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3화 > 1693. 헌터 VS 뱀파이어
인천에 있는 본가에 도착했다.
처음 오는 건 아니었다. 2주 전에 혹시 몰라 인천에 있는 집에 찾아와 이것저것 살펴봤다.
‘마당 딸린 2층 단독 주택이라 다행이었지.’
나는 집에 창고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기엔 창고가 있었다. 아파트였다면 다용도실을 창고라고 우겨야 했을 것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꺼낸 열쇠로 대문을 열었다.
‘2주 전 생각이 나네. 처음 왔을 땐 열쇠도 없어서 열쇠공을 불러야 했지.’
언젠간 이렇게 주서현이 집을 찾아올 줄 알고 대문 열쇠를 만들었다. 대문 열쇠가 없으면 의심할 테니까.
마당을 지나 현관문으로 간다. 현관문은 도어락이다. 이전에 왔을 때 [해킹] 스킬로 비밀번호를 바꿔놓았었다.
‘6974.’
띠리릭!
현관문이 열린다.
슬쩍 옆을 보니 주서현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그러면서 그럼 그렇지 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여자를 낯선 집으로 데려오다니….’
모텔에 들어오는 느낌과는 달랐다. 낯선 집에서 미녀와 섹스한다? 꽤 꼴리는 상황이다.
나는 어두컴컴한 집안을 가리키며 주서현에게 말했다.
“2주 전에 잠깐 들렸을 때 청소하긴 했는데… 어느 정도 먼지가 쌓여 있을 수 있어요.”
***
“2주 전에 잠깐 들렸을 때 청소하긴 했는데… 어느 정도 먼지가 쌓여 있을 수 있어요.”
성유진의 말에 주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녀는 집에 먼지가 많아도 별로 상관없었다. 그녀는 그런 걸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었으니까. 지금 그녀에겐 집의 상태보다 성유진에게 눈이 더 갔다. 성유진은 현관의 불을 켜기 위해 벽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마치 익숙하지 않은 집에 찾아온 사람처럼.
딱!
현관에 불이 들어오고 성유진이 앞으로 나섰다.
“우리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성유진이 너스레를 떨었다. 주서현은 조용히 집안을 살폈다. 거실에서 방까지. 유독 적막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평범한 가정집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 집, 웬만하면 정리하는 게 좋아.”
“뭐, 혼자 살기엔 지나치게 넓긴 하죠.”
“그 뜻이 아니라. 뱀파이어의 표적이 될 수 있어.”
“따라붙는 미행이 없는 건 확인했잖아요.”
“미행은 없어도 너에 대해 조사하면 당연히 이 집 주소가 나오겠지. 회사는 가족은 보호해줘도 집은 보호하지 않아. 언제 뱀파이어가 습격할지 모르니 정리하는 게 나아.”
“음. 그래도 시간은 있지 않을까요.”
“야나와 60명이 넘는 뱀파이어를 죽였잖아. 안 그래도 내 파트너로서 주목하고 있을 텐데, 오늘 일까지 있으니 뱀파이어들이 본격적으로 널 노릴 거야.”
“조심해야겠네요.”
성유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뱀파이어의 입장에서 자신은 여러모로 경계 대상이었다. 집에 미련은 없었기에 아쉽지는 않았다.
“창고 좀 볼 수 있을까? 창고에 있다는 신기한 검을 보고 싶어.”
“물론이죠. 2층에 창고가 있습니다. 보여드릴게요.”
“그 신기한 검은 안 쓰는 거야?”
“제가 검도를 배우긴 했는데 뱀파이어를 상대할 땐 검보다는 총이 더 낫더라고요. 주서현 대리님처럼 다룰 자신이 없기도 하고 말이죠.”
주서현은 성유진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 올라오니 문이 열려있는 방이 눈에 들어왔다.
“아. 거긴 제 방입니다.”
“한 번 봐도 돼?”
“네. 뭐, 딱히 별건 없어요.”
성유진의 방에 들어갔다. 침대와 책상, 컴퓨터, 옷장 등 평범한 방이었다. 특이한 건 보이지 않는다. 살짝 실망한 그녀는 방 밖으로 나와 성유진을 재촉했다.
“잠깐 옷 좀 입어도 되겠습니까? 계속 이 상태로 있기엔 뭐해서….”
“그렇게 해.”
주서현은 방 밖에서 조용히 성유진을 기다렸다. 창고는 2층 끝부분에 있었다.
성유진은 창고를 열어 내부를 주서현에게 보여줬다. 집안의 그 어떤 곳보다 먼지가 쌓이는 곳이 창고인데, 눈앞에 보이는 창고는 정반대였다. 집안의 어떤 것보다 창고가 깨끗해 보였다. 거기다 창고에 있는 물건 중 낡아 보이는 것들은 몇 없었다.
“…….”
하지만 그런 사소한 점들을 주서현은 생각하지 못했다. 창고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녀는 창고 중심에 조심히 보관된 검 한 자루에 시선과 정신이 모두 팔렸기 때문이다.
검은 검집에 들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서현은 저 검이 명검이라는 알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그리고 검집조차 평범한 검이 아니라 장인의 솜씨가 들어간 게 느껴진다. 실제로 드워프가 만든 검집이었다.
“…검을 뽑아봐도 돼?”
“당연히 됩니다.”
주서현은 검을 향해 손을 뻗는다.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지금 주서현은 좀처럼 볼 수 없는 명검에 흥분하고 있었다.
스르르릉.
검집에서 검을 뽑는다. 뛰어난 검집과 검답게 검을 뽑는 데 어떠한 걸림이 없다. 이러면 검으로도 발도술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발도술은 주서현의 취향이 아니지만.
주서현은 홀린 듯이 검신을 쳐다봤다. 창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을 검이 흡수하는 것 같았다. 영롱하다. 보고 있으면 빠져든다.
휘둘러 보고 싶다.
주서현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허나 꾹 눌러 참았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흥분하진 않았다. 그녀는 달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검을 옮겼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던 검이 급격히 빛을 잃는다. 뭐든지 베어버릴 것 같던 날카로움이 줄어든 것이다. 주서현은 검을 다시 달빛으로 움직였다. 날카로움이 살아난다.
“…확실히 신기한 검이네.”
주서현이 말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신기한 검?
겨우 그런 걸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건 아틀란티스의 물건이 확실했다.
“이 검은 어디서 얻었어?”
“저도 잘 모릅니다. 어렸을 때부터 창고에 보관되고 있었거든요. 아버지나 어머니도 잘 모르는 눈치였고요.”
그녀는 조용히 검을 검집에 갈무리했다. 그녀는 한번 차분해진 눈동자로 성유진에게 검을 건넸다.
“이 검은 가지고 다녀. 창고에 그냥 놔두기엔 너무 좋은 검이야. 총을 쓸 수 없을 때 분명 도움이 될 거야.”
“아, 네. 그러겠습니다.”
“회사에 도검류를 등록하는 건 내가 해줄게. 근데… 열쇠 같은 게 있다고 하지 않았어? 어디에 있는 거야?”
“그게 분명히 여기에…”
성유진이 몸을 숙였다. 그는 가장 아래에 있는 선반에서 열쇠를 찾았다.
“이겁니다.”
“…….”
열쇠를 본 주서현은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모양의 열쇠가 성유진의 손에 들려 있었다. 정조대의 열쇠다. 이것만 있다면 지긋지긋한 정조대와도 안녕이다.
열쇠를 보자마자 눈이 돌아간 주서현은 반사적으로 열쇠를 향해 손을 뻗었다. 주서현의 갑작스러운 급발진이었다.
성유진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는 주서현은 집으로 데려왔을 때부터 신경이 곤두서있던 상태였다.
일부러 찰나를 쓰지 않았다. 순간 가속을 사용할 줄 아는 주선현은 바로 알아차릴 것이기 때문이다. 성유진은 뒤로 물러나면서 열쇠를 쥔 손을 아래로 획 내렸다. 주서현의 손이 허공을 가른다.
‘주서현이 가속을 사용하지 않아서 다행이군. 가속을 썼다면 반응하지 못했겠지.’
눈앞에 있는 건 검을 들지 않은 주서현이다. 맨손으로 한바탕 하는 거라면 해볼 만했다.
“…….”
주서현은 자기가 저지른 짓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머리를 살짝 숙이며 뺨을 붉혔다.
“주서현 대리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미안. 내가 아는 열쇠나 닮아서 잠깐 이성을 잃었어.”
“아는 열쇠요? 이 열쇠를 어디에 쓰는지 아세요?”
“……글쎄. 확인해 봐야지. 그 열쇠 좀 빌려주지 않겠어? 5분이면 돼.”
주서현은 열쇠를 받자마자 화장실로 들어가 정조대를 풀 생각이었다. 1년 동안 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했던 보지가 해방되는 것이다. 그녀의 가슴은 계속 두근거렸다.
“안 됩니다.”
“……왜?”
“이 검을 보십시오.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잖습니까. 이 열쇠는 이 검이랑 같이 오래전부터 창고에 있던 물건입니다. 어쩌면 이 열쇠에 특별한 힘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러니 이해해 주세요, 주서현 대리님.”
“잠깐이면 돼. 잠깐만 빌려달라고 했어.”
주서현의 목소리에 분노가 서린다. 성유진은 뒤로 물러나며 열쇠를 감췄다. 주서현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고작 열쇠를 빌리는 일이야. 왜 그렇게 고지식하게 나오는 거야?”
“말했잖습니까. 이게 평범한 열쇠가 아닌 것 같으니까요.”
“그건 평범한 열쇠가 맞아. 특별한 힘 따윈 없어.”
“그러면 왜 이 열쇠를 가지려고 합니까?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주서현 대리님은 이 열쇠를 어디에 쓰려는 겁니까?”
“그건….”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 열쇠가 있어야 1년 동안 차고 있던 정조대를 해제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너무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다.
주서현이 아무 대답도 못 하자 성유진은 더욱 경계하며 뒷걸음질 쳤다.
“역시! 이 열쇠에는 무언가 비밀이 있군요! 주서현 대리님조차 탐욕을 일으키게 하는 무언가가!”
“…탐욕?”
그 단어를 듣자마자 짜증이 확 치솟는다.
자신이 이 정조대 때문에 얼마나 답답해했던가. 몸을 씻을 때마다 이 정조대가 거슬린다. 남들이 다 하는 생리현상도 제대로 겪어 본 적이 없었다. 거기에 정조대를 찼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공중목욕탕이나 찜질방 같은 건 꿈도 못 꾼다.
정조대 하나 때문에 그녀는 남들과는 다른 일상을 보내야 했다.
예전 기억이 잠깐 떠올랐다. 성유진과 한 내기. 성유진과의 결투에서 이기면 정조대 열쇠를 받는다는 조건.
그 내기를 지금 와서 지키기에는 지금 그녀는 정조대를 벗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우선 정조대부터 벗자. 그 후에 성유진의 기억을 되찾게 하고 결판을 내는 거야.’
주서현은 열쇠를 빼앗기 위해 성유진에게 달려들었다. 성유진은 열쇠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도망쳤다.
달밤의 술래잡기는 어이없게 끝났다. 순간 가속을 사용한 주서현에게 허리와 어깨를 붙잡힌 것이다. 성유진은 주서현에게 잡히자마자 순발력을 발휘해 열쇠를 입 안에 넣었다.
삼키지는 않았다.
아직은.
그는 입 안쪽에 열쇠를 밀어 넣고 주서현에게 히죽 웃으며 말했다.
“제 입을 강제로 벌리려고 하면 바로 삼킬 겁니다. 그 후에는… 똥에 섞여 나오기를 바라야겠죠. 그게 아니면 저를 죽이고 배를 가르시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