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덩!
세상과 함께 죽음의 바다에 빠졌다.
죽음에 갇혔다. 온갖 죽음이 스며들어온다.
마천의 왕이 아니라, 내가 여기에 빠졌더라면 단 3초도 견디지 못하고 죽었으리라. 육체뿐만이 아니라 그 영혼까지 완벽한 죽음을 맞이했겠지.
마천의 왕은 죽음에서 버티고 있었다. 오히려 지금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메마른 죽음이다.”
마천의 왕이 말했다. 그가 몸에 두른 만다라의 끝자락부터 서서히 붕괴하고 있었다. 나는 마천의 왕이 여유를 가지는 이유를 몰랐다.
“전부 알고 있는 죽음들이다.”
나는 답답함을 느꼈다.
이대로 있으면 확실하게 죽는다.
이 죽음이란 개념이 육체와 영혼을 죽일 것이다.
‘움직여라, 마천의 왕! 신인 너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나는 확실하게 죽는다! 이대로면 너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자세히는 몰라도 알 수 있다. 이 힘은 신에게도 통한다. 오시리스의 신격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나는 초조함을 느꼈다. 완전 회복을 쓰더라도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아무 의미 없기 때문이다.
“성유진. 신을 죽이고 싶나?”
마천의 왕이 물어왔다.
무슨 의미인지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다른 이의 시선이 신경 쓰이나? 괜찮다. 시스템이라 할지라도 여기까지 들여다볼 순 없다. 죽음과 공허가 맞닿은 특수한 곳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천의 왕은 일부러 여기에 떨어진 게 아닐까.
“이 힘을 기억해라. 어지간한 신들은 이 농도 짙은 죽음에 저항하지 못한다. 이 죽음을 경험한다면… 웬만한 신들은 죽일 수 있겠지.”
‘…너는 내가 신을 죽이기로 원하는 거냐?’
“죽여도 좋고, 죽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가 너의 행보를 끝까지 볼 수 있기를 원한다. 너는 수천 만년 만에 얻은 즐거움이다. 나는 네가 아틀란티스에 갇혀 있지 않기를 원한다.”
만다라가 부서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죽음에 떠밀려 누워있던 마천의 왕이 몸을 일으켰다.
“슬슬 벗어나야겠군.”
만다라가 빛을 내며 펼쳐진다.
나는 마천의 왕이 여유로웠던 이유를 알았다. 그의 만다라는 오시리스의 죽음보다 더 상위에 있는 개념이었다. 마천의 왕은 처음부터 죽음을 버틸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만다라가 역으로 죽음을 잠식한다.
“천마(天魔)는 빼앗는 자다. 죽음이라 하더라도 빼앗지 못할 건 없다.”
지이이이이이이잉.
죽음을 빼앗은 만다라가 펼쳐진다.
그곳은 우주였다. 무수히 빛나는 별들 위에 앉은 마천의 왕이 담담히 정면에 있는 행성을 내려다본다.
나는 저 행성이 아틀란티스임을 알았다.
마천의 왕이 두 눈에 힘을 주었다. 시야가 점점 클로즈업되며 사막에 서 있는 오시리스가 보였다.
오시리스는 마천의 왕을 올려다보며 망연히 중얼거렸다.
“…이 정도의 힘의 차이가 있었는가. 말도 안 된다. 처음부터 나를 가지고 놀았던 것인가?”
만다라가 빛나며 회전한다. 우주와 연동된 지옥의 만다라는 삼라만상 그 자체였다.
오시리스의 존재가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오시리스는 졌다. 근원인 죽음으로 마천의 왕을 죽이지 못한 순간부터 패배가 확정됐다.
근원.
그렇다. 신을 죽이기 위해선 신의 근원을 이겨내거나, 흩트려야 한다.
오시리스의 근원은 죽음이었고, 마천의 왕은 그 죽음을 이겨냈다.
그렇다면 마천의 왕의 근원은 무엇인가?
“메마른 죽음이여, 너의 고뇌와 번뇌가 느껴진다. 나를 죽이고 싶었다면, 너의 번뇌부터 죽여야 했다.”
“그렇군. 그것이 너의 근원인가.”
오시리스의 존재가 사라졌다.
소멸한 건 아니었다. 오시리스나, 마천의 왕이나 그 본체는 이곳에 없다. 따진다면 그들 모두 분신인 상태에서 싸운 것이다. 본체에 타격이 가더라도 소멸하지는 않는다.
“하하.”
마천의 왕이 웃는다.
그의 만다라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펼쳐져 있다.
‘마천의 왕. 전투는 끝났다. 내게 몸을 넘겨라.’
“섭섭한 말을 하는군. 모처럼 놀이판에 직접 행차했다. 나도 즐길 건 즐겨야 하지 않나? 우선 바다를 뒤집어 볼까. 그 후에 성직자들의 신앙을 시험해보는 거지. 유스티아 제국이라고 했나? 거길 지옥으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마천의 왕이 방긋방긋 웃는다. 그가 손을 들자 지옥의 만다라가 모여들었다.
만다라에서 손이 튀어나왔다. 더럽고 추악한 것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은 인간의 것이 아닌 마귀의 것이었다.
‘이 빌어먹을 새끼야! 당장 내 몸에서 꺼져!!’
마천의 왕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다.
“너무 화내지 마라. 조금만 즐길 테니까. 네 동료나, 네 여자에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절하마.”
‘음. 뭐, 그럼 괜찮을 것 같기도….’
생각해보니 내게 피해가 오는 게 아니니 상관없을 것 같다.
지금 힘을 쓰는 건 마천의 왕이고, 그 후폭풍을 감당하는 것도 마천의 왕이다. 나는 마천의 왕에게 몸을 빼앗긴 피해자일 뿐이다.
마천의 왕을 부른 건 나긴 하지만…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변명까지 완벽하다.
태산보다 큰 마귀의 흉측한 손이 행성을 향해 나아가다가 우뚝 멈췄다.
빛.
따스하면서도 경건한 빛이 마귀의 팔을 저지했다.
마천의 왕은 시선을 올려 빛의 시작 지점을 쳐다봤다. 얼핏 보면 작은 태양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다.
「시스템이 마천의 왕에게 페널티를 부여합니다!」
「시스템이 마천의 왕에게 페널티를 부여합니다!」
「시스템이 마천의 왕에게 페널티를 부여합니다!」
마천의 왕의 힘이 약해졌다. 우주를 향해 끝없이 팽창하던 만다라가 힘을 잃고 수축한다.
그러나 마천의 왕은 시스템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작은 태양을 죽일 듯이 노려본다.
「깨달은 자가 마천의 왕에게 고합니다.」
「거기까지 하라.」
신성한 음성이 우주에 널리 퍼진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마귀기 비명을 질렀다. 태산보다 큰 손을 가진 마귀의 비명이었다. 마귀의 손은 고통에 몸부림치듯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곧 재가 되어 사라졌다.
여파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천의 왕의 만다라가 산산이 부서져 사라지기 시작했다.
“붓다. 네가 감히 내게 명령하는 건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허나 이 우주를 뒤덮고도 남을 압도적인 존재감과 신성하면서도 엄중한 시선이 작은 태양으로부터 느껴진다.
“쯧.”
마천의 왕이 혀를 찼다. 그는 싸울 생각 없다는 듯 양손을 들었다.
“알았다. 알았어. 내가 졌다. 여기서 그만두지. 그러니 그 손가락 휘두를 생각하지 마라. 그거 꽤 아프다고.”
‘여기서 바로 포기한다고? 네가?’
“포기하고 싶어서 포기하는 게 아니다. 붓다는 상성이 안 좋다. 저 미친놈은 번뇌라는 게 없다. 한 가지 좋은 걸 알려주지. 너도 저놈처럼 모든 번뇌를 떨쳐내고 열반에 다다른다면 나를 이길 수 있다. 뭐, 불가능하겠지만.”
내 안에 있는 마천의 왕의 존재가 점점 약해지는 걸 느꼈다. 마천의 왕은 사라지고 있다.
그러자 도리어 급해진 건 나였다. 마천의 왕으로부터 지식이 느껴지지만, 그것은 무척 한정적이었다. 그리고 지식이 있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마천의 왕으로부터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대답할 시간이 없다. 한 개만 물어라. 그리고 그 이상은 저쪽도 허락하지 않을 거다.”
‘아까 시스템에 장난질을 쳤다고 들었다. 시스템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몸에서 천마신공이 요동친다. 마천의 왕은 최후의 힘을 사용해 다른 이들이 들을 수 없도록 수작을 부린 뒤에 대답했다.
“아, 그거? 오래된 장난이지. 아틀란티스가 시작되기 전부터 해온 장난. 그게 뭔지 말해주기에는… 보는 시선이 너무 많군. 크크크크.”
마천의 왕의 기척이 그대로 사라졌다.
나는 몸의 통제권을 되찾았다. 손과 발이 마음대로 움직인다. 우주 공간에 있기에 숨을 쉴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게 딱히 불편하진 않다. 마천의 왕인지, 시스템인지 몰라도 어떠한 힘이 내게 적용되고 있다.
「깨달은 자가 당신을 응시합니다.」
부처의 시선은 무척 기분 나빴다. 본능적인 불쾌감이었다.
나는 괜히 목에 힘을 주어 작은 태양을 노려봤다.
‘눈이 너무 부시군. 천안.’
[천안(天眼)을 개안합니다.]
작은 태양 속에 있는 존재가 보였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남자였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다가 사라졌다.
「시스템이 당신을 쳐다봅니다.」
“난 아무 잘못 없다. 이건 모두 마천의 왕이 저지른 짓이다.”
「마천의 왕을 부른 건 당신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놈은 내 몸을 빼앗았지. 설마 내가 이 모든 걸 계획했다고 보는 건 아니겠지?”
「시스템이 한숨을 내쉽니다.」
「시스템은 당신이 사고를 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그건 내가 아니라 마천의 왕에게 말해야지.”
「마천의 왕에겐 적절한 페널티가 주어질 것입니다.」
“추방당하는 건가? 그럼 새로운 신좌와 계약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군. 사고를 친 건 내가 아니라 마천의 왕이니까. 나도 엄밀히 따지면 피해자다. 보상받을 자격이 있어.”
「시스템은 당신의 뻔뻔함에 혀를 내두릅니다.」
「마천의 왕은 아틀란티스에서 추방당하지 않습니다. 마천의 왕은 모든 페널티를 받아들였습니다.」
“다른 평범한 신좌였다면 추방당하고도 남았겠지. 크크.”
시스템을 비웃었다.
신좌들이라고 해서 다 같지 않다. 그들 사이에서도 힘의 격차가 존재하고, 힘이 약할수록 불이익을 당하는 건 똑같았다.
“마천의 왕이 받는 페널티는 뭐지?”
「AP의 지불과 근신입니다. 근신 기간 동안 아틀란티스에 영향력을 끼칠 수 없습니다.」
“마천의 왕으로부터 후웡늘 받을 수 없다는 말이군. 당분간은 조용해지겠어. 오시리스는? 설마 오시리스에겐 페널티가 주어지지 않는 건 아니지?”
「무의미한 죽음에겐 이미 페널티가 주어졌습니다.」
「그는 이번 아틀란티스의 참가를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
다시는 오시리스와 만날 일이 말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그럼 이제 내가 보상받을 시간이군.”
「이번 일은 당신으로부터 시작된 사고입니다. 당신에게 주어질 보상은 없습니다.」
“그거 말고. 세트. 오아시스의 주인(僞)을 죽인 보상이 있을 거다.”
「오아시스의 권능(SSS)을 보상으로 획득할 것입니다.」
딱 봐도 오아시스를 지배할 수 있는 권능 같은 것일 거다. 이게 있으면 사막 지대의 지배를 완벽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난 다른 걸 원해.”
「보상은 정해져 있습니다. 바꿀 수 없습니다.」
“아직 보상이 지급되지 않았잖아.”
지급되지 않은 건 하나였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아틀란티스 구역 밖이다.
「어떤 보상을 원하십니까?」
“저기로 날 보내줘.”
내가 가리킨 곳은 달이었다.
「달의 사냥꾼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달의 사냥꾼이 몸을 배배 꼬며 무언가를 기대합니다.」
「반짝이는 사냥꾼이 오열합니다.」
「태양의 대적자가 주목합니다.」
「달의 꽃이 기겁합니다.」
「달의 꽃이 시스템에게 항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