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작물 속으로-1715화 (1,495/2,000)

< 1715화 > 1715. 헌터 VS 뱀파이어

뱀파이어 로드 윤서진을 죽인 주서현은 자신의 심잠에 검을 박고 자살했다. 그런 그녀의 시체 위로 핵미사일이 떨어진다.

나는 주서현의 옆에 있었다. 계속 옆에 있었다. 물론 주서현은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월광 소나타 7은 여기서 잃어버리기 아까운데. 회수할 수 있으려나?’

지금 나는 스킬과 특성 대부분을 사용할 수 없었다.

가령 완전 회복의 경우에는 쿨타임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세계에선 사용할 수 없다.

[완전 회복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찰나를 사용할 수 있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세계가 느려지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순 없었다.

‘시도는 해봐야지. 역소환.’

핵마시일이 떨어지기 직전, 주서현의 가슴에 박힌 월광 소나타 7이 사라지며 내 인벤토리로 들어온다.

‘성공했다!’

운이 좋았다. 이 검은 여기서 잃기엔 너무 아까웠으니까.

그리고 핵미사일이 땅에 떨어지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핵미사일이 누구의 짓일지는 뻔했다. 회사다. 뱀파이어가 된 주서현의 힘을 보고 핵미사일을 쏜 거겠지. 솔직히 내가 회사였어도 핵미사일 외의 방법으로 주서현을 이길 자신이 없다. 폭탄 목걸이도 통하지 않으니 핵이라도 써야 하지 않겠나.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상당히 불쾌한 짓거리지만.

‘주서현이 자살하면서 핵미사일은 헛지랄이 됐지.’

핵미사일을 주장한 인물은 강명숙 부장일 것이다. 뱀파이어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여자니까.

작은 위력의 핵이라고 해도 핵이다. 이 근처에 있는 도시나 마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희생자는 말할 것도 없다. 루마니아 주변 국가에서도 난리 칠 것이 분명했다.

‘그 책임은 강명숙이 져야겠지. 안 봐도 뻔하지. 강명숙도 끝이겠군.’

회사는 강명숙을 징계할 것이다. 일을 전부 숨기기에는 핵미사일은 너무 큰 사고다. 회사가 여론을 조작할 수 있겠지만….

‘뱀파이어 새끼들 회사에 사람 심어둔 거 100%야. 당장 곽수혁도 윤서진을 만나 뱀파이어가 된 걸 보면 확실하지.’

뱀파이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폭로할 테고 회사의 신뢰는 땅에 처박히겠지.

‘뭐, 이젠 내 알 바 아니야.’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도우미 주서현이 사망했습니다.]

[퀘스트 도우미 주서현은 원래 세계로 돌아갑니다.]

[퀘스트 도우미 주서현은 이 유희의 기억을 모두 꿈으로 여길 것입니다.]

[엔딩이 저장됩니다.]

[‘헌터 vs 뱀파이어’의 퀘스트 보상이 주어집니다.]

[‘블러드 컴파스’를 획득합니다. 인벤토리를 확인해주십시오.]

[앞으로 ‘블러드 컴파스’를 랜덤 뽑기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주서현의 인연 레벨은 8입니다.]

[곽수혁의 인연 레벨은 3입니다.]

[강명숙의 인연 레벨은 1입니다.]

…….

현실로 돌아온 나는 블러드 컴파스와 포인트를 확인했다.

[성유진

레벨: 87

근력: 120 체력: 113 민첩: 110 지능: 110 정력: 120 마나: 120]

[사용 가능 포인트: 12,977]

포인트는 2,000 가량 쌓였다. 생각보단 적긴 해도 나쁘진 않았다.

‘통장에 조금씩 돈을 쌓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옛날 기억이 떠오른다. 통장을 보며 한숨을 내쉬던 나날들 말이다. 유희 생활 어플을 각성하고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신에 포인트를 보며 한숨을 쉬는 일이 생겼지만.

[블러드 컴파스

대상의 피를 나침반에 떨어뜨려 사용합니다.

블러드 컴퍼스는 피의 주인을 추적합니다.

일회용입니다.

가격: 10,000 포인트

※주의

추적 대상이 죽으면 효과가 사라집니다.]

블러드 컴파스는 평범한 나침반으로 보였다. 겉모습만 그렇다. 나침반을 이리저리 움직여봐도 침이 움직이지 않는다. 방향 표시도 없었다.

‘뭐, 당장 필요한 건 아니니까.’

얻은 것들을 확인하고 다른 유희 세계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신의 아틀란티스.

지금 주서현이 어떨지 너무 궁금했다.

***

“……!”

주서현이 번쩍 눈을 떴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는 머리를 붙잡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약간의 두통과 선명한 꿈의 기억이 떠오른다.

자신은 다른 세계에서 뱀파이어 사냥꾼이 되었다. 아니지. 그곳에선 뱀파이어 사냥꾼을 회사원이라고 불렀다. 뱀파이어 처리 전문 회사에 들어가서 1년 동안 일했다. 예거라는 별명도 받았고. 성유진과 만났다.

“으윽….”

주서현은 신음을 흘렸다.

성유진은 꿈속에서도 성유진이었다. 설마하니 꿈속에서도 성유진에게 범해질 줄이야.

‘…성유진에게 범해지기만 한 건 아니야.’

파트너가 되어서 같이 일하고, 같이 휴식을 보낸다. 마치 동거하는 연인처럼 지냈다. 그러나 그 기간은 몇 개월에 불과했다.

성유진은 뱀파이어 로드에게서 자신을 구하려다 죽었다. 꿈속의 자신은 슬퍼하는 동시에 분노했다. 성유진의 복수를 위해 뱀파이어가 되었고, 결국은 그 뱀파이어도 처리한 뒤에 자살했다.

죽은 뒤에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진 걸 본 것 같았다. 어두운 하늘을 빛을 내며 가르던 걸 기억한다.

‘…유성이었나?’

정확히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기억을 헤집으며 숨을 내쉬었다. 꿈치고는 너무 실감 난다. 그제 정말 꿈이었을까?

곧 주서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호흡을 내쉴 때마다 고통이 줄어드는 것과 동시에 선명했던 꿈이 옅어지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꿈을 생각해도 소용없었다. 나중에는 이런 꿈을 꿨었지 하고 생각하겠지.

‘기분 나빠.’

꿈속에서 성유진과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어차피 꿈속이다. 그곳에서 자신과 성유진이 무엇을 하든 아무 의미 없다. 그녀가 기분 나쁜 건 점점 사라지는 기억이다. 마치 누군가에게 기억을 빼앗기는 것 같았다.

“흐읏….”

주서현이 몸을 일으켰다. 꿈의 영향인지 몸이 찌뿌둥하다. 그녀는 몸을 움직이다가 뭔가가 이질적이라는 걸 느꼈다. 마치 아주 오랜만에 이 몸을 움직이는 듯한 감각…. 뭔가 넘치는 것 같으면서도 부족하다.

‘꿈속에서 뱀파이어가 됐을 때 피를 조종하는 능력이 생겼지. 피를 조종하는 그 감각은 지금도 선명해.’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은 꿈이다. 꿈인 이상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주서현은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7시. 꿈 때문일까. 평소보다 일어나는 게 늦었다. 그래도 늘 해오던 아침 수련을 빼먹을 순 없었다.

그녀는 침대 옆에 놓여 있는 검을 들었다. 그녀가 애용하는 검 중 하나다. 꿈속에서는 뱀파이어 로드와 싸우면서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부서졌다.

‘검은 멀쩡해. 역시 그건 꿈이었어.’

그녀는 지하 수련실로 내려갔다. 오직 그녀만을 위한 개인 수련실이었다. 그리 넓지 않지만 검술을 수련하기엔 충분했다.

획!

검을 휘두른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꿈속의 기억이 점차 옅어지고 있다. 마치 검으로 기억을 베는 것처럼.

주서현은 이를 악물었다.

꿈이다.

꿈일 뿐이다.

이렇게 집중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꿈을 떠올리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꿈을 떠올리지 않으면…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는 게 아닐까. 그건 좀 싫다.

철컥!

문이 열린다.

주서현은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노크도 없이 수련장에 들어올 인물은 한 명뿐이었다.

“오. 역시 오늘도 있네.”

성유진이었다. 능글맞은 웃음을 짓는다.

“…뭐 하러 온 거야?”

“뭐 하러 온 것 같아?”

“보나 마나 추잡한 목적을 가지고 왔겠지.”

“너한테 거부할 권리는 없어. 알지? 거부하려면 날 이겨야지.”

“다음에는 반드시 이기겠어.”

주서현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성유진은 그녀의 목소리에 서린 살기를 느꼈음에도 실실 웃기만 할 뿐이다.

“골백번도 더 들은 것 같은 말이야.”

주서현은 그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평소라면 발정 난 짐승처럼 다짜고짜 자신을 덮쳐왔을 것이다. 저번 전투에서 진 자신은 그걸 저항할 수 없을 테고.

“사실은.”

성유진이 천천히 다가온다. 주서현은 미간을 좁혔다. 순간적으로 꿈의 기억이 지금의 성유진과 오버랩된다.

“내가 이번에 밖에서 꽤 좋은 물건을 얻었거든.”

“…꽤 좋은 물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너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또 이상한 장난감을 가져온 모양이네.”

성인용 장난감을 가져왔을 것이다. 보기에도 기분 나쁜 장난감일 테지. 성유진에게 농락당할 자신을 생각하니 분노와 증오가 다시 치솟는다. 어떻게 보면 이런 성유진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복수심을 항상 일깨워주니까.

“반드시 죽여버리겠어.”

“그래. 그래. 그런 너를 위한 선물.”

성유진이 허공에서 검을 꺼냈다. 검을 본 주서현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진다.

성유진이 실실 웃으며 위험하게 검을 휘두른다. 그녀는 달빛을 닮은 듯한 그 검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 검은….”

“이번에 고생해서 얻었어. 월광 소나타 7이라는 검이야. 무려 S 랭크 검이지.”

“…그런 대단한 검을 왜 나한테 주는 거야?”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오늘 이상한 꿈을 꿨어. 꿈에서 네가 나왔어. 너랑 나는 회사라는 곳을 다녔는데 뱀파이어 사냥꾼이었지. 뭐, 지금 와선 가물가물하지만…. 꿈속의 내가 마지막에 너한테 이 검을 줬거든. 이건 어쩌면 계시 같은 걸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너한테 주려고.”

“…….”

주서현의 눈동자가 맹렬히 흔들렸다. 자신과 성유진은 같은 꿈을 꿨다. 왜?

“…꿈이 아닐지도.”

“뭐라는 거야? 자, 검이나 받아.”

주서현은 검을 쥐고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녀의 고개가 아래로 내려갔다. 이 검을 쥐는 감각…. 꿈속에서 느꼈던 감각과 흡사했다. 정말 그것은 꿈이었을까? 꿈에 불과했을까?

생각에 잠긴 주서현의 뺨에 성유진의 손이 닿았다. 주서현이 고개를 들었다. 성유진의 얼굴이 다가오더니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조용히 키스를 받아들였다. 성유진의 키스는 여전히 거칠었다. 짐승처럼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한다. 마냥 당할 수만은 없다. 주서현 또한 입을 움직여 성유진에게 대항했다. 그들의 혀가 뒤섞이는 소리가 수련실을 가득 채웠다.

「검은 복수가 당신을 우려합니다.」

「검은 복수가 복수심을 잃어선 안 된다고 충고합니다!」

「검은 복수가 자신의 충고가 당신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복수심을 잃는다고?

그럴 리 없다.

이건 내기에서 졌기에 성유진에게 희롱당하고 있을 뿐이다.

‘기회가 생긴다면 반드시…!’

주서현은 다짐하며 눈을 감았다. 그녀의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