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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704화 (1,484/2,000)

< 1704화 > 1704. 헌터 VS 뱀파이어

“네 부모님을 치료할 약과 네 동생들이 음악을 공부할 수 있게 막대한 돈을 줄게. 네가 회사 생활하지 않아도 되도록.”

강수미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무 말을 쉽게 하네. 우리 부모님은 전신화상에 루게릭 병을 앓고 있어. 매일 밤 고통에 시달리고 계시지. 그런데 치료할 약을 준다고? 지금 장난해?”

강수미의 두 눈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게 느껴진다. 생각 이상으로 민감한 반응이었다.

‘…루게릭병이 무슨 병이지?’

분위기를 보아하니 일종의 불치병 같았다.

현실에서 불치병은 드물었다. 불치병으로 치부되는 것들은 알고 보면 대부분 저주인 경우가 많다. 저주가 아니더라도 마법과 관련된 병들이 불치병으로 치부된다.

그 외의 웬만한 병들은 모두 치유할 수 있었다. 마법과 능력으로 인해 의학이 비정상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잠깐 검색 좀 해보고 올까.’

현실로 가서 루게릭병을 검색했다. 실존하는 병이었다. 정식이름은 근위축성측색경화증이라 한다.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는 병이다.

현실에선 루게릭병 전용의 특수 포션 하나면 치료할 수 있는 병이기도 했다. 달리 말해 포션이 없다면 치료할 수 없는 병이었다.

‘루게릭병 전용의 특수 포션은 대충 2,000만 원 정도인가.’

한국에서는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구매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더 쉽게 구할 수 있지. 마약이 판치는 곳이 거기인데 이런 특수 포션쯤이야.’

공간 이동 주문서를 가지고 있는 내게 특수 포션을 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나는 강수미 앞에서 포션을 꺼냈다. 투명한 유리통에 들어 있는 분홍색 포션과 노란색 포션을 본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머니에 그런 걸 가지고 다녔어? 아무리 봐도 주머니에 넣을 공간이 없을 텐데….”

“비밀이야.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이 포션들로 네 부모님을 치료할 수 있다는 거지. 분홍색은 전신 화상, 노란색은 루게릭병.”

이 세계에서 아이템은 너프 먹는다. 그래도 효과는 있을 거다. 그리고 질이 떨어지면 양으로 해결하면 된다.

“하. 그런 물약 가지고 치료된다고? 그게 무슨 마녀의 약이라도 돼?”

“잘 아네. 이게 바로 마녀의 포션이지.”

중요한 건 이 포션을 누가 만들었냐가 아니다.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지. 강수미는 마녀가 만들었다는 포션이란 말에 흥미를 보이고 있다. 그녀는 마녀를 아주 대단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직접 효과를 보여줘서 쐐기를 박아야지.’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낸다. 강수미가 깜짝 놀라 소매에서 작은 권총을 꺼내 나를 겨눴다. 손바닥보다 작은 권총이었다.

“진정해. 널 해칠 생각은 없으니까.”

“이상한 짓은 하지 마.”

“이상한 짓이 아니라 효과를 증명하려는 거야.”

왼손으로 나이프의 날을 감싸 쥐듯 잡았다. 나이프의 칼날이 손바닥을 벤다. 피가 떨어진다.

“미쳤어? 지금 피를.”

그녀는 말을 하다 입을 다물었다. 포션을 뿌린 내 손이 순식간에 회복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선 있을 수 없는 기적이었다.

‘상급 포션인데 10초가 지나도 회복이 덜 되다니…. 이 세계에 오며 효과가 떨어진 건 확실하군.’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그녀에게 효과를 증명하기엔 충분했다.

“봤지? 이 포션은 전신 화상에도 효과가 있어. 감기 같은 거에도 큰 효과가 있지.”

“…루게릭병은?”

“이 노란 포션이 루게릭병에 특효야. 부작용은 없어. 설마 이것도 직접 증명해야 하는 건 아니지?”

“…널 믿도록 할게. 거래하자.”

강수미의 시선은 포션에 박혀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그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뻔하다.

“잠깐만.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손해인 것 같아.”

“뭐?”

“부모님. 즉, 두 명분은 너무 많잖아.”

“도, 돈은 안 줘도 돼.”

“그래도 내가 손해야. 이 포션 4개의 가치가 얼마일지는 너도 잘 알잖아. 부호들이 몇십억을 불러서라도 구하려고 할걸? 그러니 포션은 두 개만 줄게. 전신 화상 치료용 두 개. 그게 아니면 각각 1개씩. 어때?”

“곽 과장을 나락으로 보낼 수 있어! 내가 직접 상부에 녹음 파일을 보고 할게! 나는 직장을 포기하는 거야!”

“네가 직장을 포기하든 말든 내 알 바야?”

“……따로 원하는 게 있구나. 뭘 원해? 내가 직접 곽 과장을 죽이길 원해?”

강수미의 표정에서 각오가 느껴진다.

“네가 내 말에 따라 뭐든지 할 수 있느냐에 달렸지.”

“뭐든지…. 무서운 걸 요구하는구나. 네가 가진 물약 4개. 그 전부를 줘. 그럼 네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할 테니까.”

“질질 끌지 않고 바로 결론인가. 좋아. 거래 성립이야. 포션은 가져가.”

그녀가 손을 뻗으며 내 쪽으로 뛰듯이 걸어오는 순간이었다.

-강수미. 네가 감히 나를 배신하는 거냐?

곽수혁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와 강수미는 고개를 번쩍 들어 곽수혁의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골목길 벽 위에 다섯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 중 한 명이 스마트폰을 들고 이쪽을 쳐다본다. 중년으로 보이는 그가 히죽 웃는다.

“아가씨가 안 오길래 우리가 먼저 왔지. 덕분에 재밌는 장면을 봤고 말이야.”

다섯 명의 남자들은 모두 중무장한 상태였다. 방탄조끼를 입고 소총을 손에 쥐었다. 다른 4명은 총구를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성유진 사원. 아까부터 계속 듣고 있었어. 꽤 재밌는 물건을 가지고 있잖아. 마녀의 물약. 그거 당장 넘겨. 네가 가지고 있을 물건이 아니야.

“이 귀한 걸 너 따위에게 넘기라고? 사무실 카메라를 몰래 훔쳐보는 너 같은 변태 새끼에게?”

-…알고 있었구나. 그래. 알고 있으면서 그딴 짓을 벌인 거였어. 내게 보여주기 위해. 흐, 하하하!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한 건데… 진짜로 짜증 나는 놈이었군! 도움 안 되는 새끼! 너랑 주서현은 어울리지 않아.

내가 입을 떼기 전에 강수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곽 과장님. 그만하시죠. 곽 과장님이 제게 지시하신 것들 모두 녹음했습니다. 곽 과장님은 그 자료들이 퍼지는 걸 원하십니까?”

-많이 컸어, 강수미.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만… 너무 빠르네. 뭐해, 용병들. 둘 다 죽여. 아, 마녀의 물약 가져오는 거 잊지 말고.

“그렇게 됐으니 원망 말고 죽어라. 댁들이나 우리나 똑같으니. 차이점이 있다면 댁들은 멍청했다는 거지.”

용병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려 한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우선 강수미에게 몸을 던져 낚아채 내달린다. 용병들이 놀라 방아쇠를 당긴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찰나로 총알을 피하고 인벤토리에서 섬광탄을 소환해 던졌다.

“젠장! 섬광탄이다!”

“눈 감고 머리 돌려! 실명한다!”

용병들이 빠르게 대처했다.

-지금 무슨 상황이지? 대답해라!

스마트폰에서는 곽수혁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강수미를 품에 안은 나는 골목길 코너를 돌아 그녀를 내려두었다.

“너 방금 그 섬광탄은….”

검지를 올려 입에 갖다 댄다.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에 그녀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훈련받은 사람다웠다. 그녀는 이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나한테도 비밀 몇 개는 있거든. 처리하고 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

“…처리? 도망치는 게 아니라? 상대는 5명이야. 그것도 총을 든 전문가!”

“나도 전문가거든. 뱀파이어 사냥이든, 인간 사냥이든 말이야.”

용병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연막탄을 소환해 그들에게 단졌다. 연막이 그들의 시선을 가린다.

[가속을 사용합니다. 10분 동안 유지됩니다. 남은 스택: 3]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2]

“연막이다. 물러나… 커억!”

가장 앞에 있는, 리더로 보이는 놈에게 달려들어 그 목에 나이프를 쑤셔 넣는다. 그는 쓰러지면서 총구를 내게 겨눈다. 하지만 늦었다. 손바닥으로 총구를 옆으로 돌린다. 총구가 불을 뿜는다. 총알이 날아간 곳에는 다른 용병이 있었다.

“끄으읍!”

총알에 맞은 용병은 복부에 총알이 5발 이상 박혔음에도 비명을 참고 내게 총을 겨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1]

시체를 박차고 위로 텀블링했다. 연막 때문에 적들의 정확한 위치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눈을 감았다.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지.’

바닥으로 착지하며 월광 소나타 7을 소환해 적에게 휘둘렀다. 눈을 감았음에도 그들의 기척은 온전히 느껴졌다.

“이 씨발놈이!!!”

살아남은 병사가 소리친다.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는 소리가 들렸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0]

나는 놈이 던진 수류탄을 낚아채, 다른 손으로 그 입을 검으로 찢어 벌린 뒤 수류탄을 집어넣어 놈의 몸을 돌려 던졌다.

쾅!

수류탄이 터지는 것과 함께 놈의 머리가 산산이 조각난다.

-씨발!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대답 안 해?! 대답하라고!!

곽수혁의 목소리는 굉장히 시끄러웠다. 연막탄으로 시야가 가려져 있음에도 떨어진 곳이 어딘지 정확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곧 죽여 줄 테니 기다려라. 배신자 새끼.”

-이 씨발!! 성유진!!

콰직!

스마트폰을 밟아 박살 냈다.

바람이 불어오며 연막이 점점 걷히기 시작했다. 나는 검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벽 위에는 새로운 놈들이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벽위에 쪼그려 앉은 놈,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놈, 팔짱을 끼고 있는 놈들 등 다양하다.

“딱 보니 알겠군. 회사 놈이지?”

“저놈, 본 적 있는 얼굴인데… 아. 도살자의 파트너입니다. 폭탄으로 야나 죽인 놈.”

“저 새끼 여기서 꼭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12명.

달빛 아래에서 놈들의 몸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12명 전원 뱀파이어다.

‘총성 때문에 왔다고 하기엔 너무 빨라. 그 전에 왔다. …나이프로 손바닥에 피를 냈을 때인가. 이놈들은 피 냄새에 민감하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검에 남아 있던 피가 떨어진다.

“사냥감이 제 발로 찾아오다니…. 오늘 운이 좋네.”

“사냥감은 널 말하는 거겠지?”

“보면 모르나. 내가 헌터잖아. 헌터 자격증도 있다고.”

“지랄한다.”

놈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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