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죽음을 거둬가겠노라.”
오시리스가 선언했다.
“웃기고 자빠졌군. 언데드 군단!”
내가 외쳤다.
모래 폭풍에 휘말려 여기저기에 떨어진 언데드가 몸을 일으킨다. 그 수는 아까에 비하면 1,000마리도 되지 않는다. 아직 그 형태가 남아 있는 것들은 대부분 상급 언데드였다.
“저놈을 죽여라!”
언데드들이 일어나 오시리스로 향한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딴 언데드들이 오시리스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승리가 아니라 정보였다. 조금이라도 좋으니 오시리스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 줬으면 한다.
“너희의 적은 내가 아니다.”
오시리스가 말했다.
오시리스를 향해 진군하던 언데드들이 우뚝 멈췄다. 그대로 몸을 돌리더니 내 쪽으로 진군한다.
당황한 나는 주춤거렸다.
“머, 멈춰라!”
언데드에게 명령을 내린다.
통하지 않았다. 언데드들은 멈추지 않았다. 나를 향한 적대감을 내보이며 천천히 걸어온다.
-너를 죽이겠다.
-진정한 죽음의 주인께서 네놈의 목숨을 원한다.
-이제야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는구나.
-죽어라! 지옥에서 네놈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복수하겠다!
-아버지의 원수!
사방이 시끄러웠다.
내가 붙잡고 있던 70만의 영혼이 내 지배에서 벗어나 날뛰는 것이다.
나는 내게 저주를 내뱉는 영혼들 덕분에 도리어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지배력이 약해진 건 확실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 상대는 오시리스. 명계의 신이니까.’
고유 특성, 노 라이프 킹(SS)이 있었더라도 언데드에 대한 지배력을 빼앗겼을 것이다.
‘본래 지배력이 사라지면 붙잡았던 영혼들이 흩어져야 정상인데 여기에 모여서 나를 향해 저주를 내뱉고 있다. 오시리스의 영향이라고 봐야겠지.’
나는 재빨리 투탕카멘의 황금 가면을 벗었다. 답답한 건 둘째 치고 황금 가면을 쓰고 있는 동안은 죽은 자 취급인지라 오시리스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황금 가면을 벗자 답답함이 사라졌다. 몸은 훨씬 더 가벼워진 것 같았다. 내친김에 몸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액세서리도 벗는다. 전부 네크로맨서와 관련된 물건들이라 지금 내겐 필요 없었다.
“후우. 벗으니 훨씬 낫군.”
언데드 한 마리가 나를 향해 뛰어온다. 온몸에 갑주를 걸친 데스 나이트였다. 데스 나이트는 정상인 상태가 아니었다. 왼팔은 없었고 투구도 어딘가로 날아가서 썩은 해골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놈은 나를 향해 죽음의 기운이 흐르는 칼을 휘두른다.
‘정상이 아닌 탓인지 평소보다 느려서 공격이 훤히 보이는군. 고작 그딴 공격에 내가 당해줄 것 같나.’
데스 나이트의 공격을 상체를 비틀어 피해냈다. 상체가 회전하며 발생한 힘을 오른팔로 모아 주먹을 휘둘렀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콰아앙!
데스 나이트의 상체 갑옷이 박살 나며, 그 몸이 뒤로 날아가 모랫바닥에 처박힌다. 움찔거리며 몸을 일으키려던 데스 나이트는 곧 완전히 침묵했다.
-으으으으.
-황금 가면을 벗었는데 왜 이렇게 강한 거지?!
-죽음의 신이시여! 놈을 죽여주소서!
-기분 나쁜 기운이다.
-죽음의 신이 너를 지옥으로 끌고 갈 것이다!
“시끄러우니 좀 닥쳐라.”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파형(波形).
진각을 밟자 마기가 사방으로 퍼진다. 내게 저주를 내뱉던 영혼들이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
“크어어어어어어!”
언데드가 몰려들었다. 나는 앞으로 걸어가며 덤벼드는 언데드를 모조리 쳐냈다. 지급 내게 위협이 되는 건 상급 언데드인 데스 나이트 정도인데, 데스 나이트의 수는 적었고 그마저도 멀쩡하지 않았다.
‘오시리스고 나발이고 내가 쓰러뜨리면 그만이다.’
이곳에 있는 언데드 따위로는 날 막을 수 없다.
“마스터!”
저 멀리서 굴라가 달려왔다.
순간적으로 식겁했다. 굴라가 적으로 돌아섰다면 아주 골치아파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굴라는 내게 적대적이지 않았다.
“굴라! 황금 전사는 쓰러뜨린 거냐?!”
“피해라!”
바닥을 뒤덮는 그림자가 보였다. 나는 백스텝을 밟으며 뒤로 피했다. 내가 있던 곳에 황금 전사가 유성처럼 떨어졌다. 그 여파로 바닥의 모래들이 위로 솟구쳤다.
모래 사이로 창이 날아왔다. 황금 전사의 등장에 반응이 살짝 늦었다. 굴라가 내 앞으로 튀어나와 검으로 창을 쳐냈다.
“마스터! 내가 놈의 행동을 저지하겠다! 마스터는 놈에게 일격을 먹여라! 우리 둘이라면 빠르게 놈을 쓰러뜨릴 수 있다!”
굴라가 황금 전사에게 달려들었다. 황금 전사가 손을 뻗는다. 모래가 그 손에 모이더니 창으로 변했다. 창과 검이 부딪친다.
굴라의 폭발적인 검술을 유려한 창이 막아낸다. 그들이 결판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실력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굴라가 무리해서 앞으로 나간다. 창이 그녀의 옆구리를 때렸다. 갑옷에 금이 갔다. 굴라는 황금 전사에게 검을 던졌다. 황금 전사가 상체를 기울여 검을 피하는 것을 노려 거리를 좁히고 황금 전사의 팔을 붙잡아 움직임을 봉쇄한다.
“마스터! 지금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지금 내가 공격하면 무사하지 못해!”
“시간이 없다!! 어서!!”
굴라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다급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천마군림보를 밟아 공간을 넘어 황금 전사의 앞에 도착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여기선 망설이는 것 자체가 굴라에게 실례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쾅!
주먹이 황금 전사의 가슴을 때린다. 그 충격파는 굴라에게까지 닿았다. 굴라가 이를 악물었다.
‘황금 전사를 쓰러뜨리기엔 부족하다.’
천마신공(天魔神功) 회천침정(回天浸精).
황금 전사의 내부에서부터 천마기가 회전한다. 황금 전사의 몸에서 모래가 터져 나왔다. 모래가 마치 피처럼 쏟아졌다. 그럼에도 황금 전사는 무너지지 않는다. 놈이 나를 향해 손을 뻗는다.
퍼억!
굴라의 주먹이 황금 전사의 머리를 터트렸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폭(天魔爆).
천마기가 폭발했다. 그제서야 황금 전사의 몸이 무너졌다.
“굴라!”
나는 쓰러지는 굴라의 몸을 붙잡았다.
“마스터. 잘 들어라. 여긴 지옥으로 변하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 이 지옥의 주인의 추방령을 거절할 수 없다. 살아있는 시체께서도 도와줄 수 없다. 그분의 지옥은 이곳의 상극이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이 사막이 완전히 지옥화 되기 전에…!”
굴라의 말을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 굴라의 몸에서 냉기가 흘러나오더니 그대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추방당한 건가.’
나는 몸을 바로 세웠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황금빛 모래들은 점점 그 색을 잃고 회색빛으로 변해간다.
「지옥화가 진행 중입니다.」
「죽음의 바람이 붑니다. 당신의 생명력을 빼앗습니다.」
바람을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이대로 계속 가만히 있으면 죽을 뿐이다.
「천공의 주인이 시스템에게 항의합니다.」
「무의미한 죽음은 지금 명백히 선을 넘었다.」
「시스템이 대답합니다.」
「넘지 않았습니다. 인과는 허용되고 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허락 범위 내입니다.」
허락한다고?
이렇게나 대놓고 개입하고 있는데?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시스템에게 물었다.
“하텝의 계약 신좌가 오시리스였나? 하텝은 어차피 죽었으니 말해줄 수 있잖아.”
「그렇습니다.」
상황이 그려진다. 하텝은 오시리스와 어떤 계약을 했을 것이다. 하텝의 입장에서 보험을 들어놓는 것도 나쁜 선택이 아니었을 테니까. 오시리스는 죽음의 신이니 죽음과 관련된 계약일 테고…. 그 계약을 이용해 오시리스는 강림했다.
‘오아시스의 주인(僞)이 중개를 했을 수도 있겠군. 하텝은 오아시스 주인에게 수십만 명을 바쳤다고 했으니….’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죄다 치웠다. 지금 중요한 건 원인이 아니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오시리스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무리해서 천마군림보를 밟았다. 허나 공간 이동이 되지 않았다.
‘…공간을 지배할 수 없다.’
천마군림보의 위력은 공간 지배에서 나온다. 공간을 지배할 수 없으니 천마군림보가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포기하지 않았다. 천마군림보로 공간 이동을 할 수 없어도 뛰어가면 된다. 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내 몸을 붙잡고 위로 잡아 올랐다.
“커억?!”
압력이 내 몸을 짓누른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온몸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이를 악물며 압력을 버텨내며 주위를 둘러본다. 하늘은 이미 시커멓고, 사막은 회색으로 변했다.
녹색 피부의 오시리스는 가만히 서있는다.
회색 모래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난다. 썩은 몸에 낡은 붕대를 휘감은 미라들이다. 그 죽은 자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 보이는 놈들만 10만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몇 배는 더 늘어날 것이다.
‘발로르를 상대할 때와는 전혀 다르다…! 이 세계 자체가 내 적이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완전 회복과 블랙 앙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의미 없다. 다시 살아나봤자 죽을 테니까.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머릿속에 내가 가진 물건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지금 이 상황에선 뭐가 필요한 거지?
「마천의 왕이 1,000AP를 후원합니다.
“사자의 서.”」
마천의 왕의 목소리가 들린다.
세계의 비밀을 알려주듯 은밀하고, 부처마저 유혹할듯한 음탕한 목소리로 답을 알려주었다.
“…그렇군.”
사자의 서를 소환한다.
사자의 서가 가진 능력 대부분은 언데드와 관련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써야 할 능력은 그딴 것들이 아니다.
여기서 내게 필요한 능력은 하나다.
지옥과의 연결.
이미 선례는 있었다. 니플헤임과 연결하여 살아있는 시체(僞)와 거래해 굴라를 빌려오지 않았던가.
‘헬도 있고 오시리스도 있다. 분명 그놈도 있을 거다.’
감각이 뻗어나간다. 아주 멀리 뻗어나가던 감각은 이윽고 하나와 연결된다.
사자의 서가 시커먼 키운을 줄줄 흘린다.
나는 익숙함을 느꼈다. 이 기운은 마기(魔氣)였다.
“거래를 원한다, 마천의 왕.”
지옥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거대한 존재가 나를 인식한다.
「마천의 왕이 마천의 왕(僞)에게 강림합니다.」
「시스템이 마천의 왕에게 페널티를 부여합니다.」
“바치는 것은 70만 1910개의 영혼.”
이곳에 있는 영혼들.
영혼에 대한 지배력은 떨어졌지만, 그 소유권은 내게 있다. 영혼들이 흩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게 내 최고의 행운이었다.
그는 내 거래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자의 서를 통해 그의 의지가 전해져온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내게 원하고 있다. 그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마라 파순.”
「마천의 왕(僞)이 당신에게 강림합니다!」
지이이이이이이잉.
시커멓게 변한 하늘이 반으로 갈라지고 지옥의 만다라가 퍼지며 온 하늘을 뒤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