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8화 > 1688. 헌터 VS 뱀파이어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서울 근교에 있는 공장이었다.
폐업한 식품 공장이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몇 달 전에 화재가 났고, 그 화재 때문에 공장이 망했다고 한다.
나와 주서현은 차를 안 보이는 곳에 주차하고 골목길의 어둠을 틈타 공장 근처로 다가갔다.
“저 안에 뱀파이어가 있는 겁니까?”
“잠깐 기다려.”
그녀는 벽을 등진 채 스마트폰을 만졌다. 슬쩍 보니 회사 전용 앱으로 업무 지령을 받고 있었다.
“지금 공장 안에는 아무도 없어. 자정에 뱀파이어가 나타나서 사람이랑 거래할 거야.”
“거래요? 설마 마약 거래입니까?”
“뱀파이어의 피. 뱀파이어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꽤 많으니까.”
“영생이 그렇게 탐날까요? 평생 인간의 피를 빨아먹어야 하는 삶을 감수할 정도로.”
“영생만이 아니야. 뱀파이어가 되면 불치병이나, 말기 암 같은 것도 전부 해결되지. 심리적으로 몰려 있는 사람은 차라리 뱀파이어가 되는 게 낫다고 생각할 테고.”
“이유는 여러 가지라는 건 알겠습니다. 뱀파이어의 피는 얼마 정도 합니까?”
“등급에 따라 달라. 슬레이브의 피는 300만 원도 하지 않고, 커먼급은 최소 천 만원 이상. 노블급은 최소 억 단위야.”
“로드급은요?”
“가치를 매길 수 없어. 구하고 싶어도 구하지 못하는 물건이니까.”
주서현은 기본적으로 과묵했지만, 묻는 말에는 성실히 대답해줬다. 나는 주서현에게 계속 말을 걸까 하다가 관뒀다. 함부로 입을 털었다가 나도 모르게 실수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나와 주서현은 오늘 처음 만난 관계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자정에 가까워지자 자동차 한 대가 공장으로 들어왔다. 차에서 남자 3명이 내린다.
“주서현 대리님. 나타났습니다.”
“인간이야.”
“예? 어떻게 아십니까?”
“두리번거리잖아. 이곳에 처음 왔다는 증거야. 그리고 뱀파이어가 저렇게 대놓고 움직일 리 없어. 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쪽을 주시해.”
5분 정도 지났을까. 주서현의 말대로 어둠에서 움직이는 뭔가가 보였다. 집중하지 않았다면 못 보고 지나쳤을 정도로 은밀하다.
“뱀파이어야.”
주서현이 경고하듯 말했다.
“제 특기가 저격인데… 아쉽게도 여기에선 저격을 못 할 것 같군요.”
저격을 하기엔 거치적거리는 게 너무 많았다. 놈들이 저격을 눈치채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면 할 수 있는 게 없어진다.
나는 품에서 소음기를 단 권총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탄창에는 물론 은탄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녀는 내 허리춤을 바라봤다.
“…검은 사용하지 않고?”
“물론 검도 자신 있습니다만, 전 사격을 더 잘합니다.”
“검을 사용해도 돼. 내가 허락할게.”
“제가 뱀파이어를 맞상대하기에는 좀…. 주서현 대리님을 확실히 보조하겠습니다.”
“…….”
주서현은 미련이 남은 눈길을 억지로 뗐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주서현. 내가 네 속셈을 모를까. 넌 내 검술을 보고 싶은 거겠지.’
주서현은 검의 천재다. 내 검술을 몇 번 보고 따라 할 정도의 천재.
그런 그녀가 1년이 지났다고 내 검술을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다.
‘검술에 관한 눈썰미가 얼마나 뛰어난지는 내가 잘 알고 있지. 뱀파이어와 검을 들고 싸우다 무의식적으로 영천류를 사용해버리면 끝이야. 그러니 최선은 검을 들지 않는 거지.’
그러니 주서현과 함께 있을 때는 최대한 검 종류는 쓰지 않으려고 한다.
주서현은 타이밍을 재다가 말했다.
“날 따라와.”
주서현이 움직였다. 공장을 향해 직진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뱀파이어처럼 어둠 속에 몸을 숨기며 움직였다. 기척을 완벽히 지우고 공장으로 접근한다.
그러나 공장에 들어서자마자 들키고 말았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뱀파이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냐!”
뱀파이어가 소리친다.
“쏴.”
주서현이 짧게 말하며 내달린다. 그녀의 손은 언제든지 뽑을 수 있도록 검자루에 올라가 있었다.
탕! 탕! 탕!
나는 뱀파이어들에게 권총을 쐈다. 뱀파이어들은 총구를 보자마자 몸을 날리며 피했다.
“회사 놈들이다!”
“빌어먹을. 저 여자 도살자 아니야?!”
“도망… 끄아아악!”
뱀파이어 한 마리가 주서현의 검에 썰렸다. 상체와 하체가 반으로 분리된 것이다. 인간보다 육체 내구성이 강한 뱀파이어를 저리 쉽게 베다니. 역시 주서현이었다.
탕!
은탄이 뱀파이어의 머리를 꿰뚫었다. 뱀파이어는 은탄에 의해 뇌가 녹으며 절명했다. 주서현의 속도에 깜짝 놀라 총구에서 눈을 뗀 멍청한 놈이었다.
‘내 사격 실력을 무시하나.’
“제기랄!”
남은 한 뱀파이어가 공장 밖으로 달렸다. 커먼 급의 뱀파이어로 보였다. 내가 총구를 겨누기도 전에 주서현이 주머니에서 작은 단검을 꺼내 투척했다. 단검은 정확히 뱀파이어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단검도 존나 잘 던지네.’
주서현의 특기가 무엇인지 불현듯 떠오른다. 이기어검. 검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걸 생각하면 투척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전투는 빠르게 끝났다. 아마 10초도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을 초월한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것 치곤 너무 시시한 감이 있었다.
‘그놈들은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주서현을 보고 쫄아 버렸어.’
주서현을 보자마자 전투 의지가 꺾인 것이다. 명성의 힘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뱀파이어와 거래한 세 사람이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주서현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주사기를 보고 혀를 찼다. 주사기에는 빨간 액체 몇 방울이 남아 있었다.
“뱀파이어의 피야. 설마 받자마자 뱀파이어의 피를 주입할 줄이야.”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합니까?”
“생포. 생포할 수 있을 때 생포하는 게 원칙이거든. 내 차에 특수 수갑이 있을 거야. 가서 가져와.”
“넵.”
네가 가져와라. 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으나, 지금 내 신분을 깨닫고는 바로 자동차로 달렸다.
특수 수갑을 가져오니 세 명이 두 명이 되어 있었다. 한 놈이 가슴에 구멍이 뚫려 죽어 있었다. 심장이 꿰뚫린 것이다.
“뱀파이어로 변해서 날뛰려고 하길래 죽였어.”
“제압은요?”
“특수 수갑이 없으니 내 힘으로 못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술 실력과 제압 실력은 달랐다. 사지를 베어내서 제압하면 되지 않냐만은, 나와 달리 주서현은 그런 짓을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한다. 적이라도 깔끔하게 죽인다. 그게 주서현이었다.
나는 특수 수갑을 아직 변이하지 않은 두 사람에게 채웠다.
“발에도 채우고 눈 떼지 마. 뱀파이어는 아주 낮은 확률로 특이 개체로 변이할 수 있으니까.”
“네. 훈련소에서 배웠습니다. 특이 개체 중에서는 화학물질을 뿌리는 아주 골때리는 놈도 있었다면서요?”
“몇 년 전에 유럽 쪽에 나타났었다고 들었어. 자세히는 나도 잘 몰라.”
다행히 남은 두 놈 중에 특이 개체로 변하는 놈은 없었다. 다만 그들은 슬레이브가 아니라 커먼 급으로 변했다.
슬레이브와 커먼을 구분하는 건 쉽다. 피부가 썩고 누가 봐도 이질적이면 슬레이브고 인간과 비슷하면 커먼이었다.
“주서현 대리님. 원래 이렇게 쉽게 커먼 뱀파이어가 만들어지는 겁니까? 노블의 피가 그렇게 넘쳐나는 건 아닐 텐데….”
“근래에 이런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어.”
우리는 그 자리에서 15분 정도 기다렸다.
지원부 직원들이 트럭을 끌고 나타났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죽은 뱀파이어의 시체를 탑차에 넣고, 살아 있는 뱀파이어는 사슬로 꽁꽁 싸매 특수 차량에 집어넣는다.
지원부의 대표는 주서현과 내게 웃으며 걸어왔다.
“주 대리! 오늘도 수고했네!”
“김 과장님도 늦은 시간에 고생하시네요.”
“뱀파이어와 싸우는 자네들만 하겠나? 옆에 있는 녀석은 그 파트너인가?”
“네. 제 파트너입니다.”
“오늘 낮에 입사한 성유진입니다.”
“하하. 또라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생각 외로 멀쩡하구만. 뒤처리는 우리에게 맡기고 자네들은 가보게.”
“부탁드립니다.”
주서현은 익숙한 듯 그를 지나쳐 자동차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아까부터 미세하게 몸을 떠는 연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첫 뱀파이어 사냥을 한 신입이다. 긴장하는 게 당연했다.
주서현은 자연스럽게 운전대를 잡았다.
그녀는 조수석에 앉은 나를 힐끗 보며 입을 열었다.
“훈련소의 이야기를 들었어.”
“네?”
“뱀파이어들이 습격했을 당시에 넌 조금도 떨지 않았다고 하더라.”
“…누가요?”
“총교관.”
“…총교관님이랑 친하셨군요.”
“친한 건 아니야. 예전에 같이 일했던 적이 있어서 일면식이 있을 뿐이지.”
나는 미세하게 덜덜 떠는 연기를 이어갈까 고민하다가 관뒀다.
“제가 이런 쪽으로 무감각해서요. 사실 전 사이코패스입니다.”
“그럴 줄 알았어.”
“……예?”
농담으로 한 말인데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거 아닌가? 나는 살짝 당황했지만, 그녀는 차를 계속 운전했다.
차는 회사 숙소 앞에서 멈췄다. 회사 직원은 숙소를 지원받을 수 있었고, 나는 숙소를 택했다. 주서현은 자택이 따로 있었다.
“내일은 오후에 출근해. 아마 업무는 없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차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들켰나? 들키지 않은 건가? 들켰으면 날 가만히 두지 않았을 테니 들키지 않은 거겠지?’
***
운전대를 잡은 주서현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성유진 때문이다.
오늘 본 성유진의 행동은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어쩌면 성유진은 아틀란티스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유진이라면 기억을 잃은 척 날 놀려먹고 있는 걸 수도….’
문제는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성유진이 끝까지 잡아뗀다면 뭐라고 할 수 없다. 성유진이 잡아떼지 못하도록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그러다 문득 성유진의 본가 주소가 떠오른다. 성유진의 본가 창고에 특별한 검과 작은 열쇠가 있다는 그 말.
‘지금 가서 확인해볼까?’
강제로 침입해 창고를 열어 검과 열쇠를 확인하는 거다. 어쩌면 그 열쇠가 정조대일지도 모른다.
‘그게 정조대 열쇠라면? 정조대를 풀고….’
정조대를 풀고 성유진을 죽인다? 그걸로 정말 끝나나? 만족할 수 있나?
‘……전에도 생각했듯이 기억이 없는 성유진을 죽여도 의미 없어. 성유진이 만약 진짜 기억을 잃었다면, 기억을 되찾게 해야지.’
만약, 성유진이 정말 기억을 잃었다면 기억을 되찾게 한 뒤에 복수한다.
그게 아니라 기억을 잃은 척하는 거라면… 더 이상 그 같잖은 연기를 하지 못하도록 증거를 잡아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