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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680화 (1,460/2,000)

< 1680화 > 1680. 헌터 VS 뱀파이어

교관이 영상을 틀었다. 직원과 뱀파이어가 전투를 벌이는 영상이다.

영상 속에 야구 모자를 푹 눌러 쓴 남자가 나온다. 해가 저문 밤이었다. 남자는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터벅터벅 걷고 있다.

타앙!

총성과 함께 남자의 머리가 터져나간다. 바닥에 쓰러진 남자의 몸은 경련하며 움찔거렸다. 그 육체는 부풀어 올랐다. 피부는 창백했고 팔과 다리는 길었다.

“아쎄이들! 저게 바로 뱀파이어의 진짜 모습이다! 뱀파이어를 쉽게 죽이는 방법은 뱀파이어가 진짜 모습을 드러내기 죽이는 거다! 따라서 저격은 최고의 뱀파이어 사냥법이라 할 수 있다!”

영상이 이어진다.

직원이 뱀파이어를 저격하는 영상이었다.

타앙!

타앙!

타앙!

총성이 울릴 때마다 뱀파이어가 죽는다.

“아쎄이들. 저격이 최선이란 걸 잊지 마라. 허나 최선의 상황은 잘 나오지 않는다. 피모기 놈들도 저격이 무엇보다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이놈들은 보통 저격이 불가능한 길만 고집하며 돌아다닌다. 저격이 가능한 곳에서는 극도로 예민하게 굴지.”

뱀파이어는 짐승이 아니었다.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 일방적으로 저격만 당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볼 영상은 원거리 전투다.”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총성이 울렸다. 직원뿐만이 아니라 뱀파이어들도 인간처럼 총을 쏘는 것이다. 총격전은 5분 이상 이어졌고, 뱀파이어들의 승리로 끝났다.

“…….”

훈련병들 침묵했다. 설마 인간이 패배하는 연상을 틀어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아쎄이들! 뱀파이어를 얕보지 마라! 기본적으로 뱀파이어의 피지컬이 인간보다 뛰어나다! 전면전은 최대한 피해라! 방금 보여준 총격전은 최악의 전투였다는 걸 알아둬라! 이번엔 최적의 전투 영상을 보겠다.”

정장을 입은 2인 1조의 직원이 지나가는 뱀파이어를 향해 샷건 총구를 들이밀고 공격한다. 뱀파이어가 반응했으나, 샷건보다 빠를 순 없었다. 샷건으로 팔을 잃은 뱀파이어가 분노하며 진짜 모습을 드러내며 샷건을 든 직원에게 달려든다. 그 뒤에 있던 다른 직원이 뱀파이어 머리에 소총을 갈겼다. 머리에 은탄이 박힌 뱀파이어는 일어서지 못했다.

“전투는 짧게 끝난다! 방금과 같이 5초 내로 끝나는 전투가 베스트다! 아쎄이들! 너희가 만약 정식으로 입사에 성공한다면 선임과 함께 2인 1조로 활동하게 될 거다! 2인 1조가 기본이기 때문이다! 혼자서 뱀파이어를 상대할 수 있다는 자만은 갖다 버려라!”

이번에서도 최상우가 손을 들었다.

“21번 아쎄이…. 또 너군. 질문을 허락한다.”

“정말 2인 1조가 필수입니까? 단독으로 뱀파이어를 사냥하는 직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쎄이, 제법 조사를 한 모양이군. 예외는 어디에나 있다. 단독으로 사냥에 나서는 직원은 베테랑 이상의 실력을 갖춘 자들이다. 우리는 경외를 담아 그들을 이렇게 부른다. 예거.”

원작을 통해 나도 예거에 대해 알고 있었다. 예거는 대단한 자들이 맞다. 허나 그 예거들도 결국은 인간이다. 그 예거도 노블급 뱀파이어는 혼자서 사냥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부터 보여줄 영상은 한국 지부 예거 중 한 명의 영상이다. 예거가 얼마나 대단한 자들인지 보여주기 위한 영상이다. 괜히 따라 하지 말도록.”

영상이 재생된다.

정장을 입은 여자와 진체를 드러낸 뱀파이어 2마리가 대치했다. 여자는 뱀파이어에게 겁먹지 않고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스르르릉. 검 뽑히는 소리가 으스스했다.

나는 정장을 입은 여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검은색의 긴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이 잘 안 보이지만, 내 여자를 못 알아볼 리가 없다.

‘주서현이잖아.’

한 자루의 검을 쥔 주서현이 뱀파이어들과 춤을 춘다. 주서현이 검이 움직일 때마다 뱀파이어들은 피하지 못하고 당했다. 뱀파이어들의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리고 목이 잘린 끝에 영상은 끝났다.

‘신체 능력은 신의 아틀란티스에 있을 때보다 확연히 떨어진 게 맞아. 근데 검은 더 날카로워졌군. 지금의 주서현과 내가 싸운다면….’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다. 괜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주위는 조용했다. 훈련병들은 주서현의 실력에 압도당한 것이다.

“아쎄이들! 일어나라! 실전 훈련이다! 2인 1조로 교관을 상대한다! 동료와의 합을 맞추는 데 집중해라!”

***

훈련소에 입소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은 이론 교육을 중심으로 했던 것에 반해 2주 차부터는 본격적으로 뱀파이어를 사냥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교관들이 훈련병들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저격 연습을 하고 있었다.

움직이는 인형을 500m 저격을 성공 해야 합격이다. 보통 2주 차에는 잘 못 맞춘다. 허나 사격 특성을 가진 내겐 500m는 껌이었다.

“아쎄이…. 넌 타고난 저격수다! 1,000m 가능하나?”

“할 수 있습니다.”

“좋다! 저격에 성공한다면 최고 점수를 주겠다!”

스코프에 눈을 갖다 댄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목표물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 좁쌀보다 작다.

‘못 맞출 자신이 없군.’

방아쇠를 당긴다.

강선에서 뻗어나간 총알이 움직이는 인형의 머리를 관통했다.

“아쎄이! 완벽하다! 1,100m도 가능하겠나?!”

“힘들 것 같습니다만, 도전은 해보겠습니다!”

“도전 정신! 아주 훌륭하다!”

나는 1,300m에서 기록을 멈췄다. 2,000m 저격도 가능할 것 같긴 한데 피곤해서 관뒀다. 1,300m면 최고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그 이후로 권총, 샷건, 돌격소총 등등 사격에서 최상위 점수를 받았다. 날 보는 교관들의 눈빛이 아예 달라졌다. 부담스러울 정도다.

다른 훈병들이 내게 다가왔다. 어떻게 하면 사격을 잘 할 수 있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귀찮음을 감추고 성실하게 대답해줬다.

‘평가 점수에 사회성도 들어간다. 훈련소를 수료할 때까지는 귀찮더라도 적당히 상대해 줘야 해.’

근접 전투도 평가 대상이었다.

물론 여기서도 나는 최고 평가 점수를 받았다. 검이나 나이프는 내 전문이었고, 그 외에 근접 무기도 어렵지 않게 다뤘다. 단 하나, 맨손 전투를 빼고는.

맨손 전투의 권위자는 내가 아니라 최상우였다.

최상우의 어마어마한 피지컬은 나를 웃돌았다. 무식하게 힘만 쎈 것도 아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잠깐 복싱을 배웠다더니 주먹이 매서웠다. 무기를 들고 있었다면 기술로 압도했겠지만… 맨손 전투는 아니었다.

‘내가 졌다. 주먹질로는 못 이긴다. 늑대 인간의 본능 같은 건가?’

하나 정도 뒤처져도 괜찮았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훈련소 1등은 이미 따 놓은 당상이니까.

‘순조롭다. 원작대로 이니 4주 차 때 올 습격만 잘 대응하면 돼. 최상우보다 내가 더 활약해야 한다.’

나는 식판 위의 음식을 파먹었다. 토가 나올 만큼 맛없었다. 보는 눈만 없었어도 갖다 버렸을 것이다.

***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주서현이 엘리베이터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발걸음은 특수부 2과라 적힌 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사무실 내부로 들어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꽂혔다. 존경, 부러움, 선망 등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개중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감정도 섞여 있었다. 주서현은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과장실의 문을 노크했다.

“주서현 대리입니다.”

“들어오게.”

구형진 과장. 안경을 쓴 중년 남자로 머리에 원형 탈모가 진행 중이다. 주서현의 상사이기도 했다.

“대림동에 숨어든 뱀파이어 3명을 사냥했습니다. 뱀파이어 시체 3구는 지원부에서 처리하고 있습니다.”

“음. 보고서로 작성해서 올려주게. 자네도 피곤할 테니 오늘은 퇴근해도 상관없네.”

“아뇨. 오래 걸리지 않으니 지금 보고서 작성하겠습니다.”

“그럼 나야 고맙지.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말이네만…. 자네는 여전히 차갑군. 슬슬 나와 동료들을 믿어 줄 때가 되지 않았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구형진은 주서현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너무 차분해서 차갑게까지 느껴진다. 지난 1년 동안 직장 동료로서 함께 일했지만, 그녀는 자신을 비롯한 직장 동료들을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후우. 됐네. 자네 편한 대로 하게. 더 말하는 것도 오지랖이겠지. 아, 슬슬 파트너를 받을 생각은 없나? 자네가 예거인 건 알고 있지만, 상부에서는 자네가 신입을 맡아 키워줬으면 하는 바라고 있네.”

“없습니다. 혼자가 편합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파트너는 젤 발목만 잡을 뿐입니다.”

“너무 단호하군. 그래도 일단 서류라도 한 번 보게. 이번 훈련소에서 역대급 인재가 2명이나 있다더군. 아직 훈련 과정은 안 끝났네만, 이 둘은 서울 지부로 오는 게 확정됐다고 보면 되네.”

구형진이 서류 두 장을 내밀었다. 파트너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던 주서현은 서류를 한 번 훑어보고 돌려줄 생각이었다.

허나 서류 한 장을 본 주서현은 두 눈을 부릅뜨며 서류를 구겨지도록 꽉 쥐었다. 그녀는 서류의 상단의 증명사진을 보며 동요하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주서현의 반응에 덩달아 구형진도 놀랐다.

“갑자기 왜 그런가? 알고 있는 사람인가?”

“…….”

주서현은 구형진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굉장히 복잡했다.

1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아틀란티스에서 이곳으로 내던져졌다. 아틀란티스 시스템과 시스템에서 비롯된 능력은 사라졌다. 처음에는 아틀란티스의 일이 꿈인가 싶었지만, 손에 들고 있던 검과 바지 아래의 정조대가 꿈이 아님을 알았다.

그러다 자신을 습격한 뱀파이어를 죽이게 되고, BC 회사에 스카우트되어 뱀파이어를 사냥해왔다. 따로 아틀란티스에 대해 조사해봤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지금까지는.

‘성유진…!’

성유진이 이 세계에 있다.

이 세계는 아틀란티스와 관련된 게 틀림없었다. 그 증거가 성유진의 존재다. 분명 신의 농간이나 무언가겠지.

성유진이 이 세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몸이 뜨거워진다. 이건 분노다. 특히 아랫배가 뜨거운 건 정조대의 원한 때문이리라.

까득.

주서현이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지금 당장에라도 성유진을 만나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훈련소의 위치를 모른다. 훈련소의 위치는 극비 중의 극비인지라 일반 사원은 알 수 없었다. 회사에서도 소수의 인원만이 그곳의 위치를 안다.

‘급할 필요는 없어. 일주일만 기다리면 서울 지부로 올 거야.’

주서현은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자네. 뭔가 생기가 도는 것 같군. 성유진. 그와 아는 사이인가?”

“모르는 사이입니다. 과장님. 이놈…. 아니, 이 사람은 제가 담당하겠습니다.”

“자네가? 방금까지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나?”

“필요합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나가보겠습니다.”

주서현은 성유진의 서류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구형진 과장은 허하고 웃었다. 지난 1년 동안 주서현은 어떤 위험한 미션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최고의 직원이었다. 어쩔 때보면 기계 같았다. 회식에 데려가도 그녀는 항상 딱딱했으니까.

‘성유진. 그와 아는 사이인 건 확실한 모양이군. 혹시 연인 사이였나? 이런 그게 사실이면 난리 나겠군. 주 대리를 마음에 둔 남자들이 한둘이 아닌 걸로 아는데.’

뭐가 어찌 됐든 생기가 느껴지는 주서현의 모습은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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