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진짜가 아니라 가짜였나? 진짜는 어디에 있는 거지?’
시선이 여기저기 옮기며 하텝을 찾는다.
‘나는 하텝을 본 적 없다. 허나 황금 사막의 지배자라면 보통 인물은 아닐 터. 분명 특이한 특이한 분위기를 풍길 거다.’
하텝에 대한 정보는 하르모를 통해 들었다.
놈의 성질상 전선 가까이에 있을 놈이 아니다. 가장 안전한 뒤쪽에 있을 것이다.
‘설마 여기에 없고 도시 안에 있는 건가?’
그 가능성은 작았다.
특수 이벤트가 시작되며 하텝 또한 나와 비슷한 특성과 스킬을 받았다는 정보가 있다. 그의 신하들이 갑자기 잘 따르기 시작했다고 했으니… 아마 나처럼 지배력과 관련된 특성과 스킬일 것이다.
‘지배력을 온전히 발휘하기 위해선 전장에 있어야 한다.’
하텝의 군대는 사기가 낮았다. 그러나 도망치는 자는 거의 없었다. 저 정도로 사기가 낮으면 사막 전사 수십 명이 전장에서 도망쳐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텝의 지배력이 군대를 휘어잡고 있다는 뜻이다. 놈은 여기 전장 어딘가에 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하텝을 찾을 수 없었다.
‘놈이 작정하고 숨는다면 찾을 방법이 없다. 아마 황금 모래 병사들 사이에 숨어 있겠지. 황금 모래 병사는 죄다 똑같은 외형을 가졌으니까.’
적의 대장을 죽여서 간단히 승리를 취한다는 전략은 깔끔히 포기했다.
적군의 옆구리를 덮치며 시선을 끌었던 거대 메뚜기들의 수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흑마법을 이용해 거대 메뚜기들의 회군을 명령했다.
거대 메뚜기들의 빠른 발은 매우 쓸만하다. 당장 거대 메뚜기를 잃기는 아까웠다.
“유령 부대! 너희들도 움직여라! 슬슬 사막 전사들을 정리해라!”
“끼야아아아아아아악!”
유령 부대가 비명을 지르며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느릿했다. 해가 떠 있는 대낮이기 때문이다. 유령은 주위가 어두워야 제힘을 발휘한다.
‘그래도 유령의 특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순수 물리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는 특성. 단순 무식한 사막 전사들을 성가시게 만들기엔 충분한 능력이었다. 물론 기운이 담긴 공격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으나, 보통의 사막 전사에겐 무기에 기운을 담아 휘두르는 것 자체가 막대한 집중력을 소모하게 만든다.
“아아아아악! 머리가! 머리가 아프다!”
“이런 미친놈이! 지금 누굴 공격하는 거냐?!”
“속지 마라! 유령의 환각이다!”
“제, 제길! 저 자식 지금 빙의 당했어!!”
유령들이 사막 전사 군대에 혼란을 부추긴다. 다만, 베테랑 사막 전사들은 침착하게 유령에 대응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피해는 크지 않았다.
쿠웅. 쿠웅. 쿠웅!
저 멀리서 발 구르는 소리가 울린다. 15만에 달하는 황금 모래 병사들이 일제히 발을 맞춰 진군하고 있었다. 더 이상 지켜보지 않기로 정한 모양이다.
‘이러면 나도 결단을 내려야겠군.’
고착된 최전선을 계속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최전선에 적과 싸우고 있는 중급 언데드가 보인다.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망설였다. 중급 언데드가 아깝게 느껴졌다. 나는 정신을 되잡았다. 이따위 언데드를 아까워할 필요는 없다. 중급 언데드라도 언제든지 다시 만들면 된다.
나는 손가락을 뻗어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중급 언데드를 손가락으로 쭈욱 가리켰다.
“시체 폭발.”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최전선의 가장 앞줄에 폭발이 일어났다. 연쇄 폭발은 아군, 적군 가리지 않고 삼켰다. 최전선에 있는 사막 전사들은 한순간 극심한 공포에 빠졌다. 반대로 언데드들은 그딴 거 없이 발생한 빈자리를 바로바로 채우며 전투를 이어나간다.
“이 정도면…. 굴라! 데스 나이트와 함께 적의 전열을 흩트려라!”
“알겠다. 한 번 휘젓고 오지.”
굴라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녀는 행동도 빠릿빠릿했다. 해골마에 가볍게 올라타더니 데스 나이트들을 이끌고 전장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시체 폭발에 놀란 사막 전사들은 종횡무진 날뛰는 데스 나이트들의 돌격을 막지 못했다.
“로드시여! 무언가의 방해가 들어왔습니다!”
뒤쪽에서 나를 불렀다. 나는 고개를 획 돌렸다. 해골 지팡이를 손에 쥔 리치들이 당황해하고 있었다.
“방해? 무슨 방해 말이냐?”
“언데드를 만들 수 없습니다!”
언데드의 생성을 맡고 있는 리치였던 모양이다.
“무슨 개소리냐. 널리고 널린 게 시체 아니냐. 적들이 마법으로 방해하는 거냐?”
“마법 같은 게 아닙니다. 좀 더 고차원적인 힘이 방해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죽음과 관련된 신이 언데드 제작을 방해하는 듯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나는 직접 언데드 제작 마법을 사용했다. 흑마법이 시체를 감싸는 순간이었다. 리치의 말대로 어떠한 힘이 방해한다. 흑마법의 본질을 거부하는 듯한 느낌이다.
「무의미한 죽음(僞)이 올바른 죽음을 원하고 있습니다.」
「당분간 올바른 죽음에 반하는 행위는 할 수 없습니다.」
무의미한 죽음.
다시 말해 오시리스가 나를 방해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혀를 찼다. 언데드 제작이 막힌 건 상당히 큰 타격이다.
“젠장. 너희는 일단 황금 모래 병사들 쪽을 전담해라. 마법을 뿌려 견제하던가, 어딘가에 숨어 있는 하텝을 찾아내라!”
“예, 로드!”
지능 높은 언데드는 이게 편했다. 대충 명령해도 자기들끼리 해야 할 일을 찾아서 알아서 한다.
마음이 답답할 땐 시원한 걸 봐야 한다.
나는 굴라가 이끄는 데스 나이트 부대를 눈으로 좇았다. 사막 전사들 사이를 휘젓는 데스 나이트 붇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뻥뚫리게 만들었다.
“로드시여!”
“또 뭐냐?”
“후방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모래 폭풍이 일어나 하급 언데드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듣기만 해도 끔찍한 말에 고개를 획 돌렸다.
모래 폭풍. 정확하게는 토네이도 3개가 하급 언데드를 휩쓸고 있었다. 토네이도에 휘말린 하급 언데드는 갈기갈기 찢어지거나, 하늘로 치솟았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모래 폭풍은 절대 아니었다.
“저 모래 폭풍부터 막아라! 모래 폭풍이 커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소리를 지르며 흑마법을 사용했다.
모든 것을 무겁게 만드는 저주의 흑마법이다. 토네이도에 직접 사용했다. 덩치를 불러가던 토네이도가 저주에 맞아 녹아내리듯 무너진다. 하나의 장관이었으나, 지금은 전쟁 중이다. 느긋하게 구경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리치들이 나를 따라 흑마법을 사용해 토네이도에 대응했다.
썩 만족스럽진 않았다. 이미 2,000 마리에 달하는 하급 언데드가 행동 불가에 빠졌다.
「오아시스의 주인(僞)이 분노합니다.」
‘이 새낀 또 왜 지랄이야.’
타이밍을 생각하자 왜 이러는지 답이 나왔다.
모래 토네이도를 일으킨 건 오아시스의 주인(僞)이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하텝은 오아시스의 주인(僞)과 손을 잡은 것 같다.
「오아시스의 주인(僞)이 모래 파도를 일으킵니다.」
바닥이 흔들린다.
사막의 모래가 물결치기 시작하더니 왼쪽에서 모래 파도가 일어났다. 모래 파도가 언데드 군단을 덮친다.
“망할. 귀찮게 하는군.”
나는 리치 20마리에게 모래 파도에게 대응하도록 명령했다. 리치의 마법이 모래 파도를 잠재우기 시작했다.
‘이러면 당분간은 모래 파도에 버틸 수 있을 거다.’
고개를 획 돌려 정면을 노려본다.
하텝은 오아시스의 주인(僞)을 끌어들였다. 어떻게 끌어들인 건지는 뻔했다. 인신 공양. 원래부터 인신 공양을 원했던 신이 오아시스의 주인이었다. 막대한 인신 공양을 받고 하텝을 도와주는 거겠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오아시스의 주인(僞) 보다는 하텝을 죽여야 한다. 하텝! 네놈만 광역기를 쓸 수 있는 줄 안다면 큰 착각이다.’
나는 아껴뒀던 수를 꺼냈다.
「모세의 지팡이
한 달에 한 번 10개의 재앙 중 하나를 무작위로 일으킨다.
일주일에 한 번 물을 가를 수 있다.
랭크: S」
모세의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10개의 재앙 중 하나를 사용할 생각인데 내가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조금 긴장했다. 10가지의 재앙 중 쓸모없는 게 몇 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개구리나 이다. 개구리나 이는 너무 약했다. 최악은 물이 피로 변하는 재앙이었다. 이 전장에는 강이 없으니 없는 것만 못하다.
모세의 지팡이는 여러 가지로 변수가 크다. 그래도 나는 자신 있었다.
‘내 행운을 믿는다.’
투탕카멘의 황금 가면을 쓴 지금의 내 행운 수치는 80.
행운은 좀처럼 올라가지 않고, 일부러 올리지 않는 능력치라는 걸 생각하면 80만으로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능력치일 것이다.
「모세의 지팡이를 사용합니다.」
「10가지 재앙 중 하나를 무작위로 일으킵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재앙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우박이 떨어집니다.」
콰르르릉.
하늘에서 먹구름이 잔뜩 몰려온다. 순식간에 주변이 어두워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적의 진영에서 우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박도 그냥 우박이 아니다. 무려 주먹만 한 우박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사막 전사들이 깜짝 놀랐다. 그들은 겁에 질려 방패를 머리 위로 올렸다. 우박에 맞은 황금 모래 병사들의 몸이 조금씩 깎여 나가는 게 보인다.
우박에 정통으로 맞은 황금 모래 병사는 몸이 붕괴하여 사라졌다. 물론 황금 모래 병사들도 재빠르게 방패를 위로 들어 우박을 막아냈다.
그러나 우박이 워낙 커서 그런지 방패로도 완벽하게 막기 힘들었다.
퍽퍽퍽퍽퍽퍽퍽!
적들에게 떨어지는 우박의 경쾌한 소리가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하하하하하하하!”
전세가 바뀌었다.
토네이도와 모래 파도로 인해 놈들에게 기울어지던 승기가 내게 다가온다.
더 기쁜 소식은 하텝을 찾아낸 것이다. 우박을 완벽하게 막기 위한 것인지 황금 모래 병사들이 어느 한 지점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하텝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황금 모래 병사가 뭉칠 리 없다.
“거기 있었군, 하텝!”
반가움의 의미로 키클롭스에게 명령해 고깃덩어리를 던졌다. 고깃덩어리가 떨어지면 바로 시체 폭발을 사용해 한 방 먹일 계획이었다.
촤아아악!
황금 모래 병사가 뛰어오르며 칼을 휘둘렀다. 고깃덩어리가 단번에 갈라졌다. 나는 시체 폭발을 사용했다. 시체 폭발이 통하지 않았다.
‘마법을 막아내는 뭔가가 있나?’
미간을 좁히며 고깃덩어리를 벤 황금 모래 병사를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