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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707화 (1,487/2,000)

< 1707화 > 1707. 헌터 VS 뱀파이어

곽수혁의 본가는 서울에서도 부촌으로 유명한 동네에 있었다. 이름난 한국 기업인들이 모여 사는 곳.

살짝 올드하긴 하지만 늙은 회장의 취향일 테니 이상한 점은 없었다.

‘일단 들어가서 곽수혁의 가족을 붙잡고 심문해야겠지.’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몸에 칼이 들어오는데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진 않을 것이다.

‘곽수혁의 현재 위치와 연락처를 찾아내는 거야. 그리고 가족이 죽는 영상을 찍어서 보내야지. 그래야 빡치겠지.’

곽수혁이 빡쳤으면 좋겠다.

나는 집 입구를 지키는 경호원을 무시하고 담벼락을 넘었다. 깨끗한 정원에 깔끔히 착지했다. 풀벌레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좀 지나치게 조용한 감이 있는데. 단체로 튀었나?’

그럴 리 없다는 걸 내가 잘 안다. 상대는 강룡 그룹의 오너 일가.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부자다. 그런 이가 내가 두려워서 야반도주할 일은 없다.

‘불은 켜져 있으니 사람이 있는 거겠지.’

잠깐 하늘을 올려다본다.

모텔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어두웠던 하늘은 빠르게 밝아지고 있었다.

‘과연 재벌가.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것 같군.’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내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놈들이 비범하게 느껴졌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놈은 미친놈이고.

건물로 향한다.

바스락.

풀잎을 밟고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저런 집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가정부가 있을 것이다.

‘사람이 너무 많으면 시끄럽고 번잡하니 가정부부터 죽이자. 그 후로 마음에 안 드는 순서대로 싹 다 죽이는 거지.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회장은 마지막에 죽인다.’

계획까지 완벽했다. 경비원이 몰려오면 귀찮기에 일단 부엌 뒷문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움직였다.

문고리를 조심스럽게 당긴다. 예상했던 대로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기척도 없으니 바로 문을 열었다. 부엌이 나왔다. 냉장고만 3개가 있는 부엌이었다.

‘넓기나 디자인은 호텔 주방 같네.’

월광 소나타 7을 뽑아 들고 살금살금 부엌 밖의 거실로 향한다. 누군가가 튀어나오면 당장 검을 휘둘러 썰어버릴 것이다.

“이, 이놈이!!”

분노한 늙은 남성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순간 내 존재를 들켰나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늙은 목소리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분노를 토하고 있었다.

“네놈이 정녕 미친 거냐?! 가문에 먹칠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쪽으로 오거라! 회사의 일이라면 내가 무마해주마!”

“할아버지…. 그 새끼를 죽여야 합니다.”

곽수혁의 목소리였다.

내 기민한 머리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짐작했다. 회장과 곽수혁이 싸우고 있었다.

‘곽수혁. 이 새끼 여기에 있었나? 딱 좋군.’

강룡 그룹 오너 일가를 몰살한다. 그럼 후환은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주인 잃은 강룡 그룹은 엄청난 혼란을 맞이해야 할 테니까.

‘근데 좀 이상하네. 곽수혁. 이 새끼가 왜 이렇게 침착한 거지?’

반대로 회장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실려있다. 사고를 친 건 곽수혁이다. 근데 곽수혁이 더 침착하다? 뭔가 이상하다. 회장과 곽수혁의 입장이 반대로 되어 있는 것 같다.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외에 나가 있거라! 해외에서 훗날을 도모하는 것도 능력이다!”

“할아버지. 전 오래 기다릴 수 없습니다! 당장 그놈을 죽여야 합니다! 해외에서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면… 그 시간 동안 주서현은 그놈에게…!”

“정말로 고작 계집 하나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인 게냐?!”

“고작 계집? 이 세상에 주서현 같은 여자는 없습니다! 오직 주서현만이 제 옆에 설 자격이 있습니다!”

“미쳤구나! 내가 너를 너무 오냐오냐 키웠어!”

“할아버지. 강룡 그룹, 제게 주시죠. 그럼 가족들은 건들지 않겠습니다.”

“정신 차리거라! 넌 저놈에게 이용당하는 거다! 저놈이 원하는 걸 손에 넣으면, 넌 버려질 것이다! 부탁이니 인간성만을 버리지 말 거라!”

“인간성을 버리지 말라…. 어렸을 때 항상 그 말을 듣고 자랐지요. 그러나 단 한 번도 그 말에 감명을 느낀 적 없습니다.”

“뭣… 설마….”

“언제까지 이 촌극을 지켜봐야 하는 거지?”

회장과 곽수혁의 것이 아닌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른함이 담겨 있는 목소리는 순식간에 공간을 장악한다.

“…지금 끝내려고 했다. 할아버지. 주지 않으신다면 강제로 가져가겠습니다. 전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성을 버리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데 왜 쓸모도 없는 것에 집착하는지….”

“그게 인간들의 멍청함이지.”

“나는 절대 너희를…!”

쾅!

발로 문을 걷어찼다.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내게 향한다.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구석에는 가족권들이 모여 벌벌 떨며 앉아 있었고, 거실 중심에는 회장과 곽수혁이 대립하고 있다. 바닥에 주저앉은 회장과 꼿꼿이 선 곽수혁의 모습은 어딘가 이질적이었다.

곽수혁의 옆에는 백발의 청년이 서 있었다. 몸에 딱 맞는 정장은 깔끔했고, 피부는 희다 못해 창백했다. 분위기는 차가웠으며, 눈동자는 피처럼 붉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윤서진.’

원작 주인공인 최상우의 원수이자, 원작의 최종 보스.

“…….”

윤서진은 나를 보고 침묵했다. 눈치로 보아 날 이미 아는 것 같았다.

“자네는….”

회장도 나를 알고 있었다. 그의 눈은 희망으로 반짝인다.

“이 새끼가! 어떻게 알고 쫓아온 거냐?!”

곽수혁은 바로 분노를 터트렸다.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모양이다.

“모기 대빵이랑 주제도 모르는 개새끼까지 한곳에 죽일 수 있잖아.”

몸을 긴장시킨다. 전투를 앞두고 신체의 세포 하나, 하나가 깨어나는 느낌이다.

“운이 좋아.”

계획은 바뀌었다. 회장은 죽이지 않는다. 놈은 패륜을 저지르려고 했다. 회장과 그 가족을 죽이는 건 곽수혁을 도와주는 꼴이 된다.

‘대신 곽수혁과 윤서진을 죽인다.’

우선순위는 곽수혁이다.

놈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고 무릎을 굽히는 순간이었다. 곽수혁이 손가락을 까딱인다. 허공에 검 한 자루가 나타났다. 검은 내 머리를 노리고 정확히 날아온다.

피하기에는 이미 하체에 힘을 준 상태였다.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쳐낸다.’

까앙!

쳐낸 검이 옆으로 날아가 벽에 박혔다. 검은 부서지더니 피 한 방울로 변해 떨어졌다.

“운이 좋은 건 네가 아니라 나다! 성유진! 넌 내 손에 죽을 거다!”

곽수혁이 손을 가로로 그었다. 그의 앞에 다섯 자루의 검이 나타났다. 검은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다른 속도로 내게 쇄도한다.

‘이 새끼 노블급 뱀파이어가 됐군. 뱀파이어 로드랑 거래를 했나?’

뱀파이어 로드가 옆에 있으니 그건 확실하다.

‘놀라운 건 곽수혁의 힘이다.’

곽수혁이 노블급 뱀파이어가 된 건 고작해야 몇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위협적인 수준으로 능력을 활용한다?

이건 재능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은밀히 움직이기로 유명한 윤서진이 왜 곽수혁의 옆에 붙어 있는지 알겠다. 아마 곽수혁의 재능을 알아본 것일 테지.

까앙! 깡!

검을 피하고, 피할 수 없는 검은 쳐낸다.

곽수혁이 그 재능을 온전히 꽃피웠다면 좀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곽수혁은 애송이였다.

“아아아악!”

곽수혁이 악을 쓴다.

내게 날아오는 검의 숫자가 10개로 늘었다.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쇄도하는 검들은 화려하기까지 하다. 조금만 방심해도 검에 현혹될 수 있다. 현혹되는 순간 저 검들은 내 몸을 갈기갈기 찢을 것이고.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찰나를 사용해 일직선으로 돌파한다. 5개의 검을 단숨에 지나쳤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남은 5개의 검은 동시에 날아오지 않았다. 따로 속도에 차이를 둬서 변수를 차단하려는 속셈이다. 그러나 고작 이 정도로 변수를 없애려 하기엔 내 경험과 기술은 얕지 않다.

영천류의 보법을 밟는다.

몸을 띄워 날아오는 검을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잘해야 하는 건 타이밍을 맞추는 것.

‘찰나가 있는데 못하면 이상하지.’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3]

찰나를 사용해 완벽한 타이밍으로 날아오는 검을 밟으며 곽수혁의 코앞에 다가섰다.

“대체 이게 뭔…!”

곽수혁이 이를 드러냈다. 뱀파이어의 상징과도 같은 송곳니가 불빛을 받아 반짝인다. 그가 손을 든다. 그 손에는 어느새 고풍스러운 리볼버 하나가 들려 있었다. 리볼버의 총구는 정확히 내 머리로 향했다.

곽수혁이 웃는다. 이 거리에선 절대로 피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놈이 방아쇠를 당기는 것에 맞춰 찰나를 사용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2]

리볼버에서 뿜어져 나오는 탄환이 보인다. 우습게도 뱀파이어에 특효인 은탄이었다.

나는 고개를 획 돌려 미간을 노리던 탄환을 피했다. 경악과 두려움으로 일그러지는 곽수혁의 표정을 감상하며 검을 휘두른다.

“거기 까지.”

쾅!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윤서진이 손바닥을 내미는 동시에 충격파가 일어나 내 몸을 뒤로 밀친다. 망치로 한 대 맞는 느낌이긴 하나, 정신을 잃거나 신체 부위가 터질 정도는 아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1]

허리에 힘을 주어 공중에서 텀블링했다. 양발이 천장에 닿는다. 나는 윤서진을 번개처럼 떨어졌다. 윤서진은 침착하게 움직였다. 내 검은 그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베었다. 무표정하던 윤서진이 눈살을 찡그렸다.

“과연 그 주서현의 파트너라고 해야 하나…. 전투력이 엄청나군.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다.”

“죽어, 이 새끼야!”

감탄하는 윤서진 옆에서 곽수혁이 분노하며 달려들었다.

‘여기서 달려든다고? 완전 땡큐지.’

팔을 비틀어 검을 휘두른다. 노리는 것은 곽수혁의 목이다. 곽수혁이 씩 웃는다. 놈은 소매 속에 숨기고 있던 칼날을 꺼내 내 검을 쳐냈다.

‘역시 힘은 저 새끼가 더 세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0]

인벤토리에서 새로운 검을 소환한다. 아직 눈치채지 못한 그의 심장을 찌르기만 하면 된다.

“그만!”

윤서진이 곽수혁의 어깨를 잡고는 뒤로 확 물러났다. 쨍그랑! 놈은 거실 창문을 박살 내고 마당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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