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궁 3층에 올라왔다.
복도식으로 방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1층과 2층과 달리 미로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정면에 있는 미닫이문을 열면 다른 방이 나온다. 방은 10평 정도에 정사각형이다.
‘건물 외관으로 보이는 구조와 내부 공간이 전혀 다르잖아.’
그게 말하는 바는 간단했다. 달의 궁 내부 공간이 괴리되어 있다는 뜻이다.
아틀란티스에서 공간에 장난을 치는 경우는 많기에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미로라도 상관없다.’
나는 발끝으로 바닥에 앉아 있는 새하얀 토끼, 옥토의 등을 툭툭 건들었다.
“네? 네?”
“길을 찾을 수 있겠나?”
“아, 그게….”
옥토가 미어캣처럼 몸을 일으켰다. 앙증맞은 두 발로 몸을 지탱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느껴지는 게 있긴 합니다요. 오른쪽에 출구가 있는 것 같은데… 아. 갑자기 왼쪽으로 바뀌었습니다요!”
“장난하는 거냐?”
“전 길 찾기로 장난 안 합니다요! 지금까지 제가 길 찾기로 장난한 적 있나요?!”
옥토가 소리쳤다.
생각해 보니 옥토는 항상 길 안내에 진심이었다. 실패했던 적도 없다. 지금 여기서 실패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생각을 바꿔야겠지. 이 미로에선 길 찾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지만, 출구의 방향은 느끼고 있다. 문제는 그 출구의 방향이 정확하지 않다는 건데….’
둘 중 하나다. 옥토의 실수이거나, 출구가 움직이고 있다거나. 나는 후자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옥토는 길 찾기에서 단 한 번도 틀린 적 없으니까.
“어디로 가야 하지?”
“그게….”
옥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갈피를 못 잡았다.
“출구가 있는 쪽을 말해라.”
“왼쪽입니다요!”
유감스럽게도 왼쪽에는 문이 없었다. 나는 우선 정면의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갔다.
“크르르르르….”
그 방에는 검은 털의 늑대가 있었다. 광기에 찬 붉은 눈의 늑대는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내 쪽으로 천천히 걸어온다. 늑대는 걸을수록 인간처럼 등을 세우기 시작했다.
웨어울프, 늑대인간이다.
“히이이이이익!”
옥토가 비명을 지르며 내 뒤에 바짝 붙는다. 나는 차분히 늑대인간을 관찰했다. 입에서 침을 뚝뚝 흘리고 있긴 해도 굶주린 동물이라는 느낌은 전혀 나지 않는다. 느껴지는 건 광기뿐이다.
‘광견병에 걸려 머리가 헤까닥 돌아갔나?’
살의를 마음에 품었다. 무형의 살기가 늑대인간에게 쏟아진다. 보통 이러면 주춤거리기 마련이다. 특히 본능에 충실한 짐승 같은 경우에는 살기를 느끼고 도망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눈앞의 늑대인간은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자극받은 듯 무릎을 굽히더니 도약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늑대인간의 머리에 주먹을 뻗는다. 늑대인간의 박살 난 이빨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진다. 주먹에서 뻗어나간 천마기는 늑대 인간의 머리를 단숨에 꿰뚫고 천장을 공격한다. 허나 천마기는 천장을 꿰뚫지 못했다. 천장이 호수의 표면처럼 일렁이더니 공격을 흡수한 것이다.
쿠웅.
늑대인간의 시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시체에는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천장을 계속해서 바라봤다. 천장이 물결치며 무언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둥근 달이다. 은은하게 빛나고 있어서 아름답게까지 보이는 달.
『달을 보세요.』
알림창이 떴다.
“…….”
눈을 가늘게 뜨며 알림창을 살펴봤다. 보통 시스템은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해 알림창을 띄운다.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명령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니,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내가 알고 있는 알림창과는 뭔가 다르다.
『달을 보세요.』
새로운 알림창이 떴다. 고개를 들어 천장의 달을 봤다. 달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물결에 비지는 달 같았다.
『달을 보세요.』
“달을 봤다만?”
목소리에 짜증이 담겼다. 달을 봤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흐으으… 흐으으으….”
반응은 옥토에게서 왔다. 몸을 비틀거리더니 침을 질질 흘리며 천장의 달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옥토의 검은색 눈동자가 서서히 붉게 변한다. 광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나는 왼손으로 옥토의 길쭉한 귀를 콱 움켜쥐었다.
“정신 안 차려?”
“흐으으으… 흐으으….”
옥토의 대가리에 주먹을 휘두른다.
퍼억! 퍽! 퍼억!
나름의 박자에 맞춰 때리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
퍼억! 퍽! 퍼억!
뭐라고 할까. 쫀득한 맛이 있어서 때리는 느낌이 꽤 좋았다.
퍼억! 퍽! 퍼얶!
“저, 정신 차렸어요! 그만 때려요! 아아악! 그만!”
옥토가 작은 입에서 피를 토하며 말했다. 하얀 털들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반대로 그 눈동자는 검은색으로 돌아왔다. 차오르던 광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천장을 보니 달은 온데간데없다.
“넌 방금 내가 아니었으면 미칠뻔했다.”
“네에. 가, 감사합니다요. 점점 정신이 아득해지긴 했어요. 나를 잃어버리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습니다요.”
옥토가 몸을 덜덜 떨었다.
‘광기의 원인이 천장에 나타났던 달에 있는 건 확실하군.’
달을 보면 미친다. 서양 쪽에서 그런 말을 들어본 것 같았다.
계속해서 문을 열며 나아간다. 갈림길이 나오면 옥토에게 물었다.
“어느 쪽이지?”
“왼쪽입니다요!”
사방으로 달이 가득 찬 방이 나왔다.
『달을 보세요.』
『달을 보세요.』
『달을 보세요.』
“흐으으으….”
또 옥토가 미치려고 했다. 내가 주먹을 들자 옥토가 딸꾹질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예 달을 보지 않기로 한 것이다. 효과는 있었다.
옥토와 달리 나는 달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담담히 달로 가득 찬 방을 지나친다.
다음 방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흐르는 요리와 함께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술상 앞에는 기생 옷을 입은 선녀 4명이 앉아 있었다. 그녀들이 매혹적으로 웃으며 내게 손짓한다.
“어서 오세요.”
“많이 힘드셨죠?”
“쉬고 가세요. 여기 있는 술과 요리는 모두 당신을 위한 것이랍니다.”
“저희가 당신을 위로해 드릴게요.”
노골적으로 드러난 하얀 가슴골과 허벅지. 어린아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알기 쉬운 유혹이었다.
“나, 나리! 저 음식에 독이 있을 겁니다요!”
말하지 않아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달의 궁의 주인인 항아의 성격을 생각하면 100% 술과 음식에 독이 들었을 것이다.
그녀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식탁을 붙잡고 그대로 내던졌다. 식탁에 있던 요리와 술이 와장창 박살 난다.
놀란 선녀들의 표정이 볼만했다. 내가 씨익 웃자, 그녀들의 눈가가 잘게 떨린다.
“보지나 벌려 썅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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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의 3층과 4층은 총 네 가지 패턴이었다.
달, 몬스터, 선녀, 함정.
이 중에서 지금 내게 위협이 되는 건 없었다. 나는 절대정신 덕분에 달을 봐도 미치지 않는다. 몬스터는 대부분 한 방으로 끝났다. 선녀? 암살만 조심하면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함정도 집중하면 회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3층의 출구를 찾는 게 좀 귀찮았지. 설마 출구가 움직이는 문일 줄이야.’
옥토가 없었다면 상당히 지체됐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4층의 끝을 목전에 두고 있다. 다행히 3층처럼 출구가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나리. 아마 저게 마지막 방일 겁니다요.”
3층에서 여기까지 닷새란 시간이 걸렸다. 5층에는 분명 항아가 있을 테니 슬슬 기대되기 시작한다.
“마지막 같긴 해.”
드르르륵.
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은은한 대나무 냄새였다. 그리고 방안을 빽빽하게 채운 대나무들이 보였다. 천장에서 달빛이 쏟아져 대나무들을 비추고 있었기에 어둡지 않았다.
‘다른 방보다 몇 배는 넓군. 선선한 바람까지 느껴지는 걸 보면 마치 밖에 있는 듯한 기분이군.’
대나무 사이로 길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앞으로 걸어가고, 옥토가 내 뒤를 바짝 붙었다.
“나리. 좀 으스스하지 않나요?”
“바람 때문이겠지.”
“아뇨, 아뇨. 뭔가 있어요. 뭔가가…!”
옥토의 말이 맞다는 듯이 타이밍 좋게 강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대나무가 흔들린다. 대나무가 서로 부딪히며 소음이 발생했다.
“히익!”
“너무 달라붙지 마라. 짜증 나니까.”
“죄, 죄송합니다요!”
끝에 도착했다.
거대한 대나무와 동화된 여인이 있었다. 새하얀 피부에 긴 흑발을 가진 여인은 하반신이 대나무였다. 하반신을 잘라 커다란 대나무에 상반신을 붙여 놓은 것 같은 모양새다. 가슴은 적당히 컸고 모양도 에뻤다. 유륜과 유두는 분홍색으로 시선을 잡아끈다.
“보지가 없군.”
아쉬움이 담긴 감상평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하반신을 제외하고 모든 게 완벽한 미녀였으니까.
“보시다시피 하반신이 없어서요. 대나무라도 좋다면 박으셔도 좋아요.”
「대나무 공주(僞)가 웃습니다.」
그녀가 킥킥 웃는다.
나는 안색을 굳혔다.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나무에 박은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어서다. 내게 나무에 좆을 박는 취미 따윈 없었다.
“카구야 공주인가. 어쩌다 그 꼴이 된 거지?”
“항아님에게 죄를 저질렀죠.”
“무슨 죄?”
“뒷담을 까다 걸렸거든요. 그야 그 사람 자기 남편을 버리고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달로 올라왔잖아요? 어떻게 뒷담을 안 깔 수 있겠어요?”
“내가 볼 땐 너도 정상이 아니다. 그년이 달의 거울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몰랐나?”
“알고 있었어요. 설마 달의 거울로 선녀들을 항상 감시하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요.”
나는 카구야 공주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5층으로 올라가는 문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어디에도 문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문을 찾고 계신가요? 저를 죽이면 5층으로 올라갈 수 있어요. 정확하게는 제 안에 5층으로 올라가는 문이 있죠.”
“설마 내가 널 못 죽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럼 제가 곤란해요. 전 죽고 싶거든요.”
“왜?”
“제 꼴을 보세요. 어느 누가 이 꼴로 살아가고 싶을까요.”
“그렇긴 하군. 유언은 있나? 미녀이니 유언 정도는 들어주지.”
“항아. 그년이 아주 처참한 끝을 맞이했으면 좋겠어요.”
“안 돼. 그년은 내 육변기가 될 예정이다.”
카구야 공주의 눈꼬리가 초승달처럼 휘어진다.
“좋네요. 상상만으로도 기뻐요. 꼭 당신의 목적이 달성되기를.”
나는 주먹을 손에 쥐었다.
우우우웅.
천마기가 주먹에 모이면서 덜덜 떨린다.
“그년을 조심하세요. 당신을 죽이기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게 뭔지 저도 모르지만… 그년에게서 광기까지 느껴졌으니 평범한 건 아닐 거예요.”
“명심하지.”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