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9화 > 1699. 헌터 VS 뱀파이어
-성유진! 이게 무슨 짓이냐?!
무전기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불합격거리던 놈이었다.
“말했잖아. 반응 속도 테스트라고. 그리고 동료가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너도 불합격이다.”
논밭에 숨은 놈을 겨누며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놈이 반응했다. 옆으로 데굴데굴 구르며 총알을 피한 것이다.
“불합격. 반응이 너무 느리잖아. 네 친구가 뒤지기 전에 그렇게 했어야지.”
탕!
놈에게서 날아온 총알이 내 머리 옆을 지나쳤다.
‘벌써 냉정을 되찾고 반격이라. 예거라는 칭호는 그냥 딴 건 아니란 거겠지.’
너무 여유만 부리면 나도 당할 수 있었다. 나는 조금씩 움직이며 권총을 쐈다. 놈이 숨어 있는 논밭의 갈대가 흔들린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성유진!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나? 너는 같은 동료를 죽였다! 그것도 예거를! 회사를 배신한 이유는 뭐냐?!
“숨어서 지켜보고 있길래 적인 줄 알았지.”
-거짓말하지 마라! 너는 우리 무전을 도청하고 있었다! 지금 나와 대화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너희 같은 허접들이 날 시험하고 평가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가 너희를 평가하기로 했다. 이해했나?”
-미친놈이…! 너 같은 광인이 왜 회사에 들어온 거냐! 주서현은 왜 이딴 놈을 파트너로….
탕탕탕!
내가 쏜 총알이 놈의 입을 닥치게 만들었다. 허나 놈의 손가락까지 닥치게 만들지는 못했다. 침착하게 한 발, 한 발 나를 죽이기 위해 방아쇠를 당긴다.
총알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다.
“침착함은 합격. 전투 경험이 많은 게 느껴지는군.”
-…이 일대에 무슨 짓을 한 거냐? 무전기는 물론이고 휴대폰도 연락이 안 되는군. 처음부터 여기서 우리를 죽일 계획이었나?
해킹으로 놈의 무전기와 스마트폰을 무력화시켰을 뿐이다. 내가 놈들을 죽였다는 걸 회사에 알려지면 귀찮아지니까.
“너와 네 동료는 뱀파이어에게 죽은 거다. 내가 그렇게 보고할 테니 뒷일은 걱정말고 죽어라. 순직하면 보험금과 위로금이 나온다지? 네 가족들은 로또 맞은 기분이겠어.”
-이 자식이….
총알이 날아온다. 이미 예상했던 나는 전봇대 뒤로 엄폐했다.
키이이이이이이잉!
‘응?’
논밭 사이의 길 위로 RC카가 맹렬히 달려온다. 일반적인 RC카 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그냥 RC카가 아니야. 폭탄이 달려있어.’
폭탄을 장착한 RC카. 나름 기발한 공격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놓고 보내면 별로 위험하지 않다. 대응할 방법은 몇 가지 있으니까.
‘총으로 쏘거나, 해킹하거나.’
나는 전자를 선택했다. 총알이 RC카를 꿰뚫는다.
펑!
RC카가 폭발한다. 흙먼지와 돌멩이가 사방에 뿌려진다. 작은 주제에 폭발력이 상당했다. 연기가 가라앉고 다시 논밭에 숨어 있는 놈에게 총을 겨누려다가 멈칫한다. 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눈을 가리려고 RC카를 보낸 건가? 음. 이건 합격.”
-나를 평가하지 마라.
“이거 웃긴 새끼네. 네가 먼저 했잖아.”
-나는 회사의 명령에 따라 네가 예거가 되기에 충분한지 평가했을 뿐이다.
“회사 명령이면 다 합법이 되는 줄 아나?”
-회사는 세계 평화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회사는 절대적으로 옳다.
“회사가 민간인을 죽이라고 명령한다면? 그래도 죽일 거냐?”
-회사가 아무 이유 없이 민간인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릴 리 없다. 만약, 그런 명령을 내린다면 민간인의 탈을 쓴 뱀파이어의 노예겠지.
“크크. 예상은 했지만 병신이었군.”
키이이이이이이이잉!
RC카가 또 달려온다. 나는 이번에도 총알로 폭탄 RC카를 폭발시켰다. 아까의 RC카보다 폭발력은 적었으나 연기가 한 번에 뿜어져 나와 시야를 가렸다.
가려진 연막 속에서 무언가가 다가온다. 나는 우선 총부터 갈겼다. 사람이 아니라 정장 자켓이었다.
‘어쩐지 움직임이 이상하긴 했어.’
탁탁탁! 나를 향해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소리가 들리는 쪽에 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발사되지 않는다.
-멍청하긴. 총을 쓰면서 장탄수도 세지 않는 거냐?
“귀찮게 그걸 꼭 셀 필요가 있나?”
내겐 인벤토리가 없다. 총알이 다 떨어지면 새로운 총을 소환해 사용하면 된다. 총알이 떨어지든 말든 내겐 아무 의미 없었다.
-넌 역시 불합격이다.
눈살을 찌푸려졌다. 이놈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평가하는 건 네가 아니라 나다.”
연막을 뚫고 놈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양손에 대거를 들었다. 2m가 넘는 키에 온몸이 근육질이다. 각진 얼굴과 짧은 머리카락은 군인을 연상시켰다.
나는 권총을 버리고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놈의 대거를 막았다. 놈의 오른손 대거가 움직인다. 영천류의 보법을 밟으며 놈과 거리를 벌렸다. 마나가 없어도 그 형식만으로 어지간한 무술보다 더 뛰어나다.
몸의 무게를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는 동시에 검을 휘두른다. 놈은 역수로 쥔 나이프로 검격을 막아내며 접근한다. 나는 바로 뒤로 물러났다.
‘나이프를 쥔 놈이랑 초근접전을 할 필요는 없지.’
까앙! 깡!
몇 번 검을 부딪치니 보통 실력이 아니란 건 알겠다.
“나한테 근접전을 몰고 갈 실력은 되는군. 음. 아슬아슬하게 합격점이다.”
“…너도 제법 하는군. 허나 주서현에 비하면 덜 날카롭다. 그 여자의 검격은 하나, 하나가 섬뜩했었다.”
“걘 검의 천재니까 말이지. 근데 넌 아니잖아. 넌 그냥 영재 수준이다.”
찰나를 쓰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
검을 휘두른다. 놈은 나이프 하나로 내 검을 막고 반격한다. 검을 돌려 반격을 쳐내고 물 흐르듯 공격을 이어간다.
공방 일체.
놈의 공격 흐름만 파악할 수 있다면 어렵지 않다.
내겐 주서현과 같은 재능은 없다. 하지만 경험 하나만큼은 주서현 이상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특히나 ‘광명승천도’에서의 경험은 이런 전투에 큰 도움이 된다.
“흡…!”
놈이 숨을 들이켜며 나이프를 동시에 휘두른다. 전부 보였다. 근육의 움직임, 나이프를 쥔 손가락 방식, 나이프의 궤도까지.
‘익숙해지니 더 잘 보이는군.’
뒤로 빠지는 척하며 옆으로 틀었다. 내 움직임에 낚인 놈이 앞으로 돌진한다. 옆에서 보니 놈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보인다. 검을 휘둘러 놈의 통나무처럼 굵은 허벅지를 베었다. 피가 튀었다.
“근접전 불합격.”
조소까지 날려주자 놈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놈은 억지로 허리를 비틀어 나이프를 휘두르는 척하며 오른쪽 나이프를 던진다. 직후에 휘둘러지는 왼쪽 나이프가 진짜다.
‘훤히 보이는군.’
고개를 옆으로 움직여 날아오는 나이프를 피한다. 휘둘러지는 왼쪽 나이프는 피할 필요 없다.
‘나이프보다 내 검이 더 길다.’
그 말은 좀 늦게 움직이더라도 내 검이 먼저 놈에게 닿는다는 뜻이다.
서걱!
나이프를 쥔 왼 손목을 벤다.
“…주서현에게서 배운 거냐?”
“그 반대다 멍청아. 주서현이 멋대로 내 검술을 훔쳐 배운 거지. 뭐, 지금은 자신만의 검술을 구축한 것 같긴 한데…. 아무튼 넌 불합격이다. 죽어라.”
균형을 잃고 쓰러지려는 놈의 목을 베었다. 검의 성능이 좋아서 그런지 걸리는 것 없이 깔끔하게 베어낼 수 있었다.
‘이 새끼들이 뒤진 꼴을 보니 속이 좀 풀리는군.’
불어오는 바람이 유독 차갑게 느껴진다. 해는 이미 저물었고, 주변은 굉장히 어두웠다. 전봇대는 있어도 가로등은 없었기 때문이다.
‘잠깐. 이대로 가면 뱀파이어의 짓이라고 우길 수 없잖아.’
예거 2명이 죽은 사건이다. 회사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철저하게 조사할 것이다.
‘나를 평가하려는 놈들이었어. 뭐라고 해도 가장 큰 용의자는 나겠지.’
노블급 뱀파이어 박지웅도 죽었다. 예거 2명과 상잔했다고 하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우선 시체를 보면 뱀파이아와 싸워 죽은 게 아니다.
‘한 명은 총알이 머리에 박혀 즉사, 한 명은 누가 봐도 칼에 썰려 뒤졌잖아. 총알이 여기저기 날아가 있는 전투 흔적을 보면 어떻게 된 건지 파악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완전 범죄.
시체만 발견되지 않으면 실종이 된다.
‘여긴 카메라가 없으니 시체만 처리하면 완전 범죄가 가능해.’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내겐 인벤토리가 있으니까. 저 시체를 인벤토리에 넣고 [백환]이나 [광명승천도] 세계의 적당한 곳에 버리면 된다. [뱀파이어 형사] 세계에서 처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빨리 처리하고 돌아가자. 주서현의 보지가 그리워.’
***
특수부 부장 강명숙은 성유진의 업무 완료 보고를 받았다. 동시에 성유진을 시험하고 평가하러 갔던 예거 두 명과의 연락이 끊어진 걸 확인했다.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전투 흔적은 발견했으나, 예거 두 명의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뱀파이어와 싸웠나? 박지웅의 시체는 확인했다. 성유진의 보고에 의하면 박지웅을 죽인 건 성유진 본인이다.’
성유진은 실종된 예거 2명에 대해선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정보부장에게 부탁해 박지웅이 있는 오두막으로 사람을 보냈다. 뱀파이어들이 매복한 흔적은 없었고, 대규모 전투가 일어난 흔적도 없었다. 예거 2명이 이유도 없이 실종된 것이다.
‘근처 카메라를 전부 확인한 결과 예거들이 빠져나간 흔적도 없다. 뱀파이어들이 몰려든 흔적도 없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그녀는 바보가 아니다.
성유진을 시험하기 전에 들었던 주서현의 발언을 떠올리면 예거 2명은 성유진에게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성유진은 그 주서현이 인정한 남자니까.
‘…예거 2명이 죽었다고 보면 되겠지. 물증이 없기에 성유진을 추궁할 순 없다.’
물증이 있더라도 묻을 생각이었다.
예거 2명을 죽인 성유진을 내치는 건 손해만 보는 짓이다.
‘뱀파이어들이 움직인다. 성유진은 당분간 지켜봐야겠군. 관리는 주서현에게 맡기면 되겠지.’
성유진을 예거로 확정할지는 보류하기로 했다. 성유진의 정보가 아직 부족했기 때문이다.
‘예거는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제어가 불가능하다면….’
예거가 뱀파이어가 되는 최악의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 최악의 경우를 대비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처분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