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2화 > 1682. 헌터 VS 뱀파이어
“훌륭하다! 25번 훈령병! 이젠 아쎄이라고도 못 부르겠군!”
교관이 박수 치며 감탄했다.
이 실습에서 나처럼 나이프를 들고 뱀파이어를 죽인 훈련병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너의 칼질은 전문가 못지않은 칼질이었다. 반면 14번 훈련병….”
교관이 눈길이 박손강에게 향한다. 나를 보던 시선과 달리 눈매가 순식간에 사납게 변했다.
“엎드려!”
“네!”
박손강이 단숨에 엎드렸다. 교관은 그의 앞에 서서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그의 안광이 무시무시하게 빛난다.
“14번 훈련병! 방금 그 전투는 뭐였나? 아니, 그건 전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개짓거리였다! 네놈은 총을 쏴야 할 타이밍을 모르나? 동료를 위해 싸울 용기도 없나? 동료를 뭐로 보는 거냐?”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네놈의 실수가 용납되나? 24번 훈련병이 아니라 다른 훈련병이었다면 뱀파이어에게 최소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시정하겠습니다!”
“빌어먹을 새끼! 너는 따로 재시험을 보겠다! 재시험에서도 이따위로 나온다면 짐싸야 될 거다!”
“반드시 통과하겠습니다!”
박손강이 악을 쓰며 소리 질렀다. 물론 그런다고 교관의 갈굼은 끝나지 않았다. 박손강은 아마 오늘 하루종일 기합받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 밤에 인간을 포기할지도 모르겠군.’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
***
오전 0시. 자정. 저녁 점호가 끝나고 모두 잠들었을 시간.
나는 잠들지 않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뱀파이어의 습격이 내일일지, 아니면 지금일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들었다가 공격당하면 한 번에 훅 갈 수도 있다.’
지금의 내 신체 능력은 일반인과 다름없고 마나도 사용할 수 없었다. 잠들었다가 뱀파이어의 기척을 느끼고 깨는 건 불가능하다. 뱀파이어는 숨어서 움직이는 것도 인간보다 더 잘하니까.
‘완전 회복이 있다고 해도 최대한 아껴야지. 기습당해서 허망하게 완전 회복을 사용할 순 없어.’
나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문과 창문 밖으로 빛이 새어 나가지 않게 위치를 잡고 인터넷을 하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돈만 있으면 영화든, 소설이든, 드라마든, 만화든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세계가 세계다 보니 뱀파이어를 악의 축으로 그리는 창작물이 굉장히 많군.’
이 세계는 시민들에게도 뱀파이어의 존재가 알려져 있었다. 그렇기에 뱀파이어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증오한다.
뱀파이어와 인간이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 여기 사람들은 혐오한다. 뱀파이어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있어 인간은 식량. 그 이상도 아니니까. 인간에게 성욕을 느끼는 뱀파이어는 굉장한 변태라고 한다.
크으….
창문 쪽에서 무언가 소리가 났다. 나는 스마트폰을 끄고 창문 쪽으로 조심히 움직였다. 창문을 소리 없이 열었다. 창문 옆에 붙어 귀를 기울인다.
크, 끄으으윽….
남자의 신음이 들린다. 무언가를 하면서 내뱉는 소리가 아니다. 고통을 억지로 참는 듯한 신음이다.
‘윗층. 대각선 방향이군. 저 방 주인이… 박손강이다.’
이 늦은 시간에 박손강이 신음을 흘리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박손강은 지금 뱀파이어의 피를 몸에 주입해 뱀파이어로 변이하고 있다.
‘지금 죽일까?’
지금 조용히 처리한다면, 뱀파이어의 습격은 없을 것이다. 그럼 앞으로 일주일 동안 평온하게 훈련받고 수료할 수 있다.
‘아니야. 공적을 쌓자. 예거인 주서현을 만나려면 확실한 공적이 있는 편이 더 좋겠지.’
나는 창문 옆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머릿속으로 습격에 대비해 짜 놓았던 계획을 다시금 확인한다.
‘그러니 습격당하기 전에 1층으로 내려가 교관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무기고를 개방케 한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다. 뱀파이어 사냥의 전문가들이고, 그 전문가들이 키워낸 훈련병들 모여있다. 적절한 무기만 있다면 30마리의 뱀파이어들이 덤벼도 쉽게 당하지 않는다.
크윽…. 크, 크크큭….
신음 소리 뒤로 낮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성공적으로 뱀파이어로 변이했나 보군. 원작대로라면 슬레이브가 아니라 커먼이겠지.’
뱀파이어는 피로 계급이 정해진다. 커먼에게 피를 주입 당해 슬레이브가 되고, 노블의 피는 커먼을 만든다. 로드의 피는 당연히 노블을 만든다. 그리고 오래 살다 보면 슬레이브도 노블이 될 수 있었다.
후두둑!
창문에서 액체가 떨어졌다.
‘…피 냄새가 난다.’
뱀파이어가 된 박손강이 자신의 피를 창문 밖으로 뿌린 것이다. 뱀파이어의 피 냄새는 인간의 것과 흡사했다.
‘아직이다. 아무리 뱀파이어라도 단번에 이곳을 덮칠 수는 없다. 1시간만 기다리자.’
1시간이 지났다.
나는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으로 내려가자 교관이 팔짱을 끼며 불침번을 서 있었다. 여기 훈련소 교관들은 어떻게 된 게 불침번을 설 때도 농땡이를 부리지 않는다.
“25번 아쎼이. 무슨 일이지?”
“밖에서 피 냄새가 납니다.”
“…뭐?”
“답답해서 창문을 열었는데 피 냄새가 났습니다.”
피 냄새.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자들은 피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교관은 바로 무전기를 들었다.
“여기는 숙소. 25번 훈련병이 피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확인이 필요합니다.”
“…지금 교관 3명을 보내겠다. 25번 훈련병과 대기하라.”
“알겠습니다. 25번 훈련병. 들었나? 너는 나와 대기한다.”
잠시 후 교관 3명이 추가로 왔다. 그들은 모두 총과 칼을 무장한 상태였다. 불침번을 서고 있던 교관은 그들로부터 총을 건네받았다.
“교관님. 제게도 무기를 주셨으면 합니다.”
“아쎄이. 너는 아직 아쎄이다. 네가 말한 곳으로 우리를 안내해라. 교관 2명은 이곳에 남아 대기한다.”
나는 그들을 건물 뒤편으로 안내했다.
바닥에 떨어진 검붉은 피를 본 교관 중 한 명은 주머니에서 가루가 든 약통을 꺼냈다. 통을 열고 피를 향해 시약을 흩뿌렸다. 피는 시약이 닿자마자 부글부글 반응했다.
“…뱀파이어의 피가 확실합니다.”
“이런 젠장! 뱀파이어 새끼들이 냄새를 맡고 몰려올 거다! 당장 통제실에 보고해라!”
“알겠습니다!”
“나는 건물에 숨어 있는 쥐새끼를 찾으러 간다! 피가 떨어진 위치를 보니 특정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군. 24번 아쎄이! 넌 나를 따라와라! 너의 그 귀신같은 칼솜씨를 믿겠다!”
그는 내게 은도금이 된 나이프 한 자루를 건네주었다. 나이프를 받아 든 나는 미소를 숨기고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만일을 위한 대비다. 일이 제대로 풀린다면 네가 나설 일은 없을 거다. 가자!”
교관과 나는 1층부터 시작해서 기숙사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박손강이 있는 3층에 도달했다. 문에 있는 작은 창문으로 내부를 살펴본다.
“교관님. 발견했습니다. 14분 방입니다. 뱀파이어가 뻗어 있습니다.”
조용히 교관을 불렀다.
교관은 기척을 죽이며 다가와 내부를 확인했다.
“박손강…. 이 빌어먹을 놈이 스파이였군. 뱀파이어의 피를 가져와 변이한 건가? 설마 똥구멍에 뱀파이어의 피를 넣어서 가져왔나?”
교관은 순식간에 답을 맞혔다. 그 짬은 어딜 안 가는 모양이다.
“아쎄이. 지금 저놈을 처리하겠다. 너는 지금은 내 파트너다. 너를 믿어도 되나?”
“믿어 주십시오. 실망 시키지 않겠습니다. …근데 다른 교관의 도움을 안 받아도 됩니까?”
“저놈은 이제 막 뱀파이어가 된 놈이다. 커먼이라고 해도 경험 자체가 얕다. 더군다나 뱀파이어를 부르기 위해 대량의 피를 쏟아냈지. 뱀파이어의 근원인 피가 빠졌다는 거다. 지금 저놈은 슬레이브보다 약하다. 무엇보다….”
교관은 문고리를 꽉 잡으며 씹어 뱉듯이 말을 이었다.
“저놈은 우리의 존재를 눈치챘다. 도망치기 전에 죽인다.”
콰앙!
문을 열어젖힌 교관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오직 뱀파이어를 죽이기 위해 특수 제작된 은탄이 창문으로 도망치려는 박손강의 등에 정확히 박혔다.
“끄아아아악!”
박손강이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교관은 탕탕탕 총을 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열 발이 넘는 은탄이 등에 박힌 박손강은 겁에 질려 눈물 맺힌 눈으로 나와 교관을 올려봤다.
“교, 교관님! 사, 살려 주십시오!”
“빌어먹을 간첩 새끼가! 대체 누구를 부른 거냐?! 말해!”
“백지오! 백지오 놈이 저를 협박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교활한 새끼의 짓인가. 24번 아쎄이!”
“네. 교관님.”
“네게 뱀파이어를 처리할 기회를 주겠다! 어떡할 텐가?”
“감사합니다!”
교관이 내게 권총을 건넸다.
“제겐 나이프가 있습니다.”
“비상사태다. 아직 숙소에서 뭉그적거리는 놈들을 모두 깨워져라!”
무슨 뜻인지 알겠다. 나는 뱀파이어 대가리에 총구를 겨눴다.
“으아아아아악 살려줘!!”
타앙!
대가리가 꿰뚫린 박손강은 단번에 지옥으로 꺼졌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총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방아쇠를 당겼다.
기상을 알리는 총성이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
모두가 잠에서 깼고, 무기고가 개방되었다. 훈련병들은 교관의 허락하에 소총, 권총, 나이프를 받았다. 나는 추가로 저격총과 검까지 받았다.
교관 12명과 총교관이 기숙사로 옥상으로 모였다. 그들은 바리게이드를 이용해 출입구를 막았다..
무장한 총교관이 모두의 앞에서 말했다.
“약 1시간 내로 뱀파이어의 습격이 시작될 것이다. 적들의 수는 최소 10명 이상이겠지. 아마 뒷산에서 올 것이다. 당황하지 마라. 이미 우리는 진지를 만들었고, 회사에 지원군을 요청했다. 늦어도 3시간 내로 지원군이 도착할 것이다. 3시간만 버티면 된다.”
총교관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교관과 훈련병들은 조용히 마음을 다잡았다. 각오를 끝내 그들은 총교관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24번 훈련병.”
“네. 총교관님.”
“저격할 수 있겠나?”
“뒷산으로 온다면 힘듭니다.”
“……힘들다고? 불가능한 게 아니라?”
“제가 밤눈이 좋습니다. 나무가 거슬리긴 하지만… 거리는 100m도 되지 않습니다. 포착만 할 수 있다면 저격할 수 있습니다.”
“그 자신감이 대단하군. 허나 네가 저격해야 할 곳은 뒷산이 아니다. 정면이다.”
“예?”
“뱀파이어 중에는 멍청이들이 많다. 저격을 당해도 머리만 안 맞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놈들이 부지기수지. 아마 정면에서 뛰어오는 놈들이 있을 거다. 너는 그놈들을 저격해라.”
“알겠습니다. 한 놈도 놓치지 않겠습니다.”
“소문이 자자한 그 저격 실력을 믿겠다.”
“정면으로 오는 멍청한 놈들은 모두 죽을 겁니다.”
“마음에 드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