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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667화 (1,447/2,000)

월산의 꼭대기에 있는 츠쿠요미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츠쿠요미는 미리 정원으로 나와서 나와 옥토를 반겼다. 멀대같이 큰 키와 멀끔한 얼굴. 허허롭게 웃고 있는 표정. 자신이 내 위에 있다고 여기는 듯한 눈빛.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역시 빨리 해결하고 올 줄 알았네. 이무기가 먹고 있던 월산의 정기가 산 전체로 활력이 돌고 있네. 그대 덕분이야.”

담담하면서도 나른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한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다. 라디오를 전문으로 하는 남자 연예인의 목소리였던가.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내가 지금 뭘 원하는 건지는 알고 있겠지?”

“녹차를 원하는 게 아니란 건 알고 있네. 그래도 모르니 물어봐야겠군. 혹시 녹차라도 한잔할 텐가?”

“불쥐의 털옷이나 내놔.”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옆을 확인했다. 옥토가 슬그머니 거리를 벌리고 있는 게 보였다.

“그대는 너무 급하군. 그 급한 성격이 언젠간 화가 될 것일세.”

“내가 싫어하는 게 있다. 누군가 내게 훈수질을 하는 거지.”

“호의를 담아서 하는 말이라네.”

“원하지도 않는 호의를 멋대로 주려고 하지 마라. 너 따위의 호의를 받아봤자 성가실 뿐이다.”

츠쿠요미는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지. 나를 싫어하는 이유가 뭔가?”

“기본적으로 남자를 다 안 좋아한다.”

“그거참 성가신 성격이로군.”

츠쿠요미는 커다란 소매에 손을 넣었다. 소매의 끝에서 붉은색 옷이 보였다. 불쥐의 털옷이다.

“그만두게.”

“뭐?”

“그대가 하려는 거 말이야. 우린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네.”

“좋은 관계? 네가 이득을 보는 관계 말이냐?”

“이제 와서 딴소리인가. 그대는 이미 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지 않나. 달의 거울이 탐이 났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그대에게 되도 않는 바람이라도 불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손해인 것 같아서.”

“그대는 달의 거울에 별로 관심 없지 않나. 물건의 가치는 상대적이네. 지금 그대에겐 이 불쥐의 털옷이 더 가치 있지. 이미 했던 말을 뒤엎는 건 좋지 않네. 자네의 계약 신좌도 실망할 것이네.”

「천공의 주인이 하품합니다. 그는 당신이 말로만 한 약속을 지키리라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글쎄. 내 신좌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 모양이다만.”

“늘려야 할 건 아군이네. 적을 늘리지 말게.”

“널 여기서 죽이면 적이 하나 줄어드는 거지.”

천마신공을 사용한다. 단전에서 시작된 마기가 전신으로 퍼진다. 마나의 움직임을 감지한 츠쿠요미의 표정이 싹 변했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차가운 기운이 맴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느려진 세계에서 주먹을 내질렀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불쥐의 털옷을 쥔 츠쿠요미의 손이 움직인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반사적으로 찰나를 사용했다. 세계가 다시 느려진다.

‘젠장. 불쥐의 털옷을 앞으로 내민다고?’

츠쿠요미가 찰나에 반응한 것은 그리 놀랍지 않았다. 이름이 제법 있는 신이니 어느 정도 능력을 갖췄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놀란 것은 츠쿠요미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불쥐의 털옷을 방패로 삼은 것이다.

‘영악한 새끼.’

불쥐의 털옷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알고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이다.

찰나를 이용해 억지로 공격 방향을 바꿨다. 손을 강제로 비틀어 츠쿠요미의 옆구리 노렸다. 츠쿠요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허리를 비틀어 공격을 피했다.

권로를 억지로 비튼 대가는 상당했다. 오른손의 근육 일부가 파열된 것 같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어쩔 수 없다. 불쥐의 털옷이 얼마나 내구성이 뛰어난지 모르니 함부로 공격할 수 없어.’

불쥐의 털옷이 부서지면 모든 게 망한다. 달의 궁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고 항아를 조질 수 없게 된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왼손으로 용권을 사용한다. 츠쿠요미는 이번에도 반응했다. 억지로 반응한다는 느낌이 없었다. 처음부터 내 공격을 예측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여유롭게 공격을 피한다.

나는 입을 벌렸다. 단전에서 천마기를 끌어 올리며 포효와 함께 내뱉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후(天魔吼).

“크아아아아아아!”

음파는 물리적인 충격이 되었다. 찰나의 속도에 반응했었던 츠쿠요미의 반응이 이번엔 늦었다. 츠쿠요미가 입매를 비틀었다. 츠쿠요미의 코와 귀에서 피가 흐른다.

‘저놈은 내가 쓰는 찰나처럼 한순간에 빨라지는 게 아니군.’

양손을 내뻗는다. 츠쿠요미의 몸을 잡아채려고 했다. 츠쿠요미는 뒤로 점프했다. 그의 다리는 지상에 떨어지지 않고 허공으로 올라갔다.

하늘에 뜬 츠쿠요미가 차가운 기운이 서린 손을 휘두른다.

촤아아아아아아!

산꼭대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바닷소리가 들렸다. 소리뿐만이 아니다. 검푸른 바닷물이 발목까지 차올라 있었다.

뭔가 어떻게 된건가 싶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바닷물이 있는 곳은 저택뿐이었다. 바닷물은 저택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았다. 이 저택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격리된 것 같았다.

“달에는 바다가 있다는 말이 있지. 들어본 적 있나?”

“들어본 것 같기도 하군.”

바닷물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발목까지 차올랐던 바닷물은 어느새 무릎까지 올라왔다.

하반신이 완전히 잠기기 전에 다리를 움직였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천마군림보로 공간을 도약해 츠쿠요미의 뒤에 나타나 공격하는 게 내 계획이었다. 허나 계획은 초반부터 꼬였다. 나는 츠쿠요미의 뒤가 아니라 지면에 처박혔다.

“공간 이동을 너무 대놓고 하는 거 아닌가?”

놈이 헛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놈은 지금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검푸른 바닷물에 잠긴 나는 팔다리 하나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바닷물이 내 몸을 붙잡고 있는 건 둘째 치고… 바닷물 자체가 무겁다.’

[물의 축복]의 효과는 제대로 발동되었기에 바닷속에서 숨을 쉴 수 있었다.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버티는군. 농도를 높여 보도록 하지.”

바닷물 속에 잠겨 있는데도 츠쿠요미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렸다.

압력이 거세진다. 바닷물의 흐름이 느릿하게 변했다.

나는 천마신공을 운용했다. 천마기를 활성화하며 근력을 강화한다.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바로 바닷물이 잡아당긴다.

츠쿠요미는 나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위로 올렸다.

“달의 꽃이여, 보고 있으시오? 그대가 전에 했던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본신에게 달의 거울을 빌려주시오. 그럼 이놈을 그대에게 넘기겠소.”

츠쿠요미는 이어서 달의 궁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듣자 하니 처음부터 항아와 손을 잡고 날 치려는 건 아니었던 것 같군.’

놈의 목적은 달의 거울이었다. 달의 거울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 이유는 모른다. 딱히 알고 싶지도 않다.

‘여기서 벗어나는 게 먼저다. 천심을 쓴다면 바로 벗어날 수 있겠지만….’

나는 내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회천마룡(回天魔龍).

나를 중심으로 회전력이 뻗어간다. 이무기를 죽였을 때처럼 바닷물을 이용해 소용돌이를 일으켜 츠쿠요미를 공격할 생각이었다.

바닷물은 회전하긴 하나 내가 원하는 출력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바로 회천마룡을 관뒀다.

바닷물이 지랄맞게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전력 때문인지 압력이 더 강해졌어. 이건 아무리 내 몸이라도 못 버틴다.’

소용돌이가 일어나기 전에 내 몸이 압력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잘 생각했소, 달의 꽃. 그대가 원하는 대로 이 자의 팔다리를 부수고 잘 포장해 갖다 드리지. 이런 걸 산지 직송이라 하던가?”

허허 웃는 츠쿠요미의 목소리가 무척 거슬렸다.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지.’

내 몸을 누르는 바닷물은 무거웠다. 철보다 훨씬 더. 하지만 무게를 제외하면 평범한 바닷물이었다.

‘움직이는 게 힘들다면… 태워 버린다.’

천마신공(天魔神功) 흑염마룡(黑炎魔龍).

전신에서 검은 불길이 타오른다. 주위 바닷물의 온도가 순식간에 높아지며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나는 마기를 짜내며 흑염을 계속해서 일으켰다.

부글부글부글부글!

“끝까지 발악하는군.”

츠쿠요미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바닷물이 더 무거워졌다. 나는 흑염을 더 일으켰다. 마기가 급속도로 소모된다. 검은 불길이 더 커진다. 흑염의 열기가 바닷물 전체로 퍼져나가며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너무 무리했다.’

지금도 무리하는 중이었다. 단전이 찌르듯이 아프다. 천마신공은 마기가 바닥나자 생명력을 탐하기 시작했다.

나는 일부러 천마신공을 막지 않았다.

‘지금 내 천마신공은 한계에 다다랐다.’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가장 좋은 건 재능으로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그러나 내겐 재능 따윈 없었다.

‘재능이 없으니 무리를 해야지.’

그게 내가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이었다.

바닷물이 증발하며 차올랐던 수위가 점점 내려갔다. 동시에 압력도 줄어들었다.

눕혀져 있던 몸을 일으켰다. 하늘에 떠 있는 츠쿠요미는 짜증 가득한 눈빛으로 날 쏘아보고 있었다. 츠쿠요미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마나가 느껴진다. 그의 등 뒤에 파도가 나타났다. 파도가 몰아치기 전에 끝을 봐야 한다.

나는 무릎에 힘을 주며 놈을 향해 도약했다. 몸에서 발산되는 흑염을 추진력삼아 단숨에 츠쿠요미의 앞에 도착했다.

양손으로 츠쿠요미의 양어깨를 꽉 잡는다. 흑염이 순식간에 그의 몸에 달라붙는다.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인해 일그러졌다.

“놓아라!”

“그럴 순 없지. 같이 불타 보자고.”

촤아아아아악!

파도가 나와 츠쿠요미를 덮쳤다.

‘절대 안 놓는다.’

나와 그는 파도에 밀려 지상에 추락했다. 나는 악착같이 츠쿠요미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흑염에 휘감긴 츠쿠요미의 육체가 재가 되어 사라졌다.

「츠쿠요미(僞)를 쓰러뜨렸습니다.」

「츠쿠요미의 부적을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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