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1화 > 1711. 헌터 VS 뱀파이어
늦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청와대 경호원들의 시체를 보며 든 생각이었다.
경호원들이 일방적으로 당한 건 아니었다. 곳곳에 뱀파이어의 시체가 보인다.
나는 그러려니 하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주서현은 굳은 표정으로 시체들을 살펴봤다. 마침 주서현의 스마트폰이 부르르 떨린다. 주서현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네. 부장님.”
강명숙 부장이 직접 전화를 건 모양이다. 주서현은 짧게 대답하며 강명숙의 말을 계속 들었다. 주서현의 반응을 보아 강명숙이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끝낸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성유진.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해. 그렇지 않으면… 군대가 움직일 거야.”
“군대가 움직이면 편하게 수습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군대에 얼마나 많은 뱀파이어가 숨어 있는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최악의 경우 도시가 봉쇄될 수도 있어.”
“방금 전화는 강명숙 부장의 재촉이었나.”
“지도도 받았어. 이쪽이야.”
주서현이 어딘가로 뛰어간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뱀파이어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 눈에는 정찰 겸 경계를 서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곳에서 어슬렁거리지 않을 테니까.
“성유진.”
주서현이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녀와 함께 지낸 지도 꽤 됐다. 이젠 척하면 척이다. 나는 권총을 꺼내 가장 멀리 있는 뱀파이어에게 겨눴다. 주서현은 검 자루에 손을 얹고 뛰어간다.
“도살자다!”
“그분에게 알려라!”
“우리끼리 상대할 수 없다! 일단 물러.”
방아쇠를 당겼다.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후퇴를 주장하던 뱀파이어의 머리에 은탄이 박힌다. 총성은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주서현이 내달린다. 가속 능력까지 사용한 그녀의 질주는 뱀파이어라고 해도 쉽게 쫓을 수 없었다. 하물며 그녀는 달인 이상의 검술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서걱!
주서현의 검에 베인 뱀파이어가 주위에 피를 흩뿌리며 쓰러진다. 주서현은 쉬지 않고 다음 뱀파이어에게 향했다.
“도망쳐라!”
뱀파이어가 소리친다. 주서현을 보는 순간부터 그들의 전투 의지는 소멸했었다.
‘누구 마음대로.’
여긴 주서현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가장 멀리 있는 놈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뱀파이어의 머리통에 총알을 박았다.
3분도 지나지 않아 뱀파이어 7마리를 처리했다.
우우우우우웅.
마침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최상우였다.
일단 전화를 받았다.
“최상우? 어쩐 일이야?”
-정보부에 있는 아는 직원에게 들었다. 너와 주서현 대리가 윤서진을 처리하는 업무를 맡았다고.
바로 최상우의 목적을 눈치챘다.
뱀파이어 로드 윤서진은 최상우의 부모님을 죽인 뱀파이어 로드다. 즉, 최상우의 원수였다.
“설마 여기로 오겠다는 건 아니지?”
-내 업무…. 아니, 우리 업무는 끝났다. 너희를 지원하고 싶다.
“그건 우리가 아니라 부장한테 말해야지.”
-전투부가 청와대를 포위하고 뱀파이어 제압 작전을 시작했다. 부장에게 부탁하더라도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아마 다른 고승로 보내려고 하겠지. 현재 청와대 안으로 들어가 특수 업무를 부여 받은 건 너희뿐이다.
“부장이라면 그럴 만도 해. 근데 그런 식으로 움직이면 100% 징계가 떨어질 거야.”
-이미 각오한 일이다. 그 철두철미한 윤서진이 모습을 드러낸 건 정말 드문 일이다. 이번 기회가 아니라면 놈과 두 번 다시 싸우지 못할지도 못한다. 부탁이다. 부모님의 원수를 갚고 싶다. 네 도움이 필요하다.
“내가 말려도 너라면 기어코 오겠지. 무슨 도움이 필요한데?”
-지도. 현 청와대의 상황이 자세히 표현된 지도가 필요하다. 부장이 너희 팀에게 전했다는 그 지도 말이다.
“다 알고 왔군. 그 정보부의 직원, 꽤 유능한데.”
-부탁이다, 성유진.
“동기 좋다는 게 뭐냐. 잠만 기다려. 그 지도는 주서현 대리님이 가지고 있거든.”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주서현은 한숨을 내쉬며 내게 스마트폰을 건넸다. 마음대로 하라는 뜻이었다. 고지식할 것 같은 주서현은 의외로 융통성이 넘쳤다.
나는 주서현의 스마트폰을 조작해 지도 정보를 최상우에게 보냈다.
-고맙다.
“일단 보내긴 했는데… 올 수는 있고? 네가 도착했을 즘에는 이미 정리가 다 끝났을지도 몰라.”
-그거라면 문제없다. 최선영 대리와 나는 이미 청와대 안쪽에 있다. 지도를 보자면… 너희가 있는 곳에 반대편이라 할 수 있겠군.
헛웃음이 나왔다.
“아예 작정하고 전화했었군.”
-고맙다. 이 일은 언젠간 반드시 갚으마.
“죽지나 마라.”
덕담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원작에서는 최상우가 끝까지 살아남는다. 인류에겐 영웅이 되고, 뱀파이어에겐 씹어 먹어도 시원찮은 적이 된다. 뱀파이어의 악몽, 늑대의 지도자 등등으로 불린다. 그러나 그것도 몇 년 뒤에 일이다.
‘원작과 달리 윤서진의 활동이 지나치게 빨랐어. 그건 나 때문이 아니라 주서현 때문이겠지.’
원작 시작 1년 전부터 활동한 주서현의 영향을 받은 게 확실했다.
‘최상우는 여기서 죽을지도 모르겠군. 뭐, 상관없나.’
최상우에게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친구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이야기는 끝났어? 가자.”
주서현이 재촉했다.
우리는 대통령이 있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마 그곳에서 윤서진을 만나게 될 것이다.
콰앙!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려 우리의 앞길을 막았다. 흙먼지는 빠르게 가라앉으며 나타난 두 명의 뱀파이어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윤서진과 곽수혁이었다.
나는 윤서진에게 총을 겨누며 물었다. 함부로 쏘지 않는다. 놈은 진동 능력을 이용해 총알을 반사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네놈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내가 물었다. 지도에 따르면 놈들은 대통령을 공격하러 움직이고 있어야 한다.
윤서진은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우리에게 있어 대통령보다 더 위험한 존재들이 이곳에 있으니.”
그와 곽수혁의 시선은 주서현에게 꽂혀 있었다. 서로 다른 느낌의 눈빛이었다.
“오랜만이야, 주 대리.”
곽수혁은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인사했다. 일부러 흥분을 가라앉히는 기색이 역력했다. 스르릉. 주서현은 조용히 검을 뽑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만년설보다 차가웠다.
“무시인가. 너무한 걸, 주 대리.”
“시간이 없다. 본론부터 말하지. 도살자, 뱀파이어가 돼라. 내 피를 주겠다. 노블에서부터 시작해라. 너라면 10년 내로 로드가 될 수 있을 거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 주겠다.”
“주 대리. 윤서진의 제안을 받아들여! 우리랑 함께하자! 최상위 포식자가 되어 이 세상을 함께 지배하자! 영원히 말이야!”
영원.
뱀파이어는 늙어 죽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론적으로 영원히 사는 것도 가능했다. 자발적으로 뱀파이어가 되는 인간의 가장 큰 동기였다.
‘멍청하긴. 주서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군.’
주서현은 고집이 대단한 여자다. 특히나 이런 류에서는 더욱더. 죽으면 죽었지 뱀파이어가 된다는 선택지는 없다. 고려 대상도 아니다.
“너희처럼 내게 뱀파이어가 되라고 한 놈들이 있었지. 내 대답은 언제나 같아. 죽더라도 인간으로서 죽을 거야.”
“주 대리! 정신 차려! 넌 회사에 세뇌당한 거야! 뱀파이어가 되라고! 진화의 기회를 왜 스스로 차버리는 거야?”
“인간이니까.”
주서현이 짧게 대답하며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윤서진이 바로 능력을 사용했다. 진동으로 인한 충격파를 일으켜 주서현을 견제한 것이다. 주서현은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도살자. 우리에겐 네가 필요하다. 우리에겐 압도적인 힘과 카리스마를 가진 구심점이 필요하다. 거기엔 네가 적격이다. 너를 강제로라도 뱀파이어로 만들겠다. 뱀파이어가 되면 서서히 사고방식이 바뀔 테니.”
윤서진을 중심으로 공기가 떨린다. 그 진동이 내 피부에도 느껴진다. 이대로면 큰 게 올 것이다.
‘놈들은 대놓고 주서현을 견제하고 있어. 틈을 만들어야 해. 주서현이 움직일 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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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달리며 총을 쐈다. 타깃은 윤서진이 아닌 곽수혁이었다. 총알은 정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진동에 의해 궤도가 꺾여 사방팔방으로 날아간 것이다. 곽수혁과 윤서진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그래. 너도 있었지. 빌어먹을 새끼…! 네놈만 없었다면!”
곽수혁은 나를 향해 맹렬한 증오를 불태웠다. 나는 좀처럼 놈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바닥에서 일어나는 진동이 나를 밀어냈기 때문이다.
“네가 뭘 하든 주서현은 내 거다.”
그에게 조소를 지었다. 효과는 뛰어났다. 놈의 눈동자가 붉게 변하며 팔과 등에 작은 가시 같은 것들이 튀어나온다. 이마에는 뿔이 생겼다. 곽수혁이 내게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이 새끼가…. 아직도 자기 주제를 모르는군. 넌 오늘 여기서 죽을 거다.”
“그게 네 진체냐? 벌레같이 생겨서 존나 더럽게 생겼네.”
“고깃덩어리로 만들어주마!”
놈이 내게 달려온다. 놈의 몸에 돋아난 가시에서 핏방울이 맺힌다. 핏방울은 강철로 변해 그의 몸을 감쌌다. 놈은 강철 덩어리가 됐다. 덩치는 1.5배 이상 커졌고, 온몸에는 위협적인 가시가 돋아나 있다. 놈의 양손에는 2m가 훌쩍 넘는 거대한 대검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그래. 제대로 한 번 해보자.”
인벤토리에서 스톰브레이커를 소환한다. 거창의 모습을 한 스톰브레이커는 갑자기 산산이 부서졌다. 그 조각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내 몸에 달려 붙어 갑옷이 되었다.
평소와 다르다.
갑옷의 형태가 좀 더 조잡했고, 호흡이 답답했다. 갑옷이 무거운 건 덤이다.
‘어쩔 수 없나. 스톰브레이커는 착용자의 능력에 따라 그 강도와 힘이 정해지니까.’
무엇보다 이 세계에선 스톰브레이커는 너프를 먹었다. 그래도 총알 정도는 문제없이 막겠지.
“죽어라!”
코앞까지 다가온 곽수혁이 양손 대검을 휘두른다.
‘놈은 노블급 뱀파이어다. 스톰브레이커의 보조로 신체 능력이 상승했다고 해도 놈에게 비할 바는 아니야. 무식하게 싸우면 내가 진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