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8화 > 1698. 헌터 VS 뱀파이어
갑자기 단독 업무가 떨어졌다.
아직 신입 티를 벗지 못한 내게 떨어진 단독 업무는 명백히 이상했다.
갑자기 시작된 단독 업무의 이유는 주서현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네가 예거의 자격이 있는지 보려는 거야.”
“자격? 즉, 회사에서 나를 시험한다는 거군.”
“강명숙 부장의 성향이야. 시험은 포기해. 내가 강명숙 부장에게 말할게.”
“겨우 이런 거로 포기할 것 같나. 근데 이걸 내게 말해줘도 되나?”
“상관없어. 문제를 내고 답하는 시험이 아니니까. 회사가 확인하려는 건 네 전투력이야. 네가 제대로 한다면…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을 거야.”
“그래?”
내가 웃자 주서현은 나를 찌릿 노려봤다.
“…제발 부탁이니 사고는 치지 마.”
“의문이 드는군.”
“뭐?”
“그놈들이 날 시험하고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 말이야.”
“…….”
주서현은 걱정 가득한 눈으로 날 지켜보다가 헤어졌다.
‘다시 생각해 보니 건방진 눈이었어. 오늘 밤에는 항문을 집중적으로 괴롭혀 줘야겠군.’
회사가 지정한 위치로 차를 타고 간다. 서울 외곽에 있는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지정된 위치에서 좀 기다리자 스마트폰의 회사 앱으로 임무 메시지가 왔다.
메시지 첫 줄을 본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숨어 있는 노블급 뱀파이어를 죽이라고? 혼자서?’
그냥 가서 죽으라는 말을 바꿔 쓴 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정보부와는 사이가 안 좋긴 해도 회사에 밉보일 짓은 하지 않았을 텐데?’
메시지를 전부 훑어보니 업무 내용이 이해된다.
내가 상대할 노블급 뱀파이어는 약해진 상태였다. 먼저 싸우고 있다 보면 추가 지원 병력이 도착할 거라는 이상한 문구도 적혀 있다.
‘시험관이군. 위험할 때는 도와준다는 건가.’
적의 정보도 적혀 있었다.
노블급 뱀파이어 박지웅.
인발인을 습격해 내장을 파헤치기 좋아하는 잔혹한 뱀파이어다.
‘사원 성유진의 부모를 죽인 뱀파이어로 추정된다고?’
의도가 노골적인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날 흥분시키려는 속셈인가. 박지웅의 능력은 감각 교란. 전투부 직원 5명을 습격해 죽이고 오른쪽 어깨 부상을 입은 채로 이곳으로 도주.’
나는 가진 장비를 확인했다. 저격소총 1자루, 샷건 2자루, 돌격소총 2자루, 권총 4자루, 수류탄 5개, C4 3개, 월광 소나타7 한 자루.
‘할만하군.’
검과 권총 2자루를 챙기고 차에서 내렸다. 권총보다 검이 더 든든했다.
하늘을 본다. 노을 때문에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곧 해가 진다.
‘20분 정도인가. 아마 해가 지기 전까지 노블급 뱀파이어를 죽이라는 거겠지. 해가 지면 바로 개입할 테고.’
뱀파이어가 있는 오두막으로 향하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논밭에 숨어 있는 2명의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모르는 척 지나쳤다.
‘주서현의 말로는 차기 예거는 예거 2명이 시험한다고 했지. 저 둘이 예거인 모양이군.’
주서현은 예거지만, 내 파트너라 형평성이 맞지 않아 시험 자격을 얻지 못했다.
‘음. 어떻게 할까. 우선은….’
[해킹에 성공했습니다.]
[무전기를 3시간 동안 해킹할 수 있습니다.]
저들의 무전기를 해킹했다. 왼쪽 귀에 꽂은 이어폰 무전기를 통해 저들의 무전 내용이 들린다.
-저 녀석이 예거 후보인가?
-권총 두 자루랑 검 하나. 무장이 너무 단출하군. 주서현에게 검을 배웠나?
-어제 혼자서 야나와 60명이 넘는 뱀파이어를 죽였다고 한다. 그 실력이 사실이라면 문제없겠지.
-불합격이다.
-뭐? 고작 무장 때문에?
-무장 문제가 아니다. 검 한 자루 가지고 있어도 주서현처럼 잘 쓴다면 상관없다. 저 녀석의 움직임을 봐라. 대놓고 움직이고 있다. 노블급 뱀파이어를 얕보고 있다는 뜻이다.
-자신감이 있나 보군.
-저건 자신감이 아니라 오만이다. 상처 입은 노블급 뱀파이어가 그냥 싸워주리라 생각하는 건가? 도망칠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음. 박지웅이 부모님의 원수라서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더더욱 불합격이다. 뱀파이어를 상대할 땐 언제나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뭐, 일단 지켜보자고. 입사한 지 3개월도 안 된 녀석이잖아. 자잘한 건 나중에 가르치면 돼. 중요한 건 전투력이지.
-…….
평가.
나는 타인이 나를 평가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나보다 강한 놈이 나를 평가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약하니까 시험이든 뭐든 받아들여야 한다.
근데 지금 같은 경우는 다르다.
‘저 새끼들은 나보다 약하면서 왜 날 평가하는 거지?’
좀 열 받는다.
쾅!
오두막 문이 갑자기 열렸다. 그 안에서 비쩍 마른 뱀파이어가 툭 튀어나왔다. 양팔이 비정상으로 긴 뱀파이어였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의 흔적이 있다.
“박지웅?”
“회사 놈인가. 지긋지긋하구만. 근데 혼자야? 다른 한 놈은 어딨어?”
가래 끓는 듯한 목소리였다.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있다. 놈의 상태는 메시지에 적혀 있는 것보다 더 안 좋은 듯했다.
“병신 뱀파이어 한 마리 처리하는 일이다. 나 혼자면 충분하지.”
“모르는 얼굴인 걸 봐서 예거는 아니고…. 예거 후보 중에 너 같은 놈은 없었다. 평범한 직원을 혼자 내게 보내? 크크. 회사 생활을 잘 못 했나 보지?”
-뱀파이어와 대화를 한다? 불합격이다.
-부모님의 원수잖아. 대화 좀 할 수 있지. 거리가 멀어서 무슨 대화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네.
-원수라면 보자마자 공격해야 한다. 그래야 확실한 승기를 잡을 수 있을 테니.
“이 부모님의 원수! 용서하지 않겠다!”
“무감정한 목소리로 뭔 개소리를 지껄…. 아니, 잠깐. 네놈 얼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내가 부모님의 원수라고?”
무언가를 떠올리듯 눈동자를 굴리던 박지웅은 이내 입가를 쭈욱 찢으며 섬뜩하게 웃었다.
“기억났다! 대기업 부장 놈! 그 새끼의 아들이구만? 크크크크! 그 건방진 새끼가 내 제안을 거부해서 배를 찢어 장기를 구경시켜줬지. 옆에 있던 샹년이 지르던 비명은 제법 들어줄 만했어. 아, 또 듣고 싶구만…. 네놈의 배를 찢어놓으면 그 샹년과 비슷한 비명을 들을 수 있겠지? 아들이니 비명도 비슷할 거야. 크크.”
“이, 이 불구대천의 원수! 네놈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죽여버리겠다!”
박지웅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냐, 그 어색한 말투랑 목소리는. 복수하러 온 놈치고는 뭔가 어설프군. 지금 장난치는 거냐?”
“벌써 눈치챘냐? 생각보다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군.”
말투와 목소리가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뒈질 놈에게 굳이 집중해서 연기할 필요를 못 느꼈으니까.
내 말을 알아들은 박지웅이 얼굴을 구겼다.
“멍청한 놈. 놀아나고 있는 놈은 네놈이다. 내가 왜 너 따위랑 대화한 줄 아직도 모르겠냐?”
박지웅이 웃으며 다가온다. 나는 권총을 쏘려다가 손가락 대신에 발가락이 움직이는 걸 깨달았다.
‘…박지웅의 능력인 감각 교란이군. 대화하는 사이에 내게 능력을 걸었나? 아예 눈치채지 못했다.’
박지웅은 점점 다가온다.
“처음 내 능력에 당한 놈들은 팔을 움직이려다 목이 움직이거나, 목을 움직이려다 다리가 움직여서 육체를 컨트롤하지 못해 나자빠지지. 그러다 겁에 질려 목숨을 구걸하지. 근데 너는… 침착을 유지하는 건 칭찬해주마.”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조금씩 몸을 여기저기 움직이고 있었다. 왼쪽 발가락이 오른쪽 중지가 연결된 걸 확인했다.
‘그리고 왼쪽 약지가… 젠장. 어디더라?’
까먹었다.
전부 파악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놈은 어느새 5m 거리까지 다가와 날카로운 손톱을 치켜든다. 이대로는 죽는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천심 그리고….’
[10초 동안 천재의 시간을 발동합니다.]
1초.
전신을 조금씩 움직여 교란된 감각을 파악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나는 오른손에 쥔 권총을 버리고 검을 뽑아 박지웅에게 휘둘렀다. 설마 내가 검을 휘두를 줄 몰랐던 박지웅은 한발 늦게 반응하며 손으로 검을 막으려 한다.
노블급 뱀파이어라서 그런가. 한 박자 늦게 움직였음에도 어렵지 않게 검을 붙잡는다.
허나 검은 그의 손을 베고 다리까지 절단했다. 나는 검을 휘두른 힘이 사라지기 전에 놈의 팔다리를 잘라냈다. 팔다리를 잃은 박지웅이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렸다. 잘린 팔다리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온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네 비명은 너무 시끄럽다.”
“어떻게! 네놈은 검은 은도금한 검도 아니잖아!”
“아, 이거? 대마력을 가진 검이라 너처럼 좆 같은 새끼들에게 특히 효과적이지.”
검으로 박지웅의 배를 갈랐다.
“뱀파이어의 내장은 인간의 거랑 별반 다를 게 없구만.”
“이, 이 새끼가!!!”
“닥쳐.”
검으로 놈의 내장을 휘젓는다. 박지웅은 비명을 계속해서 지르다가 절명했다. 월광 소나타 7이 가진 대마력 탓인지 30초도 못 견뎠다.
‘이 세계에 와서 효과가 너프 됐을 텐데도 이 정도라…. 쓸만하군.’
-박지웅이 죽었어. 씨발. 저게 노블급 뱀파이어라고? 저 새끼 아까 능력 쓰는 것 같던데… 저 녀석에게 통하지 않은 건가? 야, 어떻게 생각해?
-…보류. 지금 판단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하다. 지금 보여준 것만으로 실력을 완전히 판단할 수 없다.
-야나와 박지웅. 노블급 뱀파이어 2명을 혼자서 죽인 건 사실이잖냐.
-방금 보지 않았나. 놈은 박지웅을 죽일 수 있음에도 단번에 죽이지 않았다. 실력은 둘째치고 인성에 문제가 있다.
-부모님의 원수니 그럴 수 있지 않아?
-아무튼 보류다. 놈은 다른 방식으로 시험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군.
-그럴까.
나는 침을 뱉었다.
저들의 무전을 듣고 있자니 기분이 확 나빠졌다.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주우면서 무전기 이어폰의 버튼을 눌렀다.
“지금부터 반응속도 테스트를 시작한다.”
-지금 무전기에서….
-저놈이 말하고 있는 건가? 저놈, 우리를 보고 있다.
거리는 약 300m.
권총으로 쏘기엔 거리가 있지만, 사격 스킬을 가진 나는 자신 있었다.
방아쇠를 당겼다.
슬라이드가 반복해서 움직이며 탄피가 허공으로 튕긴다.
한 놈의 머리에 총알이 박혔다.
“뒤진 새끼 불합격. 예거면 총알 정도는 피해라. 병신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