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9화 > 1689. 헌터 VS 뱀파이어
회사에 입사하고 3주가 지났다.
그동안 사무 업무를 보는 경우는 보고서를 작성할 때를 제외하곤 없었다. 나머지는 쉬거나 사무실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사무를 전문적으로 보는 직원들이 보면 부러워할 수도 있는 광경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안전하게 사무실에서 자판을 두들기는 게 전부지만, 나 같은 현장직들은 일이 있을 때마다 목숨을 걸고 뱀파이어 싸워야 한다.
전투 때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뱀파이어에게 당하는 거다.
때문에 오히려 현장직이 사무직을 더 부러워한다. 물론 월급은 현장직이 더 많이 받는다.
‘내가 입사하고 3주. 그 3주 사이에 현장직이 4명이나 죽었어.’
죽은 사람은 전투부 일원이었다. 4인 1조로 움직이다가 대낮에 뱀파이어의 습격을 받아 사망했다.
‘뱀파이어가 회사에 보복하는 건 당연한 거지. 그놈들도 머리가 있고 감정이 있을 테니까.’
회사는 약 70년 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만큼 뱀파이어와 쌓은 피의 역사가 길다는 뜻이다. 뱀파이어가 회사를 증오하는 것도 당연했다.
‘당하고만 있는 건 이상하지. 기본적으로 뱀파이어가 인간보다 먹이 사슬 위에 있으니까.’
지금은 문명과 숫자로 인간이 압도하고 있을 뿐이다. 뱀파이어의 수가 인간의 절반 이상이었다면, 세상의 지배하는 종족은 인간이 아니라 뱀파이어였을 것이다.
나는 회사 1층 카페로 향했다. 내 동기라 할 수 있는 최상우와 지현성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성유진! 여기야!”
지현성이 나를 보며 손을 흔든다. 나는 그들 테이블에 다가가 의자를 빼서 앉았다. 오기 전에 미리 말해뒀던 키위주스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앉자마자 키위주스를 쪽 빨고 말했다.
“맛있네. 여기 좋은 키위를 쓰나 보네.”
“인사부터 하지 주스부터 먹냐?”
지현성이 핀잔을 줬다. 그들의 앞에는 커피가 놓여 있었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중간한 실력의 바리스타가 타는 커피는 먹을 게 못 된다.
“잘 지냈냐?”
내가 그들을 만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할 일이 없어서. 다른 하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원작에서는 구체적인 시간이나 날짜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니 주조연의 행동을 주시하며 원작의 사건을 추측할 수밖에 없다.
“나야 잘 지냈지. 의외로 노 대리님이 굉장히 잘해주시더라. 뭐, 상우는 사고 쳐서 대기 명령받았지만.”
“…….”
최상우가 눈살을 찌푸린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최상우는 업무 중에 뱀파이어 로드의 흔적을 발견하고 폭주했다. 선임이라 할 수 있는 최선영 대리의 명령까지 무시하고 움직이다가 죽을 뻔했다. 최선영이 아니었다면 죽었을 테지. 최선영은 그 일을 특수부 부장에게 보고했고, 최상우는 대기 발령을 받았다.
“유진아. 주서현 대리님 밑은 어때? 따뜻하냐?”
“따뜻한지는 잘 모르겠고 업무 자체는 편하더라. 15번 정도 임무에 나갔는데 대부분 주서현 대리님이 처리했거든.”
내가 뭘 하기도 전에 주서현이 먼저 뱀파이어에게 달려간다. 순간 가속을 이용해 주서현의 검은 뱀파이어도 막지 못했다. 슥하고 삭하면 뱀파이어는 죽어 있었다.
“와. 아주 꿀 빨았다는 거잖아. 근데 15번? 지난 3주 동안? 우린 10번도 못 나갔는데?”
“업무가 있는 다음날에는 강제로 쉬지 않나?”
지현성은 질색했고, 최상우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글쎄. 별로 피곤하지 않아서 쉴 필요는 못 느꼈어. 주서현 대리님도 마찬가지고.”
“부럽군. 나도 그렇게 많은 업무를 받으면 좋겠다만….”
“뭐, 주서현 대리님은 예거니까 회사에서 일을 많이 시키는 느낌이야.”
주서현이 회사에서 어마어마한 지원을 받는 건 이유가 있었다. 다른 직원들에 비해 욕이 나올 정도로 많은 업무를 군말 없이 소화해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성과만큼의 보상받는다. 나는 주서현에게 꼽사리 꼈을 뿐인데 통장에 찍힌 성과금은 벌써 억 소리가 넘었다.
“파트너를 바꿀 수 없나?”
최상우가 물었다. 나와 지현성은 의외라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최선영 대리님이 싫냐? 같은 늑대 인간 혼혈 아니었어?”
“싫다기보다는 맞지 않는다고 봐야겠지. 싸우는 스타일은 마음에 든다. 뱀파이어와 싸울 땐 자비 없이 공격하니까. 하지만….”
최상우는 말을 하다가 말았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다. 지현성은 최상우를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원작을 통해 최선영이 최상우를 경계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최선영은 같은 늑대 인간에게 데인 적이 있거든. 그래서 초반에는 최상우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지.’
그 태도가 최상우로서는 불만일 것이다. 자신을 동료로서 믿지 않는 것 같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해결될 문제야.’
대화를 이어갔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이 업무 중에 겪었던 일에 대해 말했다. 특히 지현성을 호들갑을 떨며 죽을 뻔한 위험이 몇 번이나 있었다고 말했다. 대화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때, 스쳐 지나가듯 최상우에게 물었다.
“뱀파이어 로드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건 뭐야? 냄새? 아니면 직접 나타난 거야?”
“냄새다. 내 가족을 죽인… 그놈의 냄새가 났다.”
“그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봐.”
최상우가 얼굴을 찡그렸다.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군.”
“이상한 착각하지 마. 네 개인사에는 관심 없어. 뱀파이어 로드를 죽이고 싶은 건 너뿐만이 아니야. 네가 네 가족을 죽인 원수를 찾고 있듯이, 나도 내 가족을 죽인 원수를 찾고 있어.”
“……네 가족을 죽인 놈이 뱀파이어 로드라고?”
“몰라. 직접 본건 아니니까. 경찰에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더군.”
“정보부에는 물어봤나? 뱀파이어 사건이라면 경찰보다 정보부에 묻는 게 더 확실하다.”
최상우가 진지하게 임했다. 가족이 뱀파이어가 살해당했다는 동질감 때문인 것 같았다. 물론 나는 가족에 대한 복수심은 조금도 없었다. 얼굴도 모르는 가족이 내가 이 세계에 오기 전에 살해당했다. 일면식 없는 타인이나 다를 바 없다는 거다.
“당연히 정보부에도 물어봤지. 근데 아는 게 별로 없더라고. 진짜 모르는 건지, 찾을 생각도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정보부랑 사이가 안 좋거든.”
저번에 식당에서 곽수혁을 욕했던 게 정보부 전체를 욕한 게 되었다. 내 평판이 바닥을 긴 것이다. 주서현이 있어서 그런지 대놓고 내게 뭐라 하는 놈들은 없었지만, 지나갈 때마다 눈빛으로 욕한다.
“아, 그 소문 말이지. 나도 들었어. 그것도 정보부 실세인 곽수혁 과장에게 했다며? 넌 훈련소에 있을 땐 멀쩡해 보였는데… 이제보니 최상우 이상으로 또라이구나.”
지현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만히 있던 최상우는 불만스럽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지현성을 잠깐 노려보다 한숨을 내쉬고는 내게 물었다.
“이런 질문하기 그렇다만…. 네 부모님의 시신은 어떤 상태였지?”
“…경찰의 말로는 복부가 파헤쳐진 상태였어. 내장이 흩어져 있었다고 하더라.”
“뱀파이어 로드는 아니다. 그놈은 인간은 그렇게 죽이지 않는다. 인간을 가지고 놀 때는 팔다리를 자르고 죽을 때까지 지켜보고, 피를 빨 때는 절반만 마시고 나머지는 시신은 갖다 버린다.”
“…그래?”
“너희 부모님은 어디서 당한 거지? 집에서 당했나?”
“집에서 당했어. 뱀파이어가 쳐들어와서 부모님을 복부를 파헤친 거야. 흡혈의 흔적은 없어.”
“부모님의 직접은?”
“직업이 중요해?”
“중요하다. 뱀파이어는 보통 길을 걷는 사람을 습격한다. 집에 직접 쳐들어가는 경우는 드물다.”
“아버지는 대기업 부장이셨고, 어머니는 전업주부였어.”
“…대기업 부장. 사회적 지위가 있다고 할 수 있군. 이런 경우엔 계획적 살인에 가깝다.”
“최근에 사회 고위직들이 뱀파이어와 거래하는 일이 많다고 들었어. 혹시 그거 때문이야?”
“아마도. 네 부모님은 뱀파이어의 제안을 거절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상황에서 거절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하신 분이군.”
“…….”
“성유진. 뱀파이어 로드의 짓은 아니다. 그렇다고 커먼급이 대기업 부장의 집을 굳이 습격할 이유는 없다. 거래를 하기에도 부족하지. 아마 노블급이라고 생각된다. 서울에 있는 노블급 뱀파이어는 30명도 되지 않으니 하나, 하나 조사하다 보면 범인을 찾아낼 수 있을 거다. 특히 파헤치기를 좋아하는 놈을 위주로 조사한다면….”
“고마워. 한 번 알아볼게.”
생각이상으로 진지하게 말해줘서 좀 당혹스러웠다.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나오니 나도 조사를 아예 안 할 수는 없겠어.’
최상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복수심에 불타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주인공만 아니었어도 무시하는 건데.’
원작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최상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좋다.
***
탕! 탕탕탕!
주서현은 총성이 울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성유진이 2층 천장에 달라붙어 숨어 있던 뱀파이어의 머리에 은탄을 박아 넣고 있었다.
뱀파이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진다. 성유진의 사격 솜씨는 언제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일품이었다.
‘훈련소의 도검류를 잘 쓰고 선호한다고 평가와 달리 검을 잘 쓰지 않아.’
성유진과 함께 업무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유진은 검이나 나이프를 손에 쥔 적 없었다. 원거리든, 근접이든 모두 총기를 사용했다.
“주서현 대리님! 처리했습니다! 하하. 오늘도 쉬웠네요. 가는 길에 야식이나 먹고 가죠.”
주서현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찰나였다. 바닥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주서현은 이 감각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노리는 건 내가 아니야.’
주서현은 바로 성유진에게 외쳤다.
“피해!!”
“네?”
성유진이 멍청한 얼굴로 되묻는 순간이었다. 그의 발아래에서 뱀파이어가 솟구쳤다. 성유진은 엄청난 반응속도를 보여줬다. 총구를 순식간에 아래로 겨루고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허나 뱀파이어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한 박자 늦게 나타난 뱀파이어가 성유진의 몸을 붙잡고 창문 밖으로 내달렸다.
“성유진!!”
주서현이 다급히 성유진의 뒤를 쫓아가려고 할 때였다. 뱀파이어 넷이 나타나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