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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670화 (1,450/2,000)

카구야 공주의 몸이 박살 난다. 그 몸체가 산산이 조각 나 바닥에 떨어지더니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카구야 공주가 있던 커다란 대나무 안쪽에 5층으로 올라가는 문이 있었다.

문 앞에는 죽창이 바닥에 꽂혀 있었다. 카구야 공주가 사라지고 나타난 물건이다. 즉, 카구야 공주를 죽인 보상이었다.

「죽창

자신보다 상대의 격이 높을수록 위력이 증가한다.

일회용.

랭크: SS」

죽창을 손에 쥐었다.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이 일품이다.

‘일회용이란 게 아쉽군.’

반대로 생각한다. 일회용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위력이 나올 것이다.

「대나무 공주가 당신을 지켜봅니다.」

“그래. 지켜봐라. 이 죽창을 항아의 똥구멍의 꽂아줄 테니.”

문을 바라봤다. 결전이 코앞이었다. 항아가 뭘 준비했던 내가 모조리 박살 낼 것이다.

“나리. 좀 불길한데요.”

“그럼 여기 있던가.”

“아뇨, 아뇨. 저 옥토! 신의 있는 토끼입니다요! 끝까지 나리를 따르겠어요!”

“신의?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르는군.”

“과, 과거는 훌훌 털어버리고 현재와 미래를 봐야 합니다요!”

팔짝 뛰는 옥토를 뒤로하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탁 트인 공간이 나를 반겼다.

반짝이는 별이 가득한 새까만 하늘과 넓게 펼쳐진 회색의 대지.

대지에는 크고 작은 크레이터들로 가득하다.

‘이건 3층이나 4층처럼 공간 괴리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여긴 달의 궁 5층이 아니다.

‘카구야 공주에게 속은 건가? 아니, 카구야 공주는 저항 없이 죽었다. 항아에 대한 증오심은 진짜였어. 이것도 항아의 수작이라고 봐야겠지. 항아는 어디에 있는 거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달의 궁에서 너무 놀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히엑…. 여기 달의 뒷면이잖아요?! 그것도 깊숙한 곳!”

“달의 뒷면이라고? 여기가?”

“네! 저 끝을 보시면 제가 파놓은 굴도 있습니다요!”

옥토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크레이터가 가득하다. 토끼굴 같은 건 안 보였다. 보이는 건 끝없이 늘어선 크레이터뿐이었다.

나는 좀 더 자세히 주변을 살피기 위해 무심코 앞으로 한 발 내디뎠다.

「제 7,815 구역, 달의 뒷면에 입장했습니다.」

「추방자 최초로 아틀란티스의 끝에 도달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능력치가 오른 건 좋았다. 방금 나는 조금 더 강해진 것이나 다를 바 없으니까. 모든 능력치가 오르는 것 자체가 희귀하기도 하고.

‘항아는 어디에 있는 거지?’

항아의 모습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

연신 두리번거리던 나는 이상함을 깨닫고 옥토를 불렀다.

“옥토. 달의 뒷면에는 괴물들이 우글거린다고 하지 않았나?”

“맞아요! 우글거립니다요! 근데 대부분 지면 아래에 있어서 여기선 잘 안 보이는 겁니다요!”

“글쎄. 지면 아래에도 없는 것 같다만.”

기감을 사방에 퍼뜨렸다. 파동처럼 쭉쭉 뻗어나간 기감은 지면 아래에도 닿았다. 인간을 비롯한 생물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예? 그럴 리가요. 저기 크레이터에 있는 구멍 보이시죠? 괴물이 드나드는 구멍입니다요! 저 정도 크기면 문크랩의 구멍이겠네요! 조심하세요, 나리! 가까이 가면 문크랩이 튀어나와 공격할 테니까요.”

나는 옥토가 가리킨 곳으로 대놓고 걸어갔다. 구멍 가까이 갔는데도 아무 반응 없었다. 아예 구멍을 향해 머리를 내밀었다. 구멍 안은 어두컴컴했다.

“문크랩인지 뭔지 아무것도 없다만?”

“아닌데… 있을 텐데….”

옥토가 쭈뼛거리며 내 곁으로 다가와 구멍을 확인했다.

“……없네요.”

“여기가 달의 뒷면이 아닐 가능성은 없나?”

“여긴 달의 뒷면이 맞아요. 이 온도와 냄새…. 생김새까지 전부 달의 뒷면이에요. 심지어 저 하늘의 별빛까지 여기가 달의 뒷면이라고 증명해주고 있어요.”

답답해서 물어본 말이었다.

사실 시스템이 이곳이 달의 뒷면임을 보증해주고 있기에 의심할 여지도 없다.

나는 구멍 속을 더 들여다봤다.

“내려가 봐야 하나? 이 아래에는 뭐가 있지?”

“당연히 공간이 있죠. 좀 답답하긴 해도 달이끼라던가, 달나무라던가 있어서 먹고 사는데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요.”

옥토의 말을 듣고 지면 아래를 상상해본다. 모종의 생태계가 형성된 모양이지만, 잘 상상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구멍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바람 소리 같기도 했고, 짐승이 숩 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안에 뭐가 있군.”

“제, 제 말이 맞잖아요! 아래에 괴물들이 있다니까요!”

“이건 더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내 얼굴은 심각했다.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건 알겠다. 허나 내 기감으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뜻은 내 기감에서 몸을 숨기고 있거나, 내 기감이 닿는 곳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는 거다.

“지면 아래는 얼마나 깊은 거지?”

“별로 안 깊습니다요. 5M 정도?”

“헛소리 말고.”

“진짜예요!”

“……지면 아래의 아래는 없나?”

“어…. 보통 아래로 내려가진 않아서 잘 모르는데… 아마 있을 거예요. 달의 안쪽은 비어 있으니까요.”

“뭔 개소리야. 달의 안쪽이 왜 비어 있어?”

“네? 당연히 달의 안쪽은 비어 있죠. 왜 비어 있냐고 물으셔도….”

옥토의 목소리는 장난기 없이 진지하다.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 나는 생각을 바꿨다.

‘이 세계에서는 달의 안쪽이 비어 있다는 게 상식인 모양이군.’

아틀란티스에 뭐가 있어도 놀라울 건 없었다. 하나, 하나 따지면 나만 손해다. 대충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게 최고다.

“아래로 내려가 봐야겠군.”

“뭔가 이상하니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요.”

구멍 속에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무언가가 구멍에서 솟구쳤다. 고개를 번쩍 들고 쳐다본다. 거울이었다.

본 적 있는 타원형의 거울이다.

‘달의 거울이군.’

거울은 허공에서 천천히 빙글빙글 돌더니 별빛을 모으기 시작했다. 모인 별빛은 사람의 형상을 취했다.

한 명의 선녀가 나타났다. 여기까지 오면서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선녀가 달의 거울을 쥐고 나를 내려봤다. 분노, 경멸, 증오. 부정적인 감정이 뒤섞인 시선은 살벌했다.

나는 항아를 보자마자 위로 도약했다. 순식간에 10M가 넘는 높이를 뛰어오른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항아가 겨우 주먹 한 방에 죽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허나 만약의 가능성도 있기에 머리나 가슴이 아닌 어깨를 노렸다. 항아를 단번에 죽이는 건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

항아의 날개옷이 바람 없이 펄럭였다. 그녀의 몸이 스르르 옆으로 이동한다. 내 주먹에서 쏘아진 천마기는 애꿎은 허공만 갈랐다.

발바닥에서 천마기가 방출된다. 천마기는 흩어지지 않고 뭉쳐 발판을 형성했다. 나는 허공에 서서 항아를 쳐다봤다.

“항아! 이렇게 보니 반갑구만! 지금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네 보지를 쑤실 순간 말이야! 보지는 상태는 좀 어때?!”

“천박한 것! 기어코 여기까지 왔구나!”

그녀는 양손에 쥔 달의 거울로 나를 비추었다. 이번에도 달의 거울에 별빛이 모이기 시작했다.

‘천마군림보로 공간 이동해 항아의 뒤를 잡아 단숨에 제압한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주위 공간을 장악하고 공간을 도약한다.

실패했다.

나는 여전히 항아의 앞에 서 있었다.

‘천마군림보를 실패했다고? 왜? 공간장악은 완벽했다.’

지금 내 컨디션은 최고조에 가까웠다. 천마군림보를 실패할 이유가 없었다. 다시 한번 천마군림보를 쓰려다가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걸 깨달았다.

“우둔하구나. 달의 거울에 비친 순간부터 이미 넌 붙잡혔다. 이렇게 간단한 걸…. 내가 왜 그동안 질질 끌었을까.”

항아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며 웃었다. 나는 항아가 들고 있는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에는 나뿐만이 아니라 항아도 비쳐지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항아는 지금 거울을 들고 있으니까. 물리적으로 거울에 비쳐질 수 없었다.

“자아. 어떻게 죽여줄까. 우선 손톱부터 뜯어내고 가죽을 벗겨야겠지. 아, 선녀들을 범한 그 하물은 잘게 찢어 돼지 먹이로 뿌려야겠어. 돼지들이 먹을지는 모르겠지만.”

거울 속의 항아는 제각각 다른 방향에서 나를 비추고 있었다. 거울 속의 거울에는 역시 내가 비쳐지고 있다.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 나는 거울 속에 갇혀 있음을.

‘천마신공.’

천마기를 폭발시킨다. 패도적인 천마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다가 돌연 방향을 바꾸어 돌아왔다. 반사된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3M.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천마기로 박살 내는 건 불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벽은 점점 좁혀오고 있었다. 이대로는 보이지 않는 벽에 짜부라질 것 같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나는 몸을 움직일 순 없으나 천마신공을 운용할 수 있다.

‘마냥 버텨야 하냐?’

버티는 건 자신 있었다. 하지만 저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항아를 보니 가만히 당해주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천심.’

[천심(天心)을 발동합니다. 1분 동안 지속됩니다.]

쨍그랑!

천심을 사용하자마자 거울 깨지는 소리와 함께 몸이 자유를 되찾았다. 항아를 향해 도약했다.

웃고 있던 항아의 표정이 단숨에 일그러진다. 그녀가 달의 거울을 들어 나를 비춘다. 허나 지금의 나는 그 무엇도 구속할 수 없었다. 내 주먹이 거울을 박살 낸다. 다른 손으로 항아의 목을 붙잡으려는 순간, 항아의 육체가 별빛으로 변해 사라진다.

“…가짜?”

진짜는 어디에 있지?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느려진 세계에서 진짜 항아를 찾는다.

찾았다.

부서져서 아래로 떨어지는 거울 조각이 항아를 비추고 있었다.

‘부서진 거울 속에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거울에만 비쳐지는 건가.’

허공을 박차고 도약한다.

쨍그랑!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거울이 부서진다. 모습을 숨기고 있던 항아의 몸은 아까처럼 별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이것도 가짜.’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떨어지는 거울 조각에 다른 항아가 보인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도약했다.

‘가짜.’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쨍그랑!

‘가짜.’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3]

쨍그랑!

‘이것도 가짜.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2]

퍼억!

내 주먹에 맞은 거울이 부서지지 않고 흔들렸다. 이전의 달의 거울과 비교해 말도 안 되게 단단하다.

나는 씨익 웃으며 달의 거울을 쥐고 있는 항아의 목을 낚아채듯 움켜쥐었다. 항아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이번엔 진짜군.”

항아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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