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4화 > 1714. 헌터 VS 뱀파이어
주서현은 특수부 부장 강명숙과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주서현은 뱀파이어 전용 구속복을 입었다. 그녀의 양옆으로 예거 2명이 긴장한 상태로 서 있었다.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구속복을 찢을 수 있었다. 그녀는 평범한 뱀파이어가 아니라 노블급 이었으니까. 아니, 그녀는 노블급 이상으로 강했다.
“주서현. 실망이다.”
강명숙이 말했다.
“나는 네가 뱀파이어가 되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설령 뱀파이어가 되더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목숨을 끊겠다 싶었지. 내가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군.”
“…….”
주서현은 뱀파이어가 되고 나서 바로 윤서진을 쫓지 못했다. 특정한 뱀파이어의 피 냄새만을 맡고 추적하기에는 막 뱀파이어가 된 그녀에겐 힘든 일이었다. 거기에 막 뱀파이어가 되었을 때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뱀파이어의 힘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이해 안 가는 게 있다. 왜 도망치지 않았지? 도망칠 시간은 충분했을 터다. 회사에 항복한 이유는? 설마 뱀파이어가 됐는데도 아직 회사원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주서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회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돈 같은 건 아닐 테고.”
“윤서진을 죽여야 합니다. 그를 추적하기 위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네 파트너가 윤서진에게 죽었다고 들었다. 복수심인가?”
“…네.”
“…….”
침묵이 내려앉았다. 지독한 침묵 속에서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주서현은 강명숙이 받아들이리라 생각했다. 누구보다 뱀파이어를 증오하기에, 그 뱀파이어마저 사용할 수 있는 게 그녀가 아는 강명숙이니까.
“…너라는 칼을 잃는 건 이쪽도 좋지 않지. 하지만 중대한 문제가 하나 있다. 너를 믿을 수 없다는 것. 이해하지?”
“윤서진을 죽인 뒤에 저도 죽겠습니다.”
“엄청난 각오로군. 그런데 알고 있나? 뱀파이어가 되어도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는 놈들은 몇십 명이나 봤지. 어떻게 됐는지 아나? 일주일이 지나자 인간성의 인자도 남아 있지 않더군. 내가 어떻게 널 믿을 수 있을까.”
뱀파이어의 피는 인간의 뇌까지 건드려 사고방식을 바꿔버린다. 빠르면 몇 시간, 늦어도 일주일이다.
회사가 뱀파이어로 뱀파이어를 상대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
“최소 일주일의 시간을 제게 주시죠.”
“뭘 믿고?”
“예전에 뱀파이어를 통제하기 위한 실험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처참하게 실패했지. 아, 참고로 인간으로 되돌리는 방법 같은 것도 없어.”
“그때 뱀파이어의 목에 폭탄 목걸이를 채웠다고 들었습니다. 그 목걸이를 제가 차겠습니다.”
“넌 평범한 뱀파이어가 아니잖나. 강인한 인간이 강인한 뱀파어이가 된다. 그 법칙은 존재해. 네가 능력으로 폭탄 목걸이를 해제할 수도 있지. 아, 아직 네 능력을 묻지 않았군. 능력이 뭐지?”
“……피를 조종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뱀파이어를 위한 능력이군.”
강명숙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열쇠를 들고 주서현의 구속구를 풀었다.
“조건이 있다. 하나는 폭탄 목걸이를 찰 것. 그 폭탄 안에는 은으로 만든 조각들을 넣을 거다.”
“…두 번째는 뭐죠?”
“넌 내가 직접 관리한다. 내 명령을 들어라.”
“뱀파이어를 죽이는 명령 외에는 듣지 않을 겁니다.”
“안 들으면 어쩌려고? 회사의 도움이 필요 없나?”
“혼자 노력하는 수밖에요.”
“여기서 빠져나갈 자신은 있고?”
“네.”
“과연 최고의 예거였던 여자답군. 뱀파이어 추살 명령 외에는 내리지 않겠다. 사적인 명령도 네게 내릴 생각이 없다. 부디 나의 검으로서 네 동족인 뱀파이어를 죽여다오.”
“윤서진의 추적이 조건입니다.”
“당연하지.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뱀파이어는 그놈이니.”
“그럼 우선….”
강명숙은 살짝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다. 인간이 뱀파이어가 되면 가장 먼저 느끼는 건 배고픔이지.”
강명숙이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인간의 혈액이 들어간 팩이었다. 주서현은 혈액 팩을 힐끗 보고는 다시 강명숙을 똑바로 바라봤다.
“제 검을 돌려주시죠. 그 검은 그 누구에게도 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남자친구의 유품 말인가. 열녀 납시셨군. 네가 이런 여자일 줄은 전혀 몰랐다. 오늘은 너에 대한 새로운 것들을 많이 알게 되는군.”
“…성유진은 남자친구가 아닙니다.”
“그럼 뭐지?”
“원수입니다. 제가 죽였어야 할… 원수.”
“하…. 지금 네 얼굴을 보고 그딴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제 얼굴이 어떻다는 거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얼굴이야. 아주 예전에 내가 지었던 얼굴이지.”
“…….”
***
주서현은 강명숙의 개로서 뱀파이어를 처단했다.
하루에도 다섯 번 이상 싸우고, 심할 때는 잠도 자지 못하고 매일 뱀파이어를 썰었다. 허나 그녀의 육체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다른 노블급 뱀파이어보다 훨씬 신체 능력이 강력했다. 또한 그녀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가속 능력도 더 강해졌다.
“도살자! 뱀파이어가 됐으면서 왜 동족을 공격하는 거냐! 인간이 네게 보상이라도 해줄 것 같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에게 와라!”
노블급 뱀파이어 백지오가 소리쳤다. 그는 과거에 부하 뱀파이어들을 시켜 회사 소속 훈련소를 습격했던 적이 있었다.
주서현은 일절 대꾸하지 않았다.
바닥에 웅덩이진 피들이 주서현의 의지를 받아 움직인다. 피는 검의 형태로 변해 허공을 날았다.
이기어검.
아틀란티스에서 주서현이 자주 사용했던 그 기술을 뱀파이어의 능력을 통해 사용하고 있었다.
피의 검들이 제 의지를 가진 것마냥 움직이며 주위에 있는 뱀파이어들을 도살한다. 뱀파이어들은 버틸 수 없었다. 피의 검 하나, 하나에 검술의 묘리가 스며들어 있었다.
뱀파이어의 신체 능력으로도 겨우 검의 움직임을 쫓을까 말까인데 검술의 묘리까지 스며들어 있다? 평범한 뱀파이어들은 대응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죽는 수밖에.
뱀파이어가 죽는다.
뱀파이어의 피가 흘러나오고 피의 검은 더 많아졌다.
백지오는 어처구니가 없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윤서진의 말이 틀렸군. 뱀파이어의 여왕? 저건 여왕이 아니라 신이다. 뱀파이어를 죽이는… 뱀파이어의 신.”
주서현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소나타는 달빛을 받아 반짝인다. 백지오가 눈을 깜빡였다가 떴다. 그의 앞에는 어느새 주서현이 나타나 목에 검을 겨누고 있었다.
100m의 거리를 1초도 안 되어 주파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윤서진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
“…걸려들었군. 네가 윤서진을 찾고 있다는 정보는 입수했다. 내게도 그렇게 물을 줄 알았다.”
백지오가 손에 감추고 있던 기폭제를 눌렀다. 주서현의 발아래에 숨겨져 있던 폭탄이 터진다.
쾅!
그러나 주서현은 멀쩡했다. 그녀의 발아래에서 혈액이 요동친다. 혈액이 주서현의 몸을 완벽히 보호한 것이다.
“……알고 있었나?”
“아니. 능력이 멋대로 움직인 것뿐이야.”
“뭐 그딴 능력이 다 있냐.”
“윤서진의 위치는?”
“하하. 몰라 씨발년아!”
백지오의 손목이 분리되어 주서현의 머리로 날아간다. 백지오의 능력이었다. 주서현은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백지오의 몸과 분리된 손이 동시에 반으로 갈라진다.
주위에 살아 움직이는 뱀파이어는 없었다.
그녀는 목에 찬 고리형 목걸이를 매만졌다.
“부장. 끝났습니다.”
-역시나군. 설마 닷새 만에 한국에 있는 뱀파이어 80% 이상을 혼자서 없애 버릴 줄이야. 역시나 대단하군.
폭탄 목걸이에서 강명숙 부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백지오도 윤서진이 어딨는지 모르더군요.”
-이쪽에서 흔적을 찾았다. 윤서진은 이틀 전에 한국을 떴다더군. 그는 지금 루마니아에 있다. 뱀파이어들이 점령한 국가에 말이다.
“…일부러 늦게 말씀하신 겁니까?”
-그럴 리가. 이 정보는 나도 방금들은 따끈따끈한 정보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지?
“루마니아로 갑니다.”
윤서진을 죽여서 복수한다. 지금 주서현에겐 오직 그 생각만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
주서현은 윤서진을 만났다.
윤서진은 혼자가 아니었다. 뱀파이어 3,000명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옆에는 다른 뱀파이어 로드 2명이 함께했다.
“도살자. 검을 내려라. 우리와 함께 해라. 네가 우리와 합류한다면… 세상은 우리 뱀파이어의 것이 된다. 우린 너를 여왕으로 섬길 준비가 끝났다.”
“드디어 만났구나, 윤서진… 죽어!!”
주서현이 윤서진을 향해 내달렸다. 그녀의 앞을 막아선 뱀파이어를 썰면서 거리를 좁힌다. 죽은 뱀파이어의 몸에서 피가 빠져나와 검이 되었다. 피의 검은 다른 뱀파이어들을 죽인다.
이윽고 작은 저수지를 이룰 정도로 많아진 피는 남아 있는 뱀파이어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기 시작했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 윤서진과 뱀파이어 로드 2명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윤서진! 저 여자가 이 정도로 강하다는 말을 못 들었다!”
“빌어먹을! 왜 동족을 죽이는 거지?! 인간 태생의 뱀파이어라도 동족에 대한 애정은 있을 터! 분명히 있을 터인데…!”
호들갑을 떠는 둘과 다르게 윤서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격이 다르군. 하긴 인간이었을 때도 뱀파이어 로드와 비비는 여자였으니…. 차라리 그때 죽였어야 했다. 이렇게 뼈저리도록 후회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뱀파이어 로드 2명의 머리가 위로 날아간다. 윤서진은 주서현의 검의 잔상을 겨우 볼 수 있었다.
주서현은 윤서진을 노려보며 검을 휘두른다.
윤서진이 능력을 사용했다. 허나 진동이 주서현에게 닿는 것보다 먼저 검날이 정수리에 닿는다. 검은 그대로 윤서진의 몸을 가르며 아래로 내려가 반으로 갈라 죽였다. 윤서진의 시체가 바닥에 떨어져 핏물에 잠긴다.
주서현은 숨을 내쉬었다.
피 냄새가.
달콤하게 느껴지는 피 냄새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복수는 끝났어….’
만족감과 허무감이 느껴지려는 찰나였다. 억눌려 있던 본능이 깨어난다.
꼬르르륵.
배고프다.
그동안 먹지 않았던 인간의 피가 자꾸만 생각난다.
-수고했다, 주서현.
쾅!
주서현이 목에 차고 있던 목걸이가 폭발했다.
***
“수고했다, 주서현.”
강명숙은 짧은 말과 함께 버튼을 꾹 눌렀다. 쾅! 스피커에서 폭발음이 들린다.
그녀는 정면에 있는 화면을 쳐다봤다.
장소에 몰래 설치해둔 카메라를 통해 주서현이 보였다. 주서현의 목 위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연기가 사라지고 주서현의 멀쩡한 머리가 나타났다.
‘그 짧은 시간에 능력으로 몸을 감싼 건가. 터무니없는 년….’
강명숙이 입술을 깨물었다.
“강명숙 부장! 저 여자가 멀쩡하지 않나!”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저 괴물년의 검이 우리를 토막 낼 거다!”
강명숙의 뒤로 회사 임원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강명숙은 눈살을 찌푸리며 일갈했다.
“시끄럽습니다! 다음 플랜으로 넘어가면 될 뿐입니다!”
강명숙은 다른 버튼을 주먹으로 내려치듯 눌렀다.
임원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미친년… 뱀파이어 하나 죽이겠다고 핵미사일을 진짜 쏘다니….”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하려는 거냐?!”
“저기에는 아직 몇만 명의 사람이 있다!”
“어쩔 수 없는 희생입니다. 저 괴물을 지금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다음은 없습니다. 보시지 않았습니까. 수천 명의 뱀파이어가 3분도 되지 않아 썰려 나가는 장면을!”
“그건… 어, 잠깐! 괴물년이 움직인다! 핵미사일이 떨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괴물년의 움직임을 막아!”
임원이 호들갑을 떨었다.
강명숙은 침착하게 스마트폰을 들어 주서현에게 연락했다. 주서현은 걸음을 멈췄다.
-부장님.
“주서현! 넌 날 배신했다!”
-…아. 배신하려고 한 게 아닙니다. 능력이 멋대로 발동했습니다. 본능 같은 거라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고작 그딴 말을 변명이라고 하는 거냐?!”
강명숙이 식은땀을 흘렸다. 핵미사일이 떨어지기까지 1분은 더 남았다. 1분이면 주서현이 대처할 수 있다. 아니, 30초면 그곳에서 벗어날 것이다. 그리고 10초면 땅을 파서 핵폭발을 피하겠지.
그러니 시간을 벌어야 한다. 대화로 주서현의 의식을 빼앗는 거다. 주서현이 핵미사일에 대처하지 못하도록.
-배가 고프네요. 배가 너무 고파요.
“…빌어먹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제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만 끝내야겠죠.
“뭐?”
-저는 복수를 완료했습니다. 뱀파이어의 수도 줄고 로드도 3명이나 죽었으니… 인류가 승기를 잡았다고 봐도 되겠죠. 이제 미련은 없습니다.
주서현이 검을 역으로 들더니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혈액이 반응하며 검을 막으려고 했으나, 주서현의 힘과 검이 가지고 있는 대마력에 밀렸다. 푹! 정확히 심장을 관통한다. 대마력이 뱀파이어의 회복력을 억제한다. 주서현은 바닥에 쓰러져 죽었다.
“…….”
상황실은 침묵에 빠졌다.
인류를 위협할 괴물이 죽었다고 순순히 기뻐하기에는 해결할 문제가 남아있었다.
“강명숙!!! 이 미친년아!!! 핵은 어떻게 처리할 거냐!! 어?!!!”
임원 하나가 강명숙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넋이 나간 강명숙은 대꾸하지 못했다. 설령 넋이 나가지 않았더라도 떨어지기까지 30초도 남지 않은 핵미사일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화면에 최상단에서 핵미사일이 나타났다. 핵미사일은 주서현이 있는 곳에 정확히 떨어졌다.
화면이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