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3화 > 1703. 헌터 VS 뱀파이어
“당신은 혹시 신인가요?”
나는 카산드라를 힐끗 쳐다봤다.
단숨에 휘어잡는 분위기와 강수미의 반응을 봤을 때 평범한 여자가 아닌 건 확실했다.
어쩌면 사기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정말 대단한 사기꾼이거나.
카산드라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수미는 그 와중에 한 손에 마녀의 거울을 쥐고 카산드라를 비출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자기 본분을 잊지 않았다.
“전 신이 아닙니다. 신이라면 이러고 있지 않겠죠. 왜 그렇게 생각한 겁니까? 제 점이 그렇게 이상하나요?”
“이상한 게 아니에요. 특별한 거죠.”
카산드라가 말하며 수정구슬을 쓰다듬는다. 그러면서 이어 말했다.
“당신의 점은 정말 특별해요. 제가 지금껏 봐온 모든 사람을 통틀어서도 말이죠. 솔직히 이런 점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죠.”
“지금까지 봐온 모든 사람을 통틀어서…? 많은 사람의 점을 봐오셨나 보네요.”
“네. 많은 사람의 점을 봤죠. 이래 보여도 세계 곳곳을, 안 돌아다녀 본 곳이 없답니다. 왕이 될 점괘를 가진 사람을 만났고, 세상을 불태울 점괘를 가진 지도자도 만났죠. 하지만 당신만큼 특별한 점괘를 가진 사람은 없었어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점괘인지 지금도 믿기지 않지만요.”
“저는 사람입니다.”
“네.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당신은 뭐가 궁금하신가요?”
“…….”
나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궁금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미신과는 별개로 점괘는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물론 운명이 있다는 건 믿는다.
‘내가 알고 있는 원작이 운명이란 거지.’
허나 내가 이 세계에 온 순간부터 원작은 바뀌기 시작한다. 지금껏 내가 유희 생활에 들어오면서 원작과 똑같이 흘렀던 적은 없다. 원작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는 경우도 없었다.
“딱히 궁금한 건 없습니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조금 특별한 점괘를 가지신 분들은 대개 점괘를 믿지 않으시더라고요. 임의로 점괘를 봐 드리죠. 당신의 점괘는 워낙 특별한지라 전부를 볼 순 없지만… 그 일부라면….”
카산드라가 수정구슬을 문지른다. 뭔가 있어 보이는 말과 달리 손놀림은 평범했다. 특이한 기운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보이는군요. 네. 당신에게 조만간 찾아올 위험이 있네요.”
“…위험요?”
“네. 소중한 것을 잃을 위험. 당신에게 의미가 있는 위험일지는 모르겠지만요.”
“흐음.”
소중한 것을 잃을 위험이 있다.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좋지 않은 점괘를 들으니 영 찝찝하다.
‘덕담 좀 해주면 안 되나?’
타로 카드 같은 경우라면 이해라도 할 수 있지, 수정구슬을 매만지며 하는 말이다. 어떻게 점괘를 보는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제가 당신께 할 수 있는 조언은 이것뿐이군요. 조심하세요.”
카산드라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다. 어차피 업무 때문에 한 점괘였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예. 조심하겠습니다.”
카산드라가 내게 집중하는 사이에 강수미가 마녀의 거울로 카산드라를 비추었다. 카산드라의 각도에선 절묘하게 안 보이겠지만, 내 시선에선 잘 보인다. 거울 속의 카산드라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뱀파이어가 아니었다.
“점 봐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즐거운 시간 보냈어요!”
강수미가 일어났다.
볼일은 끝났으니 가면 된다.
“아가씨.”
카산드라가 일어나려는 강수미를 붙잡았다.
“제가 했던 말 잊지 마세요. 지금이 선택의 순간이에요.”
강수미는 내 눈치를 잠깐 본 뒤에 대답했다.
“아, 네.”
“잘 가요. 특히 아가씨는 정말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떠나기 전에 카산드라가 다시 한번 강조했다. 강수미가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미소 지으며 인사하고 점집을 떠났다.
대문밖으로 나온 강수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용한 점쟁이야. 지금까지 본 점쟁이 중에서 가장 용한 것 같아.”
“점집을 좋아하나 봐?”
“친구 중에 점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서. 한 달에 몇 번은 점집에 갔거든. 대부분 점쟁이는 대화를 나누면서 눈치와 정보로 때려 맞추는 식이라면… 저 점쟁이는 정말로 내 안까지 꿰뚫어 보는 느낌이었어.”
“불타는 호수? 점쟁이가 그 말을 하는 순간부터 네 표정이 바뀌던 것 같던데.”
“…으음.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거든. 옛날 일이고, 개인적인 일이라 네게 말하고 싶지는 않아.”
“그 점쟁이의 말은 내가 네 귀인이란 거네.”
“그러니까. 그게 가장 의심스러워. 그냥 해본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나는 진지한 눈으로 강수미를 보며 물었다.
“내게 할 말 같은 건 없어?”
“…귀인 취급 해달라는 거야?”
“내 손을 기회를 주는 거지. 그 점쟁이. 상당히 용한 점쟁이 같다며.”
“…….”
강수미가 침묵했다.
나는 그녀의 반응에 조금 당황했다. 농담 삼아 적당히 떠본 거다. 근데 그녀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업무에 집중하자. 반 이상은 확인했으니까. 조금만 더 하면 끝날 거야.”
슈우우우우욱.
바람이 불었다.
눈뜨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바람이었다. 나와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골목길에 이렇게 강한 바람이 불다니… 이상한데.’
강수미도 나와 같이 생각했는지 바람이 그치자 나처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우리는 뒤를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카산드라 점집이라 적혀 있던 대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강수미는 대문이 있던 곳으로 달려가 벽을 두들겼다. 벽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유진아! 내 몸 좀 들어줄 수 없을까? 이 벽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아야 해!”
“잠깐 실례.”
강수미의 허리를 잡고 위로 들어 올린다. 체구가 작아서 그런지 별로 무겁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왜 그래?”
“벽 너머에 있어야 할 집이 없어. 다른 집이야.”
“나도 한번 보자.”
그녀를 내려 주고 벽에 매달려 확인한다. 그녀의 말대로 벽 너머에는 점집이 아닌 다른 집이 있었다. 집의 구조 자체가 전혀 달랐다.
“…….”
나는 침묵했다. 머릿속은 바쁘게 움직였다. 내가 착각했나?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노블급 뱀파이어에게 환술이라도 걸렸나? 절대 정신은 늘 발동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환술사인 엘레나도 내게 정신적인 환술을 걸지 못한다.
벽에서 내려온 나는 강수미와 눈을 마주쳤다.
“신기한 일을 다 겪었네. 정보원들은 이런 일을 자주 겪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나도 이런 적은 처음이야. 그 여자는 아마도….”
“아마도?”
“마녀인 것 같아.”
“마녀는 회사의 비밀스러운 곳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이 세상에 회사에 속한 마녀만 있는 게 아니니까. 아마 회사가 모르는 마녀겠지. 마녀가 아니고서야 이런 짓을 벌일 수 없어. 뱀파이어가 아닌 건 마녀의 거울로 확인했고.”
나는 막다른 벽을 손등으로 두들겼다. 평범한 벽이었다.
그야말로 마녀에게 홀린 기분이었다.
‘진짜 마녀라면, 마녀가 한 점괘도 진짜일지 모르겠군.’
강수미를 힐끗 보니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눈동자가 흔들리며 동요하고 있었다.
***
강수미는 내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다가 그만두기를 몇 번을 반복했다.
어느새 시간은 오후 10시를 넘어서고 있다. 업무도 거의 끝났다. 아니, 이미 끝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30분 전부터 의미 없이 이 동네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으니까.
즉, 지금 강수미는 갈등하고 있었다. 무엇을 갈등하고 있는지 감이 잡힌다. 갈등의 원인은 분명 카산드라의 점일 것이다.
“강수미.”
나는 앞서가는 그녀를 불러세웠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밝지 않은 가로등만이 우리를 비추고 있다. 좋은 사람인 척하던 연기를 관둔다.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이제 슬슬 결정하지 그래?”
“뭐, 뭘 말하는 거야? 야식? 야식은… 치킨이 무난하고 좋지 않아? 혹시 치킨 싫어해?”
“곽수혁 과장과 나. 어느 쪽을 선택할지 간 보고 있는 거잖아. 원래라면 곽수혁 과장의 말을 군말 없이 따랐겠지만, 카산드라의 말이 걸려 선택을 못 했어. 평범한 점쟁이의 점괘가 아니라 마녀의 점괘니까. 내 말 틀려?”
강수미가 쓴웃음을 지었다. 중학생 같은 모습과는 대비되는 어른의 미소였다.
“역시 알고 있었네. 하긴. 곽수혁의 계략치고는 좀 많이 허술하긴 했어. 보통의 곽 과장이라면 시간을 들여서 조용히 처리하려 했을 텐데. 이유는 몰라도 많이 급했던 모양이야. 근데 너는 딱하니 업무를 받아들였고.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거구나?”
“그놈과는 어떤 거래를 한 거야?”
“내겐 돈과 의료 시설이 필요해. 어머니와 아버지가 많이 아프시고, 내 동생들은 음악을 하거든.”
음악.
단순히 즐긴다 수준은 아닐 것이다. 예술 계열은 돈이 많이 필요한 걸로 알고 있다. 게다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많이 아프다? 의료 시설이 필요할 정도면 거동조차 불편하다고 봐야한다.
‘강수미의 현재 상황은 재벌 3세인 곽수혁이 이용해 먹기 딱 좋은 상황이군.’
그리고 둘 다 해결할 수 있다.
강수미에게 돈은 큰 문제가 아니다. 회사 정보부이니 기본적으로 많은 연봉을 받을 것이다. 문제는 의료 시설이다. 재벌 3세인 곽수혁이 작정하고 방해한다면 한국에서 치료를 못 받을 수 있다.
“네가 해결해 줄 수 있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마녀는 네가 귀인이라고 했으니까. 마녀를. 정확히는 마녀의 힘을 믿어 보려고. 물론 그냥 믿지는 않아. 날 그냥 도와주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아.”
“뭔가 있나 보군.”
“녹음 파일이 있어. 곽 과장이 내게 지시한 걸 녹음한 자료. 곽 과장이 나를 처분하려고 할 때 준비한 자료야. 곽 과장 같은 인간은 분명 내가 쓸모없어지거나, 성가셔 질 때 처분하려 들 테니까.”
“철저하네. 좋아. 그 자료를 상부에 보고해 곽 과장의 뒤통수를 친다는 조건에 널 도와주지.”
“이걸 내가 찌르면 회사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힐 거야. 회사에는 곽 과장을 추종하는 자들이 꽤 있거든.”
“네 부모님을 치료할 약과 네 동생들이 음악을 공부할 수 있게 막대한 돈을 줄게. 네가 회사 생활하지 않아도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