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쿠요미(僞)를 쓰러뜨렸습니다.」
「츠쿠요미의 부적을 획득합니다.」
츠쿠요미가 있던 곳에는 두 개의 물건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부적이었고, 하나는 불쥐의 털옷이었다.
불쥐의 털옷을 보자 아차 했다. 싸우는 동안 그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서둘러 불쥐의 털옷을 확인했다. 다행히 멀쩡했다. 어디 그을린 자국도 없었다.
「불쥐의 털옷
불에 타지 않는다.
랭크: S」
불쥐의 털옷의 효과를 확인한 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할 뻔했다. 보아하니 흑염도 안 통할 것 같군.’
츠쿠요미가 불쥐의 털옷을 잡고 있는 게 아니라 쓰고 있었더라면 전투 결과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츠쿠요미가 왜 불쥐의 털옷을 입지 않았는지는 알 것 같군.’
효과가 불에 타지 않는다는 효과 하나밖에 없었다. 특정한 상황이 아니라면 불쥐의 털옷은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디자인이 좀 촌스러웠다.
「츠쿠요미의 부적
위험할 때 힘을 발휘한다.
남은 횟수 1/1
랭크: S」
츠쿠요미의 부적의 경우 정확히 어떤 식으로 효과가 발동할지는 모르겠다. 이런 부적류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랜덤하게 발동하기 때문이다.
‘츠쿠요미의 부적은 가지고 다니면 되겠군.’
나는 바닥에 가만히 앉았다. 생명력을 사용한 탓인지 온몸이 무거웠다. 머리도 살짝 아프고 속이 메스껍다.
“나리!! 괜찮으세요?!!”
옥토가 내 앞으로 뛰어왔다.
“안 괜찮다.”
천마신공이 생명력을 쫙 빨아들인 탓인지 전신이 아팠다. 나니까 이 정도로 버티는 거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바닥에 드러누워 골골댔을 것이다.
‘이대로 달의 궁으로 가봤자 아무것도 못한다. 완전 회복을 사용해야겠군. 쿨타임이 2시간 정도 남았나?’
2시간은 이러고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나리! 전 나리가 이길 거란 걸 믿고 있었습니다요! 어딜 감히 츠쿠요미 따위가 나리에게 덤비나요!”
“시끄럽다. 목소리 좀 낮춰.”
“네. 나리.”
나는 인벤토리에서 베개를 꺼내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그렇게 누워서 별이 촘촘한 하늘과 아틀란티스 행성을 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이 구역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츠쿠요미를 죽였는데도 월산의 지배권을 얻지 못했다.
츠쿠요미는 월산의 진짜 주인이 아니었다. 라기보다는 월산의 지배권을 얻는 다른 방법이 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옥토. 월산을 지배하는 방법을 아나?”
“저도 잘… 죄송합니다요.”
이럴 경우에 지배 조건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숨겨져 있는 무언가를 찾거나, 제사 같은 특수한 행동을 하거나. 어느 쪽이든 귀찮았다.
‘단서가 없는 이상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괜히 시간만 버릴 테니까.’
월산의 지배권은 나중에 얻기로 미뤄둔다.
‘나중에도 안 할 것 같긴 하지만….’
고요한 침묵 속에서 옥토는 솜방망이 같은 앞발로 나뭇가지를 들고 축축한 흙바닥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바니걸 옷이었다. 바니걸 의상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디테일이 조금씩 달랐다. 몇몇 의상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꼴렸다.
‘이 새끼는 바니걸 옷에 진심이군.’
암컷인 주제에 진짜 변태 같았다.
•••
「제 7,775 구역. 달의 궁에 입장합니다.」
완전 회복으로 몸을 회복한 나는 불쥐의 털옷을 쥐고 곧장 달의 궁으로 내려왔다. 완전 회복은 쿨타임에 들어가서 앞으로 12시간 동안 사용할 수 없다. 그게 좀 거슬리긴 했지만, 항아에게 12시간이란 여유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다.
달의 궁 문으로 다가갔다. 한 손에 불쥐의 털옷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 달의 궁의 대문을 밀었다.
「자격을 확인했습니다. 달의 궁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끼이이익.
궁궐의 대문이 열렸다.
직후, 분홍색 연기가 피어오르며 시야를 가렸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삭풍마룡(朔風魔龍).
숨을 들이마시기 전에 바람을 일으켰다. 내 주위에서 생성된 강력한 바람이 분홍색 연기를 단숨에 날려 보냈다.
‘아마 독가스 종류겠지?’
여긴 달의 궁. 항아의 본거지다. 방심하면 당할 것이다.
“헉! 나, 나리 저걸 보세요! 저 연기에 닿은 나무가 순식간에 죽어버렸습니다요!”
옥토가 호들갑을 떨었다. 예상했던 대로였기에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나는 경계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움직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내가 있는 곳은 정원이었는데 어딘가 몽환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정면에는 궁궐 입구와 이어진 붉은 다리가 있었다.
가늘게 뜬 눈으로 궁궐을 쳐다본다. 크고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최소 10층은 되어 보인다. 아파트처럼 길쭉하면 길도 찾기 쉽겠지만… 궁궐은 옆으로도 컸다. 안으로 들어가면 길을 잃기 딱 좋아 보였다.
“옥토. 길을 안내할 수 있나? 목적지는 항아가 있는 곳이다.”
“최상층에 있는 것 같습니다요. 으으음. 네. 길이 느껴지네요.”
“쓸만하군. 내가 앞장선다. 괜히 앞에서 나대다가 공격당해 죽지 말고 내 뒤나 잘 따라와라.”
“히이이익!”
옥토가 두려움을 느꼈는지 내 뒤에 바싹 붙었다. 그에 인상을 쓰며 한마디 하려고 한 순간이었다.
“후후후후후.”
“항아 님 말대로 인간 남자가 찾아왔어.”
“야만적인 냄새가 나.”
“후후후후후후후.”
여자들의 목소리였다. 하나같이 간드러진 목소리에 심장이 날뛰기 시작했다. 나는 목소리만으로 그녀들이 미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달의 궁은 선녀들의 궁이군. 뭐, 그렇겠지. 항아. 이년부터가 선녀니까.’
성가시기만 할 것 같던 달의 궁이 천국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궁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달콤한 향기가 느껴졌다.
젊은 여자의 향수 냄새다. 선녀들이 쓰는 향수는 은은했다. 그 은은함이 남자를 미치게 했다.
“나리! 오른쪽 복도로 가야 합니다!”
“…….”
옥토가 짧은 팔로 오른쪽 복도를 가리켰다. 깨끗한 복도에는 똑같이 생긴 문들이 한가득이었다. 화려한 외형을 가진 것과 달리 내부는 어딘가 심심하게 느껴졌다.
“나리!”
옥토가 답답하다는 듯 나를 부른다.
“생각해보니 말이야. 항아. 그 썅년이 이 궁궐에 뭘 숨겨놨는지 알 필요가 있을 것 같군. 1층부터 전부 뒤지면서 올라가자.”
“…나리. 항아를 조금이라도 빨리 죽여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무언가 꺼림직한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은데.”
“그 꺼림직한 일의 실체가 이 궁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다는 거다. 어쨌든 나는 확인해봐야겠으니 따라와라.”
“…….”
옥토는 불신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그 시선을 무시하고 왼쪽 복도로 향했다.
가장 가까운 문을 열었다.
창고였다.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나는 밖으로 나와 다음 방으로 들어갔다.
세탁방으로 보였다. 한쪽에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었고, 반대편에는 옷들이 걸려 있었다. 전부 여성들의 옷이다. 여성들의 속옷도 아무렇지 않게 걸려 있다.
다음 방은 식당이었고, 그다음 방은 식량 창고였다.
‘1층은 잡무를 위한 층인가.’
오른쪽 복도 끝에 있는 계단을 올라갔다.
2층에 도착했다.
달콤한 향기가 강해지는 걸 느꼈다. 하반신으로 피가 몰리는 게 느껴졌다. 시선을 내려보니 자지가 발기해 있었다.
마침 발치에 있던 옥토와 시선이 마주쳤다.
“히익! 저, 전 토끼입니다요!”
“미친 새끼가. 너 같은 건 줘도 안 따먹는다.”
옥토를 발로 차준 뒤에 문을 열었다. 3명의 선녀가 있었다. 공간이 일렁거렸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야릇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3명의 선녀는 복장도 야했다. 새하얀 어깨선은 매끄럽고 가슴골은 깊었다. 드러난 새하얀 허벅지는 또 어떤가.
“후후후.”
“이쪽으로 오세요.”
“저희랑 놀아요.”
교태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설픈 느낌이 있었다. 일부러 연기하는, 어설픈 느낌?
‘그래도 상관없지. 저 미모들은 진짜니까.’
홀린 듯이 선녀들에게 다가갔다.
“후후후.”
선녀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공간이 일그러졌다. 선녀들이 위치가 바뀌었다. 나를 중심으로 정면, 오른쪽, 후방의 위치를 점했다. 그녀들은 품속에 숨기고 있던 피리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음악.
무척 듣기 좋은 음악이었다. 궁정악단도 이 정도로 잘 연주하지 못했다. 과연 선녀라고 해야 할까.
핏.
왼팔에 상처가 생겼다. 보이지 않는 칼날에 베인 것처럼 살갗이 갈라지며 피가 튀었다. 고통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심하지 않기로 했는데 눈이랑 귀가 너무 호강하다 보니 잠깐 정신을 놓고 있었군.’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파형(波形).
진각을 밟는다.
파동이 사방으로 뻗어나가 음파와 부딪친다. 승자는 천마군림보였다. 파동과 부딪친 음파는 파훼 되어 부서진다.
“꺄아아아아악!”
파동에 휩쓸린 선녀들이 나가떨어졌다. 그녀들은 바닥을 더듬거리며 피리를 찾았다.
‘어림도 없지.’
파각!
피리를 발로 밟아 부숴버린 나는 선녀들의 점혈을 짚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봉천(封天).
점혈에 당한 선녀들은 힘없이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사실 다른 방식으로 범하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럼 범하지 말라고? 그건 안 될 말이다.
나는 옷을 벗어 알몸이 되었다. 자지가 불끈거린다. 선녀들은 나를 보며 오들오들 떨었다.
“사, 살려주세요.”
“안 죽여. 우리 즐거운 시간이나 보내자고.”
• • •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데 30시간이 걸렸다.
어쩔 수 없었다. 설마 50명이 넘는 선녀가 나를 죽이기 위해 대기하고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나는 50명의 선녀를 전부 범했다. 50명의 선녀는 기본적으로 예뻤다. 그리고 예쁜 애들 중에서 유독 예쁜 애들이 있었다.
선녀들은 기본적으로 순진했다. 허나 10명 중 1명 정도는 독했다. 정말 독했다.
‘2번 정도 죽을 뻔했다.’
한 선녀는 보지에 독을 발라 나를 죽이려고 했다. 완전 회복이 없었다면 죽었을 것이다. 정작 그 선녀는 독 면역 고유 특성이라도 있는지 아무렇지 않았다.
다른 한 선녀는 암살 실력이 뛰어났다. 손톱에 칼을 숨기고, 혀 밑에 독침을 장착했다. 전문적인 암살자였다. 이상함을 느끼고 찰나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당했을 것이다.
‘항아. 그 샹년이 일부러 숨겨둔 거겠지.’
항아는 노골적으로 시간을 끌려고 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대체 뭘 준비하는지 두려워질 지경이다.
3층으로 올라온 나는 코를 벌렁거렸다. 미녀 특유의 달콤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방금까지 하얀 물을 쏘아냈던 자지가 다시 뻐근해진다.
‘그래도 선녀는 어쩔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