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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717화 (1,497/2,000)

< 1717화 > 1717. 헌터 VS 뱀파이어

나는 바닐라의 마나 씨앗이 들어있는 열매를 받아서 살펴봤다. 소문은 제법 들어는 봤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제법 신기했다. 이런 물건은 돈이 있다고 해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정신을 집중하자 열매에서 마나가 느껴진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미약했다.

‘이딴 게 영약이라…. 광명승천도의 영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잖아.’

지금 내게 그리 큰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

“직접 보니 실망했냐?”

“어. 실망했다. 내가 먹어도 도움이 될 것 같진 않군.”

“A급 이상의 실력을 가진 놈들은 죄다 그렇게 말하지. 근데 B급과 C급은 아니야. 그들에겐 이 마나 씨앗이야말로 희망 그 자체니까! 더럽게 돈이 많이 드는 희망이지만!”

박정구는 추가로 마나 씨앗의 사용처에 대해 말한다.

마나 씨앗은 직접 사용하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에 사용된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특수 물약 제조이고, 마나 씨앗을 이용한 특별하고 비밀스러운 레시피를 가진 가문이나 기업도 다수 존재한다.

“요컨대. 바닐라의 마나 씨앗은 활용도가 높다는 거지. 개똥도 쓰기 나름이라 하잖아? 개똥이랑 비교도 안 되는 마나 씨앗이면 어떻겠어? 존나 쓸 데가 많다는 거지!”

“일 이야기로 가자. HB-1으로 마나 씨앗을 대량 생산할 수 있나? 내가 알기로는 HB-1으로 영약 같은 특수한 식물은 별 의미 없다고 들었다.”

애초에 영약이 특별한 이유는 마나를 품고 있어서다. 촉진제의 힘을 받아 식물이 완전히 자란다고 하더라도 마나가 숙성되지 않았다면 별 의미 없다.

“HB-1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잖아. 흥미 없는 게 아니었나 봐?”

“대답이나 해라.”

“네 말이 맞아.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는 그렇지. 근데 마나 씨앗 정도는 환경 요인만 맞으면 HB-1으로 생산할 수 있어. 설마 내가 이것도 모르고 내가 제안했을까 봐.”

“증명된 건가?”

“정보에 의하면 말이지.”

박정구가 씨익 웃는다. 암상인인 박정구의 판매 물품 중에는 정보도 있었다. 그러니 신뢰성은 있다.

“조건은? 자세히 말해.”

“비옥한 땅. 물론 그냥 비옥한 땅은 안 돼. 마나가 녹아 있는 땅이어야 하지. 대기 중에 마나가 더 높으면 더 좋고.”

“지구에 없는 땅이군.”

“지구에는 없어도 던전에는 있지.”

나는 미간을 좁혔다. 던전의 환경은 각양각색이다. 대부분 마나 농도가 지구보다 높지만, 그 반대로 마나 농도가 낮은 던전도 있다. 마나 농도가 높아도 얼어붙은 땅이나 바위로 이루어져 식물이 자랄 수 없는 환경인 경우도 많다.

“설마 바닐라의 마나 씨앗이 맞는 환경을 가진 던전을 찾으란 말은 아니겠지?”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는 하는데… 오늘은 아니야.”

박정구가 서랍에서 지도를 꺼냈다. 대한민국의 지도다. 지도에는 여러 곳에 표시되어 있었다.

‘어쩐지 익숙하다 싶었더니… 오픈형 던전을 표시해뒀군.’

오픈형 던전. 폐쇄형과 달리 자격만 된다면 누구나가 입장할 수 있는 던전이다. 헌터 범죄가 가장 자주 일어나는 곳이 이 오픈형 던전이다. 동시에 폐쇄형보다 공개된 정보가 훨씬 많다.

‘오픈형 던전은 일부러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고 관리하니까.’

주기적으로 마나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오픈형 던전은 천연자원인 광산과 비슷했다. 헌터는 마나석을 캐는 광부인 셈이고.

“던전마다 표시가 다르군.”

“파란색 표시는 볼 것도 없어. 부적합한 곳이니까.”

“대다수가 파란색이다만.”

“그러니까.”

박정구가 손가락을 움직여 지도 곳곳을 가리킨다.

“여기 붉은색으로 표시된 곳이 마나 씨앗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던전들이야. 이미 조사는 끝냈어.”

“확신하는군. 이미 한 번 해봤나?”

“아니. 알려진 정보를 수집하고 비교하고 계산해서 난 결론이지.”

“이론 쟁이는 영 신뢰가 안 가는데.”

“이론이 아니라 계획을 위한 사전 준비다, 이 자식아!”

“그게 그거잖나. 근데 설마 이 빨간 표시된 곳을 전부 돌아다니라는 뜻은 아닐 테지?”

“미쳤냐. 당연히 아니지. 인기 없는 오픈형 던전이 있어. 그래. 전라도 쪽에 있는 여기…. 좀 멀긴 한데 안전하게 하려면 수고를 감수해야지.”

“들키면?”

“당연히 빼앗으려고 할 게 당연하잖냐. 특히 대형 길드에게 들키는 건 조심해라. 법으로 소송을 건다고 지랄할 수도 있고…. 죽여서 빼앗을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안 좋으니 최대한 은밀하게 진행해.”

나는 마나 씨앗이 든 마나 열매를 바라봤다. 직접 느껴보니 그리 대단한 느낌은 아니다. 흥미가 좀 가셨다고 할까.

‘하지만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이긴 하니…. 언제 필요하게 될지 모르니 몇 개 챙겨두면 좋겠지.’

그리고 내가 가진 광명승천도로 강화하면 꽤 쓸만한 물건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HB-1과 마나 씨앗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박정구에게 말했다.

“차 좀 빌리자.”

“차 없냐? 가진 돈이 얼마인데 차도 없어? 이번에 번 돈으로 차 좀 뽑아.”

“이런 일에 내 차 타기 싫다. 싫으면 여기서 관두고.”

HB-1과 마나 씨앗을 도로 그에게 건넨다. 정말로 내가 별 흥미 없다는 것을 안 그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진다.

“이런 젠장. 넌 돈에 초탈한 거냐? 나한테서 돈을 챙겨가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뭐 하는 놈인지 진짜 모르겠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근데 굳이 네가 아니어도 돈을 벌 방법은 많다.”

“어후, 씨발. 그러시겠죠. A급 헌터시니까. …더 필요한 건 없고?”

“뭐냐. 호구처럼 챙겨줄 생각이냐? 내가 알던 수전노 박정구는 어디 갔지?”

“야. 그거 30억 짜리라고 했지. 마나 씨앗까지 합치면 35억이 훌쩍 넘어. 네가 실수하면 좆되니까 준비는 최대한 해야지.”

“마나 씨앗이 5억이었나?”

“지금 시세로는.”

“그럼 넌 못해도 7개는 얻어야 하는군.”

“내 예상대로면 100개 이상도 가질 수 있어. 35억으로 500억을 벌 수 있다고! 이게 바로 돈 복사 버그지!”

“마나 씨앗 복사 버그겠지. 근데 그중 절반은 내 거다.”

“됐고. 더 필요한 거 없냐?”

“없다.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하지.”

밖으로 나가려던 나는 잠깐 멈칫했다. 박정구를 돌아보자 인상을 쓴다.

“또 뭐?! 왜?!”

“이 일에 왜 날 선택한 거지? 나 말고 다른 놈들도 선택할 수 있었을 텐데.”

“첫째 실력. 넌 내 고객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놈이야. 둘째 돈 욕심. 꼬박꼬박 돈 벌어가는 놈치곤 돈에 대한 욕심이 없지. 셋째. 너랑 나랑 알고 지낸 지가 벌써 2년이 넘어. 2년이면 좀 믿어도 되지 않겠냐?”

“…500억 벌기 참 쉽군. 병신 새끼.”

“야 이 새끼야! 내 돈 가지고 튀면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죽여버린다!”

날뛰는 그를 뒤로하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고작 500억 때문에 박정구를 배신할 생각은 없었다. 나에 대한 평판이야 인피면구를 바꿔 끼면 그만이지만, 박정구처럼 믿을 수 있는 암상인은 별로 없었다.

가게 옆에 주차되어있는 차로 간다.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승용차였다.

***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해가 저물어 있었다. 헌터도 보통 낮에 일하고 저녁에는 퇴근하니 오픈형 던전이라도 내부는 한산할 것이다. 좋았다.

‘B급 오픈형 던전, 네 번째 사원.’

던전 입구에는 역시 협회 직원이 지키고 있다. 나는 B급 헌터이니, 헌터증만 보여주면 간단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성유진으로 헌터 활동을 위해 이곳을 찾은 게 아니다.

‘기록이 남는 건 피하는 게 좋겠지. 내가 하는 짓이 알려져서 좋을 건 하나도 없으니까.’

이럴 때를 위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일루시터를 사용한다. 몸이 투명해진다. 앞으로 30분 동안 나는 투명 인간이 된다. 그리고 30분은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호흡을 조절하며 기척을 지운다. 이럴 땐 영천류가 상당히 도움이 된다.

앞으로 나가려는 찰나,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5명으로 이루어진 파티였다.

“역시 밤에 오면 한산하다니까. 거기다 여긴 사람도 별로 없어서 던전 안에는 아무도 없을걸?”

“그놈의 쾌적한 사냥이 뭐라고 여기까지 온 건지….”

“밤이라서 피곤해 죽겠다. 한숨 자고 들어가면 안 되냐?”

잡담하며 협회 직원에게 다가갔다.

특이하게도 협회 직원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헌터가 던전에 무슨 일로 오겠습니까? 여기 헌터증입니다.”

“음.”

“확인했으면 비켜주시죠.”

“밤이라 그런지 일행분들이 피곤해 보이시는군요. 네 번째 사원은 위험한 곳입니다. 한숨 푹 쉬시고 내일 아침 입장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이상한 일이었다. 던전을 지키는 협회 직원은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일은 헌터증을 확인하고 헌터를 던전 안으로 들여보내 준다. 그게 전부다. 던전안에서 헌터가 무슨 지랄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게 규칙이다.

“오지랖 떨지 말고 비켜주세요. 지금 던전으로 가야 사람이 적어서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저희가 돈이 좀 급하거든요?”

파티의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인상을 썼다. 날카로운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 담겨 있었다. 협회 직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물러났다.

“확인했습니다. 들어가시죠.”

“쯧.”

파티가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도 이상했다. 파티가 사라지자마자 협회 직원들이 모여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조장님. 이거 좆된 거 아닙니까?”

“좆된 건 우리가 아니라 저놈들이지. 헛소리 말고 한 명 들어갈 준비해. 아, 그놈들과 마주치면 안 되니 3분 뒤에 들어가.”

“네.”

대화를 들어보니 알겠다.

이 던전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 자세히는 몰라도 협회 직원까지 매수된 불법적인 뭔가다.

‘하필이면 왜 여기서 지랄이야. 귀찮게.’

나는 일단 물러났다.

이건 함정일지도 모른다. 협회 직원들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물러나서 박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야심한 밤에 무슨 일이야?

“목소리가 잠겼군. 나한테 일 시키고 자고 있었나?”

-그만큼 널 믿고 있다는 거지. 그리고 밤에는 자는 게 상식 아닌가.

“함정 팠냐?”

-뭔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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