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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664화 (1,444/2,000)

“너무 대놓고 말하는군. 항아가 우리의 대화를 듣고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거냐?”

“걱정말게. 달의 꽃은 이곳을 볼 수 없네. 달의 거울은 달빛이 닿는 곳만 볼 수 있고, 나는 달의 신이네. 달빛이 닿는 곳 정도는 조절할 수 있네.”

츠쿠요미가 빙그레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항아도 머리가 있는 이상 내가 츠쿠요미와 만난다는 건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츠쿠요미와 내가 어떤 내화를 나눴는지 짐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옥토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는 건가?”

“시간이 내 편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 휴식은 일이 전부 끝난 뒤에 취해도 늦지 않아.”

“히엑! 놔, 놔주세요! 제가 걸을게요!”

옥토를 놔줬다. 옥토는 앞발로 털을 고르면서 한숨을 내쉰다.

“그녀를 조심하게. 솔직히 말해서 나도 그녀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을 꾸미는 게 틀림없네.”

“알겠다.”

“아, 그리고 달의 거울이 볼 수 없는 곳이 이 달에 있다네. 혹시 알고 있나?”

“거기가 어디지?”

“달의 뒤편. 끔찍한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곳이지. 웬만하면 그곳에 가지 말게. 아주 위험한 곳이니 말일세.”

나는 눈빛으로 옥토를 재촉했다. 옥토가 앞으로 깡충깡충 뛰어간다. 옥토는 츠쿠요미의 저택에 올라왔을 때처럼 거침없이 나아간다.

“옥토. 달의 뒷면에 대해 알고 있나?”

“물론이죠. 제가 그곳에서 왔습니다요.”

“츠쿠요미의 말처럼 괴물이 넘쳐나나?”

“츠쿠요미 님이 조금 과장해서 말씀하셨습니다요. 괴물들이 많긴 해도 나름의 질서가 잡혀 있는 곳이에요. 물론 방심하면 바로 잡아먹혀 버리지만요.”

“거기도 달의 궁의 영향을 받나?”

“선녀들은 달의 뒷면에는 접근도 안 합니다요. 츠쿠요미 님의 말씀대로 위험하니까요.”

여차할 때는 달의 뒷면으로 도망가는 게 최선일 듯싶었다. 물론 항아에게 질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월산은 올라올 때와 다르게 안개가 전혀 끼지 않았다. 덕분에 월산의 뛰어난 경치를 눈으로 보고 즐길 수 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생물들도 보였다.

“이쪽입니다요!”

옥토가 울창한 나무 사이로 들어갔다. 길이 너무 울창해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5분 정도 쉬지 않고 움직였을까. 나와 옥토는 어느새 동굴 속에 들어와 있었다. 동굴 특유의 습기가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다.

「제 7,900 구역, 달의 호수에 입장했습니다.」

「이곳은 히든 구역입니다.」

「외부와 차단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하락합니다.」

「3시간마다 오감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합니다. 미각, 촉각, 시각, 후각, 청각 중 포기할 감각을 선택하십시오.」

「50초 내로 선택하지 않으면 무작위로 선택됩니다.」

「지배할 수 없는 구역입니다.」

알림창이 주르륵 떴다.

‘히든 구역. 이건 또 의외이긴 한데… 조건이 좀 빡세군.’

외부와 차단된다는 건 공간 이동 주문서를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아마 항아의 달의 거울로도 이곳을 훔쳐보지 못할 것이다.

‘모든 능력치 10% 하락도 하락이지만….’

감각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게 너무 컸다.

「37초 내로 선택하지 않으면 무작위로 선택됩니다.」

“미각을 포기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감각의 중요도로 따지면 미각이 가장 낮으니까. 그다음은 후각을 포기한다.

‘후각 다음이 문제다. 촉각, 시각, 청각. 전투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감각들이다. 여긴 오래 있을 곳이 아니야.’

내가 움직이자 옥토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옥토에게 물었다.

“옥토. 넌 감각을 포기하지 않았군.”

“예? 아닙니다요. 포기했어요. 천마 님과 달리 마음속으로 대답했을 뿐이죠.”

“어떤 감각을 포기했지?”

“촉각을 포기했습니다요.”

“…내 예상이 빗나갔군. 너도 미각을 포기할 줄 알았다만.”

“촉각이 없으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으니까요.”

“아직 널 죽일 생각이 없다만.”

“천마 님이 이무기에게 저도 죽게 될 테죠. 이무기에게 도망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니까요.”

“나는 지지 않는다.”

“네. 믿어요.”

옥토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십중팔구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 이쪽입니다요.”

갈림길이 나왔다. 그것도 무려 7개나 되는 갈림길이. 옥토는 갈림길에서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길을 선택한다. 신기했다.

“여기에 와본 적 있나?”

“아니요. 처음입니다요. 이런 위험한 곳에 굳이 들어올 이유는 없습니다요.”

“처음인데도 길을 안다고?”

“그게 제 능력이니까요. 여기 갈림길에선 네 번째로 가야 합니다요.”

“길을 판별하는 기준이 뭐지?”

“으음. 이게 말로 표현하기 힘든데… 그냥 느껴진다고 할까요?”

“직감 같은 거군.”

“예, 예. 비슷합니다요.”

복잡한 동굴 길을 지나 마침내 지하 호수에 도착했다.

호수는 매우 컸다. 직경으로 따지면 1km는 될 것 같았다. 옥토는 내 뒤로 물러섰다. 나는 호수 속에 있는 거대한 존재를 느끼며 옥토에게 말했다.

“도망치면 죽는다.”

“히이익…! 이무기가 저를 봤습니다요! 도망쳐도 이무기가 쫓아와 저를 죽일 거예요! 저와 천마 님은 운명공동체 입니다요!”

“기분 나쁜 소리를 하는군.”

잔잔하던 호수의 표면이 거칠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호수 안에 있는 거대한 존재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파란 호숫물 아래에서 시커먼 그림자와 함께 붉은빛이 번쩍였다. 붉은 빛은 이무기의 안광이었다.

-마침 배고프던 참이었는데 먹이가 제 발로 찾아왔구나. 역시 난 운이 좋아.

이무기가 호수 위로 치솟는다. 그 여파에 사방으로 물이 튀었다. 물에 젖은 나는 혀를 차며 이무기의 생김새를 확인했다. 사람 따윈 한입에 삼킬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뱀이었다. 날 노려보는 붉은 눈에는 살기가 가득하다.

-이리 오너라.

이무기의 붉은 두 눈이 번쩍인다.

나는 가만히 이무기를 지켜봤다. 이무기의 강함을 가늠하고 있었다. 이무기를 상대하는 건 처음이라 나보다 강한지 잘 모르겠다. 직접 싸워봐야 알 것 같다.

-이리 오너라!!

“시끄럽다. 네가 오라면 오는 시종인 줄 아나?”

-…내 언령에 저항해? 보통 인간 놈이 아니구나!

“그게 언령이었나?”

시끄러운 소리란 걸 제외하면 특별한 힘 같은 건 딱히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이무기는 예상보다 약할지도 모르겠다.

-건방진 놈!

이번에는 몸 전체에서 압박감이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힘이 내 몸을 붙잡은 것이다. 나는 이 비슷한 힘을 몇 번 경험해본 적 있다.

‘염동력이군.’

숨을 내쉬며 단전에서부터 천마기(天魔氣)를 일깨운다. 천마기가 기혈을 내달리며 전신으로 퍼진다. 시커먼 기운이 내 몸에서 조금씩 흘러나와 염동력에 저항한다.

-어찌 이리 사악한 기운이…!

이무기가 주춤거렸다.

그러다 입을 쩌억 벌리며 내게 독을 내뱉는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일보에 공간을 넘어 이무기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슬쩍 독이 뿌려진 곳을 보니 땅바닥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나는 무릎을 굽히며 이무기 정수리에 주먹을 내리찍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폭(天魔爆).

검은 폭발이 일어났다. 이무기의 머리가 비틀거렸다. 아예 머리를 박살 낼 생각이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가죽이 단단했다.

-간지럽지도 않다!

이무기가 소리치며 대가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나는 천마군림보로 피하려고 했으나, 이무기에게서 뿜어져 나온 파장이 공간 이동을 방해했다.

풍덩!

호수에 떨어진다.

‘젠장. 공간 장악이 어렵군. 공간 장악만 완벽하게 할 수 있었다면 고작 파장 따위에 흔들리지 않았을 텐데.’

천마신공의 숙련도와는 별개로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다.

-물속은 나의 영역이다! 호수에 빠진 이상 네놈의 끝은 결정 났다!

천마신공(天魔神功) 흑염마룡(黑炎魔龍).

내 몸에서 뜨거운 불길이 일어난다. 주변의 물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내게 헤엄쳐 오던 이무기가 화들짝 놀라 물러나며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네놈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네놈의 불꽃이 꺼지는 그때까지 기다려주마. 난 기다리는 건 그 누구보다 잘할 자신 있다.

마나 소모가 큰 흑염을 오래 유지할 수 없다.

내겐 [물의 축복]이 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담담히 이무기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용권의 기운이 이무기를 향해 쏘아졌다. 이무기의 커다란 몸에 용권에 적중했다. 이무기는 움찔거리지도 않았다. 물 때문에 위력이 약해졌다.

-푸흐흐. 이게 네 마지막 발악이냐?

비웃는 이무기를 무시하고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회천마룡(回天魔龍).

내 주변의 물살이 회전한다. 바로 이무기의 염동력이 끼어들어 방해했다. 회전하던 물살은 어이없게 사라졌다.

‘이게 아니야.’

-푸흐흐흐흐흐.

‘마천의 왕의 회천마룡은 세상을 회전시켰다.’

그때의 그 감각을 떠올린다.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한번 겪은 감각을 단숨에 떠올릴 정도의 천재가 아니었다.

‘잠깐 천재가 되면 된다. 천재의 시간.’

[10초 동안 천재의 시간을 발동합니다.]

느낌이 왔다.

내 주위의 물살들이 조금씩 회전한다.

회천마룡에게 중요한 건 힘과 방향이었다.

‘이때까지 회천마룡은 바람의 힘을 이용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 바람은 회천마룡의 부산물일 뿐이다.’

회전할수록 그 힘은 점점 배가 되어간다. 물살이 나를 중심으로 소용돌이 치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위험을 느낀 이무기가 다급히 염동력으로 회전에 개입했다. 회전은 도리어 염동력을 잡아먹었다.

회전은 빠른 속도로 커져갔고, 마침내 이무기까지 잡아먹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악!

이무기가 비명을 내지른다. 그의 육체가 갈려 나가며 호수는 점점 피로 물들었다.

[천재의 시간을 종료합니다.]

천재의 시간이 끝났음에도 회전력은 끝나지 않았다. 이무기의 비명도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다.

‘……제어할 수 없다.’

다행히도 나는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었기에 피해를 받지 않았다.

‘이건 이제 나도 못 막아.’

회전력이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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