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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702화 (1,482/2,000)

< 1702화 > 1702. 헌터 VS 뱀파이어

“안녕하세요~”

강수미는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며 달동네 안으로 들어갔다.

노인들의 경우 그런 강수미를 흐뭇하게 지켜봤다. 비교적 젊은 사람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친다. 물론 모두가 호의적인 건 아니었다. 경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동네에서 못 보던 아이들이군. 이 동네에는 왜 왔는가?”

“저희 오빠가 다음달에 서울에서 지내게 돼서 집 보러 왔어요!”

그녀가 내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나는 멋쩍은 듯 웃으며 노인에게 정해진 대로 말했다.

“군대 때문에 휴학했다가 다음달에 다시 복학하려고 합니다.”

“군대에 갔었다고? 그런 것 치고는 머리카락이 길구먼.”

“전역하고 몇 달 놀았습니다.”

“으음. 그렇구먼. 여기 이 동네가 좀 어둡고 언덕이 많긴 해도 집값은 싸서 학교 다닐 동안 살기엔 그럭저럭 괜찮네. 잘 둘러보게.”

그는 경계심을 거둬들였다. 그가 떠나려고 한다. 강수미는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며 물었다.

“네! 감사해요! 할아버지도 여기 사세요?!”

“저 건물 보이지? 저기 살아. 궁금한 게 있으면 와서 물어보게! 내가 이 동네에서 30년을 살았어! 30년!”

“네! 궁금한 게 있으면 꼭 물어볼게요!”

그가 다시 등을 돌려 떠난다. 강수미는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척 마녀의 거울로 노인의 등을 비추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노인이 비친다. 노인은 인간이었다.

‘뭐. 그럴 거라 생각 했지.’

뱀파이어는 노인의 모습을 하지 않는다. 영생을 살아가는 뱀파이어는 커먼급만 되어도 외모를 조정할 수 있다. 대부분 20~30대의 젊은 모습을 유지한다.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도 중년인이 정도가 전부다.

굳이 추레한 노인의 외모를 할 이유가 없다. 특별한 목적이 아니고서야.

‘이걸 강수미가 모를 리는 없을 테고…. 뭐, 업무이니 노인까지 전부 확인하는 게 맞지.’

강수미는 앞장서서 걸었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나는 하늘을 쳐다봤다. 점점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찾았어.”

강수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을 보던 시선을 내렸다. 강수미는 벽 모서리에 붙어 지나가는 사람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저게 뱀파이어? 직장인으로 보이는데?”

“직접 한 번 봐.”

그녀가 내게 마녀의 거울을 보여줬다. 거울 속의 대학생은 근육질 몸에 곤충 같은 더듬이를 가진 괴물이었다.

반사적으로 옷에 숨긴 나이프를 매만졌다.

‘진체와 의체의 차이가 큰 거로 보아 커먼급이군.’

1대1이면 무난하게 내가 이긴다. 찰나를 사용한다면 3초 내로 끝장낼 자신 있다.

“우린 싸우려는 게 아니야. 정보 수집이 목적인 거 잊지 않았지?”

“물론.”

나는 나이프에서 손을 뗐다. 내가 진짜 경계해야 하는 건 뱀파이어보다 강수미 쪽이다.

“미행하자. 저 뱀파이어의 거처를 알아내고 도청기를 설치해야 해. 지금 회사에 필요한 건 정보니까.”

“그렇지. 잠깐 잊었어.”

“조심히 날 따라와 섣부르게 미행하면 들킬 거야.”

강수미가 움직인다.

훈련받아서 그런지 미행 실력이 제법 뛰어나다.

‘인간보다 뛰어난 감각을 가진 뱀파이어의 뒤를 밟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혹시 매뉴얼 같은 거라도 있나?’

뱀파이어는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가 반지하 집으로 들어갔다. 뱀파이어라고 해서 돈에 쪼들리지 않는 건 아닌 모양이다.

“도청기는 집에 들어가서 설치하게?”

“저 집에 들어가는 건 미친 짓이야. 가면 바로 들키니까. 이럴 때는 장소를 기억하고… 입구 근처에 도청기를 설치하는 거야.”

“나중에 집안에 들어가서 설치하는 거야?”

“뱀파이어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안에 도청기를 설치하고 나오면 돼. 그 작업을 할 때면 너도 깜짝 놀랄걸? 이게 심장이 막 뛰거든. 나도 20번 넘게 한 작업인데 할 때마다 심장이 엄청 뛴다니까.”

“얻을 정보가 없다고 판단되면?”

“전투부나 특수부 쪽으로 업무가 넘어가지. 이런 사람이 많은 동네는 보통 날잡고 전투부가 한 번에 들이닥쳐서 한 번에 소탕해.”

“전투부의 업무를 본 적 있어?”

“3번 정도 있어. 거의 전쟁하는 느낌이야. 장갑차는 기본에 헬리콥터까지 뜨더라.”

그녀는 말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사람이 지나가면 다른 주제로 돌린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마녀의 거울로 뱀파이어를 확인한다. 뱀파이어면 미행해서 거처를 파악하고 대충이나마 도청기를 설치한다.

“다음은 저기야.”

“저기 맞아?”

그녀가 가리킨 건 골목 구석에 있는 점집이었다. 간판도 없었다. 대문 앞에 ‘카산드라 점집’이라고 적혀 있을 뿐이다.

‘아무리 점집이라도 그렇지. 이런 곳에서 장사를 하나?’

장사할 생각이 아예 없어 보인다.

“네가 봐도 수상하지? 점집을 표방하고 있으니 손님인 척 안으로 들어가 보자.”

강수미는 당당히 움직였다.

나는 긴장했다. 어쩌면 이게 곽수혁이 준비한 함정일지도 모른다.

초인종을 누른다. 삑 소리와 함께 인터폰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대문이 열렸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은 없고 짧은 통로가 있었다. 통로에는 화분들이 몇 개 장식되어 있었다.

‘뱀파이어들이 숨어 있는 걸로는 안 보이는군. 함정이 아닌 건가?’

무수한 함정을 당해본 나는 이게 함정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긴장을 풀지 않았다.

통로 끝에 도착했다. 강수미는 문고리를 잡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모르니 준비해. 뱀파이어가 있을지도 몰라. 들어갈게.”

강수미가 문고리를 돌리며 문을 열었다.

짙은 향냄새가 났다.

방은 검은색 커튼을 치고 촛불로 불을 밝혔다. 촛불의 한계는 명확해서 기본적으로 방은 어두웠다. 딱 뱀파이어가 좋아할 것 같은 분위기다.

“후후. 재밌는 분들이 오셨군요.”

방의 중심. 검은색 천으로 온몸을 가린 여자가 검은색 책상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커다란 수정구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여자에게서 드러난 부위는 두 눈밖에 없었다. 눈에 숨길 수 없는 주름이 보인다. 나이가 제법 있는 아줌마다.

“저는 카산드라라고 합니다. 자, 여기로 와서 앉으세요.”

“아, 네!”

강수미가 대답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여자가 지켜보고 있으니 대놓고 마녀의 거울을 꺼내 확인할 수 없었다. 만약, 여자가 뱀파이어라면 마녀의 거울을 보는 순간 바로 덮쳐올 테니까.

강수미와 함께 나란히 책상 앞에 앉았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제가 맞혀 보죠. 두 사람은… 연인이 아니라 남매군요.”

“어, 어떻게 아셨나요?!”

강수미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야 당연하지. 연인이 데이트하면 이런 곳으로 오겠나? 절대 아니다. 게다가 지금 강수미는 중학생 교복까지 입고 있었다. 연인이라기보다는 오빠와 동생으로 보여야 정상이다. 강수미도 알고 있을 텐데도 호들갑을 떨었다.

“흐음. 아주 흥미로운 미래가 보이는군요….”

“정말요?! 어떤 미래인가요?!”

“20만 원입니다.”

여자가 딱 잘라 말했다.

20만 원.

잘은 모르지만, 점집치고는 꽤 비싼 가격이 아닌가 싶다. 따로 타로점을 보거나 부적을 써주는 것 같진 않고.

“오빠! 이분은 진짜 용하신 분이야! 우리가 남매인 걸 한 번에 알아봤어! 부탁해, 오빠!”

“어, 뭐. 그래. 네가 하고 싶다면야…. 근데 내가 지금 현금으로 20만 원이 없는데.”

“카드도 됩니다. 물론 계좌 이체도 되고요.”

“카드로 해주세요.”

카드로 긁었다. 사짜 냄새를 너무 대놓고 풀풀 풍기는 게 아닌가.

“대가를 받았습니다. 자, 자, 천기를 훔쳐봐 볼까요. 우선 여성분부터…. 구슬아, 구슬아, 내게 보여다오!”

구슬이 빛난다!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커다란 수정구슬을 손바닥으로 문지를 뿐이었다. 뭔가 어설프고 조잡했다.

“호오? 여성분은 진짜 나이가 아니군요.”

“네, 네?!”

강수미가 진심으로 당황했다. 갑자기 정곡을 확 찔리니 그렇다.

“혹시 빠른 년생입니까?”

“네! 맞아요! 그걸 알아보시다니 대단하시네요!”

강수미는 과장되게 말하면서 필사적으로 자신의 동요를 감췄다. 책상 아래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후후. 제겐 기본이지요. 어머, 아가씨는 기구한 삶을 살아오셨군요.”

“기, 기구하다니요?”

“그건 저보다 아가씨가 더 잘 알고 계시겠죠. 제게 보이는 건 호수에 비치는 불꽃이군요. 호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불타고 있네요.”

“…….”

강수미가 입을 다물었다. 뭔지 몰라도 벌써부터 동요하고 있다. 카산드라는 강수미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수정구슬을 매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아가씨. 아가씨의 인생에 장애물이 있어요. 장애물은 반짝이며 아가씨를 유혹하고 있죠. 옳지 못한 일을 시키지만, 그 끝에는 파멸뿐이에요. 근데 다행히도 장애물을 치워줄 수 있는 귀인이 있네요. 그 귀인을 따른다면… 네. 탄탄대로의 인생이 펼쳐지는군요. 귀인을 따르세요. 그럼 웬만한 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예요.”

강수미는 카산드라에게 말에 빠져들었다. 대단하긴 했다. 나도 어느새 카산드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니까.

“귀인… 이라뇨? 그게 대체 누구죠?”

“이 나라에는 이런 속담이 있죠. 등잔 밑이 어둡다.”

“네?”

“아직 모르시겠나요? 아가씨는 이미 귀인을 만났답니다.”

“만났다니…. 그게 무슨….”

강수미는 그러면서 나를 힐끗 쳐다본다. 남매 행세를 하고 있지만, 나와 그녀는 오늘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카산드라가 가리키는 귀인이 나라면, 그녀는 이미 나와 강수미가 남매가 아니란 것을 간파했다는 거다.

“아가씨는 귀인만 믿고 따르면 된답니다. 그럼 목적을 이룰 실수 있을 거예요.”

“아, 네….”

“그럼 이제 남자분의 점을 봐 드리죠. 구슬아, 구슬아, 내게 보여다오!”

카산드라가 열정적으로 수정구슬을 문지른다.

나는 심드렁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강수미는 어떻게 구워삶을 수 있었는지 몰라도 나는 쉽지 않으리라.

“어머나. 정말 특이하네요.”

“뭐가 특이합니까?”

“최근에 당신의 삶이 바뀌었어요. 아니지. 삶이 시작되었다고 해야 하나요? 당신은 최근에 태어났군요.”

“전 20살이 넘었습니다.”

“후후. 전 본 것을 말했을 뿐이랍니다. 제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당신이 가장 잘 알겠죠.”

“…….”

“당신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군요. 감히 제가 재단할 수 없을 정도로.”

“그건 또 무슨….”

“수정구슬이 말해주네요. 이 세상은 당신을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고. 당신이 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네?”

“당신은 혹시 신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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