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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663화 (1,443/2,000)

부처의 바리때, 봉래산의 옥가지, 불쥐의 털옷, 용의 구슬, 제비의 자안패.

하나 같이 처음 듣는 물건들이었다.

내가 이 정도이니 보통의 방법으로는 위의 물건들을 구하기 어려울 것 같다.

“불쥐의 털옷을 구할 방법은 뭐지? 달에 불쥐가 있나?”

내가 원작과 원작의 설정을 알고 있다고 해서 달에 있는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굵직한 일과 설정들을 제외하면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달에 불쥐는 없습니다요! 하지만 불쥐의 털옷을 가진 분은 알죠! 그분에게 불쥐의 털옷을 잠깐 빌리는 거죠! 불쥐의 털옷만 가지고 있으면 달의 궁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옥토가 필사적으로 말했다. 어떻게든 살고 싶다는 의지가 전해진다.

“불쥐의 털옷을 가진 게 누구냐. 말을 돌리지 말고 확실하게 말해라.”

“호수에 비친 달! 그분이 불쥐의 털옷을 가지고 있습니다요! 제가 그분에게 안내해 드릴 수 있어요!”

“위신인가.”

“네! 성격도 나쁘지 않은 신이에요!”

나는 팔짱을 꼈다. 옥토는 내 뒤통수를 친 놈이다.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 호수에 비친 달인가 뭔가 하는 놈이 없을 수도 있다. 함정이 있는 곳으로 날 데려가려는 속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있다.’

시간은 내 편이 아니다.

항아는 달의 궁에 처박혀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 될 수 있는 한 빨리 달의 궁전에 들어가 항아를 굴복시켜야 한다.

‘나는 길을 잘 못 찾아. 하물며 여긴 달이다.’

옥토는 길잡이로서 이용할 가치가 있었다. 데리고 다니다가 거슬린다면 바로 죽여버리면 된다.

“호수에 비친 달. 그 신의 진짜 이름은 뭐지? 설마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신의 진명을 알게 되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요! 하지만… 그, 신의 진명을 함부로 발설했다간 저주받을 수 있는지라….”

“지금 여기서 죽는 것보다는 저주받는 편이 더 낫지 않나?”

“츠쿠요미 입니다요! 사실 이름은 좀 더 길었던 것 같긴 한데… 기억이 안 나요.”

“추쿠요미. 나름 이름 있는 신이군.”

내가 알기로는 츠쿠요미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삼신 중 하나였다. 그 유명세는 다른 2명의 신보다 훨씬 떨어지는 것 같긴 하지만.

‘신화를 생각하면 성격이 괴팍한 것 같지는 않으니… 일단 만나 보는 게 좋겠군.’

위신이라고 해서 꼭 적대할 필요는 없었다.

“츠쿠요미가 있는 곳으로 날 안내해라.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보이면 바로 죽여버리겠다.”

“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요. 근데 떠나기 전에 선녀들에게 바니걸 옷을 입히면 안 될까요?”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

“정말 감사합니다요!”

옥토가 기뻐하며 깡충깡충 뛰어 실신한 선녀들에게 다가갔다. 바니걸 옷을 뿅 만들더니 솜방망이 같은 손을 잘도 움직여 선녀들에게 입힌다.

“헤헤…. 역시 바니걸 옷이 제일 잘 어울립니다요!”

나는 옥토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다. 무방비한 선녀들의 이리저리 만지며 바니걸 의상으로 갈아 입혔지만, 옥토는 정작 선녀들에게 성욕을 느끼지 않았다. 성욕이 아닌 다른 이유로 바니걸 의상을 입히는 것이다.

‘토끼가 인간을 보고 성욕을 느끼는 쪽이 이상하니 정상이라 할 수 있나…?’

옥토는 바니걸 의상을 입은 선녀들을 보며 헤벌쭉 웃는다.

‘정상이 아니군.’

옥토가 길 안내를 시작했다. 나는 그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여기가 달이긴 하나 지상처럼 식물이 자라있고 생물이 돌아다니며 강물이 흐른다. 꽤 신기했다.

‘궁전까지 있으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닌가.’

달과 어울리지 않는 산이 나왔다. 옥토는 망설임 없이 산으로 들어갔다.

“이 산의 꼭대기에 츠쿠요미 님의 거처가 있습니다요!”

「제 7,783 구역, 월산(月山)에 입장했습니다.」

「당신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입니다.」

「미혹이 당신을 휘감습니다. 월산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길을 헤매게 될 것입니다.」

알림창의 내용을 읽은 직후였다.

어디선가 나온 짙은 안개가 산을 뒤덮는다. 안개가 너무 짙어서 3m 너머를 볼 수 없다.

손을 휘두르며 장풍을 쏘아냈다. 안개를 몰아내는 듯하더니, 새로운 안개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 안개는 보통 안개가 아니었다. 내 기감을 흩트리고 있다. 이대로는 정말로 길을 잃을 것이다.

“나리! 이쪽 입니다요!”

시선을 내린다. 옥토가 어서 오라는 듯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 안개를 틈타서 도망치지 않는 건 칭찬해줄만 했다. 나는 옥토의 뒤를 따라 걸었다.

“옥토. 안개가 너무 짙다. 앞에 뭐가 있는지 아예 안 보이는 수준인데 넌 잘도 나아가는군.”

“헤헤. 미혹의 안개입니다요. 안으로 들어갈수록 길을 잃게 되죠. 하지만 제겐 통하진 않죠. 전 달의 구역이라면 어디로든 갈 수 있습니다요.”

옥토는 묘하게 쓸만했다.

계속해서 옥토의 뒤를 따라갔다. 솔직히 말해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르겠다. 오른쪽으로 가는지, 왼쪽으로 가는지 전혀 모르겠다. 방향 감각이 엉망이다. 옥토가 없었다면 상당히 고생했을지도 모른다.

“헤헤.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요!”

어느 순간부터 미혹의 안개가 걷히더니 시야가 맑아졌다. 나와 옥토는 산의 90%를 올랐다.

산 정상에는 일본식 저택이 있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나와 옥토가 가까이 가자 문은 저절로 열렸다.

「호수에 비친 달(僞)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어서 가죠! 츠쿠요미 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요!”

“위신과 만나면 싸우기 바빴는데… 이렇게 초대를 받으니 좀 어색하군.”

애써 어색함을 떨쳐내며 발을 움직였다. 문턱을 넘는 순간 청명한 기운이 몸을 감쌌다. 시원한 청량음료를 원샷한 기분이다.

안쪽에는 일본식 정원이 있었다. 모래와 자갈, 그리고 바위로 장식된 정원이다. 소탈하다 못해 허전하게 느껴지는 정원은 묘한 매력이 있었다.

정원을 지나 방에 도착했다. 아까부터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기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 헷갈릴 일은 없었다.

문을 열고 다다미방으로 들어간다.

청년이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있었다. 중성적인 외모의 그는 정갈한 자세로 차를 달이고 있었다. 치렁치렁한 하얀 옷이 인상적이다. 복장의 이름은 모르겠지만, 창작물에서 음양사들이 주로 입는 옷과 비슷했다.

“앉으시게. 그대들을 위한 녹차를 준비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게.”

나와 옥토는 녹차가 준비되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대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츠쿠요미 님!”

옥토는 별 의심도 없이 준비된 녹차를 후루룩 마셨다. 토끼가 사람의 손처럼 앞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광경은 영 적응이 안 된다.

나는 찻잔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르테미스의 신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여자와 독을 조심하라고 했지.’

츠쿠요미는 남자였다.

“독은 안 들었으니 걱정하지 말게. 그래도 먹기 싫다면 괜찮네. 누구도 강요하지 않으니.”

“신이 대접하는 차다. 안 먹으면 내가 손해겠지.”

완전 회복을 아직 쿨타임이었다. 여기에 독이 있으면 죽는다. 천심이 있긴 한데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었다.

‘블랙 앙크가 있으니 죽진 않겠지.’

찻잔을 들어 조심스레 녹차를 마신다.

‘괜찮네.’

한 모금 마시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녹차의 풍미라던가 맛은 평범한 측에 속했다. 다만 뒷맛이 남지 않고 깔끔했다. 평범한 찻잎으로 최고의 녹차를 우려낸 것이다.

“녹차 우리는 솜씨가 엄청나군.”

“하하. 하루에도 몇 번씩 녹차를 우리다 보니 이렇게 실력이 늘었다네. 만족스러워해서 다행이군. 나는 츠쿠요미노미코토라고 하네. 달리 호수에 비친 달이라고도 하지.”

“천마다.”

“그대가 달의 꽃과 싸우는 중이라는 걸 알고 있네.”

“어떻게 알고 있지? 소문이라도 났나?”

“지상과 달리 달은 상당히 좁아서 소문이 빨리 도는 편이네. 달의 꽃이 그대를 죽이기 위해 직접 강림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

“쓸데없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편하군. 달의 궁에 들어가기 위해선 다섯 가지 보물 중 하나가 필요하다고 들었다.”

“달의 꽃이 회유한 대나무 공주가 부린 수작이지. 잘 찾아왔어. 보물 중 하나인 불쥐의 털옷은 내가 가지고 있다네.”

“헤헤. 내가 안내 했습니다요.”

“역시 옥토. 아는 게 많구나. 나는 불쥐의 털옷을 가지고 있다는 걸 누구에게도 말한 기억이 없는데도 말이다.”

“헤헤….”

옥토가 괜히 눈치를 보며 웃었다.

나는 찻잔에 담긴 내용물을 전부 마시고 아래로 내려두었다.

일부러 기세를 끌어올렸다. 옆에 있는 옥토는 벌벌 떨었으나, 츠쿠요미는 아무렇지 않게 내 기운을 받아냈다.

“불쥐의 털옷을 넘겨라.”

“두 가지 부탁이 있네.”

“죽고 싶나?”

“그대는 나보다 강하네. 싸우면 내가 지겠지. 허나 그대도 멀쩡하리라 생각하지 말게. 그리고 나는 그대의 편도, 달의 꽃의 편도 아니란 걸 잊지 말게. 아직은 말이지.”

여차하면 항아의 편에 붙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혀를 차며 기세를 거뒀다. 안 그래도 성가신 적이 있는데 굳이 적을 늘릴 필요는 없었다.

츠쿠요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한 잔 더 하겠나?”

말없이 찻잔을 내밀었다.

“너무 삐딱하게 생각하지 말게.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라네. 오히려 부탁 2개로 불쥐의 털옷을 얻을 수 있다는 건 그대에겐 엄청난 이득이라네.”

“그건 어떤 부탁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첫 번째 부탁은 이무기를 한 마리 죽여주게. 근처에 있는 지하 동굴에서 월산의 정기를 몰래 빨아먹고 있다네. 옥토는 이무기가 있는 곳으로 그대를 안내해줄 것이네.”

“그 정도는 네가 직접 할 수 없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 산을 벗어날 수 없네.”

“알았다. 두 번째 부탁은?”

“달의 거울이라고 아나?”

“항아가 가지고 있다는 물건 말이군. 달이 비추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볼 수 있는 물건으로 알고 있다.”

“달의 거울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닐세. 두 번째 부탁은 달의 거울을 내게 넘기는 것이라네. 물론 그러기 위해선 불쥐의 털옷이 필요하겠지. 이무기를 죽이고 오면 불쥐의 털옷을 넘겨주겠네. 달의 거울은 나중에 받도록 하지.”

“너무 대놓고 말하는군. 항아가 우리의 대화를 듣고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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