗는다.
키이이잉!
보이지 않는 힘에 손이 밀려났다. 마나를 사용해 봤지만 의미 없었다. 이질적인 힘이 사자의 서(3)를 지키고 있다.
천마신공도 이용해봤으나 봉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젠장. 시스템의 법칙이군. 이건 시스템이 정한 방식이 아니면 봉인을 풀 수 없다.’
크리세마가 자신만만하게 나선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봉인을 풀 수 있는 방법은 놈의 인장 3개뿐이다.
나는 몸을 돌려 크리세마에게 걸어갔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다. 그게 되려 짜증 났다.
“이제 제 말을 믿으십니까?”
“인장을 내놔라.”
“제 부탁 3개를 들어주신다면 사자의 서의 봉인을 풀 수 있는 3개의 인장을 드리겠습니다.”
듣자마자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허나 방법이 없었다. 놈을 죽이면 사자의 서를 완성시킬 수 없다.
“그 3개의 부탁이 뭐지?”
“첫째는 우리 열바람 부족을 건드리지 않을 것을 맹세해주십시오.”
“맹세하겠다.”
“말뿐인 맹세는 믿을 수 없습니다.”
“어쩌란 거냐?”
크리세마가 잠시 지팡이를 놓고 양손을 움직인다. 신묘한 손놀림이었다. 아마 주술의 일종일 것이다.
쿠그그그그.
바닥이 살짝 흔들리고 무언가가 위로 솟아오른다. 그것은 불길한 기운을 흩뿌리는 오벨리스크였다.
“무의미한 죽음의 힘이 깃든 오벨리스크입니다. 여기에 맹세해 주십시오.”
“맹세를 어기면 어떻게 되지? 이 오벨리스크가 나타나 내 몸을 찌르기라도 하나?”
“무의미한 죽음이 당신의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갈 것입니다.”
“그거참 무섭군.”
나는 비아냥거리며 맹세했다.
오벨리스크에 내 이름이 새겨진다. 신의 힘 때문인지 기만(SS)을 사용할 수 없었다. 내 이름인 성유진이란 세글자가 정확히 새겨졌다.
「오벨리스크에 맹세했습니다. 맹세를 어길 경우 합당한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부탁은 무엇이냐?”
“두 번째 부탁은 당신이 우리 부족의 시련을 받는 것입니다. 부족의 전사 중 제 선택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니 시련을 통과하여 당신의 정당함을 증명해 주십시오. 시련의 통과한다면 그 누구도 당신에게 불만을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귀찮게 구는군. 세 번째는?”
“절벽을 지나오셨으니, 그 아래에 있는 존재를 느끼셨겠지요. 그 괴물은 거인입니다. 한 번씩 밖으로 나와 우리 부족민을 잡아먹고 갑니다. 놈을 죽여주십시오.”
“부족민을 잡아먹는데 여태 방치했다고?”
“그 거인은 저희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합니다.”
“알겠다. 우선 첫 번째 인장을 내놓아라.”
“투탕카멘이여, 손을 내밀어 주소서.”
오른손을 내밀었다. 크리세마가 주문을 외웠다. 새하얀 빛이 나타나더니 내 오른손에 달라붙었다. 창백한 손등에 붉은색 문양이 그려졌다.
“첫 번째 인장입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인장을 모두 얻으신다면 사자의 서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인장을 네가 가지고 있었다면, 네가 사자의 서를 가질 수 있지 않나?”
“저는 인장을 맡고 있을 뿐입니다. 인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사자의 서는 감히 제게 허락되지 않은 물건입니다. 곧 해가 저뭅니다. 당신이 머물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됐다.”
“저희 부족은 손님을 성대하게 환영합니다. 음식과 무희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거절하지 마십시오.”
무희.
그 이름이 나오자 좀 망설여졌다. 무희랑 떡 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지금의 내겐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현재 투탕카멘의 황금 가면의 영향으로 죽은 상태다. 죽었기 때문에 육체의 감각이 거의 없었다. 멀쩡한 건 청각과 시각 정도다. 무엇보다 심장이 뛰지 않아 온몸에 피가 돌지 않는다. 자지가 서지 않는다는 거다.
‘섹스를 하지도 못하는데 무희의 섹시한 춤을 봐야만 한다는 건 괴롭다. 그건 고문이다.’
이 일이 끝난 뒤에 무희와 실컷 놀 것이다.
“부족의 시련이라고 했나? 그것에 대해서 설명해라.”
“부족의 뒤편에 구덩이가 하나 있습니다. 크고 깊은 구덩이지요. 그곳에 들어가 깃털을 가져오시면 됩니다.”
“고작 그딴 게 시련이라고?”
“이 시련에 도전하여 성공한 전사는 매우 적습니다. 1,000명이 시련에 도전한다면 990명의 전사가 돌아오지 못합니다. 나머지의 절반은 불구가 되어 돌아오고, 나머지 절반만이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했습니다.”
“구덩이 안에 뭐가 있지?”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게 규칙입니다.”
“지금 시련에 도전 하겠다. 그 구덩이에 날 안내해라.”
“…알겠습니다. 저는 투탕카멘의 뜻을 존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