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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691화 (1,471/2,000)

< 1691화 > 1691. 헌터 VS 뱀파이어

수류탄이 날아간다.

노블급 뱀파이어라고 해도 그 피부가 강철처럼 단단한 건 아니다. 칼로 그으면 살이 찢어지고, 총을 쏘면 총알이 박힌다. 다만 뛰어난 회복력으로 몇 초만 지나도 멀쩡해진다. 그 회복력을 억제하는 게 은탄과 은도금 칼의 효과다.

‘하지만 수류탄은 다른 공격과 다르지.’

폭발력은 뱀파이어에게 큰 피해를 입힌다. 평범한 수류탄이라 당장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고통을 선사하고, 일시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다. 그러다 머리가 날아가거나, 심장이 터지기라도 하면? 뱀파이어라도 죽는다.

“막으라고!”

야나가 소리치며 명령했다. 하지만 뱀파이어들이 주춤거렸다. 날아가는 수류탄을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그들에겐 방패나 갑옷 같은 건 없었다. 야나의 명령에 따라 저 수류탄을 막는 건 자살 행위였다. 이곳에서 야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뱀파이어는 한 명도 없었다.

결국 야나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오른팔이 변이한다. 손가락이 사라지고 피부는 딱딱한 갑각이 되었다. 그 끝에는 구멍이 나 있었다. 거기서 거미줄이 한 뭉치가 뿜어져 나와 떨어지는 수류탄을 휘감았다.

쾅!

수류탄이 터졌다. 그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파편이 야나의 얼굴을 스쳤다. 야나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분노했다.

“저놈 잡아! 잡으라고 병신들아! 계속 당하고만 있을 거야?!”

“하, 하지만 저놈 폭탄 코트를 입고 있습니다! 저건 진짜 폭탄 코트입니다! 저 정도 양이면 이 창고는 물론이고 주변 일대를 단번에 날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안 터지게 조심해서 잡으면 될 거 아니야! 설마 저 한 놈에게 쫄아서 도망치자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지? 응?”

야나의 눈동자가 분노와 광기로 번들거린다. 제대로 빡이 돈 모양이었다. 그녀의 부하인 뱀파이어들은 내게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저 새끼가 폭탄 코트를 걸친 이유가 뭐겠어? 우리가 함부로 공격 못 하게 하려는 거잖아. 아무리 저 새끼라도 진짜 죽을 생각은 없어. 폭탄 코트만 조심해서 제압해!”

야나의 말에 자신감을 얻은 뱀파이어들이 나를 포위한다.

“흐흐흐….”

나는 웃음을 흘렸다. 죽을 생각이 없다? 다른 사람에겐 자살 폭탄이 최후의 수단이겠지만, 내겐 아니었다. 자폭은 단순히 수단일 뿐이다.

나는 다가오는 뱀파이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수류탄을 던졌다.

쾅! 콰콰쾅! 쾅!

파편 일부가 내 몸에 아슬아슬하게 닿았다. 다행히 폭탄 코트를 폭발하지 않았다. 이래 보여도 이 코트는 [뱀파이어 형사] 세계의 발전된 기술로 제법 튼튼하게 설계되어 있다. 아크로 바틱을 하듯 거칠게 움직여도 쉽게 터지지 않는다.

쾅! 쾅쾅쾅쾅!

수류탄에 당한 뱀파이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야나가 내게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한 번에 덮치라고! 한 번에!”

“폭탄을 계속 던져서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놈 외손에 기폭제를 들고 있습니다! 폭탄 코트의 기폭제일지도 모릅니다!”

왼손은 엄지를 제외한 4개의 손가락이 전부 부서졌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돼서 그런지 고통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손가락이 부러져도 기폭제를 드는 것 정도는 아무 문제 없다.

“이 쓸모 없는 것들!”

야나가 분개하며 내게 거미줄을 날렸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야나는 계속 주시하고 있던 나는 거미줄을 날아오자마자 찰나를 사용했다. 느긋이 거미줄의 궤도를 확인하고 몸을 옆으로 움직인다. 거미줄은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날 죽일 수 있으면 죽여봐라!!”

나는 미친놈처럼 창고 안을 달리기 시작했다. 입으로 안전핀을 뺀 수류탄을 던지고, c4를 여기저기 부착했다. 내가 가는 길 마다 폭발이 일어난다. 창고는 활활 불타기 시작했다.

“잡아! 잡으라고!”

야나가 악을 쓴다. 자기가 직접 움직이면 될 것을 굳이 부하들을 시키는 것은 폭탄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폭탄은 만인에게 평등하니까.

촥!

거미줄이 날아와 내 오른발을 붙잡았다.

‘잠깐 시선을 뗀 사이에 바로 거미줄을 쏠 줄이야. 보통내기가 아니군.’

천심의 효과는 끝났기에 오른발은 그대로 거미줄에 붙잡힐 수밖에 없었다. 발에 힘을 주며 떨쳐내려고 했으나, 끈적거림이 보통이 아니라서 쉽지 않았다.

“잡았다! 당장 놈을 잡아서 구속해!”

야나가 소리치고 뱀파이어들이 달려든다.

“이 미친 새끼가!”

“너 때문에 유준이가 죽었다!”

“곱게 죽을 생각은 마라!”

나는 망설임 없이 기폭제를 눌렀다.

쾅콰콰콰콰쾅!

나를 중심으로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창고 벽과 지붕이 무너지고 시뻘건 불길이 하늘로 치솟았다. 직후 검은 연기가 가득 채운다.

나는 충격파에 휘말려 바닥에 쓰러졌다.

‘어? 안 죽었다고?’

이 정도 폭발이면 폭탄 코트가 폭발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폭탄 코트를 터지지 않았다. 게다가 나도 바닥에 넘어진 것뿐이지 멀쩡히 살아 있다.

몸을 일으킨 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내 주위에 나보다 큰 거미줄들이 벽처럼 쳐져 있었다. 거미줄이 나를 막은 것이다.

‘야나. 그년도 죽기 싫었나 보군.’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죽는 게 나을 것 같다. 나는 코트 주머니에서 기폭제를 꺼냈다. 코트의 폭탄을 터트리는 기폭제다.

‘거미줄로 날 보호한 걸 보니 도망치지 않은 모양인데…. 같이 죽자고.’

기폭제를 누르려는 순간이었다.

촥!

거미줄이 날아와 오른손을 구속한다. 거미줄에 칭칭 묶여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 기폭제를 누를 수 없게 된 것이다.

급한 대로 오른손을 지면에 내려치려고 할 때였다. 촥! 촥! 촥! 거미줄이 연속으로 날아와 내 몸을 구속했다.

정면. 검은색 연기를 뚫고 무언가가 내 앞에 떨어졌다. 날카로운 무언가에 가슴이 관통당한 뱀파이어 시체였다.

“설마 내 명령을 무시하고 도망가려는 멍청이가 있을 줄이야. 새 부하를 받아들일 때는 정신 교육좀 해야겠어.”

쇠를 긁는듯한 목소리와 함께 육중한 무언가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연기로 가려져 그 형체가 보이지 않지만, 정체를 알 것 같았다.

촥!

거미줄이 날아와 내 거미줄을 휘감았다. 거미줄과 함께 내 몸이 당겨졌다. 거미줄 끝에는 거대한 괴물 거미가 있었다. 3m가 넘는 큰 키에 하반신은 크고 둥근 거미의 것이며 상반신은 인간과 비슷한 무언가.

노블급 뱀파이어 야나의 진체였다. 끈적하고 단단한 거밀줄을 만들어 쏘아내는 건 야나의 특수 능력이었다.

야나는 내 목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이 빌어먹을 새끼야. 허공에서 물건 꺼낸 거, 어떻게 한 거야? 냄새나 생김새를 보니 뱀파이어가 아닌 건 확실한데…. 혹시 마녀의 핏줄이야?”

그러고 보니 이 세계에는 뱀파이어나 늑대 인간뿐만이 아니라 마녀도 있었다. 워낙 희귀한 종족인지라 원작은 본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크….”

입술을 꿈틀거린다. 말을 하려고 하니 목이 따갑다. 물론 눈도 따가웠다. 그 이상으로 전신이 쑤신다.

‘뭐한 것도 없는데 죽을 것 같다.’

신체 능력이 평범한 수준으로 떨어진 게 실감 났다.

“추하군. 보고 있으니 구역질이 난다. 그딴 몸으로 잘도 살아왔구나, 뱀파이어. 크크.”

야나를 비웃는다. 지금 야나의 몸도 정상이 아니다. 6개의 다리 중 2개는 날아갔고, 하반신의 절반은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뭘 믿고 나대는 거야? 그 잘난 폭탄 코트? 폭탄 코트가 터질 일은 없어. 넌 끝이야. 주서현이고 나발이고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줄게.”

푹.

야나의 앞다리 하나가 내 복부를 꿰뚫는다. 악독한 년답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앞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장을 후빈다.

“맛있는 냄새가 나. 또라이 같은 정신과 다르게 몸은 최상이네?”

야나가 입맛을 다신다. 나는 야나를 노려보며 씹어 뱉듯이 말했다.

“넌 실수했다. 날 붙잡으러 오는 게 아니라 도망쳤어야지! 그게 네가 살아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어.”

“다 죽어가는 주제에 기가 살아 있네. 대체 이유가 뭐야? 넌 이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해. 폭탄 코트? 주위에 있는 내 거미줄이 안 보여? 불길이 네 코트에 닿을 일은 없어! 끝이 난 건 내가 아니라 너라고!!”

아직 내게 수단은 남아 있었다. 인벤토리에서 물건을 소환하는 건 아니다. 어떤 물건을 소환해도 나보다 야나가 먼저 반응해 물건을 낚아챌 것이다. 나는 지금 양손을 움직일 수 없었다. 여분의 기폭제가 있더라도 버튼을 누를 수가 없다.

‘폭탄을 꼭 기폭제를 터트리라는 법은 없지.’

틱.

무언가가 튀었다.

야나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노려본다.

“정전기?”

뇌전을 이용해 전기를 일으킨다. 마나가 없더라도 활력을 소모하면 뇌전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역시 정전기로는 출력이 부족했다.

‘전력을 다한다면 스턴건 수준까지 가능하다…!’

나는 히죽 웃었다. 폭탄 코트의 뇌관이 어디에 있는지는 이미 숙지하고 있었다.

“잘 가라고 씨발년아.”

“뭐?”

파지지지지직!

한순간 스파크가 튀었고 폭발과 함께 모든 것이 사라졌다.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폭발 탓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 몸이 어떻게 됐는지 몰라도, 내 의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폭발의 여파가 있을 테니 바로 완전 회복을 사용하는 건 안 좋겠지.’

그렇다고 너무 오래되면 창고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완전 회복을 사용하자마자 창고에 깔려 죽는다? 최악인 상황이었다.

‘공간 이동 주문서를 이 세계의 좌표를 설정하지 않아서 못 쓰고…. 젠장. 존나게 뛰어야겠군.’

10초가 지났을 때 완전 회복을 사용했다.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몸의 감각이 온전히 돌아왔다. 동시에 열기가 느껴졌다. 창고 내부는 화염으로 가득했다. 나는 숨을 참으며 창고 밖으로 내달렸다.

[가속을 사용합니다. 10분 동안 유지됩니다. 남은 스택: 5]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창고 벽이 무너진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3]

찰나를 사용해 아슬아슬하게 무너지는 벽을 피한다. 찰나가 없었다면 시뻘겋게 달궈진 강철 벽에 깔려 죽었을 것이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2]

찰나를 아끼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위험해 보이면 바로 찰나를 사용해 앞으로 튀어갔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1]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0]

창고 밖으로 나왔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내 자지를 흔들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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