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3화 > 1683. 헌터 VS 뱀파이어
“온다!”
어느 눈 좋은 교관이 긴장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직후, 뒷산의 수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에 의한 소리라고 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부자연스러웠다.
“올 것이 왔군. 명심해라. 함부로 방아쇠를 당기지 마라. 총알을 낭비하지 마라. 총알이 전부 떨어진다면 죽는 건 우리가 될 것이다.”
총알이 근엄하게 말했다. 소총을 든 훈련병들이 긴장감을 숨기지 못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보, 보였습니다! 방금 나무 사이로 뱀파이어가 지나갔습니다!”
“뭐 하는 거냐! 보였으면 쏴라! 먼저 죽이지 않으면 죽는 건 네가 될 거다!”
“예, 옙!”
탕! 타앙! 탕탕탕!
어두운 밤에 총성이 울렸다. 교관과 훈련병이 뒷산에 대고 총을 갈긴다. 총성 사이로 간간이 비명이 들렸다. 총에 맞은 뱀파이어가 비명 소리였다.
저격 총을 정문에 겨누고 엎드려 있는 나는 총성과 비명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25번 훈련병.”
내 옆에 있는 총교관이 나를 불렀다.
“네. 총교관님.”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그 모습, 매우 훌륭하다! 뒤에 뱀파이어가 오고 있다. 두렵지 않나?”
“총교관님을 믿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원작을 믿고 있었다. 원작에서 기습당했는데도 불구하고 뱀파이어들을 이겨낸다. 원작과 달리 미리 알고서 대비하고 있으니 질 리가 없었다.
“25번 훈련병. 너는 날 감동시키는군. 너 같은 인재가 많이 있었다면 바퀴벌레 같은 뱀파이어 놀들의 숫자도 많이 줄어들었겠지. 회사는 너 같은 인재를 원한….”
총교관의 말을 끝까지 듣기 전에 방아쇠를 당겼다. 지루한 총교관의 말을 끊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면 입구, 연병장 너머에 뱀파이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내 시야에 들어온 뱀파이어는 미간에 구멍이 뚫려 사망했다.
총교관은 바로 적외선 망원경을 쓰고 감탄했다.
“야간에 500m가 넘는 거리를 이렇게 쉽게 저격 성공하다니…. 저격 실력 하나만큼은 교관들 이상이군.”
“감사합니다.”
말하면서도 적이 보였다. 방아쇠를 당긴다. 뱀파이어 반응은 빠르지 못했다. 500m 거리가 있으니 뱀파이어도 총구를 보고 피하지 못하는 거다. 은탄은 뱀파이어의 머리에 정확하게 탄착했다. 문제는 뱀파이어가 방탄모를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평범한 방탄모가 아니었다. 평범한 방탄모라 하기엔 지나치게 컸고, 통짜 강철을 갖다 놓은 것 같았다. 인간이 머리에 쓰면 목뼈가 부러질 것 같은 투구다. 인간보다 강한 뱀파이어만이 쓸 수 있는 방탄모다.
‘헬멧뿐만이 아니다. 아예 온몸을 강철판으로 도배했군.’
뱀파이어는 중세 시대의 무장한 기사처럼 뛰어온다. 속도는 느리지만 방어력은 그 만큼 더 높다. 장갑차가 천천히 내 쪽으로 오는 느낌이다. 놈의 뒤로 뱀파이어들이 뒤따른다.
“멍청한 것들이 머리 좀 썼군.”
총교관이 혀를 찼다.
“다른 뱀파이어를 노려라. 그게 더 낫겠군. 저 오리 새끼처럼 뒤따라오는 뱀파이어는 처리할 수 있지 않나?”
“저 강철 덩어리를 포함한 피 모기 새끼들을 전부 죽이겠습니다.”
“자네의 패기는 인정한다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하다.”
“할 수 있습니다. 보여드리죠.”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마나를 사용할 수 없어도 스킬은 사용할 수 있었다.
찰나를 사용하니 세상이 느려진다. 나는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찰나는 멈춘 것처럼 느껴지지만, 멈춘 게 아니다. 아주 느리지만 세상은 흐르고 있다.
‘찰나를 썼으니 방아쇠를 당기는 건 순식간이다. 하지만 총알이 날아가는 속도는 계산해야 해.’
노리는 것은 목에 있는 틈이었다. 투구와 갑옷 사이에 있는 작은 틈. 편의성을 위해서인지 미처 가리지 못한 부분이다.
‘눈까지 빈틈없이 가린 주제에 목 부분은 가리지 않다니 어처구니없군.’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다. 그 틈은 투구 아래에 있고 틈도 작아서 10m 거리에서 사격해도 명중하기 어렵다. 하지만 난 다르다. 사격 실력은 물론이고 찰나까지 있다. 집중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면 남들에겐 불가능한 저격도 나는 할 수 있게 된다.
‘지금.’
방아쇠를 당긴다. 총성과 함께 은빛 탄환이 직선을 그리며 철갑 뱀파이어의 목 부분에 정확히 박힌다. 전진하던 뱀파이어의 발걸음이 멈춘다. 이윽고 뱀파이어는 앞으로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린다.
“…허. 이건 대단한 수준을 넘어섰군. 25 훈련병. 혹시 뱀파이어인가? 아니면 네 몸에 늑대 인간의 피가 흐르나?”
“뱀파이어나 늑대 인간이면 저처럼 할 수 있습니까?”
“내가 멍청한 질문을 했군….”
나는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철갑 뱀파이어의 뒤에 있던 놈들이 일제히 흩어져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당황할 필요 없다. 놈들과의 거리는 400m 이상 남아 있다. 100m를 8초 만에 주파하더라도 30초 이상의 시간이 내게 주어진다.
‘30초면 충분하다.’
방아쇠를 당기며 은탄을 뱀파이어의 머리에 처박는다. 탄창을 바꿔 끼우는 데는 2초도 걸리지 않는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찰나를 사용한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뱀파이어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연속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결과는 전부 명중.
놈들은 100m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전멸했다.
“처리 완료.”
“완벽하다! 허나 끝까지 방심하지 마라! 뱀파이어 놈 중에는….”
콰콰쾅!
옥상 바닥에서 뱀파이어가 치솟았다. 두더지와 닮은 모습을 한 뱀파이어였다. 내가 총구를 놈에게 돌리기 전에 총교관이 움직였다.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허리춤에서 검을 뽑더니 뱀파이어의 목을 단번에 친 것이다.
“지렁이처럼 땅을 기어 다니는 놈들이 있지.”
총교관은 깜짝 놀라 이쪽을 돌아보는 훈련병들을 향해 외쳤다.
“뒤를 봐라! 아직 놈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훈련병들이 다시 고개를 돌리며 뒷산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나도 마찬가지다. 정면으로 뛰어오는 또라이 뱀파이어는 모두 죽었기에 뒷산에 총을 겨누었다.
“놈들이 온다!!”
최상우가 외쳤다. 늑대 인간의 감각이 접근하는 뱀파이어들의 기척을 감지했다.
“캬아아아아아악!”
산속에서 10명이 넘는 뱀파이어들이 일제히 뛰어 건물로 달려든다. 훈련병들이 기겁하며 방아쇠를 당기고, 교관들은 이를 악물었다. 최상우는 가장 앞에서 옥상으로 넘어온 뱀파이어와 일대일로 싸우고 있었다.
‘너무 가까워서 맞추기 어렵군.’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침착함을 유지하며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놈들부터 차근차근 처리한다.
전투는 그로부터 3분 만에 끝났다. 압도적인 전투에 겁에 질린 뱀파이어들이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대략 4마리 정도를 놓쳤다. 산속으로 도망쳤는지라 저격할 수도 없었다.
“기뻐해라! 우리가 승리했다! 나는 너희가 자랑스럽다!”
총교관이 소리치며 승리를 선언했다. 교관과 훈련병들이 함성을 내지른다. 나도 기쁜 마음으로 함성을 내질렀다. 내가 죽인 뱀파이어의 숫자만 해도 17마리다. 습격한 뱀파이어들의 절반 정도를 내가 죽인 것이다.
‘이건 서울 지부로 가는 건 확정이고… 보상까지 주어지겠군. 어쩌면 회사에 가자마자 승진할 수도….’
행복 회로가 활활 돌아간다.
그리고 잠시 후 회사에서 지원 병력이 도착했다. 그 뒤에는 버스와 트럭이 찾아왔다.
“너희들이 피곤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 위치는 이미 뱀파이어들에게 알려졌다. 언제 습격당해도 이상하지 않게 됐다. 한시 빨리 떠나야 한다. 짐을 챙겨라. 우린 강원도에 있는 회사 숙소로 간다. 그곳에서 훈련을 마무리할 것이다.”
총교관의 명령에 잠도 자지 못하고 짐들을 옮겨야 했다.
***
수료식은 아침 일찍 시작되었다.
수료식이 끝난 뒤에 바로 회사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훈련병들은 수료식 전에 정장을 입었다. 평범한 정장이 아니다. 인류의 기술력이 정수가 녹아든 정장이었다. 방검 효과가 있고, 운동복 이상으로 움직이기 편하다. 내구성은 말할 것도 없다.
“회사원은 정장을 입는다. 당연한 일이지. 너희들 모두 정장이 잘 어울리는군.”
단상 위에 선 총교관이 연설을 이어간다. 자신의 과거를 빗대어 교휸을 주려고 한다. 나는 하품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시간을 보냈다.
“25번 훈령병 성유진. 앞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총교관의 앞으로 다가갔다. 지금 이 장면은 교관을 통해 녹화되고 있었다.
총교관이 내게 직접 수료증을 건넸다.
“25번 훈련병. 나는 자네가 오랫동안 살길 바란다. 오랫동안 살아서 빌어먹을 모기들을 퇴치해다오.”
“모기들에게 지옥이 뭔지 보여주겠습니다. 놈들에게 이 세상은 인간의 것임을 각인시킬 것입니다.”
“아주 마음에 든다. 아니, 성유진 사원.”
총교관이 직접 내 목에 사원증을 걸어주었다.
“수석으로 수료하며 네게 2천만 원의 지원금이 지급된다. 또한 이번 뱀파이어 습격 사건에서 공을 세웠으니 추가로 1억 원이 보상으로 지급될 거다. 필요한 곳에 쓰도록.”
나는 아쉬움을 삼켰다. 돈이 아니라 인사 점수로 줬으면 더 좋았을 거다.
“감사합니다.”
***
1등 2등 3등은 모두 BC 회사 서울 지부를 배정받았다. 1등은 나였고 2등과 3등은 최상우와 지현성이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회사에서 제공한 차에 올라탔다. 운전대는 내가 잡았다. 최상우는 조수석에 앉았다.
뒷좌석에 앉은 지현성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회사에 막 입사한 신입들은 베테랑들과 조를 짜게 된다더라. 너희는 누구랑 조를 짜고 싶냐?”
“너부터 말해봐. 난 서울 지부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물었다. 최상우는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나야 당연히 주서현 대리님이지! 실력도 실력이지만 외모도 여신처럼 아름다우시잖아. 너희도 훈련소에서 그 영상 봤지? 검 솜씨가 비현실적이었잖아. 아, 그래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려나. 주서현 대리님 파트너를 원하지 않으시니까.“
나도 그 점이 좀 걸렸다. 보나 마나 혼자 움직이는 게 편하다는 이유로 파트너 없이 움직이는 것일 터다. 주서현의 성격이라면 그랬다.
”최상우. 너는?“
”나는….“
최상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